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모더나와 화이자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초대 황제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자. B.C.63-A.D. 4)가 아니라 씨이저 (Caesar, Gaius Julius BC 102-44 또는 케에사르)라 할 것이다. '씨이저'라는 이름은 성경에도 로마 황제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나온다. 씨이저는 로마의 군인이자 대정치가로 명문가의 출신이다. 그는 기원전 60년경 크랏수스 폼페이우스와 더불어 제1차 삼두정치(三頭政治)인으로 활약했었고,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를 토벌하여 유명한 '갈리아 전기'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갈리아를 정복한 후 최후의 일전인 로마의 진군을 놓고 전부를 얻느냐!  전부를 잃느냐! 의 갈림길에서 주사위를 던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 마침내 로마를 평정하였다. 그의 앞에는 이제 거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제왕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원로원으로부터 종신의 총통 대원수 "임페라 토르"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그는 대 로마 황제를 꿈꾸고 있었으니 이 칭호가 성이 찰리가 없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공화주의자들의 볼멘 소리가 원로원 안팍에서 거세어지자 그는 원로원을 직접 장악하려고 원로원으로 직행하다가 공회주의자의 칼에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자식처럼 믿었던 그의 조카 부루터스(Brutus)의 칼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니! 네가 나를?"  그는 매우 용의주도하여 한번도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한 적이 없을만큼 매사에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던 그가 돌연 부루터스의 단검에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아무리 용의주도해도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는 죽어가면서 "나는 매사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후에 일을 성사시켰다.  그런데 단 한번도 준비하지 못한 죽음이 이렇게 불시에 찾아올 줄은 몰랐다."며 대 로마를 호령하던 욕망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렇다!  진실로 우리는 마냥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을까? 아님 어떻게하면 성공할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두었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 오는 죽음에 대해서,  한번 죽으면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것과는 영영히 단절되는 "일회자 인생의 마침표"에는 전혀 준비가 없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것처럼 인생의 마지막이 오는 줄도 모르고 육신의 안목을 따라 지금까지 살아 온게 우리네 자화상이다.  실로 케에사르는 '실질적인 팍스 대 로마'를 꿈꾸며 필생을 쏟아 세운 가히 불 세출의 영웅이었다. 실로  인간의 안목으로 보면 그에 의하여 전 세계의 문물이 로마로 흘러 들어 와서 세계를 선도하는 로마의 문화가 다시 세계로 흘러 나가는 '팍스 대 로마나'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유럽을 정복하고 애굽 여왕 절세가인 크레오파트라를 품었던 케에사르! 그는 이 모든 것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듯 보였지만 옛 말에 허리 끈 졸라매며 농사를 짓는 사람 따로 있고 누리는 사람 따로 있듯 그가 그토록 쌓아 놓은 '팍스 대로마나'를 정작 누린 이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조카 '옥타비아누스였다. 이처럼 케에사르에 의한 대 혁명의 1세기는 그와 함께  종식되고 팍스 대로마의 시대가 왔지만   그러나 정작 그가 이루어 놓은 열매는 케에사르도 헌헌 장부 '안토니우스'도 아닌 '옥타비아누스'에게로 돌아갔다. 원로원은 그에게 케에사르에게 주려했던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자)라는 칭호뿐만 아니라  그는 국부(國父 Pater patriae). 신의 아들 (Divi Filus). 프린케프(Princeps 제 일 인자) 등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혼신을 다하여 대로마를 일으켜 세웠지만 정작 그 누림은 자기 몫이 아니었다.  이처럼 덧없고 무상한 인생에게 '인생의 근본'이 사라져버리면 모든 것들은 한낱  부질없는 치장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의 전제적 공산당은 김일성을 얼마나 신격화 했었던가? '조선 인민의 어버이 수령' 이란 말로도 모자라서 '민족의 태양' 이라 추앙했다. 김일성 가문 즉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을 무슨 "백두산정기를 받은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라 하니 참 이러한 자와 동족이라는 사실이 낯 뜨겁다. 근세에 영국을 '태양이 지지않는 나라'라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안개처럼 잠시있다 사라지는 한 인간을 '민족의 태양'이라는 칭송은 참 소가 웃을 일이다.  또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도 이러한 이 북의 김일성주체사상을 동경하고 여기에 빠진이들이 있다하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대한민국 개헌헌법 초안'이 발표되었었는데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가 아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로 표현된 초안을 본적이 있다.  이것은 아마 '북한 헌법'을 본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고를 때에는 남북 통일이 이러한 김일성 우상에 현혹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잘 선택하여야 한다.  민족의 태양이라는 김일성이 어떻게 월북한 같은 사상의 공산주의자 박헌영을 죽일수가 있을까?  민족의 태양이라는자가 김일성을 믿고 월북한 박헌영을 품지 못했다? 참 소가 웃을  일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민족의 태양이라 칭송하며 신격화 하던 김일성도 죽었다.  민족의 태양이 사라졌는데 그들은 지금 어떻게 말을 바꾸었을까?  요즘보면 그들은 아직 사십이나 되었을까 싶은 김정은을 '존엄자'라 칭한다.  어쩌다 한민족이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싶어 곤혹스럽다. 

이처럼 한 때 세상을 호령하는 영웅이라 할지라도 숨이 붙어있는 날 동안 잠시 세상을 호령할수는 있어도 숨이 끊어지면 한 줌의 재가 될 뿐이다. 일천여년 동안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도 망각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죄에서 신음하는 온 인류에게 죄의 사슬을 끊고 죄로부터 오고 오는 모든 인생들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자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려고 십자가 제단에 바쳐 질 어린양으로 오셔서 자신을 십자가 제단에 바치신 예수가 온 인류를 끌어 안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다스리고 있는 예수를 보라!  이와 대조적으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Bonaparte N.1769-1821)은 1799년 구테타로 프랑스 통령이 되고 1802년엔 프랑스 황제가 된 후 한 때 유럽을 제패했으나 러시아 원정에 실패, 그후 워터루 (Waterloo)에서 패하여 53세에 세인트 헬레나(St Helen a)섬에서 죽을 때에 그는 독백처럼, "1800여년 전 로마의 식민지 유대에서 삼십여세의 나이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는 20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오고 오는 모든 세대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인류의 가슴 속에 살아 지금도 온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데  나는 유럽을 정복했고 유럽의 제왕으로 군림했었음에도 지금 왜 나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이 외딴 섬에서 죽어야 하는가!" 라고 절규하며 죽었다.  온 인류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와 얼마나 대조 되는 죽음인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의 로마 황제는 씨저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 였다. '옥타비우스'로도 잘 알려진 그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의 뜻인 ‘존엄자’라는 칭호를 쓰면서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어부지리로 누렸다. 더군다나 그는 당시로서는 장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76세까지 살았다.  그는 로마에 아우구스테룸을 지었는데 이곳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유골을 영원히 안장하기 위해 지은 영광스러운 능이었다. 자기를 비롯하여 후손들까지 세상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당시 로마는 최대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몰락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의 능이 폐허가 되고 도굴까지 당할 것을 또 그 능이 포도 밭이 되고, 르네상스 정원, 투우장, 화약 창고, 콘서트 홀로 계속 바뀌게 되는 것 또한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의 달 밤' 가사에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고려 말 길재 야은(野隱) 의 詩에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았더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지금 소위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지금 대변혁 을 맞고 있다.  요즘 국회의원 선거철이어서 물갈이가 한창이다. 그래서 지금 여야 국회의원 지망생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그 자리는 길위의 인생처럼 잠시다.  참 어리석은 것이 그 자리가 잠시라는 것은 알면서 생명도 잠시인 것은 모르나 보다.  국회의원 4년 해봤으면 훌훌 털고 생각을 전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는 당의 기준치에 차고 넘친데 자기를 너무 평가절하했다고 난리들이다.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한데 모두 하나같이 욕심이 하늘까지 닿아서 결이 전혀 다른 당을 바꾸어 가며 살아남기 위해 팔색조가 되어가고 있다.  참 기가 찰 일이다.  

이처럼 유한하고 미완의 세상이기에 끊임없이 격동과 변화의 물결은 요동치고 있어 완전한 것이나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 유대인들은 "영원한 것은 율법뿐이다."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예수를 율법의 잣대로 보았을 때 그 율법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부녀자들을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예우하셨다.   다시말하면 '남존여비의 개념'을 타파하셨다. 초대 교회에서 부녀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컸었던가는 신약성경을 보면 바로 알수 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전도 활동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묵묵히 뒤에서 조력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필수 요원으로 활약 하였다. 뿐만아니라 이 여인들은 자기들의 몸과 재산까지도 다 주님 나라를 위해 바침으로 주님제자들의 복음사역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들은 부녀자들을 사람의 수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율법을 익히는데도 여인들을 신앙 공동체의 일원 혹은 '주의 종'에서도 아주 배타적이다.요즘도 율법의 꼴통들 은혜의 깜까미들이 딱 그러하다. 늙으면 마누라한테 찍소리도 못하면서 옹고집과 입만 살아서 '이브'없는 인류가 어찌 있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새롭게 탄생한 초대교회는 부녀자들이 교회의 중요한 전도 요원이 되었다. 이는 새로 태어 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율법 중심에서 예수 중심 사랑 중심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 중심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또 예수님과 함께했던 복음에 등장하는 부녀자들과 다른 제자들은 율법 중심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율법의 껍때기를 벗어버리라고 강조하셨고 직접 당신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신 "십자가 사랑의 삶만이 영원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초대 교회의 처녀들은 로마 상류층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로마 상류층 처녀들은 성(性)문화가 문란하여 애인들이 여럿이었다. 이에비해 초대 기독교 처자들은 너무도 정숙했다. 그래서 그들은 상류층 가문의 주목을 받아 명문가문으로 출가하여 그들을 기독교 가정으로 만들었다.  그럼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삶을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고 있는가?  혹여 잠시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한 세상 것들에 내 마음을 두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이다. 지금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때문이다. 어제의 마무리는 오늘에 있다. 오늘을 보람되게  지내야 희망의 내일이 열린다. 내일은 우리가 구상한 것들의 연장일수도 있고 전혀 예상 외의 것일수도 있다. 우리는 내일의 새 날을 아주 깨끗한 백지의 상태로 맞이할수도 있다.  내일의 설계는 내 마음에 있는 이미지가 몸 안에서 마음속의 사선지에 그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내일은 오늘 우리가 준비한 것을 실천하는 희망의 날이기도 하다. 

[종그니칼럼]모더나와 화이자

며칠전 코로나로 인해 아주 힘들게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상대로, 연 이율 5000%의 폭리를 편취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 악당들은 소상공인들을 아예 회생불능의 코너에 몰아 넣고, 기름짜듯 쥐어 짠 악덕 사채업자들을, 일망타진했다는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로 인해 개점휴업 상태인,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일어서려는, 죽느냐 사느냐의 절대절명의 기로에서 사활을 걸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다가 가, 악마의 손을 내밀어, 원금 몇푼의 낛시 밥을 물려 놓고, 온갖 협박과 폭력으로, 년 5000%의 돈을 갈취해서, 돈을 물 쓰듯 초 호화생활을 해온 인간의 탈을 쓴 악당들이었다. 대명천지 법치주의 국가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단 말인가?

나도 지난 무의탁 양로원을 운영하던 시절, 사채업자 뺨치는 축협으로부터, 이루 말할수 없는 수모를 격으며, 무의탁 양로원 건물을 경매처분 당했었다.

이런 일도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때인 1985년에 있었던 일이다. 두 자녀를 둔 어머니가 출근하러 집을 나간 후, 가족들이 애타게 엄마를 찾았지만, 20여년 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가, 2007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영보 자애원'에서, 어머니를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모셔왔단다. 그러니까 이 어머니는, 1985년 서울역 앞에서, 영문도 모른채 붇잡혀 간 것이다. 옛날 형제복지원 사건과 똑같은 판박이었다. 지금 영보 자애원측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초창기때의 일이라, 자기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있단다. 홀로 어린 자녀를 기르고 있던 어머니가, 영문도 모른채 노숙자 신세가 되어, 20여년동안 인권부재의 강제노역을 당하다가, 병들어 쓸모 없는 인간이 되자, 가족에게 인계한 것이다.

공권력의 두호아래 합법을 가장한 이런 인권유린이 밟 붙일 곳이, 지금도 이땅에 버젖이 있다고 생각하니, 끓오르는 분노를 참을수 없다. 대명천지 밝은 문명한 이 시대에, 이런 무법지대인 악마의 손들이, 곳곳에 거미줄처럼 펼쳐져 '둥지를 틀고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2년 전,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혀 생소한 전염병이, 국내에 들어 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 곳곳에 퍼져, 인류의 생존을 위협해 오고 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온 세계인들의 한결같은 바램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하루라도 빨리 온 인류가, 코로나 팬더믹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일 것이다.  이전과 같은 일상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세계 모든 나라마다 온 힘을 쏟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온 인류가 혼연일치가 되어야만 할 것인데 그러나 현실은 그러치않아 안타깝다.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경제의 위기를 오로지 돈버는 기회로만 본 사채업자들의 반인륜적 패륜과, 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멀쩡한 아주머니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노숙자내지 심신미약자로 둔갑시켜,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챙겼던 인간말종들과 같은 근성을 버리고, 인류를 구한다는 초아적인 자세로, 코로나 백신제약 기술을 세계각국으로 이전해서, 코로나 팬더믹으로부터 인류를 하루빨리 자유케 하는 것이 백신을 개발한 제약회사에게 응당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자 보람이고 축복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계기로 인류 목숨을 담보로, 오로지 돈버는 일에만 올인하는 제약회사가 있다. 바로 "화이자와 모더나"회사이다. 전 세계 온 인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 갇혀서, 모든 활동과 시스템들이 정지되어 있는,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포로가 되어 있는 인류를 향하여, 화이자와 모더나 제약회사는,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망각하고, 백신제약 기술을 쥐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올인하고 있는것처럼 비쳐지고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백신 생산 공급 허브로 만들자고 주장했던 톰 프리든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은, 인류의 목숨으로 제약사가 도박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성토하고 있다.

화이자·모더나가 부자 나라에 백신을 판매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던 톰 프리든 미국 전 질병통제예방센터 CDC 국장을 향하여,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는 직접 나서서, 프리든 전 국장의 이 발언을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는  2021년 9월 26일, ABC 출연하여, "우리가 한 것만큼 인류를 위해 도움되는 일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회사는 우리회사 말고는 없다."고 항변하였다. 처녀가 임신을해도 할말은 있는데 절로터진 입가지고 무슨 항변인들 못할까?

SBS와의 인터뷰에서 프리든 전 CDC 국장은, 백신 공급 확대가 절실하다며, 이대로는 팬데믹 극복이 어렵다고 진단하였다. 적절한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이전해 획기적으로 생산을 늘려야만 하는데, 화이자·모더나가 이를 거부하고있기 때문이다. 톰 프리든 전 CDC 국장은, "백신이 없으면 사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충분한 백신을 만들 수 없다면, 로열티를 받고 그들의 기술을 다른 제조업체에 나눠줘야 인류정의에 맞다" 며, 전쟁과 같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제약회사들은, 인류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톰 프리든/전 CDC 국장은, 모더나와 화이자 제약회사 를 향하여, "코로나와의 사활을 건 세계대전쟁이라 할 만큼 끔찍한 비극을, 막대한 돈을 버는데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수많은 세계인의 목숨과 지구 전체의 안전성을 위태롭게 하는 도박이다." 라고 질타하고 있다. 이 두 회사는 내년까지 1천300억 달러, 우리 돈 154조원을 벌어들일 예정으로, 코로나 팬더믹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켜야한다는 시대적 사명의식보다, 오로지 목표액 1300억달러의 돈버는 일에만 올인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두 제약회사가 "저소득 국가에 공급한 백신은, 화이자는 생산량의 1%, 모더나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돈의 화신이된 이 제약회사는, 세계의 이목에는 아랑곳 없이, 악마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프리든 전 국장은, 제약사들이 백신 판매에만 집중하는 사이, 백신이 안 듣는 또 다른 변이가 계속 출현해 인류의 고통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지만, 코로나 백신제약회사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시장의 무한성에 환호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위드 코로나 정책의 전환에 대해서는, 이제 바이러스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지만,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제약회사가 악의 축으로 그려지는건, 바로  이런 이유때문 일 것이다. 전 지구상에 재앙이 닥쳐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제약회사에서는, 인류가 간신히 연명할 정도만 약을 풀 것이다. 그래야만 계속 돈을 벌테니까 말이다. 마치 자본주의의 종말적 단면을 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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