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지구를 살리자!
【종그니칼럼】이승만의 遺詩.
금년 벼농사에서 "벼멸구 방제약을 세번이 아니라 다섯, 일곱 번을 뿌려도 약발이 서지 않는다."고 농부들이 가을 내내 아우성이었다. 벼멸구에 항체 즉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벼멸구를 박멸하려고 수없이 약을 뿌렸는데도 말짱해요. 이렇게 지독한 놈은 처음 이다" 며 마치 '살인마'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언사를 쏟아 내는 이 사람은 오로지 한 평생 벼 농사로 살아 온 베테랑 농부다. 쌀 값은 계속 폭락하고 있는데 아무리 방제 약을 쏟아 부어도 벼 멸구는 되려 더욱 기승하여 두 손을 들어 버린 늙은 농부가 토해내는 신음 소리다. 벼멸구 방제 약을 예년에는 서너차례 정도 살포하면 잡혔는데 올해에는 세번이 아니라 일곱번을 했는데도 되려 영양제를 맞은 것처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 애 간장이 타들어 간다.”며 잔뜩 쪼그라든 얼굴을 하고서 벼멸구로 한 해 농사를 망쳐버린 농부의 절규다. 농약이라는 극단의 처방을 해도 벼멸구에 이미 새로운 면역력인 항체가 생겨 기존의 농약으로는 약발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쌀이 남아 돌고 있는데 언제나 농부들이 과잉생산에 전력투구하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문제다. 농산물도 그 토양의 지력에 맞는 양을 생산케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상품도 과잉생산을 하게되면 "공급이 수요를 만든다."는 법칙은 무너 진다. 무너지는 것은 이것 만이 아니다. 전남·전북·경남 등 벼멸구 피해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117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이제 농부들로서는 어떻게 손을 써 볼수 없는 불가항력의 재앙으로 다가 오자, 전라남도에서는 “이상기후로 한 해농사를 망친 재앙에 대해 정부에서 '농업재해 인정'대책을 세워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부터 벼 농사를 해 왔는데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다." 며 전남 해남군 화산면에서 30㏊의 벼농사를 짓는 김명훈씨(52)는 최근까지 벼멸구 방제만 7번이나 했다고 한다. 예년 같으면 세번 정도만 해도 벼멸구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벼멸구 방제약을 수없이 살포를 했는데도 벼멸구가 더욱 기승을 부려 한해농사를 망친 근본원인은 농약을 적정량 이상으로 살포하면서 까지 목표를 과잉 생산에 두었기때문이다. 지력에 맞게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정량을 훨씬 초과한 농약살포로 벼멸구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곤충들 즉 익충들까지 한꺼번에 떼죽음의 수난을 당하고 동시에 지구마저 병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 몸이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암세포가 기승을 부리듯이 지구도 오로지 편의주의와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현대 문명의 물질만능 일변도에 의해 무제한으로 양산되는 지구오염물질의 양산으로 지구의 온난화를 부추켜 대자연의 순환능력을 잃어 버린 후유증에 의한 이상 기온으로 지구는 점점 더 병들어 가고 있다. 옛부터 우리나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할 만큼 농사 중에서도 벼 농사를 으뜸으로 삼았다. 그리고 밭 작물로는 보리농사로 춘궁기(春窮期)를 견뎌냈다.
옛부터 이집트의 풍요는 나일 강에서 왔다. 그래서 "애굽의 풍요는 나일강의 선물이라."했다. 애굽의 삼각주 농경지가 옥토인 것은 나일 강물이 기름진 흙을 가득 머금고 애굽의 광활한 농경지를 흠뻑 적시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경지를 애굽땅에 비할까! '전북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복되라! 기름진 땅!"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대부분 흙이 '마사토'이다. 그래서 깊은 산속에서 흐르는 계곡 물도 입대고 마실수 없다. 우리나라는 그런게 없다. 그래서 참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드론 방제 장비를 갖추고 있는 김명훈씨는 “해마다 벼멸구는 방제하면 잡혔는데 올해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쌀 값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방제 비용은 덩달아 계속해서 늘어나고 벼 멸구로 수확량마저 줄어드니 살 길이 망막하다." 이처럼 농민들과 지방자치 단체가 한 목소리로 창궐한 벼멸구로 인한 피해를 ‘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정부에 하소연 하고 있다. "오로지 농약에만 의존하는 농업" 아마 농약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 100년은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농약' 이것은 마치 양날의 칼과 같다. 이기(利己)에 젖은 인간들은 오로지 목전의 이익 창출에만 꽂혀 대자연인 지구가 병들어 가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가 지구가 회생불능의 지경에 이르러서야 대자연이 병들면 자신들에게 어떠한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계산이 생긴 후에야 야단법석을 하고 있지만 또 조금만 지나면 욕심의 잠에 빠져 마치 자기 생명을 갉아먹듯 인간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무수한 공해로 지구는 하루가 다르게 병들어가고 있다. 병든게 어찌 지구 뿐이랴! 벼멸구가 농약에 면역력이 생기듯 인간들은 하나같이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다.
대자연의 세계에 지구 지킴이의 허브와 같은 벌 나비와 같은 익충들이 없게 되면 어떤 재앙이 오게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한 해농사의 수확량을 높이려고 지력(地力)의 한계를 훌쩍 넘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뿌려 대는 농약 때문에 해충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모든 익충들까지 몰살되는 것은 또 얼마일까? 아마 셈할수 없으리 만큼 엄청날 것이다. 금년에 전남과 전북 경남 충남 등 벼농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290㏊)의 117배에 달하는 논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만큼에서 멈춘게 얼마나 다행인가? 전남도가 벼멸구 피해에 대한 재해 인정을 건의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라고 한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지난 2일 “도에서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긴급 방제비 63억원을 투입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피해 확산을 막을수 없었다”고 안타까와 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정부의 입장도 매우 난감할 것이다. 금년 여름과 같은 이상 기후가 다음 해에는 또 없으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갈수록 이런 기후변화가 더 심각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지난 달 기준 전국 벼멸구 피해 면적은 3만400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남이 1만9603㏊로 가장 많고 전북 7187㏊, 경남 4190㏊, 충남 1656㏊ 피해가 발생했단다. 벼멸구는 벼 줄기에 구멍을 뚫고 즙을 빨아 먹기때문에 벼가 말라 죽는다. 그것도 하필 벼 이삭이 올라 올 때다.
이런 상황에서 산지 쌀값은 80kg 기준 한가마)에 지난해 10월 21만222원을 기록한 이후 11개월 연속 하락해 9월에는 17만4592원까지 폭락했다. 쌀 생산량이 줄어들고 쌀값마저 떨어지면 농민들은 삼중고를 앓게 된다. 그래서 벼멸구 피해를 국가에서 농업 재해로 인정해주면 농민들은 방제 비용과 생계비, 농업정책자금 이자 감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은 벼멸구의 대대적인 발생이 이상 고온 때문으로 결론을 지었다. 벼멸구는 최저 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 가야 활동과 번식이 비로소 감소하게 된단다. 올해 7~9월 전남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2.6도 높은 27.2였다. 7월 말과 8월 초 바람을 타고 중국에서 유입된 벼멸구 산란 횟수는 높은 기온의 영향으로 2회에서 3회로 늘어났다. 이처럼 벼멸구 문제는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온 지구적인 문제이다. 또 금년에는 7.9일 만에 알에서 부화해 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갔을 때보다 5일이나 더 빨라졌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정부는 2014년과 2022년도 두차례에 걸쳐 벼 이삭 도열병을 재해로 인정해 지원하였다. 면서 일상화 되는 이상기후로 농촌에서는 기후 재난이 이미 현실이 되었으니 참혹한 농촌 현장의 고통이 덜어지도록 정부의 신속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재해가 해마다 일상화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의 한 위성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생성을 약 137억년 정도로 추산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불과 137년 만에 지구를 아주 망가뜨린 것이다. 옛부터 창업보다 사업을 이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수수만년(137억년)을 살아 온 이 지구를 불과 백여년(137년)만에 이렇게 거덜 낼수가 있을까? 이 땅위에 수많은 생명체중 곤충 중에도 벌 나비들처럼 인간 생존에 절대 동반자여야 할 익충들도 있고 파리 모기나 벼멸구처럼 해충들도 많다. 우리 몸안에 있는 세포도 생명을 살리는 세포가 있고 생명을 파멸시키는 암세포가 있듯이 말이다. 자연 환경이 좋아질수록 모든 생명체는 더욱 건강해 지겠지만 그러나 자연 환경이 나빠지거나 병들면 해충들과 암세포들로 인하여 인간과 자연환경은 더욱 더 나빠질 것이다. 벼멸구를 박멸하기위해 농약을 여러차례 살포했는데도 벼멸구가 없어지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이제 지구의 환경이 그만큼 나빠지고 또 해충들의 면역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인간의 마음들이 하나님이 주신 성품과 일치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자연환경에도 벼멸구처럼 병들어가고 대자연도 익충보다 해충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 피부에 와 닿아서 만시지탄이지만 그래서라도 마음의 변화가 있게 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수백억만년의 지구의 나이에 비해 불과 백여년에 걸쳐 인간들이 지구 생태에대한 아무 개념 없이 마구 쏟아 낸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 즉 지구를 오염시키는 물질들로 인하여 지구는 지금 회생 불능의 중병을 앓고 있다. 세상에 대한 안목 즉 이 땅에 대한 유한한 육신의 소욕이 점차 강해져 '탐욕'이라는 암적 존재로 변질되면서 인간들은 너나없이 오로지 유한한 세상 것들에 대해서만 눈이 밝아져서 인간 사회는 물질만능에 의한 탐욕으로 가득찬 악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품고있는 자원들이 지구의 나이 137억년에서 겨우 137년 동안에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 오로지 인간들의 기호와 허욕을 채우기 위해 과잉생산 됨으로 지구의 자원이 바닥이 나고 지구에게 회생불능의 중병을 가져다 주었다. 벼멸구를 없애기 위해 농약을 살포하듯 인간이 자연환경에 대한 배려 없이, 다시 말하면 오로지 모두가 공생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 보존하여야 할 지구 생태계 등 공공의 유익에 대해서는 오로지 눈을 감고, 오늘과 내일을 책임져야 할 우리들은 언제나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눈앞의 사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자자손손 살아가야 할 지구에 대해서는 너나없이 모두 두손들을 놓고 있다. 지구를 이렇게 파멸시키면서 만들어 낸 것으로 인간들은 타락한 육신의 허욕을 채우려 하나 그러나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간들의 만족을 모르는 허욕이다. 그러나 허탄한 마음을 비워 내면 하나 뿐인 지구를 살려 내는 길과 이제라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될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은 우주의 영광이 되기도 하고 우주를 더럽히는 오욕이 되기도 한다.
【종그니칼럼】이승만의 遺詩.
내가 나이가 들어 늙어갈수록 마음속으로 가장 연민과 존경이가는 분이, 바로 대한민국 국부 우남 이승만이다. 아무리 신망 받는 공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이기에 공과(功誇)는 다 있다. 그는 말년의 허물을 다 덮고도 남을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위업을 이루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위업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내가 존경하는 법조인이자 문인인 양승국변호사님의 글에 실린, 우남 이승만의 한시 몇수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남은 구한말의 인물로 한문만을 익혔다면, 시대의 벽을 뛰어넘을 혜안을 갖지 못했을지 모르나, 그는 독립협회를 통하여 당시 외우내환의 국사문제에 관여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나라를 살릴 길을 찾다가,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미국으로 거너가, 프린스턴대학에서 시대를 읽는 안목을 넓혔으니, 그는 분명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었다. 나는 예전에 우남이 쓴 詩와 한시(漢詩)를 접해 본적이 있긴 하지만, 오늘 양변호사님을 통하여 우남이 남긴 이토록 많은 한시를 대하기는 처음이다.
*風無手 搖樹木
(풍무수 요수목)
月無足 橫蒼空
(월무족 횡창공)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를 흔들고,
달은 발이 없어도 하늘 창공을 건너간다."
우남이 6-7세 때 지은 3언시의 한시이다. 여닐곱살의 어린이가 이런 시를 지었다니! 율곡이 8살에 지었다는 '화석정' 시가 있는데, 그 보다 어린 우남에게 이런 시상이 있었다니! (나는 여덟살때 동몽선습을 겨우 읽혔다.) 우남은 1899년 고종 황제 폐위 사건에 연루되어, 옥중에서 한시를 많이 지었다고한다. 우남은 1899년 탈옥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평생을 감옥에 있을뻔 했는데, 1904. 8. 9. 특별사면되어, 5년 7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감옥이란 공간에서 시상을 많이 떠올려 한시를 쓸수 있는 그야말로 악 조건을 자기 연단의 기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秋霜志氣劍俱寒 (추상지기검구한)
死非難死節難 (일사비난사절난)
如當此世安閒在 (여당차세안한재)
丈夫義膽有誰看 (장부의담유수간)
"서릿발 같은 기개가 칼끝처럼 날카로워,
죽는거야 어려울 바 없지만 절개에 죽기 어렵네!
이같은 나라의 위기에서 편안을 바란다면 누가
그를 의장부라 하리요."
감옥에서 지은 "偶吟(우음)": 즉 '우연히 읊다'라는 시다. 우남은 영오의 몸으로 있으면서도, 외세 앞에 힘없이 휘둘리는 고국의 모습에 비통해 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시상을 종이에 옮기면서, 이 한 몸 나라를 위해 바치리라는 결연한 다짐의 詩다.
*論心論事知心虛 (논심론사지심허)
無數人人獨自居 (무수인인독자거)
學力淺卑難可得 (학력천비난가득)
問君鴻度更何如 (문군홍도갱하여)
"마음을 다하여 나랏일을 논하려면 마음을 비울 줄 알아야 하건만, 사람들이 자기 생각의 틀안에 매여 있네 학문 힘이 얕고 천하면 마음을 비우기 어렵거니 그대에게 묻노니, 넓은 도량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述懷(술회)
白眼看人宇宙虛 (백안간인우주허)
無人何處與人居 (무인하처여인거)
交人莫恨知心少 (교인막한지심소)
知己知人更不如 (지기지인경불여)
"백안으로 사람을 보면 우주가 텅 비게 되어 어디서건 더불어 살 사람이 없게 되나니, 사람 사귐에 내 맘 알아주는 이 적다고 한탄하지 말지니 나를 알아 주는 것이
내가 남을 알아주느니만 못하느니."
*民國二年至月天 布哇遠客暗登船 (민국이년지월천 포와원객암등선)
板門重鎖洪爐煖 鐵壁四圍漆室玄 (판문중쇄홍로난 철벽사위칠실현)
山川渺漠明朝後 歲月支離此夜前 (산천묘막명조후 세월지리차야전)
太平洋上飄然去 誰識此中有九泉 (태평양상표연거 수식차중유구천)
"민국 이년 동짓달 하와이에서 남 몰래 배를 탔네. 겹겹 판자문 속에 난로가 따뜻하고 사면이 철벽이라 칠흙처럼 어두운데, 내일이후는 육지의 산야도 아득할 텐데 이 밤 따라 세월이 더디기만 하구나. 태평양 바다위를 배에 몸을 싣고 떠 가니 여기에 저승 있음을 그 누가 알랴." 우남이 상해로 가는 배 위에서 지은 시이다.
우남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배를 탄 것이다. 이때 우남은 남 몰래 배를 탔는데(暗登船), 나라 잃은 백성이라 정식으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어 몰래 배를 탄 것이다. 그런데 우남은 시 말미에 주석을 달아놓았다. ‘一時有華人尸體入棺在側(일시유화인시체입관재) 그는 중국인의 시체가 든 관이 옆에 있었다.)’ 아! 우남은 일군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관 옆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남이 태평양 한 가운에서 지은 시 한 편이 더 있다.
*一身泛泛水天間 萬里太平幾往還 (일신범범수천간 만리태평기왕환)
到處尋常形勝地 夢魂長在漢南山 (도처심상형승지 몽혼장재한남산)
"하늘과 물 사이 태평양 만경창파에 이 한 몸 떠돌며 몇 번이나 오갔던가!
어느 곳 가든지 이 한몸 둘곳 없어 꿈속에선 내 넋은, 언제나 내 조국 남산에 머물러 있네." 1935년 늦가을에 쓴 시다.
우남은 1904. 8. 9. 특별사면령으로 감옥에서 나온 후, 그해 11월 미국 유학을 겸하여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해 8월 다시 태평양을 건너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1912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의 압박을 피해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 그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위 시에서처럼 관 옆에 숨어서 또 태평양을 건넜다.
그런데 우남은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했지만, 다른 임정 요인들과 견해가 달라 탄핵되어, 6개월 만에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럼 이때는 무슨 일로 태평양을 건넜을까?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였다. 그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우남만큼 태평양을 자주 오간이도 드물었다. 우남은 어디를 가든지 마음은 언제나 자기가 떠나온 조국을 그리워 하였다. 詩에서 몽혼(夢魂)이라고 하였는데, 우남은 꿈속에서는 언제나 조국의 남산을 거닐고, 꿈을 깰 무렵에는 남산을 떠나기 싫어 남산의 소나무를 꽉 껴안은채 아침을 맞았다.
광복 후 미당이 우남의 전기를 쓰려고 경무대를 드나들었다. 그때 우남이 미당에게 이 시를 들려주었는데, 미당은 이 시를 듣는 순간 “내 가슴 속이 먹먹히 북받쳐 오르며, 저절로 두 눈에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한시와 가까이하던 우남이니 광복 후 조국에 돌아온 감회를 시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겠다.
*‘옛 집을 찾아(訪舊居)’라는 시를 보자.
桃園故舊散如烟
奔走風塵五十年 (도원고구산여연 분주풍진오십년)
白首歸來桑海變
東風揮淚古祠前 (백수귀래상해변 동풍휘루고사전)
"도원 옛 친구들이 연기처럼 흩어져 풍진 세상 오십년을 바삐 지내다 흰 머리로 돌아 오니,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해버린 옛 사당 앞에서 봄바람에 눈물 짓네."
1946년 가을에 쓴 시이다.
도원(桃園)은 우남이 살던 동네를 말한다. 우남이 살던 남산 기슭의 동네는 복숭아밭이 있어 복사골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시로 쓰다보니 桃園이라고 한 것이다. 청년으로 고국을 떠나 白首가 되어 귀국했으니, 우남의 감회는 깊었을 것이다. 옛 친구들은 연기처럼 간곳없이 사라졌고, 고향은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한 것처럼(桑田碧海) 몰라보게 변해버렸으니, 우남은 이제 겨우 남은 옛 사당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짓는다.
그런가 하면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우남은 1951년 봄 부산에서 ‘전시의 봄(戰時春)’이라는 시를 쓴다. 전연은 생략하고 후연만 보자.
*城市遺墟餘古壁
山村燒地起新田 (성시유허여고벽 산촌소지기신전)
東風不待干戈息
細草遍生敗壘邊 (동풍부대간과식 세초편생패루변)
"무너진 시가지엔 파괴되다만 벽만 남아 있는데,
불에 탄 산촌 마을에선 새 밭을 일구네.
전쟁 그치지 않았건만 봄바람은 불어와 피 흘려 싸우던 들에 새 잎 돋아 나네"
전쟁은 온 시가지를 파괴하였다. 폐허가 되어버린 시내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어지러히 뒹굴며, 벽체만 간신히 남아 있는 모습은 처참하리만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전쟁은 산촌 시골마을도 피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혹독한 전쟁으로 숱 검뎅이만 남은 산촌에서도 봄이 오니, 그런 비극 속에서도 남은 자는 살아야겠기에,밭을 일군다. 봄바람은 전쟁과 아랑 곳 없이 무심히 불어 온다.
피 흘려 싸우던 동족상잔의 들에서도 상처를 헤집고 새 잎이 돋는다. 詩를 감상하면서 한 폭의 그림이 떠오른다. 이처럼 시로서 한폭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우남의 漢詩가 돋보인다. 나는 우남의 한시를 감상하면서, 우남이 말년에 노욕을 부리지 않고, 아름다운 시의 세계에서 살다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나도 늙어 가는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먼 이역만리 하와이에서 그가 세운 대한만국이 그리워 피 눈물을 흘리며 유명을 달리하신 국부 리승만 영전에 삼가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