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대한민국!

인천에 가면 여러가지로 유명해진, '소래포구 어 시장'이 있다.  십여년 전부터 나는 김장 철이 되면, 춘천에서 인천까지, 조금이라도 싸고 맛 좋은 젓갈을 구입하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을 여러 해 동안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도매 시장에서, 원액 그대로 팔아야 할 젓갈에, 물타기를 해서 판다는 소문을 들은 후론, 발 길을 끊었다.그리고 수년 전엔, 그 어시장이 화재를 당하여,큰 어려움을 격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보상을 받으려고 그랬는지, 고객을 속이는데 점차 이골이나서, 들통이 나면 서로 약속이나 한듯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세치혀로 수없이 다짐을 하고도, 그 다짐이 항상 입술에 그치고, 또 다시 섞어팔기, 물타기, 바가지 등을 다반사로 하여, 소비자들을 울리다가, 호된 비난이 쏟아지면, 소래포구 상인들은 소비자들에게 납작 엎드리곤 했다. 이렇게 평생동안 잘못된 상술이 몸에 배어, 이젠 그 버릇을, 무슨 수로도 고칠수 없게 고질화 되어 버렸다.   그 상술이 영혼과 뼈속까지 파고 들어와, '양치는 소년' 꼴이 된 상인들에게 소비자들은, "이젠 다시는 속지 않겠다" 며, 반응이 아주 싸늘하다.  
         
소래포구 어시장 상인들이, 소비자들을 울리는 사기 행위를, 다시는 안하겠다고 여론이 악화될때마다 다짐을 하고도, 이미 손에 읶어버린 '섞어 팔기, 물치기, '꽃게 바꿔치기' 등으로, 번번히 소비자들을 울려 놓고 들통이나면, 앵무새처럼 그때마다, "다시는 안하겠다"고 해 놓고, 위기만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모사처럼 고개를 쳐들고, 온갖 속임수로, 소비자들의 뒷통수를 후리치곤 해왔다. 그러다가 다시 문제가 되어, 공분을 사게 되면, 또 다시 까투리처럼, 납작 엎드리지만, 그때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였다. 이것은 그동안 소래포구 상인들의, 비 양심적인 상 행위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손에 익은 속임수 상행위가  , 몸속에 촘촘히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여 주기식 일회성 자정대회" 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에 전혀 울림이 없어, 소비자들의 싸늘한 마음을 돌이키기에 는, 마치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수작일 뿐이다.  지난 15일 소래포구 상인들은, 전날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자정대회를 열고, "호객 행위, 섞어 팔기, 물치기(물까지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매기는 행위) 등, 온갖 바가지 등을 척결하겠다"며 다짐했지만, 그때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였다.     

소래어촌 신영철 계장은, "최근 '꽃게 다리 사건'을 계기로 자정대회를 열게 됐다."며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이러한 고객들에 대한 속임수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오는지에 대하여,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글쎄 교육으로 고객의 마음을 살수 있을까?  상인 회장도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반성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시장(市場)으로 거듭나서, 변화의 첫 걸음이 되길 바라고 있다"며, 상인들의 자정(自淨)을 간곡히 당부 했단다.   그러나 이 문제는 누가 간곡히 당부한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상인들 100여명은, '위생 청결 준수', '고객 신뢰 회복'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장을 돌면서 "반드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지만, 이는 마치 오늘 이 나라 정상모리배들의 구호처럼, 울림이 없다.   

이번 발단의 원인도, 소래포구 시장에서, 분명히 살아 있는 꽃게를 샀는데, 꽃게를 포장 과정에서 다른 꽃게와 바꿔치기를해서, 소비자가 분통을 터트려, 온라인에 공유한 사진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부터다.   '꽃게 바꿔치기'를 당한 시민의 글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면서,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소래포구 상인들이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대적인 자정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지난 달 올라 온 해당 게시물에서, '더 이상 소래포구를 가지도, 사지도 말자'는 공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피해 글을 올린 A씨는 "소래포구에서 살아 있는 꽃게를 구매했지만,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다리가 떨어진 꽃게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작성자가 올린 사진에는 "꽃게 9마리 중 다리가 온전히 붙어 있는 게는 하나도 없었다."   A씨는 "나머지 한 박스의 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며," 살 때는 다리가 잘 붙어 있었고, 살아 있던 꽃게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느냐?"며, 너무 황당하다."고 했다.   

A씨는 소래포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장을 찾는 구매자들에게,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속임수를, 공공연하게 벌여왔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제는 그런 구매자를 속이는 행위가 사라졌겠지"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며, 이젠 이 사실을 "널리 알려, 피해를 줄이고 싶다"고 말했다.공분이 일자 상인들은, 자정(自淨) 을 약속했지만, 시민들은 "과연 바뀔까. 악어의 눈물 같다" "꽃게 바꿔치기 같은 일이 처음도 아니고 계속 문제가 돼 왔는데, '이제는 바꾸겠다'는 얘기를 어찌 믿겠나."며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소래포구 상인들이 바가지 요금 근절 등, 자정을 약속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소비자 기만이나, 불법 판매 행위로 논란이 일면, 늘 앵무새처럼 "바꾸겠다" 고, 그때마다 다짐했지만, 지금까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인천 남동구청도 해마다, 축제 기간을 앞두거나 민원이 증가하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효과는 언제나 미미했다.  시민들이 이번 자정대회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 시민은 "아이 둘을 데리고 4인 가족이 갔는데, 20만원 상당의 세트 구성을 시켜야 한다더라. 한 곳도 아니고 담합한 듯 똑같은 얘기를 했다"며, "그 뒤로 다시는 소래포구를 쳐다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국가든 개인이든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아니하면, 실추된 신용, 즉 인격이나 국격을 회복하기 어렵다.  야당이 돈 봉투 사건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옛부터 "선비는 배밭에서 갓을 고쳐쓰지 말라."고 했다. 장사치는 신용이 밑천이다. 그러기에, 끊임없는 자기정화가 있어야 한다. 현 정부도 집권한지 일년이 넘었다. 바라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법집행에서 자신에게는 고무줄 자를, 상대에게는 쇠자를 들이대는, 우를 범치 말고, 국민을 두렵게 아는, 공복의 자세로 소임을 다할 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공명정대하고 겸양한 정권이 되길 바란다. 영국의 액톤경은 "흐르는 물이 고이면 썩듯,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경구를 집권 층은, '일신 우 일신'으로 새겨들을 일이다.  

【종그니칼럼】대한민국!

나는 글을 휴대폰의 '노우트'란을 이용하여 글을 쓴다. 대부분 컴퓨터에 있는 지식의 보고를 잘 활용하는데, 컴맹인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일하다 피로를 풀때, 궁둥이를 붙일 곳만 있으면,그때 뭔가 떠오르는 단상을, 휴대폰 노우트란에 옮겨 놓았다가 글을 쓴다. 그런데 어제 밭일을하다 착상이 떠올라 바로 쓴 글이, 몇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찾아 보니, 아! 글쎄 몽땅 지워져 버린게아닌가! 나이 탓인지, 휴대폰조작을 잘못해서 인지, 이런 일이 종종 있는데, 지워진 것을 복구할 능력이 없는 나는, 망연자실 그저 황당 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를, 38선을 따라 싹둑 잘라 놓고 보면, 영락없이 녹두 알갱이를 꼭 닮았다. 이 녹두만한 땅덩이에 무려 5000만이 넘는 대한민국인이 살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 민족 오천년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세계 열강의 대열에 우뚝 서 있다. 

이 위대한 나라의 초석을 놓은 이가 바로,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는 해방직후 세계열강의 각축과, 좌우의 이념 싸움이 초 극단으로 치달아, 북한은 이미 공산당의독무대가 되었고, 남한에서는 이 이념 논쟁이 사분 오열되어,가히 무정부 상태라 할 만큼 극단적혼란에 빠져들자, 당시 세계판도의 흐름을 주도면밀하게 간파한 이승만은, 과감한 용단을 내려, 유엔과 미국의 비호하에, 1948년 8월 15일 남한에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물과 기름이 하나될 수없음같이, 좌우가 하나될 수 없었기에 더더구나 공산당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느니, 설혹 한반도가두동강이 난다 해도, 공산당 국가만은 막아야 했다.

이같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오직 그만이 할수 있는 결연한 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화급을 다투는 위기에서 머무적거리고, 그런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이 한반도는 어찌되었을까? 결국 북한 김일성의 일당 독재국이 되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나라를 분할하려면 응당 세계대전의 주범인 패전국 일본 땅을 분할해야지, 어째서 일본 땅은 그대로 두고, 왜 하필 한반도란 말인가! 미국에서 잔뼈가 굵었다 할 만큼 미국통이었던 이승만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기민하게 활용하여, 

마침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내가 상해 임시 정부나 백범 김구, 같은 애국지사의 역할을 만홀히 할 의도는 전혀 없다. 이런 우여곡절을 격으며 탄생된 대한민국은, 지금 지난날 은둔의 나라가 아닌 세계 열강의 대열에 우뚝 서 있지 아니한가!

시편 23편은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몸을 피하여 풍잔노숙하던 때에 지은 詩임에도 이 얼마나 목가적인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은 문학적으로도 내용에 있어서도, 그 영적 깊이가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이다. 북한 공산군에 쫓겨 정부가 대구에서 다시 부산으로 옮겨 갔다. 맥아더 장군은, 한국 정부를 일본으로 옮기라고 권유했지만 이승만은, “내가 부산 바다에 빠져죽을지 언정 이 땅을 떠나지 않겠다"며, 부산을 지켰다. 이승만은 인민군들이 쏘는 포 소리를 지근거리에서 들으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이끌었다. 정부가 부산으로 옮긴 후, 첫 예배를 드리던 때였다. 당시 연세대 나운영 교수가 성가대 지휘자였었다. 나운영 교수는, 부산으로 피난해온 정부에서 드리는 첫 예배 찬양을, 무슨 곡으로 선택할까를 고심하다가, 시편 23편을 친히 작곡하여 부르기로 하고, 밤을 새워 작곡하였다. 예배시간이 되자 찬양대가 찬양을 드리기 전에, 나운영 지휘자는 예배 제단앞으로 나아와, 시편 23편을 작곡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는 눈물로 성가대를 지휘하였다. 찬양을들으며 대통령 내외도 울고, 성가대 대원들도, 예배에 참여한 모든 이들도 다 울었다. 그야말로 눈물로 범벅된 통곡의 예배였다. 

그리고 찬양대의 성가가 끝난 후, 대통령을 위시하여 모든 예배자들이, 여호와께서 이 나라를 공산화의 위협에서 구하여 주실 것을 울며 기도 드렸다. 그런 눈물의 기도가 응답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같은 한반도 조국강토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신앙의 자유가 살아 있는, 이 자유 대한에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이기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리어렵고 힘들더라도, 선열들의 눈물의 기도와 희생으로 지켜낸, 이 조국 대한민국의 터 위에서, 저동토의 땅 북한을, 분단의 조국강토를 하루빨리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통일통일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신앙의 자유가 없는 통일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시편 23편을 새삼 다시 한번 읊조리며, 이 대한민국의 목자 되신 주님께서, 이 조국강토를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세워 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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