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우리는 사소한 일에 전부를 건다
여러분! '잠언(箴言)'이란 말이 무슨 말 일까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속삭이듯 잠잠히 들려오는 말씀이 잠언이 아닐까요? 그럼 '잠언'이란 기도서를 누가 썼을까요? 그래요! 바로 지혜의 왕 솔로몬의 글이랍니다. (잠언서 전도서 아가서.) 솔로몬 왕은 우리가 잘 아는 다웟 왕과 왕후 밧세에게서 태어난 다웟 왕의 총애받는 막내 아들이다. 다윗 왕에게는 하나같이 헌헌장부들로 기라성같은 여러 아들들이 있었으나, 그러나 외모와는 다르게 가장 중요한 신앙이 없었기에 하나님과 아버지 다웟의 뜻이 어디 있는지 깨닫지 못하여 서로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왕위 쟁탈전 까지 한것도 모자라 압살롬은 한술더 떠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제거하려는 반역을 일으켜 잠시 왕위를 찬탈하기도 했지만 결국 요압 장군에게 죽고 말았다. 욕심이 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이후로도 왕위 계승권을 두고 형제들끼리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지만, 정작 왕위는 모든 백성들의 예상을 뒤엎고 다웟의 여러 기라성같은 아들들을 다 제끼고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 솔로몬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지금까지 평생을 살면서 '목사' '주의 종' 외는 어떤 직함도 가져 본 적이 없다. 30대 젊은 나이에 예수를 가슴으로 만난 후, 그 어떤 존귀한 자리 설혹 군왕의 자리 보다도 '섬김의 자리'가 나에게 가장 딱 맞는 자리임을 깨달았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행복이 가득한집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는 요양 보호사를 비롯한 전 직원들이 '섬김의 직업'을 가진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살고 있다. 그러기에 일 중에 가장 보람된 일은 '섬김의 일'이다. 영어의 understand (이해하다.)의 본래의 의미는 "내가 상대보다 한 단계 아래에 서서 그를 헤아리는 자세다." 섬김의 가장 기본은 먼저 나를 낮추는 자세다. 나보다 남을 더 헤아리는 맘 바로 이것이 섬김이요 내게 주어진 일을 응당 마땅한 일로 섬김의 본분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내게 맡겨진 일을 하기 전에 하늘의 뜻이 어디 있는 가를 헤아리는 자세가 바로 지혜다. 인간의 생사 화복이 내 욕심대로 될 듯이 보일지라도 나의 나된 분수를 알아 처음 그 낮은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윤석열씨가 어쩌면 만년 검사로 끝날 것을 문재인 같은 띨띨한 대통령을 만나 검참총장이 되더니 마침내 야심대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엄혹한 자리를 술로 더럽히더니 임기 절반도 안된 이때 무소불위의 그 막강한 대통령의 자리가 성이 덜차서 무려 반세기 전에 있었던 전두환의 치떨리는 계엄령이 민주화를 부르짖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나라를 찬탈한 그 치떨리는 계엄령을 윤대통령이 지난 12월 3일 한 밤중에 이를 망나니 헌칼쓰듯 다시 들고 나와 1500여명으로 중무장 한 군인들이 전차와 헬기를 대동하고 여의도 국회 의사당과 영등포 선관위를 난입하였다. 이유는 야당의원들이 여당의원들보다 거의 2/3를 점하고 있어 계엄령으로 국회를 해산시키고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영구적인 철권통치를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철면피 같은 가면속에는 오로지 권력에 대한 탐욕만 가득차 있을 뿐이다. 권력의 화신들은 국민의 안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이처럼 아편에 중독 되듯 권력에 미친자들은 나라의 장래나 안위는 뒷전이 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정권욕에만 미쳐있어 총선 투표함을 점유해서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국회를 전광석화처럼 일망타진으로 접수하려했는데 국회 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맨 몸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중무장한 계엄군들의 총 뿌리를 맨 손으로 잡고 막았다. 이처럼 일분 일초를 다투는 피말리는 일촉즉발의 시간과의 싸움에서 국회의원들은 죽기를 한하고 국회로 들어 왔다. 담을 넘어 혹은 창문으로 들어 오기도 했다. 윤석열은 계엄군들에게 "국회의원들이 성원이 못 되도록 막고 밖으로 끌어 내라"고 호통을 쳤지만 국회의원들과 국회를 지키는 민중들 그리고 국회 전직원들이 하나가 되어 국회 의사당안으로 난입하는 완전무장한 계엄군들과 죽기를 한하고 맛서 싸워 마침내 국회의원 200명 성원이 되자 '계엄령해제를 통과'시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윤대통령이 그동안 여소 야대로 국회와 타협도 의사들과의 협상도 마다하더니 나라를 계엄이라는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에 대하여 보수 논객 조갑제씨는 "사람이 미치지 않고 서야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일을 할수 있겠는가!" 라고 개탄했다.
애시당초 '계엄령'으로도 국회는 절대 불가침인 것이다. 그럼에도 권력에 눈이 뒤짚혀 오로지 권력에 정신나간 자들이 계엄령을 똥 된장도 모르는 권력에 미친 파렴치들의 전유물처럼 영구적으로 권력을 독식 하고자 그의 출신이 법꾸라지 임에도 계엄령으로 국회까지 무장한 군사들을 동원하여 식물국회로 만들 계획으로 국회에 난입한 주동자들은 참으로 우리를 아연 실색케 한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윤석열과 충암고 동문인 전 국방장관 이용현, 그리고 천공도사, 진건법사, 성추문으로 퇴역한 무당 노상원 등이 이 계엄의 주모자들이라니 어떻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 문명한 시대에 도사니 법사니 무당이니하는 자들의 신통력을 믿고자했을까?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의 요람인 국회에서 반역의 도당인 도사 법사 무당들의 신통력으로 나라를 뒤엎으려고 계엄 음모를 작당 했다니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치가 떨린다. 이 일로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은 급전직하 저 깊은 나락속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이 나라 대통령이, 삶의 현장에서 하루 온종일 일을해도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자리도 지키기 힘든 일반 서민들의 고충 따위엔 눈과 귀를 막아 버리고 계엄령이란 불장난이 몰고 올 엄청난 후유증에 대해서도 나몰라라 하고있는 저들의 작태를보라. 권력욕이란 술독이나 아편중독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나라의 안위나 경제위기 따위엔 관심없고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에 미쳐 나라를 전란의 파국으로 몰고가려고 북한에 대고 미사일이라도 싸질르고 싶어 광분했다니 엄혹한 나라의 권력을 망나니 헌칼쓰듯 일파만파의 파국으로 몰고간 이 반란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권력에 미친자라고 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국의 정치가 '액톤경'은 권력의 속성에 대하여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갈파하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자유 대한민국에 왜 이런 불행한 일들이 잊을만 하면 빈번히 일어 나는가? 남과 북이 쪼개진 것도 모자라 팥알갱이 만한 땅에서 다시 동서(東西)로 쪼개져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다. 그런데 역사를 거스리는 이 반란책동은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을 손에 쥔 자가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여야 할 국가통수권자가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역사와 주권재민의 국민에게 씻을수 없는 국가농단의 대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만인 지상의 무소불위의 자리에 있다보니 어느 날 모든 것이 눈 아래로 보였던가? 내가 태어 나고 자란 이 대한민국이 또아리같은 통치자를 만나 돌이킬수 없는 국가문란을 가져와 나라가 벌집 쑤신듯 온통 북새통이 되어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나라의 위상이 천길 만길 나락속으로 떨어져가고 있음에도 이 위인은 조금도 개전의 기미가 없다. 나는 윤석열이 알콜 중독이나 권력중독이 어느 정도일까가 짐작이 간다.
한번 이러한 망상에 빠져 버리면 마치 그 망상의 골에서 자유롭기가 힘들다. 성경에 "욕심이 지나치면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은 만고 불변의 진리다. 옛말에 "말(馬) 두면 종(僕)두고 싶다."고 했던가? 그러니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에 마음을 비우고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하시라! 윤석열이가 지난 12월 3일 대통령이란 무소불위의 절대권도 성이 덜차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계엄령' 을 선포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완전히 깔아 뭉개버리는 반역이다. 북한 김정은이 스스로를 존엄자라 하듯 세상 모든 것을 자기 중심의 망상에 빠진 전제주의의 발상인 것이다. 법치주의나 자유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모든 국민들의 예상치를 뛰어 넘는 '계엄'이란 이름의 '초법적 폭압' 즉 '헌정문란'이란 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무도한 불장란으로 반세기 전에 있었던 전두환 일당의 잔인무도하게 패역질한 광주 대학살의 망령들이 되 살아나 다시 이 나라를 초토화 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12월 3일 깊은 밤 '계엄령'이란 포고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호흡이 정지되고 심장이 녹아내리는 통증을 느꼈다. "아! 시계 추가 반세기전 그 엄혹하고 암울했던 시대로 돌아 가는가?" 싶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한밤중의 엄혹한 때에 천만 다행인 것은, 마치 파숫꾼처럼 오동지 매서운 추위를 온몸으로 견디며 매일 밤마다 국회의사당을 가득 메운 20~30 대의 수십만 젊은이들이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국회를 에워싸고 수호했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 계엄군들의 틈새 를 비집고 죽을둥 살둥으로 겨우 20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마침내 국회로 모여 간발의차이로 계엄군들을 물리칠수 있었다. 이 와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어느 여성이 완전무장한 계엄군의 총 뿌리를 두손으로 잡고 온 몸으로 국회 진입을 막아서는 모습이었다. 여러분! 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국난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국가의 안녕을 짓밟고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반란인 것이다. 이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아 이젠 더 이상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짓밟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수 없는 국가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 나오는 솔로몬은 그가 아직 어렸을 때 기라성같은 여러 형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반역을 일으키거나 일으키려한 형들도 여럿 있었지만 그러나 정작 왕권은 어린 솔로몬에게로 갔다. 어린 솔로몬은 왕위를 물려받자 언약궤가 있는 기브온 성전으로가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다. 오늘 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치인들은 각자의 자기유익을 버리고 어린 솔로몬의 모습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동서고금할 것없이 국권을 찬탈하려는 역모자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처럼 허욕으로 가득찬 인간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하셨다.
거짓으로 살아 온 '야곱'이가 승리자 '이스라엘'이 된 것은 자기 형 '에서'의 칼 끝을 피하기위해 자신의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해 보아도 답을 못얻은 야곱은 마침내 하나님께 생명을건 '얍복강의 기도' 가 있었다. "형 에서에게 죽느니 차라리 하나님께 기도하다 죽으리라"는 절대 절명의 '생명을 건 기도'가 있었기에 다음 날 복수심으로 가득찼던 에서의 마음이 스무해가 넘도록 아우를 보지못한 마음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온통 바뀌어 미움이 봄 눈 녹듯 녹았던 것이다. 세상은 젊은 패기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에 'History' 즉 '그분의 역사'의 역사인 것이다.
이처럼 어려서 왕이된 어린 소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 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어린 솔로몬이 하나님께 소원하기를 "하나님! 저는 아직 어리오니 저에게 나라를 잘 다스릴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아! 이 얼마나 하나님이 기다리시던 진정 어린 기도인가! 이처럼 하나님이 즐겨들으시는 기도는 "나를 온전히 비우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이야기다. 열여섯 소년이 과거에 급제하여 한 '고을의 원'이 되었는데 나이든 육방 아전들이 손자처럼 어려뵈는 원에게 '영감님'이라 부르려니 배알이 뒤틀렸다. 이를 괘씸히 여긴 어린 원님이 어느 가을 날 육방 아전들을 대동하고 수수밭을 찾아갔다. 그리고 육방아전들 에게 수숫대 밑둥을 잘라오라 하였다. 그리고는 아전들에게 그 "수숫대 를 꺽지 말고 허리춤에 꿰차 보라"고 했다.
이를 아무도 못하자 이를 본 어린 원이 말하길 "겨우 몇달 밖에 자리지 못한 수숫대 하나도 너희들 허리춤에 꿰차지 못한 것들이 어찌 십육년이나 자란 나를 허리춤에 꿰차려 드느냐!"고 호통을 쳤다. 이 소식이 한양 정승들의 귀에까지 들려 어느 정승이 이 고을을 찾아 와 어린 원의 지혜를 떠보려고 물었다. "저 앞 연못에 있는 물을 말(斗)로 되면 몇말이나 될꼬?" 어린 원이 대답하길 "예 저 엿못 만한 말로 되면 한 말이 되겠고 그 절반 만한 말로 되면 두말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먼저 무엇을 구하시려는가? 먼저 하나님의 의(義)와 지혜를 구하시라. 인도의 간디는 "영국의 지배로부터 인도를 독립키 위해서는 먼저 영국을 알아야 한다."고 결론짓고 영국을 알기위해 영국 유학을 갔다.
영국으로 유학을 간 그는 영국을 알기 위해 밑바닥부터 알바로 영국을 배웠고 엄혹한 대영제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찾기 위한 지혜를 찾았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스와라지 (Swaraji '자치'), 스와데시 (Swadeshi '본국')를 함유한 비협력 비폭력 운동이다. 5척 단구로 끈질기게 펼친 이 운동이 그 어떤 무기 보다 강해서 마침내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빗 방울이 모여 마침내 단단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마침내 대영제국으로부터 자치국이라는 무혈의 독립을 이룬 것이다.
피에르 판 파쎈이 쓴 '우리들의 날'에는 '우고린'이라는 착한 척추장애자가 술주정뱅이 어머니와 그의 누이 소랑케와 사는데 어느 날 불량배들이 떼로 몰려와 내 밭는 말이 "우리가 네 누이의 몸 값으로 각각 매번 1프랑씩 지불했다."는 조롱을 받는다. 이 말은 자신이 병자라서 누이가 절도의 누명을 쓰고 직장을 잃게 되자 동생의 약값때문에 저 불량배들에게 몸을 유린당한 것을 비아냥 댄 말이었다. 이 일로 '우고린'과 '소랑케'는 자살을 한다. 장례를 집도한 목사는 "이 젊은 남매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메마른 이 사회가 그들을 죽였다."고 울부짖는다.
오로지 나라를 위해 당선된 대통령의 막중한 자리를 술독에 빠져 나랏 일은 내 팽개치다시피 하고도 권력의 맛은 알아서 '영구 집권을 회책한 계엄령'을 대명천지 문명한 세상에서 무당일당 들과 작당해서 이 나라를 살륙의 도살장 으로 만들려고 했다. 오로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 계엄령이란 총뿌리로 나라의 모든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정을 농단하려 하다니! 참 망연자실 할 뿐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나라를 도적질하려고 지난 해부터 작당을 해서 은밀하게 온갖 역모를 도모하고서도 지금도 천연덕스럽게 그 자리를 뭉개고 있는 몰골을 보고 있노라면,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처럼 그 몰골이 참 후안무치 하다. 그가 왜 분노의 자식인가? 톨스토이는 "술주정뱅이의 머릿속은 악마가 살기에 딱 좋은 곳이다."라 했다.
【종그니칼럼】 우리는 사소한 일에 전부를 건다
흔히 우리는, 지극히 미미한 일에 천금같은 시간들을 낭비할 때가 참 많다. 마치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과 같은, 부질없는 헛된 일에 빠져 있는 것 자체가, 내 삶을 좀먹는 어리석음이다. 내게 주어진 삶속에 녹아 있는 시간(세월)을, 아주 소소한 것들에 낭비하는 것은, 단 하나이자 한번 뿐인 내 생명을, 갉아 먹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은, 누구나 다 안고 있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하였다. 당신은 삶의 진수를 아시는가? 이를 모르면, 마치 개미 쳇바퀴 돌듯, 수박 겉만 핥듯, 인생의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의 말년과, 임종의 천태만상을 수없이 보았다.삶의 알갱이가 빠져서, 생기를 잃어버린 껍때기 인생! 곱씹어 보면 일회자의 인생인데, 얼마 남지않은 인생 말년을, 평생을 부대끼며 살아 온, 삶의 동기간들과 이웃들과 헤어져 스스로도 잃어 버리고 살다가,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볼 때마다, 참 살 떨리게하는 임종이다. 요즘 뉴스 중심에 있었던 일가족 자살 사건은, 요행이나 일확천금을 바라는 투기와, 가상화폐에 투자한 것까지 실패하자, 2억이 넘는 빚더미에 눌려, 부부가 어린 딸과 함께, 완도 앞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사건을 보았다. "죽으려면 인생을 잘못 살아 온 부모들만 죽으면 되지, 무슨 권리로 아무 죄 없는 생떼같은 어린 딸 생명까지 앗아가는가?"
내가 칠순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일간지를 정기 구독하고 있었는데, 뭔가 내용이 있는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scrap)을 해서, 서랍속에 빼곡히 넣어 두곤했지만, 그것을 다시 꺼내서 읽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나는 스크랩을 계속했다. 문제는 책상 서랍속에, 신문지 조각만 쑤셔 넣는 것이 아니라, 스크랩과는 전혀 관계 없는, 다른 잡동사니도 쑤셔 넣었다. 그래서 칠순때 친지들로 부터 받은 돈(430만원)봉투도, 그 서랍속에다 넣어 두었는데, 이를 전혀 알리 없는 아내가, 다음날 아침 방 청소를 시들나게 하던 중, 책상 서랍속에 잔뜩 들어 있는 빛 바랜 신문 조각들을 보고는, 짜증 난 손짓으로 모조리 들어 내서, 성깔대로 휴지통에 구겨 넣어버렸다. 이때 물론 돈 봉투도 함께 수난을 당했다.
내가 이 사실을 안 것은 그 다음 날이었고, 돈 봉투 얘기를 들은 내 아내는, 그만 맨봉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유 불문하고 귀책사유가 내게로 돌아왔다.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하는 아내에게 나는, "아니 사천만원도 아니고, 기껏 사백만원가지고 뭘그래,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찾아 쓰면 되지." 이렇게 위로한 말이, 두고 두고 고마웠나 보다. 어차피 잃어버린거면 훌훌 털어버려야지, 잃어버린 것에 크게 애착을 가지면 착념이 되고, 그게 쌓이면 병이되기 마련이다.
아무튼 돈이 책상서랍을 일탈한 그 날, 우리 요양원에, 파지(破紙)를 수거하는 고물상 차가 다녀 갔단다. 아내는 곧장 춘천 쓰레기 집하장으로 달려가 보니, 쓰레기 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고, 그속에서 돈 봉투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내 아내는 불현, 우리 요양원에서 파지를 수거해 가는, 노인 집 앞마당 쓰레기 더미가 생각 나, 곧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그 곳 쓰레기 더미 속에서, 마침내 기적처럼 돈 봉투를 찾아 냈다. 잃어버린 돈 봉투를 치켜 들고,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때를 지금도 잊을수 없다. 우리는 참 어리석다. 잃어버린 돈 보다 더 몇십배 소중한 것이 우리가 살아 있는 날 들이다. 당신은 어제까지 살아 온 날들이, 다 생각 나는가?
나와 내 아내와는 성격이 다른 점이 아주 많다. 아내는 책상이나 서랍과 서고(書庫)가, 언제나 가지런한데, 나는 항상 뒤죽박죽 엉망이다. 머리 손질하는 것도, 옷 입는 것도, 양말과 신발 신는 것도, 아주 판이하다. 한번은 강원도청에 볼 일이 있어 양복을 입고는 갔는데 정작 신발은 슬리퍼였다. 아내는 먹다 남은 음식은 대개 버리는데, 나는 다음 끼를 위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유효가간이 지나 종국엔 버린다. 매사가 이러니, 내 맘속도 서랍속도, 별로 시덥잖은 것들로 가득하다. 정리되지 못한 습관처럼, 내 맘속은 언제나 허물투성이다. "나중에 배고프면 먹겠지." 아님, "나중에 읽을 때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서랍 안에 넣어 둔 것들! 생각해 보면, 오늘이 아닌 나중을 위해서가 아닌 지난 날 구차한 날들에 대한 그림자다.
신문 스크랩, 몇 년 지난 영수증, 잉크가 전혀 나오지 않는 볼펜 등, 그때 그때 버리지못해 결국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것을 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거야?"라고 생각하게 하는 물건이 참 많다. 그런데 과연 물건만 그럴까요? 우리 마음 안에도 아무 쓸모없는 잡념들은 얼마나 많은가? 우린 "왜 이런 소소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걸까? 이처럼 우린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나를 옭아 맬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 삶에서 버려야 할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자질구레한 틀에 매이지 않는 걸 빤히 알면서도 말이다.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이란 말처럼, 마음의 서랍을 어지럽히는 잡생각들을 몽땅 사고의 틀 밖으로 내다 버려야 한다.
사랑이 아닌 미움, 시기 질투, 단죄, 부질없는 허욕 등,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꼭 움켜잡고 있는한, 온전한 신앙을 가질 수도, 올바른 삶을 지향할 수 없다. 주님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한 말씀처럼, 삶속에서 우선해야 하는 것이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다. 그만큼 말씀 중심으로 사는 삶이,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삶이, 아무리 유익하게 보여도, 진리 즉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따르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찰라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을 비울때,진정 있어야 할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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