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산 자와 죽은 자

옛말에 "반대 잡겠다고 초가삼칸 태운다" 는 말이 있다.  오늘 그 얘기를 좀 하려고 한다.  나는 가끔 동해안을 갈때면 양양 고속도로보다 국도(國道)를 이용한다. 그 이유는 양양고속도로가 최 단축 거리라서 빠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터널로 되어 있어 강원도 산과 들의 풍광을 볼수가 없어 아쉽다.   하지만 국도로 가면 도로가 산세의 흐름을 따라 만들어져서  달리는 차창으로 보는 풍광이 아주 그냥 끝내 준다.  이 도로를 따라가게 되면  양구와 인제의 경계를 이루는 대암산 광치(廣峙)고개를 넘어가게 된다.   

지난 여름엔 이 고갯 마루를 신동철 님과 함께 넘어 가는데 그의 말이 "세계적인 자연 생태계인 '람사르 습지'가 이곳 대암산 정상 부근에 있다."고 하여 나는 그 말을 들은 즉시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곳으로 한달음에 올라 가는데 대암산 자연보호 지역과 '람사르 습지'를 지키는 '초소'에서 무단 출입자로 제지를 당해 어쩔수 없이 답사를 포기하고 돌아올수 밖에 없었는데 후에 알고 보니 무조건 외인은 근접을 못하도록 금지시킨 이유가 따로 있었는데  그 안에서 온갖 도벌과 산림을 훼손하는 불법을 자행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멀리서 산을 깎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깎인 토사가 아래로 흘러 내리는 것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있는 대암산은 1973년 7월 10일 천연 기념 제146호로 지정된 ‘엄정자연보호 지역’이다.  이곳에 국내 제 1호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람사르 습지'가 있고 또 '엄정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대암산에서 도벌꾼들의 훼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니 참 기가찼다.  이처럼 국내에 이름만 '보호지역'일 뿐 실질적으로는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이름뿐인 ‘페이퍼 보호 지역’들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단다.  내가 어렸을 때 나라가 궁핍하여 무척 배가 고팠던 시절, 허리 끈을 졸라매가며 농사를 지어도 보릿고개 를 넘기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네는 정말 아주 찌들어지게 살면서도 살만하게 된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먹고 사는 문제'보다 집안에 자손들이 번성하여 큰 가문이 되어야 조상에게 효가 된다는 명리를 크게 여겼기에 집집마다 애들을 경쟁하듯 낳았다.  그당시엔 정말 목불인견(目不人見)이었다. 그 때의 춘궁기(春窮期)를 보릿고개라 하였는데 그 시절의 모진세월을 견디며 자란 아이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오늘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이 들아! 아시는가? 1960년대 후반기 때 우리 민초들은 지붕을 스레트로 나무 때던 아궁이를 연탄으로 이렇게 근 20여년 동안을 민초들이 한 맘 한 뜻이 되어 대한민국 온 산을 푸르게 만들자는 일념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민초들이 비지 땀을 흘려가며 오지 깊은 산 꼭지점 까지 나무를 심어 오늘의 산림녹화를 이루어 놓았는데, 이를 잘지켜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유산을 그 시절에 비해 지금 얼마나 등 다숩고 배부른 세대에 살면서 지각없는 인간들이 온갖 수단으로 사람의 눈을 속여가며 마구 잽이로 산림을 훼손하고 있다니 정말 피가 꺼꾸로 돈다.  멧 돼지가 가을 추수할 밭에 들어 와서 농산물을 와작와작 아주 몽땅 씹어먹듯이 이 도벌꾼들의 작태가 영락 없는 산 짐승 멧돼지들이다. 굳이 환경단체들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자연보호를 위해 관련 법안을 촘촘히 만들어 놓은 이 보호법을 지키려는 눈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그 법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도둑 하나에 열이 지켜도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당할수만은 없잖은가?  최소한 보호지역 내에서라도 개발이 현재처럼 손쉽게 훼손 되는 일이 없도록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지언정 우리 스스로 환경을 지키는 파숫 꾼들이 되어야 하겠다. 환경단체들은 자연을 훼손시켜 한번 망가지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보호지역관리 실태 보고서'를 통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사태를 야기한 한 예로 '대암산 벌채 현황' 을 지적했다.   이들이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했더니 이 지역에서 2020년 9월 22일 부터 불법 벌목이 진행되어 왔으며, 지난 6월에 현지 조사를 한 결과 금년 6월까지도 벌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했다.    

대암산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보존지역으로 지정 가이드 라인에 따른 '엄정자연보호구역'이다.  국내의 엄정 자연보호지역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의 백도와 칠발도', 덕유산 국립 공원내 '안성 칠연계곡'  '광릉요강꽃 특별 보호구역' 등 2338.37km²에 걸쳐 15개 구역이 지정돼 있다.  특히 엄정 자연보호 지역 에는 생태계와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과학연구 등 목적이 아니라면 인간의 활동이나 방문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지구가 인간의 활동에 더욱 더 엄정한 영향을 받게 될수록 생태계가 잘 보전된 지역이 늘어나기는 커녕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어서다. 문제는 이처럼 '엄정한 자연보호 지역' 에서까지 어떻게 나무를 도벌할수 있느냐 는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 고 했던가?  눈 뜨고 코베어가는 세상이라더니 참 요지경속이다.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대암산·대우산 등 천연보호구역 중 10㏊에서 벌채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광화문 광장의 약 4.6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해당 지역의 천연림은 이미 대부분 모두 베어졌고, 베어진 곳에는 그나마 어린 침엽수가 줄 지어 심어졌다. 현장에서 베어진 채 남겨진 밑둥의 나이테를 살펴보니 최소한 약 100년이상 된 나무들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렇게 백년 이상 된 산림을 마음 내키는 대로 훼손하고도 불법 벌목에 재미를 보았던지 해보니까 모든 산림법들이 아주 자기네들 먹거리로 보였던지 대우산· 대암산 천연보호구역을 감싸는 여러 지역에서 추가적인 도벌 행위가 마구잡이로 여기저기서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연보호구역 남쪽과 동쪽 양 옆에 도벌과 함께 개설된 산불진화 임도가 있다. 산불 진화 임도의 유효 너비는 3.5~5m로 소방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일반 임도보다 폭이 넓었다. 산림청은 산불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이같은 임도를 2027년까지 총 3332㎞의 임도를 확충할 계획이란고 한다. 도랑치고 가재 잡고 뀡 먹고 알 먹고 아마 모르긴해도 이런 엄정지역에서 과연 산림청의 눈을 가리고 불법 벌목이 가능할까?  소가 웃을 일이다.  3332km는 경부고속도로의 8배에 달하는 기럭지다.  대암산의 산불 예방 임도는 일반 임도보다 그 폭이 훨씬 더 넓다. 그러나 정작 환경단체들은 하나같이 대암산에 임도가 불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산림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산불 발생의 주요 원인은 입산자들의 실화, 쓰레기 소각, 논 밭  두렁 소각 등 인간 활동에 의한 경우가 전체 산불 원인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정작 대암산의 임도 건설 현장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워, 사람에 의한 화재는 물론이고 자연적으로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때문이다. 즉, 대암산에 산불진화 임도를 만드는 건 산불 진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려 없던 임도가 있게됨으로 오히려 사람을 산으로 불러들이는 역작용 을 가져올수 있다.  이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되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그럼에도 왜 누구 좋으라고 도로를 내겠다는 것일가?   나랏 돈을 쳬들여서 '도벌꾼 도로'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임야에 대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곳에 임도를 개설하지 않아도 될 것을 일백년 이상을 자생적으로 형성된 생태계의 숲을 그래서 사람이 발을 끊은지도 까마득한 첩첩산중인 곳에 왜  임도를 내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인지 글쎄 도통 야바위속이다. 임도를 내기 위해 백년 이상 자연적으로 형성된 생태계를 훼손하면 백여년동안 어우러져 온 자연림의 생태가 한 순간에 훼손 됨과 동시에 땅의 기운과 뿌리가 말라 죽어 토양의 응집력 또한 급격히 약해지게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임도를 내게 되면 자연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토사 유실을 가져와 산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임도를 개설하면 외래 종이 쉽게 확산하고, 차량 충돌로 야생동물들에게 해가 될지언정 보탬이 될 이유가 이유가 전혀 없다. 이외에도 동물들의 행동 반경을 해롭게 변화시키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해당 지역에 그대로 미쳐 자칫 산림만이 아닌 자연과 함께 사는 동물들이 급격한 환경 악화로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일은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는 일이 금세기 최대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도처에서 특히 응당 보호 받아야 할 대자연의 생태계가 몰상식한 인간들에 의하여 마구잽이로 훼손되고 있는 지금 '자연 보호'를 아무리 외친들 쇠귀에 경읽기에 불과하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가장 실효적인 방법은 사람들이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두는 일이다. 

자연상태로 100년이상을 서로 어우러져 자생적으로 생태계의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소위 자연을 위한답시고 인간의 편의 위주로 이를  훼손하겠다는 것은 자연의 몰이해이고 자연의 살상행위다. 자연과 산의 생태를 아는 자라면 임도는 당연히 개설 되지 않아야 함에도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행 법상 보호지역 의 종류에 따라 벌채 금지 비롯해서 근거 법률, 소관 부처, 지정 및 관리 기관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환경보전지역 특별대책지역, 수변지역, 백두대간 보호 지역에는 임목 벌채를 금지하는 법률 규정이 없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명승 및 그 보호구역, 그리고 상수원보호구역, 도시 자연 공원 구역, 산림보호구역, 야생생물 특별 보호구역, 자연공원 등은 원칙적으로는 임목 벌채가 금지돼 있음에도 예외 규정 및 협의에 따라 벌채가 허용되고 있는  예외 규정이 문제다. 대우산과 대암산과 같은 보호 지역은 말 그대로 자연생태계가 보호 받아야 할 곳이다.   야생동식물을 비롯한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탄소 저장 및 기후 조절 등 인간에게도 꼭 필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우산·대암산 천연보호구역과 인근의 생태 자연도 1등급 지역에서 확인된 '벌채 임지'가 지금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우선 먹기는 곳감이 달다."는 말처럼 그들에겐 오늘 당장만 있을 뿐 하루살이처럼 내일이란 없다.  이것을 지금 우리가 해치우지 않으면 반드시 또 다른 손에 의하여 훼손되게 될 것이란 선입관 때문이다.   

이에 한국을 포함한 UN 산하 196개국은 지난 2022년 12월 쿤밍-몬트리올 글로 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KMGBF) 채택에 서명했다. 2030년까지 최소 30%의 육상과 해양을 보호하고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현재 지정된 보호지역은 총 국토 면적의 육상 17.45%  해양 1.81% 이다.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여야 하는데 보호지역 지정이 더딘 데다 이미 지정된 보호지역의 관리 실태마저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개발명목으로 생태계를 최대한 살리면서 보호지역에 손을 대야하는데 욕심대로 훼손만 해 놓고 방관한 채 목표 수치에만 집중한다면 'KMGBF'가 목표한 실질적 효과는 아예 없을 것”이라며 “보호지역의 개발 행위는 야생동식물 서식처와 탄소흡수원 파괴로 이어지고 산림 지속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떨어뜨리는 만큼 보호지역 관련 법안을 개선하고 개발을 멈출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자연을 살리는 일은 비단 육지뿐만 아니다. 지구의 3/2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도 급격히 오염되어 가고 있다.  강화도는 바다를 논으로 개간하여 비료와 농약을 쓰지않고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단다.  그리고 고려 때에 시작하여 조선 초에 돌에 새겨 만들어진 귀중한 '천문도'가 길 바닥에 버려져 있던 것을 다행히 이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 발견했다. 이처럼 조상의 숨결이 담겨있는 국보(國寶)도 모르면 발에 밟히는 버려진 돌로 보여질 뿐이 듯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는 하나 뿐인 지구가 이대로 두면 필경 인간들에 의해 회생불능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육지와 바다와 산림과 하천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종그니칼럼】산 자와 죽은 자

나는 지난 9월 초 폐암말기로 병상중에 있는 동생의 병 문안차 고향을 다녀 온적이 있었다. 고향  뒷동산 가족묘지에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내외분 분묘와, 그리고 지난 해에 사고로 죽은 조카 상륜이도 잠들어 있다. 그런데 그때까지 산소엔 벌초가 되어있지 않았다. 동생이 생사의 기로에 있으니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 싶다가도, 장성한 두 조카들이 자주 오가니까 믿고 안심했는데, 그리고 동생도 죽게되면 가족공동묘지에 묻힐줄 알았는데, 파월장병때에 병을 얻었기에, 동생내외가 국립묘지에 묻히게된단다.

조카들 둘이 있지만 객지에서 살고 있고, 또 이곳에 지들 부모가 묻힐 곳도 아니니, 이젠 내 주장도 접어야 될 것같다. 이미 가족공동체가 해체된 지금, 후손들에게야 조상의 유골이 혼 없는 짐덩이에 불과할 것이니, 가슴이야 아리지만, 이젠 감내해야 할 내 몫인 것이다. 동생이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음을 보면서, 나도 죽음을 떠올리게된다. 내가 죽어 시신을 화장한 후에, '뼛가루를 어디에 뿌릴까?' 하는 착념에 빠질 때가 있다. '뒷 밭에다?' 아님 '요양원 화단 나무밑에?' 그러다가 "흙으로 빚은 시신이 수백도의 불에 탄  잿가루에 뭐가 남아 있을거라고 이런 망상에 빠질까?"하고 실소를 한다. 

미국 뉴욕주의 한 공동묘지 관리인의 이야기다. 
어떤 여인이 매주마다 편지와 함께,  5달러씩 이 관리인에게 돈을 보내 왔다. 이유인즉 "내가 몸이 아파 아들 묘에 갈 수가 없어 그러니, 내 아들 묘에 한 주에 한 번씩만 싱싱한 꽃을 꽂아 주세요." 이러기를 수년이 흐른 어느 날  한 여인이, 그 공동묘지를 방문하였다. 차가 도착하자 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부인은, 운전기사의 부축을 받아 겨우 내렸다.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인 그녀의 가슴에는,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 있었다. 그녀는 관리인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바로 매주마다 편지와 5불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제가 오늘 직접 오게 된 이유는, 나의 담당 의사가 내 생명이 얼마 못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어요. 나는 세상 떠나기 전에 내 사랑하는 아들의 무덤에 내가 손수 꽃다발을 놓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관리인이 말하길 "그러시군요 그런데 나는 부인에게 용서 받을 것이 있습니다. 저는 매주 부인이 보내준 돈을 가지고 꽃을 사서 무덤 앞에 놓을 때마다 부인에 대해서 언짢게 생각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요?"
관리인이 대답하기를,
"무덤에 싱싱한 꽃을 꽂아 놓아도 며칠이 지나면 시들고, 어느 누구도 그 꽃  향기를 맡을 사람도 없어요. 죽은 사람이 꽃향기를 맡을까요? 좋아할까요? 그것은 부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희집 옆에 호스피스병원 이 있어서, 저는 가끔 중병과 투병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꽃을 갖다 주곤 합니다.그들에게 꽃을 주면 너무 좋아 해서요.  그러니 이제는 공동묘지로 꽃을 들고 오시지 말고, 이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꽃을 한번 갖다 주어 보세오."
 
그 후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부인이 직접 운전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동묘지에 나타났다. 그리고 말했다."내게 주신 말씀대로 그후 나는 소외된 이들에게 꽃을 갖다 주었답니다. 죽은 아들에게 일주일에 5불씩 쓰던 돈을 병상에 있는 이들에게 꽃을   선물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너무  좋아하는 얼굴 표정을 바라볼 때, 내 마음도 덩달아 기뻤답니다. 그러는 동안 신경성 중증질환도 사라지고, 이렇게 건강한 몸이 되었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산자의 이웃이 되라.' 하셨을 뿐, 죽은 자까지 맡기시지 않으셨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엔 아흔 한분이 기거하고 있는데, 한때 나는 이분들이 죽으면 묻힌 요양원 공동 묘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이러한 생각을 접었다. 유행가에 '있을 때 잘해.'란 가사가 유행을 타는 것은, 그 가사가 국민정서에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는 대부분 기저환자 분들인데 만약 이러한 분들만 있다면 분위기가 어떨까? 대부분 치매를 앓고 있는 저분들은 마치 두 세살 어린 아이와 같다. 이분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해도, 아무런 분별력이 없으니, 대부분 하늘나라를 사모할리도 없다. 수발하는 직원들이 없다면, 마치 북망산 대기실처럼 어둡고 적막할 것이다. 

내가 양로원이나 요양원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저분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겠다는 일념이었지만,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20여년이 지난 얼마전에야 알았다. 우리 요양원 종사자들에게 한결같은 멧세지는, 오직 하나, 어르신들에게 최대한의 기쁨을 주는, '온맘으로의 사랑'이다. 사람을 사람되게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은 사랑이다. 지난 주일이 추수감사 주일이어서, 어제는 동해안  주문진어시장에 가서, 노인분들에게 회를 떠오고 아직 터밭에 남아 있는 상추를 따다 드렸다. 모든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시는걸 보니, 왠지 눈물이 난다.

죽은 자의 눈 높이로 살지 않고, 풍요속의 빈곤자가 된 소외된 사람 속으로 들어가, 그들 눈 높이로 살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예를 나는 수없이 목도하였다. 이 땅위에는 '얼이 깃들어 있는 얼 굴'은 있으나,생명이 없는 자처럼 오로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이들이 얼마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가! 삶의 방향을 내 중심에서, 동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로 우리의 시야를 돌려 본다면, 오염되어 가는 이땅과 더불어 공존의 사회 또한, 놀랍도록 아름다워질 것이다.

나는 집사람하고 같이 지낸 세월이 그리 길지 않다. 일반 목회할 땐, 집사람과 몸 담은 교단이 서로 달라서도 그랬다. 그래서 난 내몸에 걸친 옷이, 일할 땐 작업복이 되고, 목회할 땐 나들이 옷도 되었었다. 이렇게 습관이 된 나의 생활 방식이 마누라와 동거하면서, 삐걱대는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나는 목회할 때부터 주머니가 항상 비어 있었다. 근자엔 지갑이 비어 있으면, 가끔은 마누라가 채워 준다. 그럼 다시 내 얼굴엔 화색이 돈다. 그리고 뵈지 않던 얼굴들이 낯을 들어 낸다. 
오늘 나는 Kbs 아침 프로에 나온 새터민 한의사 김지은 님의 파란만장한 탈북 스토리를 듣고 목이 메었다. 거의 한세기동안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살아 오는 동안, 동질감보다 되려 이질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언제쯤이면 민족이 하나가 될까?  돌아보고 살펴 보아야 할 음지들이, 참 많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중국 漢나라때에 유향(劉向)이 쓴 설원(設苑) 담총(談叢)편에, "열 걸음도 안되는 작은 연못일지라도, 반드시 향기로운 풀이 있고, 열 가옥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일지라도, 반드시 어진 선비가 있다."하였다.
어디 이뿐이랴!
세계어느 나라 어느 사회건 남녀의 출생률이 동률이다. 이러한 것들은 현대과학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질서다. 나는 전갈에 쏘이는 것도, 불 붙는 열기속에 사는 것도, 그리고 끝없는 허무에 던져진 삶도, 견딜수 있다. 그러나 거짓과 죄악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에서 만큼은 결코 살수가 없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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