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닮지 않은 아들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닮음은 항상 부정적인 면만 닮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의 선교사들(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의 주축으로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장로교회는 호주와 카나다 선교사도 참가해서, 좀 더 다양한 신학의 면모가 있습니다. 그런데 박형룡 박사를 필두로 네덜란드 신학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장로교 신학은 장로교 신학, 청교도 신학, 네덜란드 개혁신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카나다 선교사 지역에 자유주의 신학이 많이 들어왔고(자유주의적 선교사 서고도(Scott), 프레이저(Frazier): 간하배 교수의 제시), 모든 신학 진영은 자유주의 신학에 함몰되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권위 등 신학 관련한 인식 차이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분열했습니다. 그 분열은 전쟁 중에 발생한 것입니다. ​

미국 장로교가 겪었던 분열의 행태는 한국 장로교에서 더욱 증가되었습니다. 한국 장로교로서 교단의 숫자는 상당히 많습니다. 많은 교단들이 합병을 하기도 하지만, 분열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회에 많은 영향을 준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분열의 역사가 있습니다. 미국 장로교회는 대각성운동에 대해서, 자유주의 신학 등과 관련해서 분열했습니다.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가 분열한 것도 신학 이해인데, 칭의와 언약 이해에 있습니다. 좀 더 민감한 신학 이해입니다. ​

한국 장로교회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유럽 각지의 신학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신학을 수용했습니다. 자유주의와 현대신학을 논박했지만, 그 이전 즉 20세기 이전의 신학 유형에 대해서 비판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츠빙글리, 불링거 등은 장로교 원류와 큰 연관 관계가 없는 개혁신학의 진영입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와 뉴잉글랜드 청교도도 장로교 신학과 깊은 연관은 없습니다. 그런데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주의(회중파)와 장로파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장로교에서 자연스럽게 청교도주의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뉴잉글랜드 신학에서 종말론은 후천년기론적 종말론으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뉴잉글랜드(미국)에 있던 장로교 신학자들도 후천년기론적 종말론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장로교와 회중파가 종말론에서 일치한 것입니다. 장로파 신학자들도 잉글랜드 청교도의 존 오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윌리엄 커닝함, 싱클레어 퍼거슨 등). ​

'언약'은 개혁신학 진영에 있는 신학 전통입니다. 언약에 대해서는 개혁파 초기 사역자인 츠빙글리, 불링거, 칼빈 등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지만, 개념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개념의 차이는 후기 사역자들에게 이전되면서 더 다양하게 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약에 대한 제시는 개혁신학의 한 특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언약과 선택"에 대해서 네덜란드 개혁신학 진영에서 분열하는 한 신학 준거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개혁신학자들에 대해서 호감을 보이지만, 네덜란드에서는 교단이 분열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에서도 네덜란드 신학자들에 대한 동경도 중요하지만 신학 차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교단이 다른 신학자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병합시키는 것은 부당한 논리 체계가 될 것입니다. 그 두 신학자는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입니다. 헤르만 바빙크의 교단(분리파)와 아브라함 카이퍼의 교단(애통파)는 개혁파로 연합했고,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에 대해 적극적으로 거부한 진영이 다시 분리했습니다(아펠도른 신학교 진영). 그리고 분리파에서 다시 분리한 31개조파(해방파)가 있습니다. 각각 교단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 두 신학자에서 신학적 일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두 신학자가 협력 사역을 한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두 차이는 "언약과 선택"에 있습니다. 카이퍼는 언약과 선택을 동일하게 평가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코르넬리스 프롱크(Cornelis Pronk)는 반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프롱크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네>, 임정민 역, 그책과사람들, 2015). 언약과 선택에서 차이점은 언약 이해에서 편무적과 쌍무적 성격의 차이점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카이퍼 계열은 편무적 성향이고, 바빙크 계열은 쌍무적 성격을 갖을 것입니다. ​

개혁파의 신학이 시간을 진행하면서 구체화되면서 깊어지는 긍정적인 이면에, 다양한 사색이 출현되면서 사색을 따라서 다양한 교파들이 양산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빈은 거대 담론을 이루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루터는 멜랑톤과 함께 신성로마제국에서 루터파 진영을 확보했습니다. 칼빈은 제네바를 넘어서 스위스, 그리고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은 잉글랜드 개혁파 진영과 한 교회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색으로 분화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개혁파는 연합, 형제의 동거를 강조합니다.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점을 강조합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얻음, 이신칭의 교리가 굳건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루터의 이신칭의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는 현장입니다. ​

현재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는 토론이 자기 지식과 의지의 정당성을 밝히려는 목적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토론은 자기의 무지를 발견하고 발전하는 광장이며, 형제의 조력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화합의 광장입니다. 그러나 차이를 발견하는 낯설음은 결코 쉽게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동질로 가려는 성향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 편안한 동질의 공간에서 낯섬의 차이에서 더욱 더 강한 지성 체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개신교의 수 많은 분열과 갈등의 결국은 WCC를 낳게 했고, 결국 1517년 이전보다 더 심각한 종교다원주의라는 블랙홀로 빨려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다원주의라는 거대한 세속주의를 버틸 수 없습니다. 형제의 연합과 동거를 통해서 함께 버텨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사상의 예리함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를 섬기기 때문에 주 안에서 주님이 드러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무질서가 형성되는 것이 물리 영역인데, 사상 영역에서도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리며 주를 위해서 굳건하게 연합하며 질서를 이루어야 합니다. ​

조상의 부정적인 면이 아닌 긍정적인 면을 계승하는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아닌 정면교사(正面敎師)로서 조상의 길을 가야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갔던 묘실, 우리 주님이 가신 묘실로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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