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폼드투데이 신학연구위원회

Ⅰ 서 론

1) 한국교회의 상황

2000년 대 들어서 한국교회는 신사도운동이라는 이단적 사상을 가진 교회운동으로 인하여 많은 타격을 입었다. 그렇잖아도 한국교회는 기복적인 물질주의 신앙과 성공신학, 귀신론, 은사주의와 신비주의 운동으로 인하여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혼란을 겪었었다. 특히 교회성장이라는 전제아래 무분별하게 채용된 교회성장 프로그램들은 성도들을 교회성장의 동력으로만 이용하게 되었고 성경의 바른 교리를 배우지 못할 뿐 아니라 개인의 경건생활이 저하되고 말씀을 통한 분별력있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이단들이 창궐하여 너무도 많은 성도들이 이단의 거짓 교리에 미혹되고 이단집단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현재의 한국교회의 상황은 불신자 전도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교회의 수평이동 현상으로 교회마저도 부익부 빈익빈 상태가 되었으며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단과의 전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단들의 신도수는 점점 늘어나는데 한국교회 성도수는 점점 줄어가고 있다. 얼마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각 종교인 수에서 기독교가 1위를 차지하였지만 거기에는 이단에 속한 신도들의 수가 포함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마이너스 성장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2) 기독교인들이 이단에 잘 빠지는 이유

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단에 빠지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거의가 기존교회 신자들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교회에서 이단특강을 하고 예방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이단에 대한 경계를 하지 않고 교인 수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목회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 영혼에 대한 귀중성을 모르는 목회자는 없을 것이지만 자신이 목회하는 성도들가운데 이단에 빠진 사람이 있는데도 방관하거나 이단에 빠진 사람을 출교조치하려고만 할 뿐 이단에 빠진 사람에 대하여 속수무책일 뿐 아니라 이단에 빠진 영혼을 건져내려는 의도는 없는 경우가 많아서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이단문제에 있어서는 예방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단에 빠진 사람도 상담을 통해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혼을 구출하는 일에 목회자가 앞장서야 한다고 믿는다. 신자들이 이단에 빠져가는 이유는?

①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은데 이단집단들은 위장일지라도 친절과 사랑으로 대해주기 때문에 잘 미혹된다.

②열심있고 헌신적이고 봉사잘하는 사람들이 잘 빠지는데 이단들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의미를 부여해 주고 칭찬해 주기 때문이다.

③성경을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잘 빠지는데 교회에서는 성경에 대한 질문을 속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않지만 이단들은 이단교리일지언정 속시원히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고 짜깁기한 성경이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진리로 받아 들이게 된다.

④마음씨가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 잘 빠지는데 과잉친절로 인간관계를 맺고난 후에 신뢰감을 쌓은 후에 미혹하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혹에 잘 넘어간다

⑤역기능 가정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많이 이단에 빠지는데 이단집단에는 포교를 위하여 사람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주고 소속감을 심어주기 때문에 쉽게 미혹된다.

3) 메시아닉 쥬에 대하여 연구하게 된 배경

이단집단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것은 그 만큼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며 기독교신자들가운데 이단에 많이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기성교회에서 주지 못하는 어떤 매력적인 것들을 이단집단에서는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요즈음 한국교회에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신사도운동이나 백투예루살렘 사상이나 메시아닉 쥬 사상은 정말 주의가 필요한 이단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메시아닉 쥬에 대한 문의가 쇄도할 뿐 아니라 실제로 메시아닉 쥬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여러 사람들의 요청으로 리폼드투데이 신학연구위원회는 메시아닉 쥬에 대하여 연구하게 되었다.

Ⅱ 본 론

1. 메시아닉 쥬의 정체

위키 백과에서 정의하는 것을 보면 메시아닉 쥬는 1960년대와 70년대 사이에 일어난 종교운동으로 생긴 종파으로서 복음주의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기록한다. 메시아닉 쥬는 일반적으로 예수를 자신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믿는 유대인들을 말하는데 예수님을 삼위일체의 성자로 인정하지만 일부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메시아닉 쥬는 히브리 구약성서와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 둘 다를 신에 의해 쓰여진 권위적인 성서라고 믿는다.

메시아닉 쥬는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여야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또한 모든 죄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속죄되었다고 믿으며 유대법과 유대 관습은 단지 문화적인 것일 뿐 구원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구약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토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이요 예법이라고 주장해서 구약의 모든 제사법이나 규례들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메시아닉 쥬는 민족적(民族的)으로 구성원의 대부분이 유대인이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메시아닉 쥬는 유대교의 한 종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중에는 자신들을 여전히 유대교를 믿고 있으며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대인 단체들과 이스라엘 최고 법원은 이러한 주장이 귀환법과 관련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고 메시아닉 유대교가 유대교의 일부라는 이들의 주장을 거부했으며, 대신 메시아닉 유대교를 기독교의 한 종류로 정의 내리기도 하였다.

1) 메시아닉 쥬의 시작

유대인이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예후딤 메시히임”(Jehudim Messihiim)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말을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라고 번역한 것이다.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인데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들의 핵심적인 특징은 예수를 유대인과 모든 인류의 "메시아(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지키지 않는 유대교의 절기나 의식 그리고 관습 등을 다른 유대인들과 똑같이 지킨다는 것이다.

메시아닉 유다이즘은 19세기 중반에 히브리-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영국의 런던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히브리-기독교 운동인데 “브네 아브라함(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불과 41명으로 구성된 작은 단체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메시아닉 유다이즘”이라는 말은 1895년에 유대인으로써 기독교 교인이지만 유대교에 더 가까웠던 이들을 기독교에서 일반적인 기독교도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졌던 이름이라고 한다. 1925년에 창설된 메시아닉 이스라엘 연합회(The Messianic Israel Alliance)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메시아닉 유대이즘은 유대인들의 모임이며,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인정하고 유대인의 삶 속에 있는 언약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토라에 근거하여 전통에 표현되어 있고 새 언약의 배경 속에서 새롭게 되고 적용된 정체성에 따른다.”

2) 메시아닉 쥬의 신앙적 토대

메시아닉 유다이즘의 신학은 예수의 메시아이심을 믿고 사도 바울의 신학 사상도 구약 성경을 근거로 하고 있으므로 구약 성경과 함께 신약 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여 성경를 연구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타난 신학으로서 원죄, 사탄론, 그리스도의 대속, 삼위일체 등의 기독교 교리들을 수용하고 믿고 있으면서도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신약 성경을 구약성경의 영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주석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613개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 토라(모세 5경)를 언약적인 개념에서 '디모데후서 3:16~17'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성경으로 믿고 있다.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들은 하나님의 전능(Omnipotence) 하심과 전지(Omniscience)하심, 그리고 자비하시면서 영원부터 영원까지(eternaty) 존재하시는 분으로 믿고 있다. 쉐마의 고백(신명기 6:4~5)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는다.

뿐만 아니라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로서 인간이기도 하지만 참 하나님되시는 예수의 신성(Divine Character)도 믿는다.(요한복음 1:14)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들은 종말론적(eschatological)인 신앙을 고수하여 '종말', '예수의 재림', 이스라엘의 구원과 제 3의 성전 재건', '죽은 자의 부활과 천년 왕국' 등을 믿는 다.

2. 메시아닉 쥬의 현황

1) 메시아닉 쥬의 현황

위키 백과에 의하면 2003년에서 2007년까지 메시아닉 유대교는 예배당이 미국에서 150개에서 438개로, 이스라엘에서 100개 이상으로, 전세계에선 그보다 더 많이 늘어났으며 많은 신자들이 규모가 큰 메시아닉 단체나 연합체들에 소속되게 되었다. 또한 2008년에 메시아닉 유대교는 최소 6,000여명에서 많게는 15,000여명 정도의 신자들을 이스라엘에서 250,000여명의 신자들을 미국에서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 메시아닉 쥬의 현재 이스라엘 상황

이스라엘 성서대 핸드렌 교수(이스라엘 복음전도위원장 및 교회연합회장 역임)는 현재 711만 여명의 이스라엘 인구가운데 메시아닉 주는 1만 5천여명으로 전 인구의 0,002%에 그치고 있으며 현재 교회수는 약 200여개로서 부흥하고 있다고 증거한다. 심지어 군대에서 예수를 영접한 사람도 지난 3-4년간에 수백명에 달했다고 전한다. 현재는 노상전도가 과거보다 훨씬 수월해 지고는 있으나 전도를 불법화하려는 시도가 있고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어 기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메시아닉 주의 리더인 키스 인터레이터(목사)는 현재 이스라엘의 영적상황은 매우 복잡하지만 예루살렘의 회복과 예수 재림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표증이라고 주장하면서 현재 유대인들은 세 부류의 유대인들이 있다고 증언하다.

첫째 세속주의 유대인들이고 둘째 약 20%에 달하는 중도 우파가 있고 셋째 1만 5천명에 달하는 메시아닉 쥬들이 있다고 하며 이스라엘에는 약 200여개의 예배처소가 있으며 러시아예배와 영어예배가 있다고 한다. 러시아와 미국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을 위해서다. 미국과 러시아에는 수만명의 메시아닉 쥬가 있는데 유대인 정체성을 지키면서 예수님을 믿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3) 메시아닉 쥬의 국내외 지도자들

한국을 방문한 지도자들 가운데 메시아닉 쥬 지도자는 키스 인터레이터 목사, 마크 빌츠 목사, 요셉 슐람 목사, 노암 핸드렌 교수가 있고 “한 새 사람”이라는 책을 쓴 루벤 도런과 “메시아닉 교회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책을 쓴 로버트 하이들러가 있고 “그 날이 속히 오리라”라는 책을 쓴 키스 인터레이터,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라는 책을 쓴 챨스 라이리가 있다.

한국에는 “백투 예루살렘”을 쓴 최바울과 “토라의 회복”이라는 책을 쓴 아브라함 킴(김주성)이 있고 “브레드 TV”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김종철 감독이 있고 이스라엘 신학포럼 대표인 김진섭(백석대교수), 권혁승((서울신대교수)교수가 있고 정연호(University 0f the Holy Land 부총장)교수가 있으며 메시아닉 쥬의 적극 지지자인 이재훈 목사(온누리 교회)가 있고 김충렬 목사(영세교회)가 있다. 이스라엘 사역 네트웍의 박재남 목사와 특히 송만석 장로(KIBI/한이 성경연구소 대표)가 있는데 적극적인 메시아닉 쥬의 후원자이다.

또한 야콥 담카니(이스라엘 구원의 나팔 대표)가 있고 아비 미쯔라이(텔아비브 아도나이 로이 대표)가 있고 메노 칼리서(예루살렘교회)가 있고 릭 라이딩스 목사(미국인 선교사)가 있다. 그리고 캐나다의 메시아닉 쥬인 마티 숩이 있다.

4) 이스라엘사역네트워크(IMN)의 협력단체와 회원단체들

① 협력단체 : 이스라엘 신학포럼, TJCII아시아, 아시아메시아닉 포럼, 아시아백투예루살렘운동

② 회원단체 : 한사랑선교회, 한,이성경연구소(KIBI), 약수중보기도회, 왕의 귀환, 헤몬교회, 포도나무교회, 한새사람교회, 아셀교회, 예수생명교회, 약속의 땅교회, 안산샬롬교회, 한가족교회, 한내순복음교회, 하이사랑교회, 브니엘교회, 희년교회, 하나침례교회, 비젼교회, 부평서부교회, 생명나무교회, 안동한사랑교회, 월드미션, 아비선교회, 케노시스, 베드로선교센타, 랜드마커미니스티리, 토우미니스트리, 월콜링미니스트리, 블레싱이스라엘 미니스트리, 옛적그선한길, 열방을 향한 깃발, 순전한 신부, 사랑의멧시지

5) 메시아닉 쥬가 주장하는 내용들

① 아브라함에게는 육의 자손이 있고 영의 자손이 있는데 영의 자손은 이방인이요 육의 자손은 유대인으로 하늘의 영역인 영적인 세계와 땅의 영역인 육적인 세계가 한 새사람을 이루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된 공동체를 이스라엘 국가안에서 이루게 된다는 주장하고 있다.

② 실제로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자기 땅에 세우실 것이라는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독특한 지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A.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목적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무대중심에 섰고 한 민족 곧 이스라엘이 그를 통하여 태어났다.

B.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독특한 위치, (로마서 9:4-5)“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C. 이스라엘이 열방 중에 장남이며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적으로 한 가정의 장남은 다른 나머지 형제들보다 더 많은 특권이 있을 뿐 아니라 더 무거운 부담과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D. 갈라디아서 3:9 창세기 12:1-3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유대인

E. 유대인을 달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장은 결국 모든 것이 그분의 자비하심과 관련된 내용인데 “고토로의 귀환,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 지속되는 전쟁중에서 기적적인 보호,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로부터 현대판 출애굽”

③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하셨다(로마서 11:1-27)며 이스라엘 국가가 (1948년, 1967년)회복되었으며 장차 예수님이 이스라엘로 재림하시고 예루살렘은 세계의 수도가 되고 예수님은 왕이 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A.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 감람나무를 이루는 기초적 공동체였던 이스라엘을 통하여 자신들이 그 역사적 배경과 성경과 언약과 약속들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B.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과 경륜을 변호하시면서 이스라엘이 다시 한 나라로서 출현하고 자기의 은혜가운데 들어올 것이라고 선포하고 계신다. 스가랴 12:10-13

C. 성경에서 민족적 회개와 치유를 약속받은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 뿐이라는 것, 그래서 이스라엘은 약속된 민족적 부흥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다.

D. 이스라엘의 회복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주님의 재림은 모두 세계종말을 뜻하는 두려운 대사건들의 절정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E. 이스라엘 회복의 순서(고전15:46) 아담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육적인 탄생에서 영적인 탄생으로, 이스라엘(육적)에서 교회(영적)로, 육적인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안에서 성취.

F. 육적인 회복은 영적인 회복을 동반하였다. 육적인 회복들의 내용.

⏵1897년 귀환-시온주의 운동 공적 시작.(토페카, 케사스 시티부흥(1900년) 아주사거리(1903) 칠레 중국 전 세계에 엄청난 성령의 기름부으심. 이스라엘에 히브리어가 유대민족의 공식 언어가 됨. ⏵1948년 국가의 재건 주권적인 유대국가로서 국제사회 인정. 신사도의 5중사역 기름부음역사. ⏵1967년 예루살렘의 회복 1960년대의 영적 은사주의 운동 –성령의 불. ⏵1980년대 소련에서 대규모 유대인들의 이주. 육적 이스라엘이 태아가 태동한 때와 강력한 오순절의 물결이 병행적으로 나나탔고 이스라엘의 민족적 주권의 회복과 함게 능력있는 계시의 사역들이 병행적으로 나타났으며 민족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탈환과 성경의 은사적 기름부음이 병행적으로 나타났다.

G. 이스라엘의 버려짐과 회복이 두 가지 단계로 나타난다.- 육적인 기업과 영적인 기업 = 영적인 회복과 육적인 회복 =육적인 치유와 영적인 치유=육적인 차원과 영적인 차원.

H.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로 오실 것이다. 국민과 영토가 있는 실제적인 나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중요하다.

I. 사도행전 1:11 가신 그 방법대로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가 스가랴 14장처럼 감람산에 서시기 위해 감람산에 재림.

J. 하나님은 예수님 곧 사람을 택하고 예루살렘 곧 장소를 택하셨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과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를 우리는 받아 들여야 한다.

K. 예수님의 재림은 한편으로는 예루살렘의 거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예루살렘을 치는 열국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오시는 것?

L.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그 분의 메시아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④ 초대교회는 메시아닉 교회였고 4세기부터 잃어버린 메시아닉 유대교를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회복시키시고 계신다.

A. 1967년 6일 전쟁을 치르던 중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회복했고 2천년 만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은 더 이상 이방인들에게 짓밟히지 않게 되었다(눅21:24) 

B. 이스라엘이 돌아오고 있는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방교회를 부르고 계신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메시야에게로 돌아오면 새 생명을 얻는 것은 이스라엘 뿐이 아닐 것이고 이방교회는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C. 메시아닉 이스라엘의 회복은 마지막 시대의 대 부흥을 의미한다.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풀어놓을 것이다. = 신사도운동

D. 초대교회=1세기 교회 =메시아닉 교회=하나님이 세우신 교회=하나님이 설계한 교회 300년 이상 교회의 모습은 유대적 특성이다. 유대인의 문화와 결별하기 전 교회의 모습 - 이것이 바로 메시아닉 교회이다.

E. 4세기경 이교도였던 로마 황제를 통해 행해진 타협으로 인해 그 유대적인 유산은 사라졌다. 초대교회는 사라져 버리고 그후 천년동안 교회는 죽어 있었다. 서기 500년 무렵에는 초대교회의 흔적은 사라져 버렸다.

F.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 핵심요소는 그 유대적 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⑤ 첫 번째 오순절과 두 번째 오순절을 주장하는 등 신사도운동 사상과 연계되어 있다.

A. 베드로가 인용한 사도행전 2장의 언급된 사건들은 부흥에 관한 요엘서 예언의 최종적인 성취가 아니며 예수님과 베드로 모두가 재림직전의 종말의 환난에 관해 언급하면서 오순절날 있었던 것과 유사한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의 부흥을 예고한다?

B. 요엘서 2장의 문맥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마지막 시대의 세계적인 부흥, 대환란,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가져오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세계 평화의 도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C. 마지막 부흥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면 예수께서 돌아오실 것이다. 두 번째 오실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D. 모든 것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예루살렘에서 끝난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이다. 영적으로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E.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서쪽으로, 바울도 방향이 서쪽으로 복음의 서진으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순회를 마치면 예루살렘에서 끝이 난다.

F. 세계무역센터는 경제권력의 상징, 백악관은 정치권력의 상징, 페타곤은 군사권력의 상징이다. 이것이 9.11테러의 공격목표요 계시록 17-18장의 바벨론의 심판이다?

G. 오늘날 많은 선지자들이 다가올 “부의 이동”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를 자신의 왕국으로 옮기실 것이다.

⑥ 구약의 안식일을 비롯하여 유월절과 모든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A. 여호와의 일곱 절기는 메시야의 인격과 사역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데 여호와의 절기는 전체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봄절기는 메시야의 초림에 대한 예언적인 멧시지, 가을절기는 메시야의 재림에 대한 예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월절=메시야의 죽으심, 무교절=메시야의 장사되심, 초실절=메시야의 부활,

⏵오순절=메시야의 영이 언약공동체안에 부어짐.

⏵나팔절=메시야의 재림, 대속죄일=이스라엘의 속죄와 회복,

⏵초막절=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

B.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토라의 일점 일획도 떨어지지 않고 다 말씀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질 것,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기록된 안식일 법과 코셔법, 월삭과 절기법, 희생제사접, 제사장 제도, 레위인의 규례, 붉은 암송아지의 규례, 부정함을 제하는 정결법 등 폐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

4. 메시아닉 쥬의 문제점 비판

1) 잘못된 성경해석

메시아닉 쥬에 속한 사람들의 성경해석은 문자적이고 자의적 해석과 자신들의 논리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가져다 붙이는 짜깁기(preformation)식 성경해석과 비유풀이(parabolic) 해석이 많다. 그 중에서 마태복음 24:32-34의 잘못된 성경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는 말씀에서 메시아닉 쥬는 “무화과는 이스라엘이요 여름은 그 해의 끝이요 무화과나무 잎나귀는 이스라엘의 영적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요 무엇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해석을 한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비유를 하면서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비유로 설명하는 것인가? 비유는 전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뿐이다. 주님의 재림의 징조를 무화과나무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시며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것을 보면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나타내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화과뿐 아니라 모든 나무의 싹이 나고 잎이 나면 여름이 온 것을 아는 것처럼 주님이 말씀하신 여러 가지 징조를 보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 줄을 알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무화과를 이스라엘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다.

2)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왜곡된 사상

① 성경이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사상

로버트 하이들러는 로마서 11:15-24의 말씀에서 원가지들은 새로운 언약 메시아닉 유대교이며 접붙여진 가지는 이방인 신자들이며 뿌리는 성경적인 유대교이며 꺾인 가지들은 랍비 유대교를 말한다며 제사장 나라로서 유대민족을 창조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재림전에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5:11-32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가지고 “이 비유는 탕자를 향한 사랑많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지 않고 유대인들을 향한 교회의 태도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으로 장자는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의 신도들로서 아버지 집에 있는 모든 축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요 작은 아들은 유대인들로 해석한다” 이것을 육신적 혹은 혈통적 이스라엘로 이해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한다. 로마서 11:25-29을 가지고 모든 혈통적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돌아와서 자신들의 메시아를 끌어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참 이스라엘은 유대인 가운데서나 이방인 가운데서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다.

갈라디아서 3:7-9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2:9-10에는 이방인 신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의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라고 증거한다.

사도행전 1:6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에 대한 질문에 때와 기한의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로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의 확산을 설명하신다. 여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혈통적 이스라엘인가? 교회는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제자들의 생각은 혈통적이거나 지정학적일 수 있으나 주님은 이미 보편적 교회로서 이스라엘을 생각하신 것이다.

② 성경이 지정학적 이스라엘 국가 회복이라는 주장

메시아닉 쥬인 카이스 인터레이터는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국가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1948년 독립하였고 1967년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하나님은 예수님 곧 사람을 택하고 예루살렘 곧 장소를 택하셨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로 오실 것이다. 국민과 영토가 있는 실제적인 나라로 이스라엘 땅으로 오실 것이다. 예수께서 왕위에 오르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면 왕좌가 예루살렘에 존재해야 하고 그 나라의 기반을 형성할 이스라엘 정부조직이 존재해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재건은 예수의 재림과 그 분의 왕국이 이 땅에 서는 과정의 일부이다. 예루살렘이 이 세계평화의 중심도시로 나타날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 분의 국제적인 나라의 수도이자 예배의 중심지로 삼으실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그 분의 메시아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지정학적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주장한다.

루벤 도런은 “이스라엘에 영토가 없다면 종교적인 문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토를 가진 나라로서 현실의 땅에서 성취된다. 유대민족이 세계의 사방에서 돌아오는 것이 마지막 시대의 특성이 될 것이다. 1948년 전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어떤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특정한 지역을 의미하는 말이었다면 1948년 이후에는 새로운 국가로 수립되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취했고 유대민족을 그 땅으로 모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경구절을 인용하는데 주로 구약의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내용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 땅의 지정학적 회복과 그 땅으로 자기 백성들을 모아서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왕으로 임하시고 통치한다는 멧시지는 없다. 로마서 9:8은 이스라엘을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로 구분하는 경우는 있지만 영적인 이스라엘과 육적인 이스라엘을 구분하지 않으며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지 않는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고토로 돌아온다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국가 건설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중에서는 이방인중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모으신다는 의미일 뿐이다.

③ 성경이 백투예루살렘 사상을 주지한다는 주장

메니아닉 쥬들의 생각은 사도행전 1:8의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말씀에서 복음의 전 세계적인 확산을 의미하지 않고 복음이 서진을 계속하여 땅끝인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백투 예루살렘 사상을 가지고 있다. 복음의 시작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땅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메시아닉 쥬들 곧 송만석장로나 최바울과 같이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예루살렘은 세계영적 전쟁의 중심이 되고 마자막은 땅끝이 되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백투 예루살렘 비젼은 성취되어야 할 마지막 하나님의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도한 백투 예루살렘은 세계선교와 연관되어 있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시도록 재림을 대비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서 보편적인 교회를 말씀하고 있지 지정학적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멧시지도 성경에는 없다. 예루살렘이 세계평화의 중심도시가 된다는 성경의 근거도 없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왕이 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성경의 멧시지도 없다. 주님께 속한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그 분의 나라를 세우시지 않는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3) 교회에 대한 왜곡된 시각

메시아닉 쥬들은 사도들이 세운 초대교회는 메시아닉 교회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라고 주장하고 300년이상 교회의 모습은 유대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콘스탄틴시대로부터 암흑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반유대주의 교회 지도층의 꾸준하고 잔혹한 박해로 신앙속에 남아있던 유대교적 요소들이 파괴되고 유대적 요소들을 잃어버려서 오늘날의 교회는 고통받고 있으며 사탄에게 빼앗긴 것들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는 바로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개종이었으며 이교 황제의 예배를 위해 발전된 의식들이 교회에 수입되어 교회의 유대적 뿌리들을 잘라내고 그리스 이교의 뿌리를 접붙혔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탄의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에 안식일이나 절기같은 성경적인 유산과 가르침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빼앗긴 축복들과 소유권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로버트 하이들러의 주장)

키이스 인터레이터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메시아닉 유대교와 메시아닉 교회는 동일한 것으로서 콘스탄틴 이후 유대교적 유산을 버리고 이교적인 관습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생명과 임재가 떠나갔다면서 중세 종교개혁도 이방인들의 교회의 회복일 뿐 이교화된 관행들과 문화에 의해 동화되었고 천여년 동안 원래 사도들의 종교였던 메시아닉 유대교는 소멸되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회는 죽은 교회라고 여긴다.

루벤 도런은 예수님의 교회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태어나고 세상에 출현했으며 이 교회가 이 시대의 마지막에 스라엘에서 영광스럽게 부흥하고 온전해지는 것이 영원한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하거나 밀어내거나 분리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 안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교회는 혈통적 이스라엘 안에 존재하는 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믿고 이방인교회도 혈통적 이스라엘에게 접붙임을 받은 교회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안에서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6:18에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에서 교회는 혈통적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말하지 않는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하는 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포도원 비유를 통해서(마21:33-42) “너희(혈통적 이스라엘)는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에 열매맺는 백성들(택함받은 이방인들)이 받으리라” 는 말씀을 하셨고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한 왕의 비유(마22:1-14)를 통해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씀으로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택함을 받은 자가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임을 천명한 것이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 2:28-29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분명히 증거했다. 3:29-30 에서는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부라함의 아들이 된다고 선언한다.(롬3:30) 아부라함은 단지 유대인의 조상이 아니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기 때문이다(롬4:18) 로마서 9:6-13은 첫째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가 아 이스라엘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는 것과 둘째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며 셋째 택하심을 따라 부르심을 입은 자가 자녀임을 분명하게 한다.

따라서 교회는 혈통적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름을 받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혈통적 이스라엘이나 지정학적 이스라엘하고는 무관하다.

구약에서도 혈통적 유대인들가운데 하나님이 택하신 남은 자들이 진정한 교회였던 것처럼 신약에서도 현재에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믿음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교회이다. 보이는 교회가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이 메시아닉 교회에서 유대교적 유산을 다 소멸시켰다는 것과 그 때부터 교회가 암흑기와 사탄에게 지배받았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다. 콘스탄틴이 토요일 안식일을 태양신을 섬기는 일요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도 거짓이다. 이미 초대교회부터 주의 날을 지키고 있었고 콘스탄틴은 그 날을 휴일로 선포함으로 초대교회 신자들이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이지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어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세시대 교회는 타락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는 여전히 존재했고 종교개혁을 통해서 살아나게 되었고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4) 기존교회를 대체신학으로 치부하는 편견

메시아닉 쥬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렸다고 생각하고 이스라엘이 교회로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을 주장한다고 몰아 세운다. 이방교회가 A.D 70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로버트 하이들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미묘한 반유대주의는 대체신학이다”라고 하였다. 대체신학은 이단적인 세대주의 관점이지 교회의 관점은 아니다. 특히 루벤 도런은 대체신학 교리는 어거스틴이 가르친 교회론으로서 이러한 대체신학을 바탕으로 반유대적 법률이 반유대주의 길을 닦았고 잔악한 행위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정통교회는 하나님이 혈통적 이스라엘을 버리고 교회로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을 주장하지 않는다.

정통교회는 구약의 국가적 형태를 취하던 이스라엘이 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라 택하신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약의 교회였고 혈통적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롬11:11)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방인 중에서 택하심을 받은 충만한 수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교회이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함이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택한 백성들이 교회라고 믿는 것이지 이스라엘을 교회가 대체했다고 믿지 않는다. 세대주의 신학은 일부 이단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5) 유대 율법주의로의 회귀

로버트 하이들러는 “교회가 유대적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사도들도 유대교로부터 분리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유대인의식을 거행하고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고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을 드렸다”고 주장한다. 메시아닉 쥬들은 성경의 절기들이 생명의 사이클로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유대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시아닉 쥬 사상을 신봉하고 주장하는 한국의 목회자 김주성목사는 <토라회복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토라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멍에와 같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으로서 부름받고 구원받은 자들이 준수해야할 왕국의 법도이다”라고 주장하고 복음서는 하나님의 토라(곧 말씀)가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메시야 곧 “살아있는 토라이신 예수아”를 증거한다고 한다. 따라서 “구약에는 하나님의 캘린더에 하나님이 정하신 사이클이 있는데 이것은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안식년, 희년”으로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음식법이나 제사법까지 다 지켜야 한다고 나섰다.

메시아닉 쥬들은 율법은 그림자요 예수님은 실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히10:1) 구약의 성전이 그림자요 그 실체가 예수님(히9:1-28)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롬10:4)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갈3:1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저주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갈3:13)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심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갈3:24) 예수님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려 하심을 부정한다(갈4:4-5)

사도바울은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기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0-11)고 말씀하셨고 골로새서 2:16에서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폅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실체가 있다면 그림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메시아닉 쥬들이 율법주의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혈통적 유대인과 지정학적 이스라엘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6) 주님의 재림에 대한 곡해

메시아닉 쥬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키이스 인터레이터는 재림의 조건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고 둘째는 혈통적 이스라엘의 부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로 오시는데 국민과 영토가 있는 실제적인 지정학적 나라 이스라엘에 재림하시는데 감람산으로 다시 재림한다고 한다. 더욱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재림하셔서 그 분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지구상의 재림의 장소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며 이스라엘이 없다면 재림도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메시아닉 쥬들은 유대인의 절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일생을 설명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의 봄절기는 예수님의 초림을 말하는데 유월절은 십자가의 죽음을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오순절은 성령강림을 말하고 가을절기는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데 나팔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 유대인의 절기가 예수님의 죽으심이나 부활이나 재림을 의미한다는 멧시지는 없다. 이것은 가져다 붙인 조작된 것이다.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출애굽때에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넘어가게 한 것처럼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죽임당한 어린양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 그것을 기념하는 유월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 초실절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인가? 곡식의 첫 열매를 얻는 절기가 초실절로서 이른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첫열매를 감사로 드리는 것인데 예수님의 부활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라는 말 때문에 곡식의 첫열매를 드리는 것과 매치를 시켜 가져다 붙인 것일 뿐이다.

나팔절은 희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49년 되는 해 7월 10일에 대속죄일을 정하고 나팔을 부는 것으로서 팔렸던 모든 백성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해방되는 날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묶인 자의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을 위해서다.

특히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은 이 땅에 그 분의 나라를 세우러 오시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이 땅에 그 분의 나라를 세울 이유가 없다. 새 하늘 새 땅 곧 하늘의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며 주님의 재림은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으로 신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게 된다.

메시아닉 쥬의 재림 역시 세대주의 재림론과 유사하고 정통 종말론과는 거리가 멀다. 주님의 재림은 이 땅에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기 오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 신사도운동사상과의 결탁

메시아닉 쥬의 사상은 신사도운동 사상과 결탁되어 있다. 키이스 인테레이터는 첫째 첫 번째 오순절과 두 번째 오순절을 주장하는데 사도행전 2장에 언급된 오순절은 요엘서 2장의 예언이 일부만 성취되었고 두 번째 오순절은 마지막 시대에 오는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세계적인 부흥, 대환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세계의 평화를 주장한다. 또한 백투 예루살렘사상을 주장한다. 예루살렘은 세계평화의 중심이고 모든 것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고 예루살렘에서 마친다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 때는 성도의 5중직분이 대언적인 기름부음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로버트 하이들러는 “오늘날 선지자들이 다가올 부의 이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를 자신의 왕국으로 옮기실 것이다” 루벤 도런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 시대의 끝에 마지막으로 생명을 낳도록 작정되어 있다. 첫 세대는 세계를 변화시킬 아들 메시야를 낳았던 것처럼 마지막 세대에도 역시 아들을 낳을 것이다” 김주성은 “우리에게도 메시아가 오시기 전 늦은 비 성령의 부어주심이 임하게 되고 마지막 때 수많은 영혼들이 추수하는 일에 쓰임받을 것이다.”

루벤 도런은 아이합의 마이크 비클과 친구요 키이스 인터레이터는 피터 와그너의 친구로서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메시아닉 쥬들의 책에는 신사도운동 사상이 상당히 많은 분량으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은 본래 윌리엄 브랜험이라는 늦은 비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시작이 된 것인데 이른 비는 오순절 성경강림으로 요엘서의 예언의 완전성취가 아니라 일부 성취된 것이고 늦은 비는 마지막 때에 임하는 성령강림으로 신사도운동이 시작된 2001년부터 마지막 부흥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자들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신사도교회가 대부흥을 일으키며 모든 교회들이 신사도들의 지배를 받을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권역 즉 7권역 모두가 신사도들의 지배를 받고 부의 이동이 이루어지면 예수님이 재림을 한다는 위험한 이단사상이다. 특히 예수님의 재림을 예수님의 육체적, 가시적인 재림으로서 재림을 말하지 많고 집단 그리스도나 요엘의 군대, 지저스 아미, 하나님의 군대등 이것이 바로 집단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하는 이단적인 사상인데 이러한 사상과 결탁되어 있다는 것이다.

8) 현존하는 기성교회의 폄하

메시아닉 쥬들에 의하면 기성교회는 콘스탄틴이라는 로마 황제에 의해 초대교회는 사라져버리고 천년동안 죽어 있었으며 오늘날의 교회는 사탄에게 빼앗긴 것들을 회복시키는 시대이며 메시아닉 교회가 4세기 초반에 죽어간 것은 사탄이 직접 짜낸 교활한 계략이었다고 주장한다. 오늘의 교회는 사탄의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에 부패하고 타락했다. 이것을 개혁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메시아닉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기독교는 비성경적인 교리들과 이론들로 왜곡되고 변질되어 끔찍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현대 기독교는 신본주의 신학이 아니라 인본주의 신학이며 헬레니즘에 근원을 둔 혼합주의 사상인 영지주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전통 기독교의 천국복음이 생겨났다.는 등 현재의 기독교는 사탄의 신학이며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과 인본주의 사상으로 왜곡되고 타락했다는 주장이다.

모든 이단들은 기성교회를 폄하하고 공격하면서 사탄화시키며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다. 메시아닉 쥬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정통 기독교에서도 영지주의 이원론 사상을 배격하고 있으며 인본주의 사상도 배격한다. 물론 기독교의 부패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메시아닉 쥬가 주장하는 사상때문이 아니다. 메시아닉 쥬는 자기들만이 진정한 교회요 바른 교회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과 신사도운동이 신사도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로 내용에는 위험한 비성경적인 사상과 위험한 사상들이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Ⅲ 결 론

지금까지 살펴본 메시아닉 쥬에 대한 사상과 내용들은 많은 부분에서 비성경적인 위험한 이단적인 사상을 함유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성경해석에부터 시작하여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정학적 이스라엘 회복이나 혈통적 이스라엘 회복을 주장하는 것 뿐아니라 기존교회가 대체신학을 주장한다고 매도하는 것과 세대주의적 종말론과 신사도운동과 연관성에서도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싫어하거나 거절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정통교회를 매도하거나 개혁의 대상으로 삼거나 혈통적 유대인인 메시아닉 교회를 위한 들러리로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이단적 사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통교회를 사탄에 의해 지배되어온 인본주의 신학이며 죽은 교회였다고 매도하는 것도 결국 메시아닉 쥬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결과라고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메시아닉 쥬의 주장은 과거 유대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이고 구약의 율법준수로 돌아가자는 것으로서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고 그림자로 복귀하자는 이단적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메시아닉 쥬는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핵심요소는 유대적 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라며 로버트 하이들러는 말한다.

따라서 메시아닉 쥬의 사상은 정통교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고 수용할 수 없는 이단적 사상이다. 잡초도 이런 잡초가 없다. 이미 1992년 시한부 종말론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한국교회에 가장 큰 오명을 남기는 데 일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상은 여전히 한국교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다. 이 세대주의적 종말론 사상은 한국교회 일각에 다시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필찬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세대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비판한 글을 인용하면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바울이 메시아닉 쥬인가?”

로버트 D. 하이들러(<메시아닉 교회,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진현우 옮김 WLI Korea, 2008년)는 롬 11:15-24의 '꺽이지 않은 원가지'를 규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는 이 원가지를 뿌리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것으로서 새로운 언약의 메시아닉 유대교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과 마태 등을 여기에 포함시키려고 한다(47쪽). 이러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바울을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바울이 올바른 복음을 세우기 위해 그렇게도 치열하게 공격하면서 했던 대상이 바로 할례와 같은 유대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거짓 교사들이었고 하이들러의 표현대로 하면 바로 메시아닉 유대교도들이었다. 그런데 바울을 이러한 범주에 놓는다는 것은 바울에 대한 완전한 왜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메시아닉 쥬에 속하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는 2-3세기의 양 극단의 이단적 집단인 말시온(Marcion)파와 에비온파(Ebion)의 바울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말시온파는 반유대적이고 에비온파는 친유대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말시온파는 바울 서신을 유대적 가치를 상쇄한다 하여 가장 유일한 정경으로서 취급하였고 에비온파는 바울 서신들을 반유대적이라 하여 거부한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는가? 바울은 적어도 하이들러의 주장처럼 메시아닉 쥬에 속한 인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종교 개혁은 이방 교회의 부활일뿐인가?

하이들러는 <회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섹션에서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 교회의 회복을 유대적 전통의 회복과 동일시하면서 이 회복의 과정은 “일련의 부흥, 또는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s)을 통해 시작되었으며, 그 시발점은 14세기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9-1384)였다”고 강변한다(102쪽). 위클리프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보통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도에도 힘쓰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교회가 회복되었고 후스, 루터, 윗필드, 웨슬리로 이어지면서 교회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러한 정황을 서술하면서 하이들러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주입되자 이방 교회의 ‘죽은’ 가지들은 되살아났다. 그러나 모든 것이 회복된 와중에도 교회는 결코 원래의 히브리 뿌리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로마서 11장에 따르면, 이방 교회들이 메시아닉 유대교의 ‘살아 있는 가지’ 사이에 이식되어서 뿌리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수액을 빨아 들일 수 있게 된 것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한다(103)쪽).

여기에서 하이들러는 분명히 ‘메시아닉 유대교’라고 했고 ‘이방 교회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메시아닉 쥬들로부터 듣는 이러한 구분은 이제 새롭지 않다.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메시아닉 쥬들에게 전통적 교회는 이방 교회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 자체가 신약 성경을 왜곡한 결과라는 것은 앞의 글에서 여러반 밝힌 바 있다. 바울이 갈 3:28-29에서 밝힌 것 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런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것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종교개혁으로 인한 교회의 회복은 이방 교회들의 회복일 뿐, 살아 있는 원가지는 이방 교회의 이교화된 관행들과 문화에 의해 ‘동화’되었다고 한다(103-104쪽). 또한 그가 말하기를 “천 여년 동안, 원래 사도들의 종교였던 메시아닉 유대교는 소멸되었다. 유대교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랍비 유대교의 ‘잘려진’ 가지들뿐이었다”고 한다(104쪽). 여기에서 ‘동화’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소멸’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두 단어의 의미는 다른 뉘앙스를 나타내 주고 있다. 어째든 여기에서 하이들러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그는 초대교회=메시아닉 유대교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고 메시아닉 유대교의 소멸은 초대 교회의 소멸을 의미한다. 위클리프를 위시한 종교 개혁은 메시아닉 유대교가 소멸되거나 혹은 동화된 상태에서 단지 이방 교회의 부활일 뿐이다. 원가지가 소멸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이러한 상태를 유대교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랍비 유대교의 ‘잘려진’ 가지들 뿐”이고 “이방 교회들이 붙어 있을 살아 있는 가지라고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104쪽).

이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종교 개혁의 의미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이방 교회의 회복일 뿐, 롬 11:17-24에 근거하여 살아 있는 가지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으로 읽혀진다. 왜냐하면 이방 교회는 ‘살아 있는 원가지’가 없이는 나무에 그 어떤 가지도 접붙임을 받을 수도 없고 뿌리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수액을 빨아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103쪽). 그런데 롬 11:17-24에서는 정작 ‘살아 있는 원가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꺽인 원가지’에 촛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이들러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살아있는 원가지’는 저자는 관심이 없는데 메시아닉 유대교라는 자신의 개념을 전제로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예수님의 재림은 그의 백성의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가?

대니얼 저스터·키이스 인터레이터는 그의 책 <마지막 때의 교회와 이스라엘> (2010년)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백성이 역할을 완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81쪽)고 하여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가 하나님의 백성의 역할에 의해 좌우 된다는 매우 위험한 주장을 앞세운다.

그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재림은 옛 찬송가 가사처럼 ‘며칠 후 며칠 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오실 것이다. 우리는 영광 중에 계신 그를 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가만있어도 저절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에서 그의 의도는 더욱 분명하게 된다(82쪽).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우리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의 역할과 관계 없이 예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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