【종그니칼럼】주는 것이 복되다.
여러분! 금년 더위가 얼마나 기승을 부렸습니까? 이대로라면 여름만 계속되고 가을도 겨울도 없을 줄 알았지요. 불가마처럼 대지를 발갛게 달구던 더위가 때가 되니 훌쩍 지나가고 이제 온 산야가 붉게 물들어 만추의 계절입니다. 잠시 쉼도 멈춤도 없는 계절은 변화무쌍하여 생명이 움트는 봄이 있는가 하면 역동하는 여름이 있고, 결실의 가을인가 하면, 모든 생명들의 죽음을 예표하는 겨울이 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요 역사의 수레바퀴다. 이처럼 계절은 자연의 순환을 따라 일년 춘하 추동을 알리며 반복되지만 우리네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 대자연은 우리에게 인생의 무상을 가르쳐 준다.
오늘 본문 출애굽 14장 10절~16절은, 인류 역사의 수레 바퀴를 굴리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여년동안 애굽의 노예가 되어 절망의 밤을 지새우고 있을 때, 이들에게 자유의 여명을 열어준 이가 바로 모세다. 애굽의 막강한 권력자 핫샘슈트 공주의 양아들이었던 모세는 그의 나이 사십세 때에 애굽의 모든 문물을 습득한 후 매임의 사슬에서 놓여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양치는 목동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나이 팔십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의 소명을 입어 양치던 지팡이 하나 들고 애굽왕 바로와 맞장을 떴다. 그리고 430년동안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옥죄고 억눌렸던 노예의 사슬을 끊고 애굽에서 자유의 몸이 되어 나옴으로써 마침내 자유민이 되었다. 그 기쁨은 형용할수 없으리만큼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사흘 길을 걸어 홍해 바닷 가인 '비하히롯'에 지친 몸으로 이르른 그때, 애굽 왕 바로가 철병거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 오는 것을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질겁하며 한 목소리로 모세를 원망하며 울부 짖는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 군대를 쳐서 무너뜨리면 그때에 너희가 비로소 여호와의 행하심인 줄 알게 되리라!" 그리고 마침내 바로 왕이 거느린 철병거가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는 '바하히롯'까지 추격해 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맘은 쫄 때로 쫄아 들었다. 그리고는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울부짖기를 "애굽 땅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 그러자 모세가 그들 앞에 서서 분연히 외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너희는 두려워 말고 잠잠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다시는 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모세는 이렇게 담대히 외쳤다. 이처럼 절대 절명의 위기에 서게되면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불어닥친 이 홍해바다의 위기가 바로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믿음이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처럼 앞서 말했듯이 인생광야의 여정에서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이 위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는 믿음 바로 이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은 밝은 낮도 만드셨고 캄캄한 밤도 지으셨다. 인생의 밤이 왔을 때 이 또한 하나님 섭리임을 아시라! 인생의 밤이 있어야 인생의 아침이 있는 것이다. 홍해의 위기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 모세 만은 이 위기의 밤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알게 되는 때가 어느 때일까?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라."는 말을 남겼다. 어떤 위기 어떤 자리 그 어떤 상황에서 든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드러낼수 있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인 것이다.
15년 전 이야기다. 서울 가정법원에서 불량친구들과 함께 오토 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으로 구속된 소녀는 방청석에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지켜 보는 가운데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소녀는 불과 일년 전까지만 해도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사는, 그러나 간호사를 꿈꾸는 착한 여고생이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부터 15년 전 4월 어느 날 서울가정병원 법정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불량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로 구속된 소녀에게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 소녀가 여름 어느 날 불량 청소년들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고 이 사건으로 홀어머니는 반신불수가 되고 이 소녀 또한 이 사건으로 온 맘이 망가져 비행소녀가 되고 말았다.
이윽고 김귀옥 부장판사(여성)가 재판석으로 들어오며 두려움에 질려있는 이 소녀에게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가 하는 말을 외쳐 보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 때 선창하던 부장판사도 울고, 따라하던 소녀도 울었다. 부장판사가 눈물을 보이며 방청석을 향하여 "지금 이 소녀는 범죄자가 되어 피고인석에 앉아 있게 만든이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다. 지금 이 소녀에게 필요한 것은 이 소녀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장판사는 이 소녀를 두 팔로 꼭 안아 주었다. 마침내 법정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한 여인을 바리새인들이 예수앞에 끌고 와서 예수에게 묻기를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 여인은 돌로 쳐죽여야 마땅한데 선생은 어쩌시겠오?"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치라."하시니 그 말씀의 거울앞에 드러난 죄가 찔림이 되어 하나 둘 모두 다 나가고 간음한 여인과 예수만 남게 되자 주님이 이르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니 다시는 죄짓지 말라." 여러분! 이를 아시는가? 내가 약해지므로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나고 나의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서 내가 세상을 믿음으로 사는것 그것이 바로 인간 본연의 자세인 것을!
오늘 본문 13절에서 모세는 우리에게 "너희는 두려워 말라"하였다. 루마니아 공산주의 치하에서 지독한 박해를 받던 범브란트 목사가 수년동안 옥중에 있으면서 신구약 성경속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5번이나 있는 것을 알고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분! 어둔 밤이 지나면 밝은 새 아침이 옵니다.
비 바람 부는 날도 있지만 쾌청한 날도 있다. 그러기에 어떠한 위기 어떠한 고난이 온다 할찌라도 두려워하지 마시라! 주님은 언제나 나의 삶 한 가운데 오셔서 인생 여정에서 지친 우리에게 엘림의 안식과 르비디의 생수를 주시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신다. 이사야서 41장 8절 이하에서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들아 내가 너희를 땅끝에서부터 불렀나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일주일 중 첫 날인 주일은 내가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주님의 날이다. 첫날을 분별해서 드리는 것 이렇게 삶의 진수를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이다.
시편 46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요 환란 때에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너희는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임을 알찌어다."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것 이것이 믿음이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하였다. 때문에 주일이 없는 인생은 뿌리가 없는 인생인 것이다. 주일도 없이 육신의 소욕에 팔린 인생은 고달프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것이 '하루살이'다. 하루살이는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다. 그래서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처럼 왜 사는지도 모른채 육신의 소욕과 세상의 안목을 따라 세상 풍조에 빠져 사는 인생이 바로 하루살이 인생인 것이다. 육신의 안목을 따라 사는 인생은 언제나 목 마르다. 마치 바닷물 마신 것처럼 언제나 목 마르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62편 1절에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 하였다. 당신이 심령의 귀를 열고 엎드릴 때 비로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다.
기적이 무엇인가? 나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바로 이 것이 기적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 "내년 이맘 때에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씀이 임하자 이듬 해 즉 백세 때에 아들을 낳았다. 팔십 노구의 모세에게 "애굽 바로에게 가라"하시는 말씀을 받자 그는 즉시 바로에게로 갔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양치던 지팡이니이다"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바다에 던지라"는 말씀을 따랐더니 마침내 홍해바다가 갈리고 바로 왕을 무릅꿇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높은 벽에 부디칠 때가 있다. 이러한 진퇴유곡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고만 있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처럼 지나가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 심령의 귀에 그대로 박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시련의 문제들이 갈라지고 쪼개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홍해바다가 어느 때 갈라졌습니까? 새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완성도 새벽이었고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도 새벽이었다. 그럼 어느 때가 새벽인가? 칠흙같은 어두움이 물러간 "새 날의 아침"이다. 이 새 아침의 찬란한 빛이 우리에게 비쳐올 때 이것이 기적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바로 어둠을 몰아내는 새벽이다. 어둠은 잠시다. 새벽을 알리는 새벽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우리의 삶 속에는 너무도 많은 어두움의 불신앙들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무겁던 심령이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심령속에 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몰아내는 찬란한 새 아침이 올 것이다.
시편 73편 28절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하였다. 그러기에 이사야는 이사야서 55장 3절과 6절에서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살이가 참 만만치 않습니다. 사노라면 너무도 많은 애굽들이 우리를 추격해 오지요. 애굽이 무엇인가? 세상에 대한 미련과 부귀와 명예 등 '이 땅의 자랑' '이 땅의 안목'일 것이다. 감사할 것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 되거든 가지지 못한 것 비움에 감사하시라.
【종그니칼럼】주는 것이 복되다
구약 레위기 3장 6절에,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이 없는 것'으로 드릴 것이며."하신 말씀을 읽다가, 문득 영국 메리여왕의 일화가 생각이 났다. 스코틀랜드에서 여름을 즐기고 있던, 영국 메리(Mary.1553~1558)여왕은, 어느 날 산책 길에서, 비를 잔뜩 머금은 먹장구름을 만났다. 그 먹장구름은 이내 소나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미처 아무 준비없이 홀로 산책을 나왔던 메리 여왕은, 급히 가까운 농가로 뛰어 들어 갔지만, 이미 온 몸은 소낙비로 흠뻑 젖어있었다. 허지만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어, 메리여왕은 농부의 아내에게, 우산을 좀 빌려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우산을 빌려주시면 내일 아침에 반드시 돌려 드리겠어요."
농부의 아내는 지금 자기앞에 서 있는 여자가, 메리 여왕인 줄은 꿈에도 몰랐었기에, 그녀는 살이 부러지고 녹이 슬어 쓰지않고,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우산을 찾아들고 나왔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사람에게 좋은 우산을 빌려 주었다가, 아주 돌려 받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였다. 하지만 메리여왕은 정중히 인사하고,
그 우산을 빌려 쓰고 갔다. 그리고 다음날 하인을 시켜 그 우산을 돌려주게 하였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밖을 나온 농부의 아내는, 정장을 한 남자가 문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더구나 그 남자의 손에는, 전날 그녀가 낯선 여인에게 빌려 주었던, 그 낡은 우산이 들려져 있는 게 아닌가! "여왕 폐하께서 이 우산을 돌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덕분에 참 고마왔다는 말씀도 전하라 고 하셨습니다."
여왕의 심부름꾼이 우산을 내 밀었지만, 농부의 아내는 그 우산을 받을 생각조차 못하고,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중얼거리듯,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그분이 여왕폐하이신 줄 알았더라면 가장 멋진 우산을 드렸을텐데..."
나는 가끔 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꼭 필요한 존재인가?" 집권당 대통령후보도, 이 농부의 아내처럼, "내가 형과 형수에게 막말을 하던 그때에, 내가 대통령후보가 될 줄을 알았더라면, 지난 날 남의 입조시에 오를 막말이나, 만취운전 등 비인격적인 언행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흘러간 유행가 가사에,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그래서 중요한 것은 '현재' '지금' '오늘'인 것이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이 난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공인은 공인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우리는 곧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쉽게 말한다. 그럼 이 말을 "섬기는 것이, 섬김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 할수 있는가? 또 "권리의 행사보다 의무의 이행이 더 복되다?" 할수 있는가? 자유 민주주의와 그리고, 자본주의적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은, 오로지 있어야 할 진정한 자유를 몰이해하여, 방임과 방종, 그리고 주어진 의무나 책무보다, 권리와 이기와 이권과 아집과 야욕에 흠뻑 젖어 있다. 잘못된 자본주의적 자유주의와, 잘못된 이기적 사회주의에 찌들어 있는 군상들이, 오늘 우리사회의 단면들이다.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근로의 의무, 등은, 진작 공짜 이권의 권리속에 함몰되어 버렸다.
어느 청년이 집앞에서 자전거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소년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곁에서 계속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윤이 번쩍번쩍 나는 자전거가 몹시 부러운듯 그 청년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 자전거 꽤 비싸게 주고 사셨지요?"
그러자 청년이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산게 아니고 우리 형이 사주셨어."
"아~ 그래요?"
소년은 매우 부드러운 소리로 대꾸 했다.
청년은 자전거를 닦으면서 이 소년은 틀림없이 "나도 자전거를 사주는 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거라 믿고, 그런 형을 가진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청년은 소년에게 물었다.
"너도 이런 자전거 갖고 싶지?"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뇨, 나도 동생에게 자전거를 사주는 그런 형이 되고 싶어요. 우리 집엔 심장이 약한 동생이 있는데, 그애는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이거든요. 나도 내 동생에게 이런 멋진 자전거를 사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소년의 생각은 청년의 짐작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 소년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받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반해, 그 소년은 자전거를 주는 소원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늘 도움받는 동생이 되고픈 사람이 있고, 도움을 주는 형아가 되고픈 사람이 있다. 더 많이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늘 안타까와 하는 사람이 있다.
설흔 셋에 백만 장자가 된 록펠러는, 43세에 미국 제일의 부자가 되었고, 십년 후인 53세에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지만, 록펠러는 행복하지 않았다. 55세때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걸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그 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주체할수 없는 큰 감동이 일어났다.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때, 갑자기 떠드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다.
병원측은 입원비가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 어머니는 입원시켜 달라고 울면서 사정을 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그 자리에서 곧 바로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케하고 누가 지불 했는지 모르게 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룩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나중에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 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그때 그는 나눔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다. 나중에 그는 회고하기를,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인생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 사회가 크리스챤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크리스챤으로 살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로부터,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보다, 이 사회에 무엇인가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어 주려고 하는 초아적 삶이, 축복받은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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