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삶이란
【종그니칼럼】위대한 힘 사랑할 대상
'있을 때 잘해'란 말은 내 집사람과 한 평생을 살면서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다. 부부가 오순도순 사는게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윤석열님의 지나친 아내 사랑이 나라의 중대한 문제는 물론이고 나라의 인사문제까지 이것은 내조가 아니라 국정문란이 되어 배가 산으로 가는가 싶더니 역사의 유물관에나 있을 계엄령 시국까지 온 것이다. 허구헌 날 자기 아내 때문에 잠잠할 날이 없더니 결국 국민들의 퇴진 운동까지 일어나게되자 민초들의 입을 틀어 막으려고 '12.3계엄 령'을 발포할 만큼 벽창호다.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나리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대미지를 저질러놓고도 윤석열은 미련을 못버리고 '제2의 계엄'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니? 성경에 "욕심이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다. 명태균이 윤석열을 평하기를 "마치 다섯살 짜리가 총을 들고 있는격"이라고 했다.
중국 당(唐)의 현종(玄宗)이 양귀비의 미색에 홀려 국사를 그르쳤듯 윤석열의 아내 사랑 또한 마치 치매환자가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별 못하듯 무식이 일내듯 저지른 계엄령 으로 국가동력의 수레바퀴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려 버렸다. 몽현병환자가 아니고서야 천신만고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국격을 일시에 파멸로 몰아 넣는 이런 망나니 짓을 어찌 저지를수 있단 말인가! 이제 그는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어서 빨리 나라를 이끄는 운전대 에서 끄집어 내려야 한다. 빈대 잡자고 게엄령이라는 불을 싸질러 나라를 천야 만야한 나락으로 실추 시켜 놓고도 그는 눈에 뵈는게 없다. 지난 12월 2일에 지방 어느 시장에 가서 시민들에게 "열심히 뛰겠습니다. 여러분! 저 믿으시죠!" 했던 그가 바로 다음 날 일을 낸 것이다. 망상에 젖어있는 이런 인간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윤지지자들은 윤을 비판하면 좌익분자라고 북한 빨갱이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흥분한다. 나라가 이지경이 되면 누가 좋아할까? 북한 김정은이다. 그럼 누가 이적인가 윤석열이나 그 추종자들이다.
미국은 지금 대한민국 자유의 수호자는 국회를 지키고 있는 시민들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돌이킬수 없는 불장난으로 나라의 위상과 경제는 파탄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구테타는 현재 진행형이다. 알고 보니 국회만 접수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보고 과천 선관위까지 계엄군이 난입 했단다. 이처럼 계엄을 퍼즐하듯 의심병으로 하는가? 계엄은 해제됐다지만 저 정신나간 인간이 언제 또 제2 제3의 계엄을 저지를지 마음이 저며온다. 아! 이 나라가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이렇게 나라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데 윤석열은 급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계속 가속 페달만 밟고 있다. 자신때문에 나라가 지금 저 깊이를 알수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어 온 세계의 눈이 쏠려 있음에도 이에는 배째라 하고 자신의 자리보전에만 눈이 멀어있다 언제 다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가늠조차 할수없다. 나라를 천길 나락속으로 몰아 넣고도 아편에 중독된 자처럼 권력에 도취되어 계엄령을 헌 칼쓰듯 광분하고 있다.
나라 문제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고, 내 아내는 가끔 내게 "당신이 있을때 잘 할테니 내게도 잘해달라" 고 한다. 우리 내외는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의 절반 이상을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에 올 인해 왔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목회지를 따라 목회하면서 앞으로 나는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함께 살아야 겠다."는 바램으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무의탁 양로원'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수년 동안 열심히 준비를 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지 1999년 부터 청평면 삼회리에서 '무의탁 양로원'(건평 240평)을 건축하게되었다.
그때의 기쁨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듯 했다. 이렇게 무의탁 양로원을 운영해 온 십년 세월동안 기쁨과 보람도 컷지만 우리 내외는 온갖 만고풍상을 다 격을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나는 오갈데 없는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는 공간만 마련 된다면 운영문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무의탁 노인들을 모시는 것은 요양원을 짓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식자재 비와 인건비 그리고 운영자금 없이 시작한 나는 이것이 발등의 불이었다. 이러한 내 속내를 가장 먼저 감지한 사기꾼들이 줄지어 찾아와 결국 나를 막다른 코너로 몰아 넣었다. 무의탁양로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길을 모색하던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속절없이 숱하게 사기를 당했다. 그럼에도 일반 목회를 접고 맨 주먹이었던 내가 이렇게 어르신을 섬길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는 게 돈 주고도 살수 없는 섬김의 은혜였다.
그리고 요양원제도 시행문제는 나라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룰수 없는 초미의 현안문제가 되어오다가 드디어 노인 복지의 백미인 '요앙원제도'가 현실화 되자 그 기쁨은 마치 꿈 꾸는 것 같았다. 우리 내외는 무려 십여년동안 요양원제도가 시행되기를 바라고 이 일에 올인을 해왔었기때문에 그 보람과 감회가 남 달랐다.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에 내게 이렇게 긴 연단의 기간을 주시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의암호수가 한 눈에 보이는 춘천 박사로 마을에 90베드의 어르신들을 섬길수 있는 요양원을 설립해서 운영해 온지 어언 16년째 어르신들을 섬겨 오고 있다. 내가 무의탁 양로원을 시작할 때 내 나이 오십대였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땐 모든 것이 내 발아래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나의 나 됨을 잃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내 동기간이나 피붙이들로 부터 내가 해 온 일에 단 한번도 인정이나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서 경상도 하동에서 부산 영도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내 동기간들이 내가 목회하는 곳에 찾아 오지도 전화 한통도 온 기억이 없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인정이 없어서도 아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다 부덕한 내 탓이다.
내가 부산 영도 교회에서 일반목회를 접고 가평군 설악면으로 와서 집을 통째로 세로 얻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에도 내 동기간들은 글쎄 속으로야 그랬겠냐마는 방관자들 처럼 왕래 한번도 없었지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주변의 남남들은 내 하는 것이 궁금하고 염려가 돼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내게 힘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도 우리 내외는 아직 합치기 전이었고 엄마와 나 단 둘이 살고 있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무의탁 양로원을 지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삼회리 양로원으로 이주 하고서는 내 아내도 일반목회를 모두 접고 내게 와서 열악한 형편에도 온 몸으로 노인 복지에 종사하고 부터, 내 동기간들이 어머님이 계시는 방에 내 몰래 전화기를 설치하고 어머니 하고만 소통하다가 종래는 내 몰래 어머니를 자기들의 주거지로 모셔간 적도 있다. 왜 나몰래 그랬을까? 내게 무슨 선입관이 있길래 그랬을까?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팔십이 넘은 나의 누나도 치매를 앓고 있다.
가족들이 소홀히 해서 치매가 온 것이 아니다. 늙으면 대부분 치매가 온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혹시 모를 치매를 미리 예방하고 싶어서다. 그때 울 엄마도 팔십이 넘으면서 치매가 서서히 오기 시작 했다. 그러다가 내가 양로원 운영자금 문제로 서울을 뻔질나게 다니던 어느 날 우리 내외에게 사전 아무 예고도 없이 성남 동기간들이 우리 몰래 엄마를 업고 갔다.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를 지나서 자형에게 찾아 갔더니, 자형이 내게 말하길 "전국 어느 곳에서 양로원을 잘하고 있는 지를 알아 봤다."고 했다. 그럼 나는 무의탁양로원으로 모든 것이 열악해서 좋은 곳이 있으면 그리 모시려 해서 그랬을까? 그렇게 내게 염장지른 말을 들은 후 나는 어머님을 양로원으로 모시고 왔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불신이다. 내가 남의 부모도 모시고 사는데 하물며 나를 낳고 길러준 엄마를 소홀히 할까? 자기들 눈에는 어머니만 보이겠지만 나는 나를 낳아 준 어머니라고해서 내가 모시고 있는 다른 노인들보다 더 잘 모시지는 못했다. 어머니를 향한 맘이야 어찌 같을 수가 있겠냐마는 그러나 나는 거의 똑 같이 섬겼을 뿐이다. 우리 동기간들은 내가 무의탁 양로원하는 것에 관심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를 가지고 섭섭히 여긴 적도 없다. 아무튼 어머님을 동기간들이 모시고 있는 동안 어머님이 드시고 싶은 것이나 딸들이 해 드리고 싶은 것은 모두 해 드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모시고 있을 때는 몸이 홀쭉 하셨는데 몇달이 지난 후 내가 모시러 갈때에는 몸이 몰라보게 비둔해 지셨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를 모셔 온지 얼마 후 어머님은 내가 지켜보는 중에 소천하셨다. 향년 아흔 둘이셨다. 어머님을 고향 아버님 산소에 합장을 하고 무의탁 양로원 현관문을 들어 서니 신발 장에 어머님이 생전에 신으셨던 '단화'가 내눈에 들어오자, 나는 그 신발을 가슴에 안고 참았던 눈울을 어린애처럼 쏟아냈다.
이렇게 어머님을 여의고 수 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어르신들과 함께한 세월이 몸 속에 배어 우리 내외는 어르신들의 얼굴 표정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수 있다. 감사할 것은 요양원을 하고 있는 지금이야 지난 날 무의탁 양로원을 하고 있던 때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다. 요양원제도가 정착된지도 어언 16년이 되어 이제 노인 복지제도로서 자리매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여러면에서 요양원 운영상의 문제가 야기되어 사회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기사를 종종보게 된다. 그러나 쌀 뒤주가 크다 보면 뒤주 안에 잡석도 있고 뉘도 있듯이 길게 보면 노인 복지정책은 온 국민들의 염원으로 시행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소명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반드시 정도를 따라 질 좋은 복지제도로 자리매김 되어 질 것이다
늙으면 몸 전체가 상전이 된다.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서는 침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 얼굴에 자국이 남기도 한다. 그러니 이런 늙은이를 누가 좋아 하겠는가 십여년 전 이야기다. 어느 신학대학원 교수가 있었다. 그는 10년 가까이 장모님을 모셔왔는데 두 처남들이 모시다가 치매를 앓고난 후엔 두 며느리들이 모시기 힘들어 해서 딸 집에서 모신지가 13년이 되었다. 강의가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잠시 후면 보게 될 장모를 떠오르며 "어제는 잘못했지만 오늘은 잘 해드려야지" 다짐하고 장모님 방문을 여는 순간, 똥을 싸서 그 똥을 온 방에 도배를 해놓았다. 오늘 만은 꾹 참고 잘 해드려야지 다짐했지만 그러나 이를 보는 순간 뚜껑이 열리면서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하는 장모에게 할소리 못할소리 퍼붓고 말았다. 험한 몰골로 장모님에게 온갖 옥찌기를 다 했다. 그때의 내 몰골은 영락없는 마귀 얼굴이었을 것이다. 방 청소와 옷을 모두 빨고 목욕을 다 마칠때까지 투덜대다가 평상심으로 돌아 오고서야 치매로 자신마저 잃어버린 장모님께 퍼부어 댄 것이 가슴 저미도록 후회가 되었다. 돌아서서 후회할 것을 왜 또 그랬을까? 그렇게 후회를 하고서도 또 내일 그시간이 오면 나는 영락없이 또 발작을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잘 해준 사람을 소홀히 대할 때가 많다. 그것은 상대방을 만만히 여기거나 자기가 받는 사랑을 당연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의 한 날도 흐렸다 맑았다 하는데 일편단심으로 대하는 사랑이 있을까? 있다! 바로 당신이다!
사랑의 종이 되어보라! 살면서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가끔 아웅 다웅하며 살지라도 옆에만 있다면 행복인 게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후회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 흡사 치매노인 처럼 조석변일지라도 그런 삶이 평범한 우리네 노년의 삶이다. 그래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잘못된 어제의 습관을 오늘 다시 반복하며 사는게 인생이다. 삶의 틀을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보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내일보다 오늘에 마음을 쏟는 삶에 더 진솔했으면 싶다. 그리고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삶을 열어가는 가족 들을 살피는 이것이 바로 "있을때 잘하는 지혜"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행복한 동반자가 되기 위하여 옆에 있을 때 배려와 사랑의 마음으로 인생의 끝자락에서 주어진 삶을 후회없이 살려한다. 행복을 멀리서 찾지 마시라! 행복은 내 마음 안에 있다.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도 실제상황이다.
삶에는 리허설이 두번다시 없는 것은 삶을 대신 살아 줄수없기 때문이다. 아류와 가짜가 득실대는 세상일찌라도 나를 잃지않고 나답게 사는 삶은 아름답다. 단 한 번 뿐인 삶,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사람이 되자! 살아 가는데 그냥 떠 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지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가진게 많아서도 아니고 무엇을 나누어 주어서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사람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마음을 열고 내 안의 고통까지 보여 주고 픈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런 사람에게 눈물을 보여도 내 눈물의 의미를 알아주며 보듬어 주는 그 사람이 바로 '나'이고 싶다.
【종그니칼럼】위대한 힘 사랑할 대상
오늘이 중추가절 추석이라지만, 이곳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 칠 팔십%는, 치매가 있는 분들이다. 대부분이 눈에 초점이 흐려 있다. 엇그제부터 가족들의 추석 면회를 하고 있지만, 귀가 먹어 못 알아 듣고, 치매가 있어 못 알아 보고, 비록 동문서답이지만, 그러나 피붙이 이기에 정감이 흐른다. 그리고 간혹 면담중에 잠자던 기억이 되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어르신들과 가족들과의 정감도 다양하다. 살아 생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 갈 퇴로가 거의 끊겨있는데 가족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끈끈하겠는가!
새벽마다 예배를 드리지만, 어르신들의 예배 참석률은 미미하다. 하지만 무의탁 양로원 때부터 지금까지, 23년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 오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어르신들 모두가, 우리의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에서, 고달팠던 나그네 여정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을 드리기 위함이다. 아예 삶의 애착을 잃어버리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모습을 보면, 속이 아린다.식사를 맛있게 드시는 이도 있지만, 입에 떠 넣어드려야 드시는 이도 있고, 죽이나 미움으로, 혹은 콧줄로 영양식을 하고 산소 호흡기로 생명을 연명하고 있는 이도 있다. 이렇게 인생의 희노애락을 잃어버린 삶의 연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생명은 경이로운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몸의 모든 기능이 소진된 97세의 할머니를 심폐 소생술을 하며, 119를 불러 병원으로 긴급 이송중에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직 삶에 여유가 있을 때, 소외되어 있는 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가져 보시라! 인생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것 저것 과욕을 부리다가 혹여 삶의 초점이 흐려져, 사람도 인생사업도 다 잃을 수도 있는 것은, 범사 모든 것이 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90세가 다 된 할아버지가 진작 자녀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떠나 가고, 곁을 지켜 주던 할머니도 곁을 떠나자, 할아범은 삶의 의욕을 다 잃어버리고, 홀로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밤, 서울에서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데리고 내려 왔다. 방안에 들어서지도 않고 "아버지 손자 며칠만 데리고 있어 주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가 버렸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 하루 세끼 밥을 짓고, 반찬을 하고, 땔감을 모아 불을 지피고,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고 장을 담그고, 집수리까지 했다. 이런 힘이어디서 났는지 할아버지도 모른다. 이젠 손자를 위해 돈도 필요했다 그래서 열심히 농작물을 길러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그래야 손자 놈 학비를 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졸지에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역할이 바뀌고부터 삶에 생기가 돌고,늙은 몸둥이가 고목에 잎이 피듯 근육도 생겼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어언 삼 년이 훌쩍 지나간 어느 날 서울 아들이 다시 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두툼한 봉투를 내어 놓았다. 그날 밤,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드리고는, 다음날 새벽 지 자식을 데리고, 바람처럼 훌쩍 서울로 떠나버렸다. 살아야 할 이유였던 손자놈이 졸지에 없다보니, 할아버지는 삶의 의욕을 모두 잃어 버렸다. 끼니도 거른 채 마냥 방에 누워만 있었다. 이렇게 두 주가 지난 후, 할아버지는 끝내 소천하시고 말았다. 사랑할 사람이 떠나자 삶의 의욕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며칠전 나는 추석을 앞두고 몸져 누워 있는 동생과, 부모님이 묻힌 선산을 둘러보고자, 몇년만에 고향을 찾았었다. 고향을 찾을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 몸둥이가 늙어가고 있는 것처럼 고향도 갈수록 쇠락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도 병들어 가고, 고향마저 늙어가고 있어, 마음이 황량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설 곳을 잃어 소외되어서 자살을 한다고, 그러하다. 사랑할 사람이 없으면 설곳을 잃어 살 소망을 잃게 된다. 사랑할 사람만 있으면, 사랑해야하니까 죽지 않는다.몸의 근육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은, 사랑에 이끌려 일 할 때 이완되고, 싫은 일을 할 때 위축된다 고 한다. 마음이 넉넉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 삶이 원하는 것 그것은, 바로 정성과 사랑을 쏟을 누군가가 있을 때, 벼랑 끝에서도 힘이 나고, 나를 세우고 나를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지난 날 내가 무의탁 양로원을 하다가, 경매처분되어 오갈곳 없는 어르신들 생각에 살 소망을 잃었다가, 모실 곳을 찾았을때, 빚쟁이들에에 수없이 시달렸지만, 다시 어르신들을 섬길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차, 힘든 줄을 몰랐었다. 비록 하는 일 마다 실패를 했어도, 내가 섬길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힘이 나는 것이고, 비록 성공을 했으나,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내 곁을 떠났다면, 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당신은 삶의 의미와,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그래서 삶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대상을 찾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