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성령의 내주” 사상은 오순절주의 사상입니까?
Q. 아닙니다. 개혁 신학의 성령 이해입니다.
“한국교회의 타락은 성령의 내주 사상 때문이다. 오순절주의가 가져온 성령의 내주를 박형룡 박사와 서철원 박사님이 그대로 받아들여서이다.”라는 문구로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한국교회가 타락했다”는 진단은 못할 사람은 한국 사회에 없습니다. 그러나 타락의 원인을 밝히며 극복한 방법을 밝히는 것까지가 책임입니다. 타락만 지적하고, 원인만 지적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대안을 제시할 수 없으면 무책임한 혹은 무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타락의 원인을 성령의 내주”로 분석한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학문은 어휘 싸움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내주(內住)는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입니다. indwelling 내주, 성령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신성의 내주”로 판단한다면 주장자의 분석은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신성의 내주를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오류입니다. 오순절주의에서도 그러한 주장은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표징 혹은 현상”으로 안에 계심을 증명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에서 성자의 신성이 육신이 됨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내주를 신성의 이해로 파악했다는 것은 성육신 이해에 약간의 결함이 있을 수 있다고 예단할 수 있습니다. 성육신 이해는 성자의 신격이 인격의 자리에 오심, 무인격적 취택(Anhypotatia)으로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고백하는 쉽지 않는 고백문장이 우리의 교리(Dogma)입니다.
성령(Holy Spirit), 성신(Holy Ghost)께서 신자의 내면에 거주하십니다(indwelling). 그런데 성경에서는 개인 안에 거주한다는 표현은 찾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우리 안에, 복수형)에 거하심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공동체적 이해를 개인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를 개인으로 이해할 때에 신학과 신앙 생활에 혼선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은 혼자 예배가 가능한 구도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신비주의의 전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에서는 신성의 내면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에서는 신성의 내주를 전혀 말하지 않으며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순절주의에서도 신성의 내주를 잘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신학자들이 성령의 내주, 신성의 내주를 말했다는 분석은 전혀 타당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내주를 개인화시킴에 우려를 보내야 하며, 신비주의, 샤머니즘에 우려를 보내야 합니다. 개혁 교회가 신비주의 혹은 샤머니즘에 물들었다면 그것이 문제이지 개혁신학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태에서 탈출한 방법은 개혁신학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될 것인데, 개혁신학 자체를 문제로 삼았기 때문에 탈출, 회복 방안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회복 방안은 제안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방법만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러한 유도가 더 우려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개혁신학의 정수를 잘 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체계적인 학문 훈련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숙고하는 학문 체계를 수립하여 합당한 신학의 산물로 교회를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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