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오늘의 의미
(고린도후서 1장18절~20절.)
주님의 종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가, 사회에서의 목회의 삶 즉 섬김의 삶이, 바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모두를 내게 주어진 사명, 즉 '아멘'으로 받아 들이는 마음, 바로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자, 아멘으로 사는 삶일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루는, 그리하여 예수를 드러내는 공동체로, 그래서 교회는 '아멘의 인간'을 만드는 곳이기에, 교회는 반드시 아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은 '하늘나라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은, 은혜가 깊어질수록 그 입에서 자연히, '아멘'이 많아지지요. '아멘'의 뜻은 '진실로 진실로'할때의 '진실'이란 뜻이입니다. 그래서 '아멘' 속에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는 순종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아멘'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본토와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네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리라! 이에 아브람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날 때에, 그의 나이 칠십오 세 였더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이 믿음이 곧 살아 있는 '아멘'의 믿음이요, 예수가 이땅에 오심 또한, '아멘'의 믿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아멘'은 온전히 하나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아멘'은 "하늘나라에 이르는 통로요, 하늘 나라의 언어"입니다.
둘째로, 아멘은 '그리스도인의 인격'그 자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예' 로 사셨고, '예'로 죽으셨기에, '예'로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삶 전체가 '아멘'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아멘'으로 사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 바울은 예수에 대해 증언하기를,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처럼 예수님의 생애는, 오로지 순종의 진수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삶이 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래, 가인처럼 진노의 자식, 불순종의 자식이었던 우리가, '예'가 아니라 '아니오'로 살던 우리가, '아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입니다.
셋째로, 그래서 '아멘'은, 그리스도인의 축복입니다. '아멘'은 예수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예'가 되니, 우리가 항상 '아멘'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언제나 가능케하시는 하나님! 제가 무의탁 양로원을 지으려고, 1200평 대지를 토목공사를 하느라, 한창 동분서주 할 때였습니다. 프라이드 소형 승용차를 타고, 청평에서 설악면으로 가는 중에, 이중충돌의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내 몸둥이가 차창밖으로 튕겨져 나오고, 그대로 나는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삽시간에 내몸은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혀도 움직이지 않아, 말을 할수 없게되었습니다.
이때 응급환자의 호출을 받아 설악으로 가던, 나와 전혀 일면식도 없는 택시 기사가, 길 바닥에 나딩굴러져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는 "중환자는 설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길바닥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여기고, 곧 바로 나를 택시에 실고 달려, 서울 동부병원으로 입원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냥 우연이라 생각되십니까? 중환자실에서 주치의사가, "당신은 이상태로 평생 갈수도 있고, 십년 갈수도 있다. 그러니 조급한 맘을 버리고 절대 안정을 하여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주치의사는, "나는 신앙이 없지만, 이럴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며,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시간마다 나를 치료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로,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만 11일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나는 지금까지, 목에 관한한 단 한번도 후유증이 없었습니다.
무의탁 양로원을 지으라는 사명을, '아멘'으로 받은 나는, 이를 위해 지금 한창 토목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 시간이 금쪽같던 내게, 하나님이 나를 불치환자로 그냥 두시겠습니까? 이처럼 '아멘'으로 사는 자와, 아멘으로 세운 교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겹쳐도, 언제나 축복의 문은 열려있습니다. 이처럼 아멘은 닫힌 문을 열게합니다. '아멘'으로, 홍해바다가 갈라지듯, 찬송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고, 막혔던 모든 것들이, 답답한 모든 일들이 활짝 열려, 광야의 반석이 터져 생수가 흘러 넘치듯, '아멘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 멘!.
*(이상은 지난 월요일 시찰 모임 설교 임.)
【종그니칼럼】오늘의 의미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날은 바로 `오늘` `지금`이다. 왜냐하면 `오늘`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마지막 날,` 즉 `결산의 날`임과 동시에, 언제나 내 생애 `남은 날들의 첫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참다운 지혜란, 오늘의 나를 살피고 살아온 삶과 살아가야 할 삶, 그리고 현재의 삶의 자세를 돌아 볼 줄 아는 자세이다. 그래야 삶의 현장에 있는 나를 점검하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 "오늘을 삶의 전환점을 가르는 시금석이 되는 첫날"이라고 마음을 드잡이 했을 때, 오늘의 동기부여나 나에게 던지는 의미가 다르지 않겠는가?
똑같은 날인데 어느 날은 한해의 첫날이고, 어느 날은 창업의 날이고, 어느 날은 내 삶을 마감하는 날이라면, 그 날들이 나에게 던지는 삶의 무게가 다르지 않겠는가! 산야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대자연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오월의 신록에 물씬 물들어 있다. 나이는 세어서 무엇하랴! 내가 지금 파릇파릇한 오월 여왕의 계절에 흠뻑 빠져 있는 걸! 젊고 싱싱하게 살자!
어제는 전날에 이어 뒤흔들리게 내리고 있는 오월의 봄비를 맞으며, 들녘에 나가 봄 쑥을 한 손수레 가득히 뜯어왔다. 오월의 봄 냄새가 물씬 나는 쑥떡을 만들어서, 어르신들과 입안 가득히 봄을 먹으려 한다. 바쁠수록 여유를 가지고 대자연이 보여주는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살자!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고,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아, 나의 현 존재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곱셈과 같다. 내게 기회가 온다 해도 내가 제로이면 무슨 진보가 있겠는가?
나는 새벽 3시쯤이면 일어난다. 밖은 아직 깜깜하지만, 나는 곧 동녘에 어둠을 가르고 떠오를, 아침 태양을 본다. 혹여라도 주어진 하루를, 구우일모(九牛一毛)처럼 소홀히 여기는 삶이 되지 않도록, 오늘을 내 생애의 마지막 날처럼 사는 사람에게는, 주어진 하루의 소임을 다 하므로, 하루가 뿌듯하고 감사하리라!
신성로마제국이었던 독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황제의 보좌관을 맡아 일하던 공작이 있었는데, 황제가 그 능력을 높이 사서 총리로 삼았다. 신성로마제국 총리의 자리가 어느 자린가? 바로 일인지상 만인지하 (一人之上 萬人之下)의 막중한 자리다. 이 자리에 앉자 그는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릇보다 자리가 더 컸던 것이다. 모두가 그를 싫어했다. 총리가 어느 날 홀로 야외로 사냥을 갔다가, 시골 작은 교회를 발견하고는, 교회에 들어가 조용히 기도에 몰입하는 순간, 십자가에 찬란한 빛과 함께 3이란 숫자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자기에게 남겨진 날이 3일밖에 없다는 계시로 받아들이고, 남겨진 3일 동안 총리로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런데 3일이 지났으나 죽음이 오지 않았다. 그는 3일이 아니라 3개월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3개월을 총리로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자 주변에 변화가 일어났다. 나라가 안정되고 사회가 확연히 달라졌다. 3개월이 꿈결같이 지났다. 그러나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3년이라고 생각하고, 3년을 국리민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이렇게 3년이 지나는 동안, 황제도 신하들도 백성들도 그의 삶에 감동을 하였다. 얼마 후 황제가 병을 얻어, 현 총리를 다음 황제로 옹립하도록 유언을 남기고, 1311년 서거하였다. 문무백관들과 신민들의 환호 속에 황제의 유언대로 3년 후, 그는 황제로 등극하였다. 그가 바로 1314년 프랑크푸르트의 다섯 제후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된 `루트비히(Ludwig) 황제`다. 문재인 현 정권도 임기가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번번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낙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지금의 집권자에게 묻고 싶다. "왜 집권자가 되었느냐"고, "처녀가 애를 가져도 할 말은 있다."지만, 그 자리는 범인이 앉을 자리가 아니다. 백 년 인생도 잠시인데 5년 정권이야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가의 명운은 이 찰나에 달려 있다. 어찌 보면 때에 따라서는 하루도 너무 길 때가 있다. 하물며 5년에 있어서랴! 인생이든 권력이든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 하루하루를 처음 맞이하는 것처럼, 오늘이 최후의 날인 것처럼,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자! 그래서, "무엇 때문에 그랬다"는, 비루한 인생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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