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만절필동(萬折必東).
단국대 신복룡 정치학과 명예교수에 의하면,공자(孔子)가 소위 칠웅(七雄)이 중국천하를 어지럽히던 춘추전국의 난세를 바로잡고자, 중국을 주유하던 어느 날, 황허 강변에 이르러 동(東)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있을 때, 제자 자공이 “왜 강물을 그리 유의깊게 바라보십니까?" 하고 여쭈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흐르는 강물을 보며 물의 이치를 생각하고있었다, 물은 참으로 위대하다. 물은 만번을 꺾여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가니, 이는 사람이 사는 의지와 같다.”(萬折也必東 似志) 하였다.(荀子의 宥坐 편)
공자는 다만 중국의 지형이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음에 따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이치를 설명했을 뿐인데, 원(元)이 망하고, 한족(漢族)이 세운 명이 중원의 주인이 되던 때에, 건국된 조선(朝鮮)의 유생들이, 거기에 사족(蛇足)을 달아 의미를 보탰다. 조선 중기때에 조선의 유생들은, 명(明)을 멸하고 오랑캐 청(淸)이 중원의 강자가 되자, 중화(中華)의 맥이 끊어지고, 공자의 가르침이 이제 동방인 조선에만 남아 있다는 망상에 빠지면서, 스스로 조선을 소화(小華)라 일컷고, 팔도 각처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을 석벽에 새겨 넣었다. 그 가운데 어필(御筆)이라 하여 '화양동의 암각'을 가장 큰 볼거리로 여겼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솔맹이 골에 '화양동'이 있는데, '萬折必東'암각이 새겨진 사당이다. 이곳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경사가, 70도는 족히 되는 아주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다고한다. 계단이 이토록 가파른 이유는, 소중화(小中華)의 조선 백성이, "중국 천자(天子)를 뵈러 올라 가면서, 어찌 똑바로 서서 올라갈수 있겠느냐"며, 개처럼 기어 올라 갔다가 개처럼 기어 내려오라는 뜻으로 지었음을 알고, 나는 "과연 중국은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생각케한다.
당시 대쪽같은 성품을 지녔다지만, 사대주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던 우암 송시열의 소중화 논리(小中華 論理)인즉, 임진왜란 때 다 망해가던 조선을 살려준 대명(大明)천자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대한 보답과, 병자호란의 국치(國恥)를 씻어야 한다는 것이 사대(事大)의 이유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조선의 안이한 국방과 외교력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음에도, 당시 조선 사대주의자들의 시대를 보는 안목은, 마치 우물안 개구리처럼, 주자학(朱子學)의 어대롱(管見)에 갇혀 있었다. 원시인의 동굴 입구가 남향임에도 불구하고 동쪽인줄로만 알고 살던, 이른바 '프랜시스 베이컨(F. Bacon)'이 말한, 원시인들 의 “동굴의 편견”(idola specus)에 사로 잡혀있던 조선의 유생들은, 주자학이란 동굴의 우상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중화와 소화라는 동굴속에 갇힌 그들은, 서양 학이 안짱다리(矮, 倭)의 난학(蘭學;서양학) 이라며 이를 거부하면서, 세계사의 조류에서 저만치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바로 망국(亡國)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는, 여진족의 하급(下級) 무사(武士)로 출발,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했으나, 명나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아야 된다고 본 이성계(李成桂)는, “대국을 거스릴수 없다.”(以小逆大不可)는, 조선개국의 출발부터 종속(宗屬)은 시작되었다.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사대란 굴욕이 아니라는 시각 부터가 한국사는 정직하지 못하다. 한국이 중국에 조공(租貢)과 인질(人質)을 바쳤다는 서술은, 국사책에서 금기어(禁忌語)가 되었다. 그런 일련의 역사적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 삼전도비(三田渡碑)를 땅에 묻은 사건이었다. "이를 알라! 치욕의 역사(dark history)도 가르쳐야 한다." 는 사실을! 어두운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는 이 지구상에 없다. 한(漢)나라 황제는 흉노(匈奴)에게 딸을 바쳤다. 민족 분노의 시대에 신채호(申采浩)처럼 비분강개할 수는 있지만, 역사는 화해하는 것이지, 적개심을 키우는 것은 국가의 도량이 아니다.
동양 최고의 빌딩이라는 롯데 타워를 배경으로 삼전도비(三田渡碑)를 바라다 본다면, 그 심경이 어떨까? 끝까지 싸우자던 김상헌(金尙憲)보다는, 최명길(崔鳴吉)의 고민이 더 깊었을 것이다. 인조(仁祖)는 남한산성에서 죽음(黃天) 을 뜻하는 황토를 길에 깔고, 몸을 일곱 마디 낸다는 뜻으로 여섯번 새끼줄로 묶고, 상여(喪與)에 올라 산에서 내려왔다. 그때 그와 울며 따르는 신하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만동묘와 삼전도비를 보면, 지금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련만, 소위 작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거기 까지는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한듯싶어 가슴이 아린다. 그럼에도 한가지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중국이 말하는 이른바 사이팔만(四夷八蠻) 가운데, 지금 독립국가로 남아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에 대한 애증(愛憎)이 더욱 깊어만 간다. 지금의 중국지도부나 주한 중국 대사들은, 아직도 리훙장(李鴻章)이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사고(思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일본이 우리의 이웃이 듯, 중국도 이웃인데, 왜 우리가 중국에 애증이 없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역사학을 보면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웃은 신앙적 카테고리내에서나 볼수 있지, 현실과는 상거가 멀다! 은원(恩怨)의 5천년에서, 우리는 선린의 기억보다 가슴에 맺힌 통한이 훨씬 더 많다. 선린(善隣)이란 한낱 외교적 수사(修辭)에 불과할 뿐, 한중관계에서 그런 일은 기억에 없거나 희소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학은, 먼저 민중의 눈에 낀 백내장(白內障)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 백내장의 정체는 무엇인 줄 아는가?
첫째는 중국이 “큰 시장” 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이는 이미 1940년대에 루즈벨트(FDR)의 오판(誤判)인 것이 입증되었다. 생선 뱃속에 납덩이를 넣어서 파는것이 중국의 진정한 모습이다. 지난 날 베이징(北京)대학의 후스(胡適)는, “중국이 협상하러 올때는, 그들의 속임수[虛僞]를 조심하라. (1935)"는 말을 남겼다.
둘째는, “통일의 지렛대” 라는 몽환적(夢幻的) 대국주의이다. 중국은 남북통일을 시켜줄 힘은 없어도 저지(沮止)할 힘은 있다. 바로 이게 비극적이다.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에 기울 경우, 두가지의 걸림돌이 있다. 먼저 미국과의 관계이다. 외교에서만은 “적(敵)의 적(敵)은 동지(同志)이며, 적의 동지는 적”이라 셈법은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이 끝날 때까지 한국을 지켜줄 것이다, 그럼 그 뒤에는? 한국을 버릴수도 있다. 을사조약때 제일 먼저 일본을 위한 축배를 든 것은 미국이었다.
처음 버리기가 어렵지 두번째 버릴때는 덜 망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젊은이들 2만5천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그 가운데 200명이 장군의 아들이었다. 한국인 장군의 자식중에 전쟁터에서 죽은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어떤 모양으로 끝날지 예견하기 어렵지만, 길게 가면 중국이 이길 것이다. 미국도 그것을 잘알고 있다 중국은 어떤 사태를 놓고 시계와 달력을 잘 보지 않는 민족이다.
다음은 일본의 문제이다. 한국인 치고 누구인들 일본에 적의(敵意)가 없을까마는, 우리는 대일관계에서 일정한 체념(諦念)이 필요하다. 신숙주(申叔舟)가 운명이 가까웠다는 말을 듣고 성종이 승지를 보내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遺言)이 무엇이오?” 라고 물었을때, 신숙주는 “일본과 등지지 마십시오.” (失和)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전한다.
아무리 미워도, 안국역 지하철 3호선의 안전문 유리에 “일본놈 저며 죽이자”[屠戮]는 시를 써붙인 것은 문명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도쿄(東京) 긴자(銀座)역에 “조센징 찢어 죽이자”는 광고가 걸리면, 우리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왜 지식인과 언론은 이에 침묵하는가? 적어도 지금으로는 일본은 우리에게 중국보다 가깝다. 국민정서에 침 밷음을 당할지언정 이 말만은 하겠다. 몇십만명에 달하는 "병자호란 때 환향녀(還鄕女)"는 잊은채, 왜 종군위안부에만 매달려 노심초사 하는가?
그럼 장차 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는 “강대국은 베푸는 것으로 동맹을 맺어야지, 받는 기쁨으로 동맹을 맺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절대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이 우리를 “동맹”이나 “아픔을 나눌 형제”로 여길까?
천만 만만의 얘기다.왜냐면 그들의 레이더(radar)는 우리를 샅샅이 들여다 보고 있는데, 왜 우리는 사드(THAAD)를 배치하면 안되는가? 펑유란(馮友蘭)의 책 한줄 인용했다고 우방(友邦)이 될 만큼 중국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제 우리의 살길은 강소(强小)국가로 가는 것이다. 이제는 봉신(封臣)의 시대도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이 이웃해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이로울게 없다. 일본이 근대화되었던 것은 지구 반대쪽의 서양학문을 받아들여 구각을 벗고 환골탈태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의 주인은 바로 우리다.국난기(國難期)에 애국자가 넘쳐나는 때도 없었지만, 애국자가 없었던 시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에는 지사(志士)도 없고 책사(策士)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좀 점잖지 못한 표현이지만 하나같이“빨대 들” 뿐이다. 애국 애민의 정서는 간 곳 없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만이 팽배해 있다보니, 국가와 민족을 이어 갈 자녀낳기마저 싫어하는 세상이 되었다. 실질강건했던 스파르타가 바로 이래서 인류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시대를 탓하고 운명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처한 현실이 슬프고 가슴아프다. 우리는 어차피 그렇게 살아왔을지라도, 이런 삶을 우리의 후손(後孫)에게, 절대 물려줄 수야 없지 않은가? 각성하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돌아 보신다. 종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