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벌꿀
【종그니칼럼】인내(忍耐).
내가 사는 요양원 텃밭에는 유실수로 아로니아, 보리수 한그루, 그리고 블루베리도 몇그루 있다. 블루베리가 올해에 처음 열려 아주 잘 익어서 무심코 따다가, 땅벌에게 한방 쏘이고 말았다. 블루베리가 단 냄새를 풍기니, 야생벌이 그 나무에 둥지를 튼 것인데 무척 아팠다. 텃밭이 산에 가까이 있어서 며칠 전엔 땅벌에 쏘이기도 했다. 블루베리 나무 주변이 돌담으로 되어 있어 땅벌 집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다.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땐 벌도 많고 벌 종류도 다양했었다. 그 시절 시골 아낙네가 산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다, 소변이 급해서 월남치마를 내리고 일을 보는데, 하필 땅벌 집이 있는 곳에서 일을 보다가, 땅벌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놀라 떼로 달려들어 소변 근원지에다 인정사정없는 공격을 해대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단다. 예전엔 그만큼 야생벌들이 인간의 가까운 거리에도 아주 많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잠자리, 나비와 더불어, 점차 벌이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꽃 수정을 하여야 하는 과수원에서는 해마다 봄이면 걱정이 많다. 그래서 혹 벌에 쇠여도 아픔보다 벌들이 우리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맘뿐이다. 자연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병들어가는 자연을 살리려는 맘으로 혼연일체가 되어야, 대자연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텐데 인간들은 계속해서 자연을 거스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기질이 너무 나쁘다. 이 때문에 자연에 사는 모든 생물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보통 야생 곤충류에 물리면 몸에 해로운데, 벌에 쏘이면 되레 몸 안에 있는 독소가 사라진다고 한다. 수많은 곤충 중에 벌만큼 인간과 가까운 곤충도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동전 중 하나에 벌 상징이 있다는 것을 혹 아시나요? 벌은 언제나 자기가 사는 벌집에서 800m의 직선거리를 두고 활동한단다. 이것을 'Bee line'이라고 한다. 그래서 벌은 꿀을 채취하는 곳에서 벌집까지 직선거리로 언제나 800m의 선을 넘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이 거리를 초과하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귀소본능의 능력을 잃게 되니 바로 이것이 생명선이다. 벌들은 이를 엄격히 지키는데,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은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다. 벌들은 대략 40일 정도 살면서, 약 1000송이 정도의 꽃을 찾아 채취한 꿀의 양은 한 티스푼도 채 못되지만, 벌이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력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하다.
내가 이곳 춘천에 와서 시작한 일이 효소를 담그는 일이었다. 틈 날 때마다 산야를 다니며, 엉겅퀴, 하얀 꽃 민들레, 칡 순, 익모초, 쑥, 산 당귀, 산도라지, 머위, 구엽 초, 개똥쑥, 다래 순, 질경이, 산 뽕 잎, 소나무 순, 소주를, 쇠비름, 돌배, 개복숭아, 오디, 머루 아카시아꽃, 각종 야생 버섯류 등등, 50여가지의 산야초를 채취하여, 큰 항아리에 담은 지가 십년이 훌쩍 넘었다. 그뿐 아니라 텃밭에 아로니아를 심어 해마다 아로니아 효소도 담갔다. 물론 음식에 꼭 들어가는 매실 효소도 해마다 담갔다. 그런데 눈부신 현대문명을 만든 인간들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것이, 바로 벌이 만들어 낸 '꿀'이란 효소다. 사람이 만든 꿀로는 조청이라는 효소가 있다. 이것도 훌륭한 식품이긴 하지만, 벌이 만든 꿀에는 어림없다. 벌꿀에도 여러 종류의 꿀이 있는데 그중 토종꿀이 있다. 벌은 정직하다. 그러나 꿀의 성분을 변질시키는 것은 벌이 아닌 인간들이다. 토종벌이 만들고 있는 토종꿀을 설탕 꿀로 만드는 건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토종 꿀을 하나의 벌통에서 일 년 동안 얻을 수 있는 양은, 기껏해야 두 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설탕물을 벌통 옆에 두면 벌은 멀리 가지 않고 설탕물만 빨아서 벌집에다 토해낸다. 벌이 입으로 빨아서 만들었으니, 이미 그것은 설탕이 아니고 꿀이라고 인간들은 우겨댄다. 그래서 아무 지방에 가면, 벌이 아닌 인간들이 돈 액수대로 3만원짜리, 5만원짜리, 10만원짜리의 꿀을 돈에 맞춰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낸단다.
내가 아직 사십 대였을 무렵 경남 하동 악양에서 목회할 때, 지리산자락에서 수확한 토종꿀도, 말만 토종꿀이지 실은 설탕 꿀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종꿀이 벌통 하나에서 일 년에 10되씩 생산하니, 이것을 어떻게 토종꿀이라 하겠는가? 이렇게 인간은 조청만 만드는 게 아니고, 벌꿀도 벌을 이용하여 소비잣값에 맞춰 얼마든지 꿀을 만들어 판다. 그런데 설탕으로도 성이 덜 차서 인체에 해로운 화학 물질을 첨가해서 만든 꿀도 보았다. 이처럼 꿀의 효능이 좋다 보니 수익에 눈이 어두운 인간들이 미물인 꿀벌들을 이용해서 부끄러운 범죄를 짓고 있다. 그럼 과연 꿀이 어떤 식품이길래 이렇게 가짜가 범람하고 있는 것일까? 혹 여러분은 꿀은 살아 있는 효소라는 것을 아시나요? 그렇기 때문에 꿀 효소는 금속 스푼과 접촉하면, 그 효소 성분이 죽는다는 것도 아시나요? 그래서 꿀을 먹을 때는 나무 숟가락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도 아시나요?
인간들은 벌만이 만들 수 있는 꿀을 손쉽게 만들겠다며, 인체에 유해한 꿀을 양산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진짜 꿀을 얼마나 먹었을까? 먹는 식품 가지고 못된 짓을 하는 것, 건강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가짜 꿀이 사회에 유통될 때, 인체에 미치는 해악보다 오로지 개인의 돈벌이에만 방점을 두고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문제다. 인간의 질병 중에 가장 악한 병이 바로 거짓된 삶이다. 사람이 먹는 식품을 가지고 큰 유익을 보려 하는 것 참 몹쓸 죄악이다. 이렇게 인간들의 농간에 의해 본래대로 있어야 할 것들이 변질하여, 대자연의 기본 질서가 회생 불능이 되어 가고 있다. 진실로 여러분은 벌이 만든 꿀이, 여러분의 뇌가 더 잘 활동하도록 돕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또 여러분은 꿀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식품 중 하나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나요? 그래서 이 벌꿀이 아프리카의 먹을 식량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식량이 오기 전에 죽음으로부터 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나요?
이는 꿀 한 스푼이면 죽어 가는 인간의 생명을 무려 만 하루 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니, 이처럼 꿀벌들이 생산하는 자연 꿀에는, 프로 폴리스가 가장 강력한 천연 항생제일 뿐 아니라, 꿀에는 유통기한이 없어 항구적인 아주 진귀한 식품이자 성(聖)스러운 약(藥)이다. 또한 꿀은 세계를 호령하던 위대한 황제들의 시신 부패를 막기 위해 황금 관에 입관된 후에, 관 전체를 꿀로 덮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나요? "Honey MOON"이라는 용어는 결혼식 후에 신혼부부들이 다산을 위해 첫날 밤에 꿀을 많이 소비했다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벌이 없는 세상 꽃과 벌은 불가분의 관계로 모든 과일 생산에 벌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대자연과 인간들에게 꼭 있어야 할 창조 질서의 우선순위에 있는 익충들은, 인간들의 한없는 탐욕으로 점점 대자연이 파괴되어, 벌들마저 점차 살 곳을 잃고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인간들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동시대를 사는 창조된 생명들에 대한 상생 의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이제라도 인간이 인간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자연 과학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명이 창조 질서의 순리를 따를 때, 비로소 모든 만물의 중심에 있는 인간들이, "더불어 사는 공생의 의식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인간의 문명이 타성에 젖어, 이기적인 인간 본위로만 간다면, 인생들의 남은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금단의 열매'로 타락한 인생은, '모든 모순의 합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은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 그 입의 말씀이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9장 9절~10절.)
【종그니칼럼】인내(忍耐).
천지창조후 인류를향한 하나님의 최대의 심판사건인 노아의 홍수 후에, 노아는 세아들들과 포도농사를 지었다. 신앙이 심지(心志)를 잡고 있을때는, 자신과 환경을 이길수 있지만, 그 반대가 되면, 자신은 환경에 함몰 되고 만다. 노아는 포도농사를 지으며, 포도주의 맛에 흠뻑 빠지게 된 어느 한 낮에, 술에취해 하체를 벗은채로 낮잠에 빠져있을 때, 아들 함이 이 모습을 보고 온 식구들에게 일러 바쳤다. 그러자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방으로 뒷 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렸다.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것은 드러내어 밝히고 본을 삼는 것, 이것이 인생의 근본일 것이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보면, 얼마나 맑고 밝은지 꼭 맑은 호수를 보는 것같다.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닌 것이, 옛날 내가 부모슬하에 있을 때, 옆집에 '섬모'라는 어린애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우물에 오줌을 싸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개구쟁이 웃음을 하고 어른들을 쳐다 보면서, 우물에대고 오줌을 쌌다. 이처럼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말광량이 심술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그럼 교육받고 성인이 되면, 바른 인간이 될까? 누군가는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으니, 인성교육을 잘 받으면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다. 교육을 중시한 공자는, 자신이 육십(六十)이되어서야, 어떤 말을 들어도 다 소화가 되었다 하여 이순(耳順)이라 했고, 칠십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었다."고 했으니, 공자는 확실히 학문으로 인성을 이루었다 할 것이다.
"唾面自乾(타면자건)은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침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세상살이에는 끝까지 참고 기다림이 필요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의 관리 누사덕은 마음이 넓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성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워 아무리 화나는 일이 생겨도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고 한다. 그는 동생이 높은 관직에 임용되자 동생을 불렀다. “우리 형제가 함께 출세를 하였으니 영광이지만, 황제의 총애까지 받게되면, 남의 시샘이 클 터인데 너는 처신을 어찌할 셈이냐” 고 물었다. 형의 말뜻을 알아들은 동생이, 형의 염려를 불식시키고자 겸손히 대답하기를, “설혹 상대방이 나를 시샘하여 내 얼굴에 침을 뱉을지라도, 맞서지 않고 묵묵히 닦겠습니다.”동생의 이같은 대답에 형이 조용히 타이르기를,“내가 염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침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저절로 마를 것이다. 상대가 화가나서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서 닦으면 더 크게 화를 내며 다시 뱉을 수도 있으니,
닦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당부하였다. 이것이 바로 ‘타면자건(唾面自乾)’에 얽힌 고사다.
누사덕의 타면자건의 고사를 알턱이 없었던, 그래서 오로지 순수한 믿음으로, 그에게 안겨진 온갖 수모를, 신앙인격으로 녹여내는 지혜를 가장 완벽하게 실천한 지도자가, 바로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그가 지난 미국 대통령 시절, '오바마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모욕적인 악플들이 실로 끝없이 범람했었다. 예를 들어 ‘검은 원숭이’, 혹은 ‘껌뎅이 원숭이는 동물원으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 댓글들이 줄을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다시 말하면 온갖 사람들이 생각나는 대로 무차별적으로 내 뱉은, ‘사이버의 가래침’들을 그는, SNS에서 저절로 마르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오바마의 이와같은 넓은 '포용 정치'는, 바로 누사덕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신앙으로 예수의 삶을 실천함으로 형언할수 없는 온갖 수모를 넉넉히 이기는 빛을 발했던 것이다.
오바마가 재임 시절에,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놀라운 은총, 얼마나 감미로운가…” 추모사를 읽어가던 오바마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침묵하다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를 반주도 없이 부르기 시작했다.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6,000여명의 참석자들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두 일어나 찬송가를 함께 따라 눈물로 불렀다. 대통령은 연설 도중 희생자들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은 신의 은총을 받았다”라고 기도했다.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의 박수소리가, 아메리카 전역에 울려 퍼졌다.
우리는 남을 비하하고 무시하기는 쉬어도, 인격을 깔아뭉개는 척박한 토양에서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포용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마치 온갖 모멸을 도려내는 단장의 인내(忍耐)없이는 불가능하다. 忍耐의 忍은 심장(心腸)에 칼날(刃)이 박힌 것을 나타내는 글자다. 칼날로 심장을 후비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忍耐다. 험난한 인생항로를 헤쳐 가자면, 누구나 가슴에 인고의 칼날 하나쯤은 박히게 마련이다. 그것을 "끝까지 참느냐 못 참느냐"에 삶이 갈린다. 이는 누사덕이나 오바마" 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생사가 다 그러하다. 배려는 늘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세상을 이기심이 가득한 롯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때로는 주님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눈으로 세상과 나를 볼수 있다면 삶의 폭이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인간(人間)이란 의미가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 두 발과 두 손이 그렇고, 두 눈과 눈 꺼풀, 두 콧구멍 두귀가 그러하고, 위 아래 턱이 어우러져 얼굴(얼이 깃들어 있는 곳)을 이루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