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은 모든 사랑의 기초이다. 자기사랑은 타인사랑의 반대개념이 아닌, 만물과 일체로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사랑은 차이는 인정하되 분리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자기 아닌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이다. 그 하나에 대한 사랑이 자기사랑인데 진실로 이 하나임을 알지 않고는 자기사랑의 본의를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하나가 되기로 운명 지어진 두 존재의 신성하고 진실하며 친밀한 교류로서 연결하여 끌어들이고 권능을 부여하는 세 가지 국면을 가진 하나의 과정이다. 그리하여 자기사랑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결과로 자신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결과로 나타나야 하는데, 무엇이 자신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사랑이 되겠는가?

자기사랑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심이다. 자신의 신성에 대한 사랑이어야 자신에게 가장 높은 권능을 부여하게 될 것이요, 신성의 권능을 구현하는 요체이다.

자기사랑의 두 번째 단계는 내면의 신성에 대한 자각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깊은 이해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내면의 신성을 자신의 본질로 자각하는 못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연차로 자아(眞我)발견은 모든 길로 통하는 첫 관문이 된다.

자기사랑의 세 번째 단계는 자기사랑의 구현이다. 자기사랑은 삶 속에서 신성을 구현하는 과정인데, 자기사랑을 실현하여 물질계에 靈性을 구현하는 것이 자기사랑의 완성이다. 자기사랑의 실현방안은 첫째로 영적 자기사랑의 실현이다. 영적으로 자기사랑을 실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靈으로 인식하고 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영으로서 하나다. “하느님은 영이며 영은 사랑이라.” 우리가 보통 자기사랑이라고 말하면 이것을 두고 이르는 것이다. “영으로서 듣고 말하고 행하라. 모든 것을 영으로 보고 대하라.” 이것이 영적 자기사랑의 내용이다.

두 번째는 정신적 자기사랑의 실현이다. 정신적 자기사랑이란 자신의 정신작용을 사랑하고 정신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만물과의 교류를 존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영이 하는 가장 근본적인 활동의 하나다. 영정 혼동(靈靜 魂動)의 작용상태가 바로 인간의 정신작용이다. 정신은 영이 만물과 교류하는 첫 관문이다. 생각은 정신의 도구다. 정신상태를 맑고 밝게 유지하고 생각을 올바르게 조절 통제하는 것이 정신적 자기사랑의 요체다.

세 번째는 감정적 자기사랑의 실현이다. 감정적 자기사랑이란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감정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조절하고 타인의 감정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감정은 혼정 기동(魂靜 氣動)하는 마음의 심리상태다. 감정(emotion)을 움직이는 에너지(energy of motion)라 하듯이 감정은 心氣의 분포상태를 말하는 데, 심기가 조화롭고 편한 상태를 기분(氣分)이 좋다고 하고 심기가 울체되거나 막히거나 편벽되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한다. 魂動이 氣動을 초래하여 생각의 움직임이 氣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이니, 긍정적인 생각은 좋은 감정상태를 유도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나쁜 감정상태를 유도한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꼭 생각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상태나 주변의 상황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감정(感情)은 움직이는 기운(氣運)이니, 어떤 상황에서 기분이 나쁘게 느껴진다 해도 이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을 돌릴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주변의 낮은 파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자신의 존재의 파동을 고차원으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쉽고도 효과적인 방안은 “판단 없이 느끼기”, “범사에 감사하기”다.

느낌은 영혼의 감각이요, 감사는 5차원의 진동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이원성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범사에 감사하기”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것은 우주의식과의 연동작용으로 자신의 존재의 파동을 고양시킬 수 있는 최적의 실천수단이 된다. 인간의 수많은 감정의 뿌리에는 결국 두 가지 감정, 사랑과 두려움이 있고 두려운 감정 역시 “사랑의 부재”일 뿐 환상인 것이니, 오직 사랑의 감정만이 있을 뿐이다.

감사가 곧 사랑이다. “모든 사사물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어보라, 그러면 모든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리라!” 감정적 자기사랑의 실현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오직 사랑의 감정만이 실재함을 자각하고 두려움 없는 사랑의 존재상태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오로지 사랑하고

오로지 기뻐하며

오로지 축복하고

오로지 받아들이며

오로지 감사하라!”

육체적 영역에서 자기사랑을 실현한다는 것은 영혼의 연장으로서 영혼의 확장된 진동영역으로서의 육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3차원 물질세상에서 자신이 소유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육체일 것이다. 육체를 사랑하는 것은 영혼의 의무이며, 신의 창조물을 사랑하는 것은 책임 있는 창조자의 책무이다. 의식적인 창조자는 결코 육체를 함부로 소홀하게 다루지 않는다. 육체적 자기사랑의 실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육체가 아님을 이해하면서도 육체를 깨달음의 중요한 도구로 보고 영육(靈肉)의 합일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다.

육체적 자기사랑의 실현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육체를 영혼의 거처로서 신성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神이 거하는 聖所로 보고 대하는 관점은 인간육체에 대한 최고의 경의다. 육체를 신성하게 보는 관점에서 육체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삶의 태도가 저절로 우러나게 된다. 인간세상에서 성소는 늘 깨끗하고 정결하게 유지 되듯이 영혼의 성소인 육체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유지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육체적 자기사랑의 실현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으로, 육체의 자기표현으로서의 옷을 영혼의 요구에 걸맞게 갖추어 입은 것이다. 영혼의 요구에 맞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옷을 입은 맵시가 자신에게 어울리며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울림이 곧 조화(調化)다. 장미의 기운은 장미의 옷을 입어야 어울리고 팬지의 기운은 팬지의 옷을 입어야 어울린다. 내 눈에 좋게 보이는 옷의 맵시가 남의 눈에도 좋게 보이는 것이니,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되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자.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선녀와 나뭇꾼”이라는 우리의 옛 이야기에 선녀가 천의를 입지 않고서는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으로 나오는데, 영혼이 육체를 입은 것도 자기표현의 확장으로서 일진데, 육체의 연장으로서 옷 또한 영혼의 자기표현의 확장인 것이니, 옷으로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육체적 자기사랑의 실현에서 중요한 요소다.

육체적 자기사랑의 실현에서 중요한 것은 또한, 육체가 거주하고 활동하는 거점으로서의 주거공간을 영혼의 요구에 맞게 설정하고 꾸미는 것이다. 육체가 영혼의 성소라면 주거공간은 성스러운 육체의 성소다. 주거공간을 성소로서 깨끗하고 정결하게 유지 관리하는 것은 육체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과 함께 중요하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이 있지만 그것은 어려운 여건과 환경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인 인물을 두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지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고 고래는 강가에서 살 수 없다. 무릇 만물은 시공간에서 자신이 점유하는 특정한 주거공간이 있다. 사람이 땅위에 그냥 살지 않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영혼이 우주에 거하면서 육체라는 집을 짓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육체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은 “영혼의 집”이라는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만물이 거하는 주거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사람의 집”이다. 건물과 주택은 영혼의 자기표현임을 잊지 말자. 영혼의 존재상태에 따라서 집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집을 짓거나 주거공간을 꾸밀 때는 원형의 원만하고 통일적인 기운을 잘 활용하도록 한다.

육체적 자기사랑의 실현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를 원활하게 유지 관리하는 것이다. 명상이 정신 운동이라면 운동은 육체 명상이다. 규칙적 운동은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는 실증이다. 정말이지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으며, 섭생을 조절하지 않고 무의식중에 온갖 것을 몸속에 쓸어 넣어 육체 시스템을 불필요한 요소로 가득 채운다. 자신의 몸을 비대한 채로 방치하는 것은 자기사랑의 부재에 대한 완벽한 증거다. 규칙적인 명상과 운동을 병행하세요.

육체적 자기사랑의 실현에서 중요한 것은 또한, 섭생을 영적 요구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다. 섭생이라 함은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호흡, 식사, 배설, 잠을 포함한 모든 생명활동을 말한다. 호흡은 영혼의 양식이니, 영혼의 자각 속에서 깊고 느리게 유지하자. 흔히 말하는 “쾌면, 쾌식, 쾌변”에 도움을 주는 모든 일을 행하자. 생명의 기쁜 리듬에 도움을 주는 것들을 찾아 자신의 육체에 베풀자. 집이 편안할 때 육체가 편안할 것이고 육체가 편안할 때 여러분의 영혼이 편안할 것이다. “너희의 입속에 들어가는 것이 너희를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희 입에서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힌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입속에 들어가는 것도 분명히 여러분을 오염시킨다. 내게 진정 도움이 되는 음식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자.

자기사랑은 한마디로 자신의 지극한 보배인 내면의 신성의 자기실현으로서의 사랑이다. 자기사랑은 자신의 정수를 신성으로 자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극한 존중심이며 모든 것은 영으로서 하나라는 우주의식에서 행하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는 지상에서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이 부분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신성한 의지로 대체되는 곳이다. 인류의 기나긴 여정의 끝은 자신의 내면에서 신을 만나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로 자기 존재의 근원을 발견하고 정성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는 신성한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영적 진화의 완성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거하시니,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義理)를 세우고 나의 심령(心靈)을 구(求)하여 하느님의 임의(任意)에 맡기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자기사랑의 본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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