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칼럼】휴민트(HUMINT)

최근 우리 시대의 언어 오염과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다 하더라도, 깊고 맑은 샘물처럼 우리 시대에 깨끗하고 순수한 언어를 흘려보내야 할 교계 지도자들마저도 입에 담지 못할 폭력적 언어와 저급한 막말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언어의 오염과 폭력적 현상을 보면서, 신년에 했던 문화일보와의 인터뷰가 생각이 났습니다. 기자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왜 시를 쓰십니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언어 오염과 폭력성을 정화하고 세탁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과 용서,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기 위하여 꽃씨와 같고, 샘물과 같은 시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시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시는 라틴어의 포에시스(Poesis), 즉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을 포에타(Poeta)라고 했습니다. ‘만드는 사람’, ‘창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나 시인은 어원적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만의 명시, 위대한 시의 걸작품으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여기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는 말이 원어로 ‘포이에마(ποίημα)’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에서 ‘포엠(poem)’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믿는 우리는 명시일 뿐만 아니라 시를 쓰건 안 쓰건 다 시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명시는 항상 새로운 언어를 창조합니다. 결코 언어가 거칠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절망의 마음을 희망으로 바꾸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고대 중국 역사에서도 전설 속 상고시대 동이족의 유명한 수령, 태호로 불리기도 한 복희씨 시대 때부터 하늘의 계시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늘의 뜻을 탐구했던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시를 언어 예술이기 전에 신전에 임한 신의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한자로 ‘시(詩)’라는 글자는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자가 합해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寺’는 훗날 ‘절 사’로 주로 쓰이지만 원래 ‘관청 시’였습니다. 그 관청은 왕과 재상들이 백성을 다스렸던 곳입니다. 그때는 땅의 왕을 하제라고 부르고 하늘의 왕을 상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통치하는 하제는 하늘의 상제의 말씀을 잘 받들어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하제가 하늘의 상제의 말씀을 받은 것을 바로 ‘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의 원래 뜻은 상제의 말씀을 모시는 신전, 곧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왕들이 마음에 욕심의 때가 끼고 우둔해져서 권력욕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욕망으로 백성을 다스리거나 사교와 사술로 백성을 통치하며 권력을 농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신탁을 받아 왕에게 하늘의 뜻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시인(詩人)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왕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대로 통치하고 정치하도록 가르쳐 주고 견제해 주는 사람이 시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모실 수 있는 신전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에 시인들은 하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 역할을 하며 하늘과 땅의 가교역할을 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도 시인은 하늘의 언어를 전할 뿐 아니라 사람의 언어,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언어를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욕을 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함부로 욕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언어를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골프를 칠 때도 거의 “아이씨”라는 말을 거의 안 합니다. “에라이”도 안 합니다. “아이고, 주여”라고 합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캐디가 웃는 것을 봅니다. 물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에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아이고 주여, 죄송합니다”하고 언어를 고칩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언어의 꽃밭을 일구어 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끔 부부간에 의견이 안 맞아서 다툼을 한 적은 있지만, 자녀들한테 욕지거리 한번 한 적 없고 성도 아니라 부교역자에게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습니다. 시인은 욕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 언어의 포에타, 언어의 꽃밭을 이루는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목사로 써주는 교회가 없어서 교회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신학교에서 교회 개척학에 대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교회 개척학이라는 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강남에 있는 광림교회에서 세계적인 교회 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를 초청하여 교회 개척과 성장론을 강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교 수업을 빠지고 2박 3일 동안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피터 와그너에 의하면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지만,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할 지역부터 선정하고 그 지역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욕구 진단을 파악해서 거기에 맞춰서 전도도 하고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지역교회를 탐방하여 성공하는 목회자와 실패하는 목회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하거나 그 이유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쉽지만 그 교회 목사님을 1대1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100여 명에 가까운 목회자를 만났고 수백 개의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목회자를 못 만나고 주일 공예배에 참석하지 못해도 몇 주간의 주보를 보고 휴민트 작업을 하였습니다.

휴민트(HUMINT)란 사람(Human)과 정보(Intelligence)를 합성한 말로 사람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뜻합니다. 제가 보니까 성공하는 목회자와 교회는 설교부터 다르고 예배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아니, 예배에 성령의 임재가 느껴지고 설교에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흥하지 않는 교회는 숫자가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설교도 그저 그렇고 예배 분위기도 그저 그런 걸 보았습니다. 설교를 유심히 들으려고 하는데도 제 귀에 도대체 들려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는 개인적으로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대형교회는 예배 분위기가 다르고 설교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 중에서 딱 한 분을 뵐 수가 있었는데 고 옥한흠 목사님이었습니다. 저희 신학교 동기 처제가 옥한흠 목사님의 비서로 있었기 때문에 그분을 통해서 몇 사람들과 함께 옥 목사님을 뵐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수요일이면 사랑의교회를 자주 다녔습니다. 그 후로도 옥 목사님은 가끔 뵐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옥 목사님은 부지런한 독서광이자 설교 준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준비를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맨땅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가 좀 부흥하고 있나요?” “예. 많이 부흥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몇백 명은 모이고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분당으로 교회를 신축해서 당시로서 개척 성공 신화를 이룬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비서를 시켜서 제 설교 테이프를 구해다가 들으셨다고 합니다. 뒤늦게 안 용어이지만 이 역시 존경하는 옥한흠 목사님의 휴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설교를 들어봤겠습니까? 그리고 개척 이후에도 정말 부흥하는 교회를 탐방하고 목사님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내린 잠정 결론은 역시 목회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고 성령 충만한 영성, 살아있는 설교, 그리고 성도를 향한 태도가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니 개척 목회자로서는 최대형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대형교회 목회자로만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한국교회 공교회성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교회 생태계를 위협하는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광화문이나 여의도에 가서 집회를 하기보다는 전략적 휴민트를 통하여 해당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이해를 시켰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을 할 때도 휴민트를 통한 코로나의 상황을 예측하고 무조건 현장 예배만 강행한 것이 아니라 루터와 칼빈처럼 소수의 현장 예배를 지키면서도 쿼런틴 시스템(격리 제도), 요즘 말로 하면 화상 줌이나 온라인 예배 등으로 이원화 전략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잠시만 찬란한 바보가 됩시다. 잠시만 허들링 처치가 되게 합시다. 그러면 국민들은 한국교회를 고맙게 생각할 것이고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는 더 신앙적 갈망이 생기고 교회를 영혼의 토포필리아로 생각하여 교회는 회복 탄력성을 더 얻게 될 것입니다.” 물론 반대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런 어두운 면도 보도를 하였지만 찬란한 바보, 허들링 처치를 더 인상 깊게 보도 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휴민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저의 지나온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떠올랐습니다. 휴민트 영화가 액션을 넘어 인간을 통한 정보, 신뢰, 인간애를 보여 주었듯이 저도 끊임없는 영적 휴민트를 통하여 제 자신을 발전시키고 성도들을 섬기며 새에덴교회를 굳게 지키며 더 부흥시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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