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범 박사(총신 교수, 새순교회)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류는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죄인이 되었다. 이렇게 죄인이 된 인간들은 하나같이 불안 가운데 살고, 공포를 경험하며 죽음의 세력에 사로 잡혀 신음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죽은 사람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하고 있다.
이때 인간의 현실을 반전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구속중보자가 된 예수 그리스도가 때가 되어 이 땅에 성육신한 것이다. 그 후 그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의 죄 값을 지불하므로 인간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시켜 주셨다. 이를 믿는 인간은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죄인이라는 신분에서 의인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일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이 그리스도가 객관적으로 이루어 놓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은 구속사역을 택한 자의 마음과 삶 속에 주관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내주한 성령을 통해 부르심(소명), 거듭남(중생), 회개, 믿음, 의롭게 함(칭의), 양자, 거룩하게 됨(성화), 견인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중생, 회개,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등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거듭남(중생), 회개, 믿음, 의롭게 함(칭의), 양자는 구원받은 자에게 과거의 일이고, 거룩하게 됨(성화)과 견인은 현재의 일이며, 영화는 미래의 일임을 알았다. 그 중에서 우리는 구원여정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glorification)에 대하여 고찰하므로 영화를 향해 달리는 거룩한 믿음의 경주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영화의 의미
그리스도인의 영화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중보 사역을 절대 신뢰하는데 그 출발점을 둔다. 영화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부름을 받고 예수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구원여정에서 맞게 되는 최종단계로서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죄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자연인들처럼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죄와 싸우면서 거룩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칠 때 죄와 관계없는 자,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기에 합당한 자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로마서 8장 29-30절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προἐγνω)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
여기서 사도 바울은 구원여정의 도식을 전개하고 있다. 그가 ‘미리 정했다’(예정,προώρισεν)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미리 선택했다는 것이고, ‘부르셨고’(소명,ἐκάλεσεν)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초청했다는 것이며, 의롭게 하셨으며(칭의,ἐδικαίωσεν)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의인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우리 그리스도인을 영화롭게 하셨다”(ἐδόξασεν)고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구원여정의 단계들을 언급하며 그가 사용한 동사들을 보면 모두 과거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으니 그들은 반드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택함 받은 자들의 영화구원도 궁극적으로 확실하게 실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화(glorification)란 우리가 부활할 때 죄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 앞에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거룩한 상태, 즉 하나님 앞에 살기에 합당한 자로 변화(빌3:21)되는 것을 뜻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영화란 죄와 상관없는 부활의 몸을 입어 그리스도의 형상처럼 변화되는 것이다. 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상태로 변화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구원 여정의 마지막 코스인 영화야말로 구원의 절정이자 구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범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주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죄와 상관없는 상태인 영화의 범주는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구원의 완성인 영화의 범주는 무엇일까? 그 범주는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영화요, 또 하나는 역사적인 관점에서의 영화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영화는 영혼의 영화(spiritual glorification)를 가리킨다. 그 시기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일어난다.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죄의 현존으로부터 해방되고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천국으로 들어간다(눅23:43, 전12: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2장)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히12:23).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1:21~23). “우리가 담대하게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후5:8)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죄악이 가득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성령에 의해 그 모든 죄악은 완전히 떨쳐 버리게 된다. 이때 죄를 지을 성향마저도 깨끗하게 제거해 버린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고, 완전히 성숙한 상태가 되므로 영혼은 최상의 상태로 변화된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화는 성령에 의해 완전히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 후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천국에 입성하게 된다. 거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은 빛과 영광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산다. 그곳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육신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바라며 육신의 부활을 기다린다.
역사적인 관점에서의 영화는 우리그리스도인의 육신의 영화(physical glorification)를 가리킨다. 그 시기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할 때에 부활하므로 일어난다. 이것은(육신의 영화) 인간이 죽을 때 일어나는 영혼의 영화와 달리 구속중보자인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초림 때 우리 그리스도인을 죄로부터 구속하신 후 그 구속을 완성하려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 때 일어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실아 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15:51~52).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고전15:43~44).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그리스도인들의 육체가 부활할 때, 그 몸은 과거와 같은 육의 몸이 아니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령한 몸이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살아 있을 때 우리의 그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때 살아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그 상태에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진행될 때는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가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러 이 땅에 재림할 때 가능하다.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썩은 육체가 부활하게 되고(롬8:11), 이미 죽어 영화롭게 되어 천국에 가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영혼과 재결합을 하게 된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종말에 예수님의 형상을 완벽하게 닮은 인간으로서 부활체가 된다(고전15:51~53).
이와 함께 피조세계도 영화롭게 된 육체가 살기에 합당한 거소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성령의 정화로 새롭게 된다(롬8:20~21). 그러니까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화된 신령한 몸이 거하기 위해 기존의 피조세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갱신되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된다(벧후3:12~13). 그리하여 신령한 몸으로 영화된 우리 인간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의 상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실 때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재결합된 후 영화롭게 된다. 이때 영화롭게 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우리의 대표자로서 부활을 통해 영화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연합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화의 상태는 그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고전 15:20–23).
첫째,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처럼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부활체가 된다(요20:19~29).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므로 구속을 성취하셨다. 그가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의 영혼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가고 그의 육체는 무덤에 삼일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후 그의 영혼과 육체가 재결합하므로 부활체가 되었다. 이처럼 그와 연합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처럼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부활체인 신령한 몸이 된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와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고전15:53~54). 그리스도인이 영화되기 전에는 죄와 죄의 세력, 죽음의 영향을 받았다. 또 시험을 받으며 살았다. 이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이 역사의 종말에 부활을 통해 영화로운 몸이 되면 그 몸은 죄와 죄의 세력,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와 전혀 무관한 영광의 상태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가장 성숙한 몸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영화가 되면 유령이나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 우리가 영화를 통해 영화의 상태에 들어가도 피조물의 모습을 탈피하지 않고 유지한다. 어떤 장애자도 건강한 모습으로, 어떤 사람도 늙지 않은 모습으로, 어떤 자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떤 병자도 가장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렇게 우리가 영화될 때 우리는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게 된다. 결국 우리의 영화된 모습은 인간으로서 가장 성숙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원한 빛으로만 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영화되기 전인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에너지로 살았다. 그리하여 의식주에 매여 살았다. 그러나 부활체가 된 그리스도인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빛으로 살게 된다(계21:23~27).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의식주에 매이지 않는다(눅24:41~43). 눈물과 애통이 없고, 곡하는 것과 저주가 없다. 늙음이 없고, 질병과 죽음이 없다(계21:4, 22:3-5), 오직 영원한 생명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만을 섬기며 찬양하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계22: 3-5).
영화의 목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영화롭게 되는 목적이 있다. 첫째로, 우리가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 사는데 있다(요3:5,14:2, 눅23:43,고전15:19, 고후5:1). 이 땅에서는 내 욕망대로, 내 생각대로, 내 기분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어떤 죄가 있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이다. 그것은 천국이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롭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믿어 의인이 된다. 이때 우리 자체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분상 의인이 된다. 그 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성령이 내주하며 신실하게 일하신다.
여기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의 모델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 옛사람의 본성과 죄악 된 성품과 기질을 다듬으신다. 또 성령은 이 일을 통해 주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의 때까지 성화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 때 영화롭게 된 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둘째로, 우리가 영화롭게 되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는데 있다(계7:9~12). 이 말은 우리가 죄와 상관없는 영화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데 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영화롭게 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화로운 몸으로 천국에 들어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영광스런 이 예배는 영원세계에서 시작되지 않고 시간세계에서 이미 시작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일동안 주어진 일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을 이루시고 부활한 날인 구속기념일(주일)에 교회당에 모인다. 그들은 구속공동체로서 교회에 모여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고 참된 안식을 누린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육일동안 주어진 삶을 산 후 구속기념일인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일생동안 반복적으로 하면서 산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일생동안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가 그리스도가 구속을 완성하려고 역사의 종말에 재림하실 때 부활한 후 도래한 새 하늘과 새 땅에 온전히 임재하신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배하는 일을 영원토록 하며 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한 예배를 드리기 위한 필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런 사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은 후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화의 삶을 살고 영화롭게 되는 목적이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영광의 예배를 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를 위한 자세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여정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의 순간을 맞이하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이는 사도 바울이 그 답을 알려 준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딤후4:6~8)
첫째, 믿음을 지켜야 한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켜야 된다고 진술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그런데 믿음은 그냥 지켜지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것처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로마시대 때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고 핍박을 받았으나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지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사도바울이 살던 시대처럼 박해시대는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해 너무나 좋은 환경과 상황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온갖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는 사탄으로부터 현재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도록 온갖 시험을 받고 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2:16~17)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탄의 온갖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사실 앞에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죄와 싸우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래야 구원여정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둘째, 소망을 가져야 한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주의 재림을 소망해야 된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딛후4:8)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여정의 마지막단계인 영화를 위해 무엇을 소망해야 되는지를 진술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영화를 위해 믿음을 지켰다고 한 후, 곧 이어 주의 재림을 소망해야 한다고 한다. 그때 우리가 영화와 함께 “의의 면류관'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그는 믿음으로 살면서 실제로 주의 재림을 소망하였다. 이어 그는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영화와 함께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주의 재림을 소망해야 된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때 '면류관'(στέφανος)은 그 당시 운동경기의 승리자에게 수여하던 상으로 월계수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잎을 엮어 만들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단순히 '면류관'이라고 하지 않고 '의의 면류관'이라고 한다. 문제는 '의의 면류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의의 면류관'은 구속을 완성하려 오시는 그리스도가 구별되고 깨끗하게 산 영화로운 자들에게 주시는 면류관(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주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았다. 더 나아가 그는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딛후4:8)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런 점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마시며 출세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택부터 견인까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후 죄와 싸우는, 그래서 거룩하게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구원여정의 완성인 영화를 향해 달리는 거룩한 경주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지 않기에, 이 세상의 삶에 안주하지 말아야 하겠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걸 믿지 말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생활을 잘 해야 하겠다, 더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종말에 영화롭게 될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날마다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다.
<최낙범 교수 프로필> 중앙대학교 철학과 졸업(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및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Th.M), 숭실대학교 대학원 졸업(Th.M). 미,Kernel University 대학원 졸업(조직신학박사, Th.D). 총신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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