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를 끊고 복음으로 돌아서는 회개

회개를 말하면 많은 사람이 먼저 자책을 떠올린다. “또 넘어졌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마음이 무거워지고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며칠 동안 자신을 벌주는 듯한 시간을 보낸다. 그 상태를 회개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책은 회개가 아니다. 자책은 사람을 낙심시키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자책이 깊을수록 믿음이 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책은 죄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복음에서 눈을 떼어 자기 안에만 머무르게 만든다.

복음의 바닥은 분명하나 죄를 보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곧바로 우리를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선언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회개는 이 확신 위에서 시작된다. 자책은 마음속 법정을 열어 놓고 끝없이 판결하지만 복음은 그 법정을 닫는다. 정죄를 끊은 다음에야 회개가 ‘돌이킴’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회개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정확히 인정한다. 다만 죄를 본 뒤에 자신을 붙잡는 대신 그리스도를 붙잡는다. 구원의 근거가 내 결심이나 내 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의이다.

회개는 대체로 이렇게 진행된다.

1) 죄를 구체적으로 인정한다

“요즘 믿음이 약하다”는 말은 너무 넓다. 회개는 구체적이다. 주로 무슨 말을 했나, 무엇을 했나, 마음에 무엇을 품었나 등의 구체성이 없으면 회개는 금세 막연한 자책으로 미끄러진다.

2) 죄의 뿌리를 본다

죄는 행동 하나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아래에 마음의 욕망이 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손해 보기 싫은 마음, 통제하고 싶은 마음, 두려움, 탐심 등.

개혁신앙은 죄를 “마음의 예배 문제”로도 본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붙든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다. 회개는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이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리를 다시 확인한다

회개는 “나는 원래 이래”를 되풀이하는 일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새 길을 확인하는 일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회개는 자기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다시 붙는 돌이킴이다. 그 자리에서 죄를 미워하고 떠나는 것이다.

4) 실제 삶에서 한 가지라도 바꾼다

회개는 마음으로만 끝나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노력이다. 즉 유혹이 강한 길을 피하며 손이 가는 습관을 끊는다. 또는 말로 상처 준 일이 있으면 사과하며 도움을 요청해야 할 곳에 연락한다. 이렇듯 큰 결심 하나보다 작은 순종 하나가 오래 가는 법이다.

5) 회개는 결국 예배로 이어진다

회개는 죄를 내려놓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내 삶을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일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1–2).

몸과 시간, 말과 선택이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한다. 그때 생각이 새로워지고 삶의 방향이 바뀐다. 자책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지만 회개는 사람을 살린다. 정죄는 십자가에서 끝났다(롬 8:1). 이제 남은 길은 돌이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서고(갈 2:20), 삶을 하나님께 드리라(롬 12:1–2).

회개는 무너뜨리는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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