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살아있는 믿음

춘 사월의 화창한 벗꽃 나들이조차 시들할 만큼 봄 동안 내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던 총선이 마무리 되니 그 결과는 차치하고 앓던 이 빠진 것보다 속이 더 후련하다.  선거기간 내내 온 나라가 긴장과 혼돈의 연속이었던 것이 지금은 폭풍 후의 고요처럼 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그래서 이러한 긴장을 푸는 방법으로 인간들이 창안해 낸 것이 바로 담배 즉 긱연이다. 인간들은 언제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까?   아무리 크게 들이켜도 배부르지 않을 것을 빨고 삼키고 흡입 하는 등 독이 꽉찬 담배에 불을 붙여 담배연기를 몸속으로 빨아들이는 즉 흡입하는 것이 바로 긱연이다.  담배에 불을 붙혀 담배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긱연을 하는게 담배인생이다. 소위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은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때론 먹고 마시고 분출하고 또 거기에 온갖 기호로 즐기고 있다. 우리의 생각들이 여기에 미치면 고대 석기인들이 불을 거저 우연히 발견했을까?  씨앗 즉 열매를 발견한 인간들은 어쩌면 이와 동시에 불도 발견했었으리라. 불의 발견은 인간의 역사에 획기적인 삶의 대 변혁을 가져왔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조선 말기 무렵의 한복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옹기종기 거리에 모여 곰방대로 담배를 태우고 있는 모습을 그림이 아니라 흑백사진을 통하여 본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담배 흡연의 역사도 꽤 오래전부터 일반화 되었을 것이다. 나의 선친은 일제시대 때부터 약 반세기 동안 해 마다 담배농사를 지으셨다.  이른 봄에 담배를 심으면 일년초 담배는 밭에 심은지 불과 두어달 정도 되면 벌써 나의 키를 훌쩍 넘어섰다. 담배 농사를 많이 경작할 때는 우리밭은 모두 담배 밭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담배 속에서 자랐다. 이토록 아버지는 해방이 후 1960년대 까지 줄기차게 담배농사를 지은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지독히 가난했던 시절이라 특작물 농사로는 담배가 가장 수입이 좋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버지는 담배농사의 달인이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대단한 애연가 이셨다.  

담배가 자라게 되면 열매가 아닌 담배 잎을 수확한다. 담배농사의 백미는 담배 잎을 따서 음지에서 말리는 것이 담배의 극 상품을 만드는 비결이었다. 담배 잎을 딸 때 약이 꽉찬 잎을 때에 맞게 거두어서 반드시 햇볓이 들지않는 음지 그것도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건조하는 것이 극상품의 담배를 만드는 비결이었다. 주초(酒草)문제에 있어서 나는 막걸리는 몇 모금 마셔 본 기억은 있어도 어렸을 때 담배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담배 잎이 건조되면서 나오는 담배진액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자라면서도 담배를 피어본 적은 전혀 없다. 애연가들의 얘기는 담배 맛이 무척 쓰다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담배와 더불어 자랐지만  담배 잎에서 나오는 역겹도록 쓰디 쓴 매력을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  다만 아버지는 그 많은 농사 중에 왜 하필 담배농사를 고집하셨을까?  하는 의문은 언제나 있었다.  사람 몸에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담배 냄새가 역겨워서 담배 밭에 들어가기도 싫었었지만 아버지는 평생을 담배농사에 올인하셨다.  

"고구마나 감자와 같은 구황식품도 아닌 담배 잎에서 나는 냄새가 무척 독해서 옷이나 손에 담배 진이 묻기만 해도 몸에서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 쓰디 쓴 담배 잎을 말려서 차로 달여 마실수 있는 것도 아닌 그 독한 담배 잎을 입으로 빨아서 태우면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를 흡입하는 그래서 온 몸을 굴뚝으로 만드는 그런 백해무익한 아편과 다를 것이 없는 담배를 나의 선친께서 왜 하필 이런 혐오 스런 담배 농사를 지으셨을까? 몸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걸 태워서 끼니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 연기로 날려버리는 농산물을 소출하는 것이 그래서 담배 농사를 지은 만큼 흡연 인구만 늘어 나는 그런 담배농사를 왜 고집하셨을까? 나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 이처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담배를 무척 싫어 했었다. 그런데 내 아우는 달랐다. 그래선지 남 동생은 자라서 주초(酒草)에 꼬치더니 주초로 병을 얻고 그것으로 건강을 잃은 걸 잘 알면서도 그것에서 자우롭지 못하고 결국 그것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또 그것이 몸은 물론 쾌적해야 할 가정에까지 담배 연기로 몸과 온 집안까지 굴뚝을 만드는 것이 좋을리가 없음에도 많은 애연가들이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결국 그것으로 건강을 잃을 줄 알면서도 굳이 태우는 이유를 늙은 몸이 된 지금도 정말 나는 모르겠다.   내 곁에 와 있는 생질도 담배 꼴초다. 늦게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어 누차에 걸쳐 담배를 끊으라 해도 내 말은 담배연기속에 날려 버리고 여상히 태우고 있다. 아마 그들 내외는 결혼전에도 술 담배를 좋아했으니 이게 내게 주어진 십자가인가 보다. 나는 그에게 "네가 내 후계자가 되는 첫 조건이 예수를 믿고 그런 애주(愛酒) 애연(愛煙)을 멀리해야 한다"고 그렇게 설득을 해도 동문서답이다. 참 대단한 애주 애연가다. 그러니 술과 담배를 모르는 나는 나라에서나 직장에서나 별도로 흡연실을 정해 놓고 그곳에서 흡연을 하도록 해도 그 자존감과 불편을 감내하면서 굳이 거기에서 몸을 꼬불치고 앉아서 담배를 빨고 있는 모양새들이 어찌 마냥 좋게 보일리가 있겠는가!  지금은 희귀암으로 소천했지만 강태산 집사가 우리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의 이야기다. 그는 수십년을 교회에 다니고 집사 직분까지 받았으면서도 마냥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남의 눈을 피해 요양원 모퉁이나 후미진 곳에서 남 몰래 담배를 꼬시르곤 했다. 그렇게 담배를 몰래 태우다가 피할수 없는 곳에서 나와 마주쳤다.  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타고 있는 담배 까치를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호주머니에서 불 날뻔 했다.  그후 담배를 끊었는가 했더니 웬걸 그걸 끊치못하고 칙칙한 곳에서 여상하게 긱연을 하던 어느 날 다시 내게 발각되었다.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내가 뭐라 했겠는가 마는 내 앞에서 담배태우는 자기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던지 그후에야 그는 담배를 아주 끊었다. 이처럼 습관이란 것이 정말 무섭다.   

‘국민 엄마’로 통하는 '탈렌트 김혜자'씨가 30년간 끊지 못했던 담배를 끊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3월 인기리에 종영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주인 공을 맡은 김혜자가 30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끊게 된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김혜자씨는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1년 KBS 서울중앙방송 공채 1기 탤랜트로 데뷔를 했다.  그녀는 ‘전원일기’ ‘사랑이 뭐길래’  ‘엄마가 뿔났다’  ‘마더’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국민 엄마’로 각인되었다.  거기에 남 다른 신앙심을 가진 김혜자는 1991년 월드비전(World Vision) 친선 홍보대사로 임명돼 지금까지 활발한 해외 아동 구호사업을 해 오고 있다.  이런 그녀가 결혼 후 첫 임신 때 입덧이 너무 심해서 처음 담배를 접한 것이 동기가 되어 그 이후로 쭉 30여년 동안 담배를 피워왔단다. 지난 날 개그로 한 때 이름을 날렸던 이 주일씨가 페암 말기로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에 온 국민들에게 담배를 끊을 것을 권고 할 때에도 김혜자씨는 자신을 흡연가가 아닌 애연가라고 말하며 비켜갔다. 이처럼 김혜자는 집이든 방송국이든 손에 항상 담배가 들려 있었고, 담배를 피웠다 하면 깊숙이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필터만 남을 때까지 태웠다.  

이처럼 그녀는 담배를 포기할 수 없어 교회에 갈 때면 “하나님, 제게 담배 태우는 즐거움만은 좀 봐 주세요”라고 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담배를 사랑했던 그녀였는데 참으로 불가사의할 하나님의 역사로 담배를 단번에 끊게 되었단다. 사연인 즉 어느 날 김혜자씨는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담배부터 찾아 한 까치를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피우던 담배 맛이 아니었다.  깜짝 놀라 "담배가 상해서 그러나" 하고 또 다른 담배를 꺼내 피웠지만, 계속 쓰고 역겨운 맛만 느껴 졌다.  이 후  담배만 태우면 속이 메스껍고 속이 뒤틀려 있던 바로 그날 밤 미국에서 사는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전화로 딸에게 “얘야 정말 이상하다. 담배 맛이 갑자기 싫어졌어”라며 놀라운 상황을 쭈욱 설명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딸은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하나님이 어머니를 아주 아름답게 지어주신 몸을 담배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늘 하고 있었어. 그래서 하나님께 작심하고 백 날을 하루 같이 기도해 오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빨리 들어주실 줄은 몰랐네! 오 하나님! 고맙습니다!” 담배가 갑자기 싫어진 이유가 바로 그녀의 딸이 백일 동안 새벽 기도를 다니며 엄마가 담배를 끊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해왔다는 것이다.  딸의 정성스런 그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김혜자씨는 30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단번에 끊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은혜다.   

이처럼 신앙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 그리고 잘못된 고정관념 등을 우리의 몸밖으로 씻어내는 것이 신앙이다. 그것들이 내 몸안에서 찐드기처럼 빌 붙어서 나와 한 살이 되어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한번 헤아려 보았는가? 신앙이 깊어지면 신앙의 눈이 열려서 나의 잘못된 습관들이나 잘못된 생각들이 어느 한 순간에 다 보이게 된다. 바로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인 것이다. 세상속에 묻혀 살 땐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 심령의 눈이 은혜를 받아 영의 눈이 열리게 되면 육신적인 습관이나 잘못된 삶의 궤적들이 있는 그대로 하나 하나 드러나 보여져 그 잘못된 육신적 습관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은혜란 지난 날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면서 온갖 더러운 때에 찌들리며 켜켜이 쌓인 죄악의 때를 씻어 내며 은혜로 깨닫게 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 바로 이것이 신앙인 것이다. 제발 부탁은 몸과 맘을 깨끗이 하자!  왜 건강해야 할 그리고 깨끗이 해야 할 몸과 맘 그리고 신성해야 할 가정까지 어쩌자고 담배연기 자욱한 굴뚝을 만드시는가?

【종그니칼럼】살아있는 믿음

누구에게나 잘못 익힌 습관들이 있다. 나 역시 아주 어려서부터 젓가락질을 잘못 익혀서 팔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핀잔을 듣는다. 잘못 익힌 습관이란 것이, 한번 몸에 배이게 되면, 고치기가 여간 힘들다 . 이렇게 잘못익힌 습관들이 어찌 그 뿐이겠는가! 우리의 무의식속에 감추어져 있는 육신적 소욕에대한 욕심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 돈 맛을 안 우리는, 어설픈 사회 복지론이 혼합되면서, 땀흘리지 않고 쉽고 편하게 거저 얻으려는 편의주의에 길들어져 가고 있다. 지금, 이 나라의 통치방식이, 상호 이기적 편의주의에 길들어 져서, 퍼주기식으로 치달아 가기보다, 그들에게 땀흘려 일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데, 힘을 기울임이 통치의 덕목이 되어야 함에도, 국가는 이를 방임하여, 국민들의 근면의식은 병들어 가고 있다. 
우리가 평생을 살아 오면서,몸에 배인 인간됨의 격(格)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사람마다 자란 환경이 다르긴해도, 잘못된 관행이나 타성에 젖어, 나라의 격(格)을 떨어뜨리는 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옛글에 '格物致知' (격물치지)란 말은, 사물을 대할때, 잘못 숙지된 것을 바로잡아, 인간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말함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이 品格을 이루어 가는 것이, 곧 나이 값을 하고 사는게 아닐까 싶다. 옛말에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잘못 숙지된 습관이 몸에 배이면 , 두고 두고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큰 땜이 무너지는 것도, 아주 미미한 구멍에서 시작되듯이,진실로 '허물투성이 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자 하거든,  나를 한단계 낮추고 보시라! 그럼 나의 구겨진 무의식속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리니! 무슨 일에건 먼저 나를 제대로 보고, 내 삶속에서 내 몸과 한 몸이된, 잘못된 습관들을 잘라내야 한다. 나의 현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때, 나를 객관(客觀)의 눈으로 보는 직관의 안목이 열릴테니 말이다. 나의 남동생은 젊어서부터 술과 담배를 물고 살았다. 부모님이 같은 데도, 나와는 정반대로 내 동생은 일찍부터 술과 담배가 몸에  배어서, 술도매상까지 하더니, 끝내 주초를 끊지 모하고, 건강까지 잃고 말았다. 이같이 잘못된 습관이, 내 삶과 하나가 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잘라내지 못한 슬픈 관행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참 사랑'을 아십니까? 만약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나 또한 내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따라 평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법정스님도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관리'라고 했다. 그는 깊은 산중 암자에서 평생동안 불제자로 살았다. 그분은 강원도 산골 옛날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외딴 집 호롱불 밑에서, 글을 쓰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벗삼아, 홀로 수도 생활을 했던 이의 독백이, "자기관리가 제일 어렵다."고 했다. 십자가의 도를 아시는가?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주시려고 이 땅에오셔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그 '십자가의 도'를 아시는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깨달음을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는 "먼저 하나님과 나 와의 수직관계가 바로 되어야, 사람과 사람과의 수평관계 역시 바로 된다." 는 것이 '십자가의 진리'다.
아담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주체(subject)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껏 객체(object)에 불과한 '찰라적 소유' 를 전부로 알고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그 어떤 定意(defintion)에도 붙잡힐 수 없고, 그 어떤 定意와도 일체화(identify) 될수 없는,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막중한 존재다. 빛, 사랑,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질이다.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이를 회복시켜 주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으로,사랑으로, 생명으로 찾아와 주셨다. 그러므로 빛은, 인간의 감추어진 죄악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부활의 생명을 부어주시는 십자가 사랑인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고 뜻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네 이웃도 네 자신같이 사랑하게 되리라." 이 것이 바로 버림으로 얻고, 져 줌으로 이기는 역설의 진리요, 인생 여정의 광야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주님이 나의 삶 가운데 오셔서,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엘림의 축복으로, 만나로, 메추라기로, 르비딤의 생수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언제나, 나(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삶을 통하여 보여주는 신앙이, 바로 살아 있는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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