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17세기 개혁신학의 내용
▶ 유럽에서의 개혁신학 개관(槪觀)

김영규 박사 프로필

▷독일 궤팅켄대학(Th.D.)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eq.)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74회 졸업
▷총신대학교 신학과(B.A.), 74학번.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Director, Research Institute for the Bible and Reformed Theolegy(www.ribrt.org)

주요저서 및 논문
■ 『Calvin and the Old Testament:Sola Scriptura and the Trintarian God as an Unique Author of the Old Testament(Germanic), 1993. ISBN 89-950009-1-0 93230』(Seoul 1994.) - 궤팅켄대학 박사학위(Th.D.) 논문
■ 『A Dialogical Document and the Metaplasmic Phases of the Pre-Mosaic Hevrew hehind Gen 23.(Germanic. 1993.) ISBN 89-950009-0-2 93700』(Seoul. 1994.) - 창세기 23장에 관한 논문은 인류 역사 중 20세기에 와서 땅이 그 창세기 기록의  진실을 밝힌 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두 고인들이 되었지만, 그 당시 고대 애굽어 기록들과 문헌들 편집의 최고 권위자이었던 H.W.Helck 교수와 고대 아카드 언어나 고대 슈메르 언어의 대가였던 D.O.Edzard의 자문을 받아, 독립적으로 주전 2400년 전의 고대 슈메르 문서들의 대화체 기록 방식들과 동일한 시기의 셈족 기록물들인 에불라 토판들에서 발견된  대화체 기록 방식들 및 고대 애굽 중 왕조의 편지들이나 기록물들에서 증거된 대화체 관용 표현들을 연구하여, 지금 현 창세기 23장에 기록된 그대로가 그 당시 "대화체 중재재판 판매 문서"의 직접적인 내용임을 증명한 논문이었다. 그런 대화체의 시대적 제한성 때문에 야곱에 관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한 지금 창세기는 완성된 후  많은 세월을 지나 요셉의 죽음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첨가된 것은 그 기록자를 알리는 간기(Colophon)라는 사실이 가정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화체 기록에 있어서 '그리고 역시 누가 누구 앞에 이르기를'과 같은 직접 화법 인용 관용구는 셈족 에불라 토판에서도 발견이 되나, '그리고 역시' 없이 '이제 내가 너에게 말하여 이른 것에 대해서' 등과 같은 직접화법 관용구는 후대 고대 애굽의 직접화법에서 증명이 되지 않는 창세기 족장시대에 해당된 고대 애굽 왕조들인 12 왕조와 13 왕조의 고유한 표현방식이라는 것이다.
■ 『17세기 개혁신학』(개혁주의성경연구소, 1995.)
■ 『조직신학 편람 I,II-2,III,IV.』(개혁주의성경연구소, 1998.)
■ 『엄밀한 개혁주의와 그 신학』(도서출판 하나, 1998.)
■ 『Biblica Hebraica et Graeca(Archaic Hebrew Texts and Greek Handwriting Texts of the First Century AD.) ISBN 89-89519-02-0 93230, 2002, RIBRT』(개혁주의성경연구소, 2002.)
■ "Paleographical Dating of 46 to the Later First Century, (Biblica-로마교황청 직영 국제학술기관지, Vol. 69, No. 2, 1988.)  P46(최초 바울서신 모음집 사본)의 연대 측정이 주후 1세기 말인 최소한 도미티안 황제시대 이후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또한 필자에 의하면, "P46의 필체는 주후 1세기 안에서는 물론 1세기 전후 수 많은 문헌 파피루스들 중에서도 극히 희귀하게 지금 남아 있는 주전 3세기 전형적인 교육교본 필체를 가진 파피루스 사본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논문바로가기 https://www.friktech.com/rel/p46.htm

■ "도르트회의 Marburg 대학의 대표자 Rudolphus Goclenius(1547-1628)의 철학과 신학에 대해서"(대한논총, 2009.)
■ "하이델베르그 대학과 바젤대학의 개혁신학자 J.Jacobus Grynaeus(1540-1617)의 신학에 대해서"(대한논총, 2011.)
■ "초기 청교도 신학 안에서 법치사회의 기독교적 이상과 그 개혁정신 및 그 한계에 대해서"토마스 카트라이트의 논쟁자들을 중심으로"(대한논총, 2012.)

 

                  차 례

머리말 ... 5

I. 한국장로교회와 정통개혁신학... 7

II. 역사적 정통개혁신학의 바른 노선의 요점...24

III. 17세기 개혁신학의 역사적 배경...59

IV. 17세기 개혁신학의 개관(槪觀) ...109

V. 도르트회의와 예정론 논쟁... 130

VI.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 신학... 343

VII. 17세기 언약신학과 정통개혁신학의 몰락..369

맺는 말... 371

참고문헌... 373

IV. 17세기 개혁신학의 개관(槪觀)

2. 영국, 스코틀란드, 아일랜드에서의 개혁주의 신학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영국에서의 개혁주의 신학의 문제들은 대륙에서 첨예화되지 않은 문제들이 영국에서는 첨예화되었다. 즉 철저한 종교개혁의 문제들이였다. 그런 개혁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들에서와 같은 종교개혁의 한 입장들일 수 있었으나 계속적인 철저한 종교개혁은 바로 철저한 칼빈주의를 의미하였다. 실제적으로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전체적으로 아직도 루터주의적인 종교개혁에는 이르지 못하였고 에드워드 6세의 개혁은 루터주의적인 종교개혁 혹은 부분적 칼빈주의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메리여왕 때 순교당한 죤 브래드포드의 경우 정확한 칼빈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죤 낙스의 친구이었던 죤 폭스의 칭의론은 루터주의에 머물렀던 종교개혁자의 모습이었다.

죤 브레드포드(John Bradford, 1510-1555)의 기본적인 예정론(1555년 7월 1일 순교하기 약 8개월 전에 쓴 1554년 10월 22일의 한 편지에 따라 )에 대한 이해는 칼빈과 같이 실천적이다. 그의 예정론에 대한 이해는 구원의 확신에 강조를 둔 예정론이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신앙은 행위에 있어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성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얻는) 영원히 영생의 유산자들임을 믿는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이 예정론에 대한 신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 중에서 원리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총체’라 하였다. 하나님의 선택교리로부터 유익들은 셀 수 없다고 하면서 간추리기를,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하나님과 인간과 자신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경건하고 의롭게 살며 신실하게 사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정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가장 신뢰할만한 목자였고 연약한 양과 같아도 이런 예정론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 사자와 이리로부터 지켜주실 것을 믿었고 그가 죽고 태워져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영광을 위한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덕이나 악도 외적인 행동에 따라, 혹은 인간의 의지와 지혜에 따라 판단될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려되었다:

1. 하나님의 선택의 원인 그 분의 선한 의지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은 그 분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 그 선택은 세상의 태초전의 일이다. 3. 그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이다. 4. 그 선택은 아담의 후손 중 어떤 이들에 대한 것이고 모든 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택자가 아닌 것은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0장, 13장, 사도행전 13장, 요일 5장, 살후 3장 인용). 5.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도록 택한 자들을 예정하셨다(롬 8장, 눅 10장). 6. 선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의 찬양이다. 우리가 예정 받은 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위해서 이다. 7. 예정은 하나님의 때 안에 소명, 칭의 없이는 없다. 즉 예정이나 선택이 보편적이지 않고 모든 이에게 속한 것이 아님은 모든 이가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8. 선택은 그렇게 확실하고 영생을 위해서 택함을 입고 예정된 자는 최종적으로 결코 파멸하거나 정죄에 이르도록 잘못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찬양을 위해서 예정을 입었다. 그의 의의 찬양도 아니요 그의 지혜의 찬양도 아니며 그의 능력의 찬양도 아니다. 다만 그의 은혜의 찬양을 위해서 예정을 입었다. 머리가 없는 선택, 목적이 없는 선택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종의 보존이 선택에 속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다가 제자로 부름을 받았어도 영생을 위해서 택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고 보았고 사울도 왕의 직책으로 택함을 입었어도 영생을 위해 택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런 예정론의 성격이 바로 정경인 성경책의 전체내용과 책들 안에 세워져 있다고 보았다. 비록 리들리 밑에서 그와 가깝게 지냈고 부쩌와 친했던 그였지만, 이런 예정론에 따르면 정확하게 칼빈의 사상위에 서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정치에 대한 그의 판단이다.

메리여왕의 등극이후 유럽으로 피신한 인물 중 죤 폭스(1517-1584)의 신학사상의 일부를 소개하면, 위의 브레드포드와 잘 비교할 수 있고 죤 낙스와 친한 신학자로서 알려졌지만 제네바로 가지않고 바젤로 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물론 교회권징과 영국의식에 대한 죤 낙스의 프랑크푸르트 논쟁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논쟁에 대해서 후회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칭의론은 루터의 실천적 칭의론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율법에 대한 입장도 죤 낙스가 칼빈주의라고 한다면 그는 루터주의를 대표하는 자로서 사려할 수 있다. 언약의 두 방식과 두 가지 의를 강하게 대립시키고 있다. 즉 복음의 의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율법의 준수로 말미암지 않으며 우리 편에서 어떤 의무의 수행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다. 참된 의를 옹호하지 않으면 그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신적인 은총의 모든 문을 닫히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은혜의 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렇게 믿음의 의와 행위의 의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고 강하게 그 차이를 강조하였다. 물론 그는 우선 인간의 전적 부패를 주장하면서 이성도 가장 맹아이고 신적 지식의 빛으로 조명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신적인 것들에 대한 참된 이해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에드워드 6세의 개혁의 산물인 39개 조항에서 개혁주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예정론에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후에 Lambeth Articles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이 선언은 Mr. Barret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 설교에서 칼빈의 예정론의 교리를 반박함으로 생긴 것이다. 그는 그의 청강자들에게 칼빈의 책을 읽지 말라고 하하고 다른 신학자들(P. Martyr, Beza, Zanchius)을 문제를 삼았는데, 그로 인하여 퓨리탄들의 반박을 받아 논쟁이 되었다. 마지막 카톨릭으로 전환하였던 Mr. Barret는 타협적인 고위 성직자들과 카톨릭주의자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으면서 Lambeth에 있는 대주교 앞에 소환되었는데, 그 때 대학을 대표하는 Dr. Whitaker와 Dr. Tyndale가 도와 작성된 것이다. 이 선언서에서 관찰될 수 있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과 유기에 대한 확고한 고백이었다는 것, 둘째로 예정의 원인을 인간의 예지된 믿음이나 행위나 기타 어떤 것들에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한 의지와 기뻐하심에 돌렸다는 것, 셋째로 참되고 의롭게 된 신앙의 영구성, 구원에 대한 충만한 보증, 죄 용서에 대한 확신이 선언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공적인 입장들이 도르트회의에 참여하여 동의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특별히 일찍부터 양심의 자유를 따라 퓨리탄들의 피신처가 되었던 아일랜드지역에서 자체의 신앙고백이 고백되었다. 여기에서 독자적인 장로교파(Presbyterian Persuasion)가 형성되었다. 그 대표적 목사들은 스코틀란드에서 온 Mr. Edward Bryce, Mr. Robert Cunningham, Mr. Robert Blair, Mr. Hamilton, Mr. Levingston, 영국에서 Thomas Cartwright 등에 의해서 훈련받은 Mr. Ridges, Mr, Henry Calvert, Mr. Hubbard등 이었다. 여기에서는 그 관구의 주교와 화해가 이루어져 공적으로 장로교 성직자들이 임직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대주교 Dr. James Usher때(1615년)에 자체적인 신앙고백서가 고백된 것이다. 이 고백에는 위의 Lambeth Articles가 흡수되었고 주일성수가 고백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고백이 1634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대주교 Laud 때에 와서 화해가 깨지고 약화되어 버렸다. 결국 이것이 카톨릭의 힘을 성장시켜주었고 마지막 거의 모든 신교인들이 순교당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아일랜드 고백서에의 일반적인 틀과 내용이 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예정론의 경우 첫째로 Lambeth Articles과 달리 영원한 작정에 대한 고백과 예정과 유기에 대한 고백을 구별하였다는 점이다. 즉 예정과 유기는 인격체에 제한하였고 만물에 대한 영원한 작정은 먼저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구원의 방식까지 예정에 대한 고백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셋째로 그 예정의 목적과 그 효과에 대해서도 고백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기초들임에 틀림없다. 신구약의 통일성의 경우 첫째로 신구약의 차이는 계시의 판명성의 차이이라는 것, 둘째로 신구약 모두에서 영생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공된다는 것, 따라서 그들 사이에 모순이 되지 않는다는 것, 셋째로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 중에 의식법과 시민법을 제외하고 도덕법에 해당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연적이라는 고백이었다. 즉 율법의 제 3 사용에 대한 확고한 고백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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