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너 자신을 알라
"겸손은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다. 그래서 "겸손은 하나님께 이르는 문"이라는 말처럼, 이땅에는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는 말에 걸맞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교류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인도 캘커타 슬럼가에서 빈민들과 함께 살았고,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는 손양원목사는, 공산주의에 물든 자에게 금쪽같은 두 아들을 잃고도, 속된 말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했을 뿐아니라, 되려 자신의 믿음의 아들로 삼아 주의 종으로 키웠을 뿐 아니라, 또한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나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수도자라는 삶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이 바로 구도자적인 삶인 것이다. 참다운 목자는, 신학교에서 배출되는게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근본을 터득하는 삶의 진수는, 상아탑이나 학문을 통하여 삶의 진수를 찾을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생한 삶을 통해서 살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삶의 귀감이 되어 존경심이 저절로 솟아나는 이가 있다면, 이가 바로 구도자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주후 2~5세기 경, 세속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 중앙아시아의 끝없는 사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신앙의 아버지들이 있었다.흔히 이들을 우리는 '사막의 교부들' 이라 부른다. 이들은 주후 5세기경까지 그 맥이 이어졌었다. 이렇게 사막에서 목숨을 건 수도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으며, 동시에 큰 영적 진보를 이루어, 당시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의 기틀을 마련한 수도자들이었다. 그러기에 이들을 엄밀히 말하면, 철학자도 신학자도 아니었지만, 그들이 남긴 금언집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절대자에게 맡기고, 이를 통하여 큰 영적 깨달음을 얻었기에, 교회의 영성세계와 초대교인들은 물론, 그후 모든세대의 기독인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 사막의 교부들이 대단한 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로지 하나님의 시선아래 머물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천부적 가문의 ‘금수저’를 부러뜨리고, 스스로 ‘흙수저’를 손에 들었다는 것이다. 당대에 있어 가문과 휘황찬란한 도시 문명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혈혈단신으로 깊은 사막을 찾아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산해진미나 세상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아니었다.
사회와 모든 것이 차단되고 결핍된채, 구도자에게 오로지 철저한 고행생활이 그들의 삶의 전부였다. 사막이라는 곳, 가 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가도 가도 사막의 황량한 모래바람 뿐,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모래 언덕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물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의 아름다움이나, 일출 무렵의 장엄함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한낮의 뜨거운 태양과, 거친 모래 바람과 타는 목마름을, 매일 전쟁을 치르듯 견뎌야 했다. 실로 사막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원초적인 삶의 기본마저 포기하겠다는 의지이다. 극단적 결핍과 무소유의 삶, 그 결과 생기는 모든 육적·영적 에너지들을, 하나님을 찾는데에만 사용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교부들을 사막으로 이끈 원동력일 것이다.
그들이 사막에서 평생토록 추구한 것은, 비록 두발을 땅에 딛고 살아 가는 인간이지만,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버리고, 오로지 인간들의 세상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만남을 위해 모든 싦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육신의 소욕으로서가 아닌, 미구에 다가올 저 세상을 미리 앞당겨 살아보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사막에서 매일 되풀이 한 작업은, 천국으로 오르는 사닥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밟고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두 계단을 올라 갔다가, 다시 세계단으로 내려오기를 수십 수백 번도 더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안목으로 볼때, 전혀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작업을 평생토록 하였다. 그런데 일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향하여, 한 계단 한 계단 완덕을 향하여, 정상으로 향하는 사닥다리 를 밟고 올라가는, 가장 첫 번째의 덕행이 바로 ‘겸손의 덕’이었다.
자기를 도야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을, 삶속에 적용시키는 삶, 이 를 갖추지 않고는, 절대로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없는 품행이, 곧 겸손의 미덕이다. 그토록 중요한 덕행이기에 당시 사막의 교부들은 앞 다투어 이 품행을 쌓으려고 경쟁을 벌였단다. 혹여라도 "어디에 겸손의 경지에 도달한 수도자가 있다더라!"는 소문이라도 듣게 되면, 모든 것을 제백사하고 달려가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겸손의 덕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자신의 실체와 됨됨이를 제대로 알고자, 자기 자신을 모든이에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되면, 결국 자신이 얼마나 티끌처럼 미미한 존재인지, 자신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지?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원천은 티끌이요, 먼지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노력 말이다.
더불어 그에 비해 조물주이신 하나님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 분이신지, 태양이 있어도 공기와 물이 없으면 우리가 살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태양과 공기와 물은 모든이에게 아무 댓가 없이 공급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우리는 필요불가결한 것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분 없이는 나는 단 한 순간도, 홀로 설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때 감사도 있고, 하나뿐인 생명의 존귀도 알수 있을텐데, 이는 마치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자신의 부모가 서로 사랑해서 생긴 '사랑의 부산물'정도로 아는, 오늘의 청소년들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기성 세대들은, 이를 직시하여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아시는가? 들어본적이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DNA이다. 그러기에 가장 기본적으로 쌓아야 할 품행이 겸손이다. 우리는 이 겸손이 몸에 배어있어야 하겠다. 인간이 없는 사막에서,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들끓는 저자거리에서도,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할수 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맏음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많은 요즘 현대인들은, 겸손의 미덕은 점점 사라지고, 안하무인의 교만으로 가득차 있다.
북한을 보라! 아직 마흔도 안된 김정은을 북한 동포들은 '존엄'으로 호칭하고 있다. 그의 어린 둘째 딸에게도 극존칭을 쓰고 있다. 김정은은 금수저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그 무슨 백두산 얼을 받고 태어났다고 소위 나라의 근본을 인민민주주라하면서 계급사회가 되어 있다. 이 괴상한 논리가 북한땅에서는 통하는가 보다. 이게 어디 북한뿐이겠는가? 이 대한민국에도 나라의 기틀을 붙들고 있는 자들이 이러한 과대망상, 자가당착, 기고만장, 자화자찬으로 얼마나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있는가? 이러한 인생들을 하나님이 보시고 뭐라 하실까? 참으로 실소를 금할수 없는 가소로운 현실이다. 우리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는 진리다.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겸손은, 바로 하나님께 이르는 문이기 때문이다.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이야 말로, 모든 덕행을 합친 것보다 더 격조높은 덕행이다. 나라를 치리하는 자는 무엇보다 겸손하여야 한다. 이는 육신으로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섬김이기 때문이다. 겸손과 섬김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세상을 정복하지 못한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너 자신을 알라
옛 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때부터 알아 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나를 대입해 보면, 어렸을 때의 나는, 이 말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나는 선친께서 유언으로 "네가 장남이니 가정을 잘 이 끌라."는 당부를 마다하고, 되려 선친께서 평생동안 계시던 사랑채에 기거하고 있던 걸인들을 모두 내 쫓을 때에, 한사코 나가길 싫어하는 마지막 남은 정노인마저 내 보냈는데, 그후 이 분은, 여러 다른 마을들을 전전하다가, 어느 추운 겨울 날, 동구밖에서 얼어 죽었다는 말을 서울에서 듣고, 내가 죽게한거라며 통곡한 적이 있다. 우리집에서 십여년을 지냈기때문에,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인간이 일 평생을 살면서, 후회 막급한 크고 작은 일들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며 사는가!
며칠전 영면한 노태우씨도 그렇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전두환씨도 권력욕에 눈이 멀어, 넝쿨채 굴러 온 국가권력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강도처럼 무수한 인명을 살상하면서 권력을 강탈하고도,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가 되어, 끝까지 강자의 논리로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러나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수 없듯이,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역사의 거울 앞에 감출 수 없는 죄인이었음을 통회하길 바랄뿐이다. 양심에 화인을 맞은자들은 비단 지난 세기의 이들 뿐만은 아니다.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수신제가는 고사하고, 자신의 입도 제어할 줄 모르는 이들이, 이 나라의 통치권자가 되겠다니, 후안무치도 참 대단하다.
아마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남의 허물에는 가차없이 '쇠 자'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언제나 '고무줄 자' 처럼 관대하다. 대장동 개발 비리의 꾸렁내가 코를 찌르고, 자기가 임명한 휘하들이 구속되고 심문을 받고 있는데도, '자신은 무관하다.'고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이게 집권당 대선 주자가 취할 자세인가? 옛말에 "梨下不正冠(이하 부정관) 과전불납리(瓜田 不納履)" 란 말처럼 언행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서, '그건 바로 너'라며, 허물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몽땅 돌리고는, 마치 양심에 화인맞은 후안무치한 철면피처럼, '나라의 살림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며, 국민을 우롱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를 일삼고 있다. 문명한 작금에도, 또 다시 이 나라를 돌이킬수 없는 나락속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처럼 일신의 문제에서나 공공의 문제에 있어서나, 떳떳하지도 진솔하지도 못한 이가, 집권당의 대선후보라니, 마치 판도라 상자속 같아 아연실색 할 일이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동태를 잘라서 장독대 항아리에 담아 두셨는데, 그 날밤 도둑 고양이가 항아리를 엎고 동태를 몽땅 물어 간적이 있었다. 혹여라도 이 나라를 도둑 고양이에게 맡기는 꼴이 되지나 아니할까하여,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우려스럽다.
성경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애굽땅에서 이스라엘백성을 이끌어 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시내산에 올라, 생명을 건 40일 금식기도 로, 십계명을 받는 동안, 모세의 하산을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이에 모세는 다시 시내산에 올라 기도하기를,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우상 금신상을 만들었아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원하옵건대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생명록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리시옵소서." 이처럼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기도를 서슴치 아니했던 것이다.
임진왜란때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등 왜구와 연전연승하였다. 정유재란때, 이를 시기한 원균의 모함과, 소인배에 불과했던 선조의 시샘으로 사형집행직전에, 정탁(鄭琢)의 탄원으로 백의종군 하여, 밀려오는 왜적선을 울돌목(명량 鳴梁)에서 격침하고, 노량해전에서 승전하였으나, 적의 유탄에 전사하였다. 이와같이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의 위난에서,몸을 던져 나라를 구한 이순신은 "사즉 생(死卽 生) 생즉 사(生卽 死)."를 좌우명으로 삼고, 선조에게 목숨을 건 직언을 서슴치 않았고, 왜침으로 조국을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생명을 초개처럼 던져 나라를 지켰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이런 내 나라 내 조국을, 오로지 대권욕에만 눈이 어두운, 저 무지랭이같은 이들에게, 더 이상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채근담에 이런 경구가 있다. "역경속에 있을 때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침(鍼)이 되고 약이 되어 몸을 갈고 닦게 해주나, 사람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영달과 안위만을 바랄 때에는, 눈앞의 것이 다 칼이요 창이지만, 그것들이 가슴을 찌르고 뼈를 깍아도, 어리석은 인생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고 일갈하였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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