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基督敎), 그리스도교, Christian Church, Christianity, Christian Religio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기독교강요), “그리스도인이 수행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종교(宗敎)는 religion인데, 중세 천년의 종교는 유일한 종교였습니다. 유일한 종교 기관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종교’인 기독교와 ‘기관’인 교회가 일치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사회가 일치되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를 통제하려고 했고, 그 통제력이 벗어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종교개혁이 되면서 종교에 대해서 부당하게 행동한 교회를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교회에는 종교에 대한 인식이 아닌 복음을 전도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국가 공인 종교가 되고, 국가 종교가 되면서, 교회와 국가 관계에 대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갈등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1688년 명예혁명 그리고 1799년 프랑스혁명까지 유지되다고 정교분리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 사회 안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갈등은 쉬지 않습니다. 교회와 기독교가 일치되는 것은 추구하지만, 교회와 사회가 일치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사회가 아닙니다. 유럽이나 미국도 탈-기독교가 증가되기 때문에 기독교 사회라고 말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갖고 있지만 참 기독교의 모습을 갖고 있는 교회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참 기독교, 참에 참을 더한 표현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교회의 대조로 피할 수 없게 참 기독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1세기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1054년까지 한 교회 체계로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지되었습니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 교회는 게르만 등의 침략으로 서로마가 멸망되었는데, 유럽 지역 전체가 기독교와 교회를 사회 기초로 수납했습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 교회는 1453년에 철옹성 콘스탄티노플 성이 함락되어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슬람화되었습니다.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서방교회, 사회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동방교회로 존재하게 됩니다.

451년 칼케돈 회의 이후로 교회는 분리되었습니다. 그것은 공회의의 결정을 반대하는 교회가 발생한 것입니다. 참고로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의 결정을 반대하는 것까지 용인할 것인가?가 큰 관건일 것입니다. 20세기에 칼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에서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재해석했고, I/2에서 451년 칼케돈 신경을 재해석했습니다. 칼 바르트는 기독교가 아니라 현존하는 교회가 시작이고 마지막입니다. 바르트는 교회가 없어도 “신을 말함(신언(神言))”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통상적인 기독교 바운더리는 첫째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까지 입니다. 381년 결정을 기독교로 세우면, 단성론자들(아르메니아 정교회, 콥틱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양성론자(네스토리안, 경교 등)이 이단이 아니게 됩니다. 예루살렘 홀리랜드 대학이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조로 규범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묘교회에 아르메니아 정교회 영역이 있기도 합니다. 삼위일체 이단(아리우스주의)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둘째, 451년 칼케돈 신경까지 입니다. 그러면 단성론자와 네스토리안은 “칼케돈 이단”이 됩니다.

셋째, 7대 공의회를 수용하면서, 서방 교회의 공의회를 인정하면 서방교회가 되고, 동방교회 공의회를 인정하면 동방교회가 될 것입니다. 16세기에 개혁된 교회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까지 인정하고, 그 뒤에 결정된 교리는 교리(Dogma)가 아닌 교리(doctrine)으로 평가해서 취사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럼에도 공예배에서 공적고백 문장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신조)를 고백합니다. WCC에서도 381년 신조를 고백하는데, 그 안에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면 칼 바르트 신학에 있어 381년 신조의 내용(삼위일체)도 무력화됩니다. 우리는 고백과 행동의 일치를 주장합니다. 381년 신조를 공적고백하면 신앙의 모습과 행위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적고백과 자기 믿음 실체가 같지 않다면 위선이 될 것입니다.

16세기에 개혁된 교회는 신앙고백서(Confession, 표준문서)를 갖고 있습니다. 모든 신앙고백서는 451년 칼케돈 신경과 연속성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신칭의에 대한 명료한 고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로마 교황주의를 거부함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보편교회(the Holy Ctholic Church)라고 인지하지만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끊임없는 믿음의 경주와 참 교회와 연합을 추구합니다. 참 교회의 표지도 매우 단순합니다. 바른 복음 선포와 바른 성례 집행입니다. 복음 선포가 바르게 집행된다면 성례도 바르게 집례될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적 교회인데, "사도의 가르침", "사도의 직분", "사도의 능력"으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로마 교회는 사도의 직분의 연속성을 주장합니다. 그것도 사도 베드로의 수위권의 계승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혁된 교회는 12사도의 가르침(복음), 진리의 보수와 계승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18세기에 형성된 사도의 능력으로 새로운 교회의 표지가 등장했고, 사도의 능력으로 교회의 표지를 주장하는 집단이 발생했습니다. 참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교회입니다. 사도의 가르침, 주 예수를 믿음과 전함으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형람서원)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형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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