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 자리는, 애당초 쌍둥이 모텔이었다. 지근거리에 서 있던 두 4층 건물이,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던 것을, 13년 전 이를 리모델링을 하면서, 두 건물 사이를 증축해서, 하나의 건물로 만들었다. 증축한 건물 각층의 중심 공간이 넓어, 어르신들의 휴식 공간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이 휴식 공간에 앉아 탁트인 창밖을 내다 보면, 바로 앞엔 의암호수가 보이고, 호수 안에 있는 중도(中島)의 레고랜드와, 춘천 온 시가지가 병풍처럼 보인다. 이뿐 아니다.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 정상에 이르는 길이 3.75km의 케이불 카가 눈앞에 펼쳐 진다. 이처럼 낡은 모텔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여, 노년의 안식공간인 요양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사람도 낡은 옛 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중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옛날에는 요즘의 모텔을 객사(客舍), 주막(酒幕)이라 불렀고, 그후 여인숙(旅人宿), 여관(旅館)이라했다.  내 고향 임실 관촌(館村)이란 마을 이름에서 보듯, 객사(客舍)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라가 세계화가 되어 가면서, 걸려 있는 모든 간판들이 모두 외래어로 둔갑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고유 언어는, 역사속으로 들어 가고, 나랏말도 아니고 외래어도 아닌, 족보도 근본도 없는 신조어와, 각종 외래어가 정치판 이상으로, 옛날 바벨탑을 쌓을 때처럼 '언어의 혼잡'이 점증되고 있다.  

그 일례로 각 호텔에 대한 PR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힐링, 행복, 영혼의 정화’ 등의 표현을 거의 모든 숙소에서 홍보 문구로 사용하고 있단다. 그 일례로 ‘호캉스’라는 말도 있다. 호텔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휴가 방식으로, 호텔에서만 지내면서 진정한 휴가를 즐기라는 일종의 선전용 신조어다. 그래서 호텔 홍보 광고에 힐링, 행복, 정화 등의 뜻이 담긴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요즘 삼복 무더위로 바캉스 철이지만, 바캉스를 유원지 캠프장이 아닌, 오직 호텔에서만 휴식을 취하는 소위 호캉스 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숙박비로 너무 큰 비용을 쓰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휴식으로 얻는 아드레날린의 가치를 알기에, 한번 이용하고 보면, 계속해서 이 호캉스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초 스피드 시대에서, 휴식은 몸과 맘에 엔돌핀을 채워주는 에너지원이다. 이처럼 ‘힐링, 행복, 영혼의 정화’ 등은, 사실 호텔에서의 호캉스가 아닌,신앙 안에서 곤고한 영혼이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비결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 아닐까 싶다. 아모스에 보면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없어서 기근과  기갈 이라"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이러한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받지도 치유받지도 못하니, 주말에 몸과 맘의 안식을,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얻으려고 떠나는 것이다. 요즘 교회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더라도,  그러나 진짜 휴식은 주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 주님을 혼으로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교회에서 ‘힐링, 행복, 영혼의 정화’ 등을 체험하게 된다면, 이제는 호캉스가 아닌 교캉스’가 유행하게 된다면 싶다.

우리의 육신이 유한하듯 세상이 주는 기쁨 또한 잠시일 뿐,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있어야 할 나를 발견할때에 주어진다. 이처럼 있어야 할 나를 되 찾을때라야 영원한 기쁨을 얻을수 있다. 진정한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내어 놓는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하나된 자의 삶이다. 진정한 힐링이 무엇인가?  그것은 호캉스가 아니라, 인류에게 진정한 안식 진정한 힐링을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를 만나, 그분과 동행하는 삶일 것이다. 어니스트 쉑클톤이, 북극 탐험중 격었던 얘기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캠프에 갇혀 있을때, 마지막 식량으로 비스킷을 배급 받았다. 그리고 모두 잠자리에 누웠는데, 그중 누군가가 살며시 일어나, 남의 가방을 열고는 비스킷을 꺼냈다.  "어찌 저럴수가?" 그러는 찰라에, 그는 다시 자기 가방에서 비스킷을 꺼내, 친구의 비스킷 봉지에 집어 넣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식량을, 친구를 위해 바친 것이다. 잠시 동안에 오해와 감동이 교차했다.

어미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듯, 주님의 참 사랑을 깨달은 헌신의 삶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진정한 힐링의 삶인 것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땀흘리는 수고를 싫어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을 해보라! 흐르는 비지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기른,  상추로 쌈을 싸 먹고, 풋 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고, 밭에서 막 따온 참외를 한 입 가득히 물고 씹어 보라! 별미중의 별미다. 나는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동안, 비록 허리는 꼬부라지고, 다리도 안짱다리가 되고, 허리도 꼬부라진 몸가지고, 꼬물 꼬물 농사를 지어, 요양원 어르신들과, 직원들의 먹는 입을 즐겁게 해주며 노년을 살고 있다. 주님 안에서 기쁨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있는가? 세상이 주는 것으로는 진정한 힐링, 행복, 만족은 없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당이요 바닷물처럼 더 목마르다.  채움과 비움의 비결이 주님에게 있으니, 주님에게서 찾아보시라!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불행한 사람의 특징은 그것이 불행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쪽으로 가는 점에 있다. 우리 앞에는 불행과 행복의 두 갈림길이 언제나 있다. 우리 자신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종그니가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