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ilium Tridentinum(Council of Trent, 1545-1563)는 서방 교회에서 로마 교황주의 진영에서 개최한 회의이다. 회의를 개최한 목적은 루터와 칼빈 진영의 종교개혁에 대한 확고한 자기 교령을 구축하는 것이다. Concilium Tridentinum는 트렌트 혹은 트리엔트로 번역하는데, 우리는 트렌트라고 할 것이고, 공의회, 교회회의, 종교회의, 회의 등은 교차로 사용할 것이다. 트렌트 회의에 대한 평가는 개혁파 교회에서는 역(逆) 혹은 반(反) 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이라고 평가하고, 로마 교회(천주교) 측에서는 종교개혁(Catholic Reformation)이라고 평가한다. 트렌트 회의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소천하기 전에(1545년) 개회되었고,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 소천하기 전에(1563년) 폐회되었다. 트렌트 회의는 막 형성된 예수회(Societas Iesu, 1539년 창립),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 1491-1556)의 주동으로 개최되었다고 한다. 로욜라와 칼빈은 몽테규 대학(college of Montaigu)에서 수학하였다. 예수회 공동창설자인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cus Xaverius, 1506-1552)는 인도와 명(明) 국(國), 왜(倭) 국(國)에서 성경과 신학을 번역하여 정착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어휘들은 자비에르가 창작한 어휘를 답습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회 사제들은 들어가서 활동해서 서양 학문 어휘를 한자어로 연결시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도 예수회 소속이고, 1582년 마카오에 상륙하여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저술하는 등 열성적인 포교활동을 하였다. 최근에 예수회 소속 사제가 교황이 되었다. 조선을 침략한 왜군(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의 종군사제로 세스페데스가 들어와서(1593년) 왜군을 상대로 활동했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Leo X, 1475-(r)1513-1521)는 마틴 루터의 글에서 41가지 문제(4l propositions)를 정리해서 정죄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교황진영과 개혁파진영은 1541년 레겐스부르크에서 협정문을 채택했지만 결렬되었다. 그리고 교황측에서 1차 소집 통고를 했지만 개혁파에서 거부했고, 1545년에 2차 통보를 했을 때도 응하지 않았다. 루터가 소천한 뒤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군대를 동원해서 개혁파를 강제 소환하려고 했다. 슈말칼덴 전쟁으로 교황측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개혁파 진영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항전했고, 1555년 아우스부르크 회의를 통해서 종교의 자유를 확보했다. 그렇게 트렌트 회의는 로마 교회의 자체 회의로 진행되어 결론했다. 개혁파 진영에서 참가하지 않은 것은 결코 자기들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약속도 지키지 않을 것으로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렌트 회의는 1545년에 시작하여 1563년에 마친 18년의 기간이지만, 3기로 활동하였고 중간에 휴지 기간(10년)도 있다. 1기는 1545년 12월 13일부터 1547년 3월 11일까지 진행했다(교황 바울 3세). 2기는 제2기 1551년 5월 1일부터 1552년 3월 28일까지 진행했다(교황 율리우스 3세). 3기는 1559년부터 1565년까지 진행했다(교황 피우스 4세).
트렌트 1차 결정(1546년 2월 20일-3월 8일까지 4회기(session))은 성경(DECREE CONCERNING THE CANONICAL SCRIPTURES)에 관해서 결정했다. 종교개혁파의 오직 성경에 대해서, 성경 목록을 결정하고 성경과 전통을 공동 권위(pari pietatis affectu ac reverentia )로 결정했다. 벌케이트(Vulgate)와 원어 성경(original texts by Greek and Hebrew)의 권위를 인정했다. Canon 없음, 1장으로 구성함. ※ Canon에 Anathema가 선언됨.
트렌트 2차 결정(1546년 7월 17일, 5회기(session))은 원죄(DECREE CONCERNING ORIGINAL SIN)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5항, 4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3차 결정(1547년 1월 13일, 6회기(session))은 칭의(DECREE ON JUSTIFICATION)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33항, 16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4차 결정(1547년 3월 3일, 7회기(session))은 성사 중 성만찬(DECREE ON THE SACRAMENTS/ ON THE SACRAMENTS IN GENERAL)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13항, 1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5차 결정(1547년 3월 3일, 7회기(session))은 성사 중 영세(DECREE ON THE SACRAMENTS/ ON BAPTISM)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14항, 0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6차 결정(1547년 4월 4일, 7회기(session))은 성사 중 견진례(DECREE ON THE SACRAMENTS/ ON CONFIRMATION)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3 항, 0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7차 결정(1551년 10월 11일, 13회기(session))은 성체성사DECREE CONCERNING THE MOST HOLY SACRAMENT OF THE EUCHARIST)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11 항, 8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8차 결정(1551년 11월 14일, 14회기(session))은 고해성사(ON THE MOST HOLY SACRAMENTS OF PENANCE)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15 항, 15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9차 결정(1551년 11월 25일, 14회기(session))은 도유성사(ON THE SACRAMENT OF EXTREME UNCTION)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4 항, 3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10차 결정(1563년 11월 11일, 24회기(session))은 혼인(DOCTRINE ON THE SACRAMENT OF MATRIMONY)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12 항, 10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11차 결정(1563년 12월 4일, 25회기(session))은 연옥 교리(DECREE CONCERNING PURGATORY)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0 항, 3 장으로 구성함.
트렌트 12차 결정(1563년 12월 4일, 25회기(session))은 계속법(DECREE FOR CONTINUING THE SESSION ON THE FOLLOWING DAY)에 관해서 결정했다. Canon 0 항, 1 장으로 구성함. 면벌부(DECREE CONCERNING INDULGENCES)의 사안에 대해서 결정을 보류한 것이며, 공의회를 폐회하지 않음으로, 1차 바티칸 회의, 2차 바티칸 회의로 연결된다.
트렌트 회의에서는 25회(session)으로 12 분야에서 법령(decree)을 규정했다. 개혁파를 향해서 110개의 Canon(규범, Anathema)를 선언했다. 그 중에서 칭의 부분(6 회기)에서 33회로 가장 많다. 트렌트 회의에 대해서 칼빈의 기독교강요 4권(1559년)에 교황주의를 비판과 비교할 수 있겠다. 그것은 트렌트 회의에서 개혁파의 주장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6년)에서는 혼인(24장)을 신앙고백서에 포함시킨 것은 트렌트 회의에 대한 작용으로 추측할 수 있겠다. 이신칭의 교리를 견고하게 지킨다는 것은 결국 트렌트 회의의 결정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세이고, 이신칭의 교리를 약화시키거나 포기하는 것은 트렌트 회의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윌리엄 커닝함의 <역사신학> 3권(서창원 번역) 21장의 “칭의” 부분을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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