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청맥 박원철 시인

【종그니칼럼】인생은 본향을 향한 긴 여행이다.

2024-03-18     김종근 목사

나더러 목사가 아니라 선생이라 호칭하는 이가 있다.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 생경한 호칭에 당황했지만 계속 듣다보니 선생이란 이 칭호가 무척 살갑게 들렸다. 나를 이렇게 호칭한 이가 바로 계간 시집 '청맥' 발행인 박원철 대표다. 내가 지난 해 9월 쯤에 서울  청랑리역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첫 인상은 청맥 밴드에서의 본 모습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어서 첨엔 무척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온화한 모습과는 달리 하반신을 전혀 쓰지못하는 '지체부자유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원철 대표에대해 사전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박원철 대표는 나의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전동차와 한 몸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아마 어렸을때부터 적응이 잘 되어서일까? 박원철대표는 '지체 부자유'라는 불편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였다.  첫 대면에서 평범하게 그리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에 나는 그에게 흠뻑 매료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 상봉역에서 그와  두번째 만남이 있었다. 나는 그와 겨우 두번의 만남을 통해서 그의 긍정의 마인드와 여유가 넘치는 모습 그리고 항상 활짝 웃는 모습에서 나를 흠뻑 빠지게했다. 그의 고향은 전남 진도였다.  나의 사랑하는 후배 하권호와 고향이 같았다. 그는 진도 내륙 깊숙한 정 중앙 마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진도엔 제주도의 한라산과 같은 큰 산이 없어 진도의 드넓은 벌판은 섬이 아니라 그대로 육지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은 불과 100m거리에 대형마트가 있고 바로 그 앞 건너편에는 아주 목좋은  빈터가 있었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 마을에서 경제가치가 가장 좋은 노른자 땅인데 그가 이십대였을 때 그 땅이 급매물로 나오게 되자 그는 기다렸다는듯 서둘러 그 땅을 매입하였다.  이로 보아 그는 청년의 때부터 세상을 읽는 안목이 뛰어났으며 활달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푸른 꿈의 젊은이였다.  

젊은 날의 꿈이 있어 사는 맛과 활기를 끊임없이 추구해 온 그는 마치 숭어가 바다를 만난듯 젊음을 쏟을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자 그의 청사진대로 2층 상가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오픈과 동시에 고객중심으로 마트를 운영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을 자기 사업에 요긴한 사람으로 만드는 사업수완을 발휘하여 오래지 않아 대형마트를 제압하고 그 일대의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나는 그로부터 그가 살아 온 젊은 날의 히스토리를 들으면서 매사 긍정의 마인드가 어떠한 역사를 연출하는지를 마치 그의 얼굴에서 드라마를 보는듯 하였다. 그리고 그를 들어쓰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사를 읽었다.  

그후 그가 그곳에서 사업수완을 발휘하는 동안 하늘은 그에게 보다 더 큰 무대를 연출할수 있는 꿈을 열어주셨다.  바로 진도군 소재지가 있는 진도 제일 초등학교 정문 앞에 그 학교 교장선생의 아끼는 땅이 매물로 나왔는데 그 땅은 요지중의 요지였지만 덩치가 너무컸다. 그래서 그는 그 땅을 도로가 붙어있는 앞과 뒤 절반으로 쪼개어 도로가 붙어있는 땅을 그 값으로  흥정하여 마침내 사게되었다. 다시말하면 그 큰 땅을 다 사지 않고 경제가치가 가장 큰 땅을 잘라 구매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그 땅의 효용 가치를 충분히 살릴수 있는 건물을 지어 바로 이곳에서 젊은 날의 사업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는 이처럼 진도에서 전도가 양양한 젊은 날의 꿈을 키웠다. 비록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진 못했지만  상대의 마음과 세상흐름을 읽을 줄 아는 두뇌회전이 주변사람보다 언제나 한발 앞섰다. 이처럼 비록 몸은 부자유였지만 그의 두뇌는 언제나 한 발 앞서나갔다.  이처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마침내 그는 서울로 올라와 오늘을 위해 준비해 온 청운의 꿈을 펴고자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 먀침내 mbc 방송 작가로 밤 낮없이 자신을 길러 그는 이 분야에서 작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되었다. 문학분야에서의 그의 천부적 재능을 스스로 캐내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진면목을 서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딱 두차례 만났지만 이처럼 그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총명한 지혜가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만나고서 그에게도 한 주에 한편씩 내가 쓴 수필을 보냈었는데 그가 펴내고 있는 '청맥' 계간지'에 벌써 두번째 실었다고 한다. 특별히 이번 계간지(季刊誌)에는 내가 쓴 수필 두편을 같이 실었다고 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나 부탁한 것을 말없이 실행에 옮겨준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에서의 신뢰와 끈끈한 온정이라 생각된다. 이 날 박원철 시인은 나더러 시를 한번 써보라고 권했다.  詩를 감상한 적은 있어도 내가 시상을 떠올려 본적은 없지만 수년전에 처음 습작으로 썼던 것을 여기에 옮긴다.         
      
     제주도 돌담같은 그런 사람.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라 하지요
돌, 여자, 바람.
이 중 젤 많은게 돌이지요
그래서 삼다도엔 
골목 길도 집 울담도
다랭이 논 밭도  
모두 다 돌담이지요
그냥 돌 생긴대로 쌓은 돌 담이  
드센 바닷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돌과 돌사이에 뻥뻥 뚫린 틈이 
바람 길이 되어 주어서랍니다.
그런 돌담을 바람도 굳이 허물고 
지날 이유가 없지요
제주도 세찬 바닷 바람이
혹 시멘트 담벼락을 무너뜨려도
돌담을 허물지 못한 이유는 
돌담 틈이 바람 길을 열어 두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구멍뚤린 돌담같은 헐렁한 사람이 좋다. 
보기에는 담장처럼 반듯해 보여도
빈틈이 많아서 그 틈 사이로 
찐한 정감이 솔솔 불어오는 그런 사람이 좋다.
사람과 사람사이가 돌담처럼 드센 바람도 삭혀내야
살맛나는 세상이 되잖을까?
풍요속의 빈곤이라 했던가 
지금처럼 세파가 매서울 땐 
이를 삭혀내는 틈새 많은 
돌담같은 사람이 그리버져요.
완벽한 사람이나 속이 꽉찬 사람보다
나사가 풀린듯 헐렁한 사람 
그래서 마냥 편하게 기대고 픈 
여백이 많은 그런 사람
바람이 돌 담에 사그러 들듯 
구멍이 뻥뻥 뚤려 어떤 소락질에도 다 흘러보낼 줄 아는
돌담같은 그런 넉넉한 사람이 그리버져요
바로 당신같은 사람을 요.

 

【종그니칼럼】인생은 본향을 향한 긴 여행이다.

어찌 보면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덤을 향하여 달음질하고 있다."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숙명적으로 생로병사를 끌어안고 무덤을 향하여, 질주하는 인생들을 보노라면, 마치 이 땅에 천년만년 아니 무한수로 살 것처럼, 하루하루 자기 생명을 갉아 먹으면서, 무상이 지나가야 할 인생의 다리 위에 철옹성을 쌓으려는 어리석음을 본다.

누구나 예외 없이 건너야 하는 죽음의 강을 저만치 두고, 노심초사하며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미덥지 않은 마음을, 부질없는 것으로 오늘도 채우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 밥을 먹고 배를 채워도, 이틀 날 아침 배설하고 다시 배를 채우듯, 세상 것으로 아무리 채우고 또 채워도, 인생은 누구나 예외 없이 빈손으로 다 죽는다. 집에서도 죽고, 일터에서도 죽고,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에서도 죽는다. 이 땅에 온 순서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죽는다. 불의의 사고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나는 한겨울을 제외하고 봄 여름 가을 동안은 텃밭에서 지낸다. 7~8월 한낮의 여름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다. 그래서 한낮의 더위를 피하여 해 질 무렵에 텃밭에 나가면, 이번엔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 모기들이 기승을 부린다. 하나를 피하면, 또 다른 것들이 줄지어 몰려온다.

생로병사를 몸 안에 끼고 무덤을 향하여 가는 거, 이게 바로 인생이다. 무덤을 향하여 가는 인생에 바람처럼 구름처럼, 첨엔 네발로, 다음엔 두 발로, 종내에는 세 발로, 그리고 마침내 무덤에 이를 것을! 달려가도 하루, 천천히 가도 하루, 구우일모(九牛一毛) 같은 하루가 모여 인생 여정이 끝나는 것을, 뭐가 그리 급하신가!

이 몸뚱이가 내 상전이 되는 날, 나는 내가 몸담은 요양원에 그냥 이대로 눌러살면 된다. 염려될 것 아무것도 없다. 매사 `그러려니` 하고 산다. 한여름 시원한 것을 한껏 맛보고 싶다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 천보만 걷다가, 홀랑 벗고 찬물로 물 멱을 한번 해 보시라!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한낮 땡볕에서 일하다가,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는 요양원 실내로 들어오면, 아! 어찌나 시원한지! 천국이 따로 없다!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를 실감하고 있다. 인간은 더우면 그늘진 곳을 찾아 더위를 식히면 되지만, 뿌리내린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식물들은, 살인적인 태양 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뿌리박힌 그 자리에서, 뜨거운 태양열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 풋 고추 따는 거야 그렇다 치고, 상추 잎새는 한낮의 땡볕 더위에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 나는 노인들 점심 식단에 올리려고, 그 잎새를 따고 있다. 잎새를 딸 때마다 참 많이 미안하다.

우리는 지금 공동묘지가 있는 북망산으로 줄달음쳐 가면서도, 언제나 더 더하는 습성이 있다. `이만하면 됐다.` 하는 만족이 없다. 생각해 보라! 시력장애자의 소원은 오로지 하나, 볼 수만 있다면! 지체 부자유자 또한, 나도 남처럼 걸 수 만 있다면!

나 역시도 앉아 있다가 일어서 라면, 무언가를 붙들어야만 일어설 수 있다. 언감생심 뛰고 달리는 것은 이젠 내 몫이 아니다. 그저 아직 걸을 수 있음에 감사 할 뿐이다. 백인 백색의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 시야를 넓혀 세상을 보라! 하루에도 별의별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살아 있어 저마다 가는 길이 다른 것처럼 보이나, 모두 다 무덤을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인생의 종착역에 와 있는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아흔 한 분을 모시고 있는 나는, 인생사의 축소판을 한자리에서 날마다 보고 있다. 어언 23년여 동안 어르신들을 모시고 살면서, 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듯이, 한평생을 살아온 한 생애의 애환이, 노인마다 주름진 얼굴 속에 고스란히 다 담겨 있다. 그래서 이젠 얼굴만 봐도 그의 살아 삶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입소한 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었어도, 대부분 자녀와 세상 끈을 놓지 못하니, 비우지 못한 마음 한 쪽에 한으로 배어 있다. 인생의 종착역에 와, 겨울 인생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봄 여름인 줄 알고, 이 세상과 별세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이미 끊어져 버린 자녀에게 돌아갈 황금교를 기다리고 있는 서글픔을 본다.

휴대전화!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수시로 자녀들과 소통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생각해 보라! 이 세상과 하직을 눈앞에 두고, 기껏 무덤까지만 배웅이 전부인 자녀들에게 미련 두지 말고, 무덤 너머 나의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까지 인도하여 주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함에도, 오늘도 다수의 노인은, 어린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듯 학목이 되어, 자녀들의 얼굴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쯤이면 철을 알까? 아시는가? 인생이란 본향을 향한 긴 여행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