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C 개혁신학】(9)웨스트민스터 총회 총대들의 신학적 입장들과 그 고백서의 성격

2023-05-17     리폼드 투데이
  김영규 박사 프로필  ▶독일 궤팅켄대학(Th.D.)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eq.)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74회 졸업 ▶총신대학교 신학과(B.A.), 74학번.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 Director, Research Institute for the Bible and Reformed Theolegy(www.ribrt.org)

1.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대해서

첫째로, 웨스트민스터 총회 총대들의 신학적 입장은 17세기 일반적인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처럼 작정(decretum)과 예정(praedestinatio)을 구별하였다. 이 구별은 작정의 대상들로 인하여 구별된 것이다. 일어나고 존재해야 할 모든 것들(omnia qui fieri et subsistere debent)에 관련하여서는 작정아래 기술하고 있고, 사람들과 천사들에 관해서는 예정이란 용어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예정 안에서 선택(electio)과 유기(reprobatio)가 구별되어 있다. 이런 신학적 입장을 따라 H.H.Heidegger는 전자를 일반적인 하나님의 작정(decretum Dei generale)이라 하고 후자 즉 예정의 작정(decretum praedestinationis)을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decretum Dei speciale)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런 용어의 사용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구별을 수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하이덱거의 경우 작정의 순서에 있어서 선택에 대한 작정이 창조와 섭리에 대한 작정이 앞서고, 선택에 대한 작정보다 역시 타락의 허용에 대한 작정이 앞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입장들이 바로 도르트회의의 결정을 따르고 있는 한 방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같은 도르트 결정을 따르는 레이든 신학자들의 입장과 약간 다른 방식이다. 지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둘째로 작정과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칼빈이 섭리에 관한 입장에서 보여주었던 내용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작정에 관한 입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즉 작정이 피조물의 의지에 강압(violence)을 행하는 방식이 아니고 역시 제 2의 원인들의 자유성이나 우연성을 없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운다는 것이다. 칼빈이 암시하고 있는 내용을 이런 구체적인 표현으로 고백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셋째로 창조와 섭리, 타락에 앞서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자들의 예정과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예정에 대하여 말하고, 이에 따라서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타락의 허용에 대한 작정이나 선택과 유기에 대한 작정을 말하지 않는다. 창조나 섭리에 대한 작정을 말하지 않는다. 작정과 예정이란 근본적으로 대상에 따른 구분이고 전자는 일어날 모든 일(whatsoever comes to pass)에 대한 결정이기 때문에 넓고 후자는 좁은 대상이며 그 수효가 확증된 예정이다. 이에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타락 전 선택설(‘they who are elected, being fallen in Adam’, 제 3장 6항)임에 분명해 지고 있다.

넷째로 정확히 칼빈의 입장에 따라 창세전 예정에 택자들의 구원의 성취방법도 포함하고 있다. 즉 택함을 받은 자들이 타락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유효적으로 부르심(내적소명=중생)을 받고 의롭게 되며(칭의) 양자가 되고 성화되어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보존되(견인)는 구원의 방식까지 예정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3장 6항, 11장 4항).

다섯째로 중세 스콜라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예정론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예정은 그의 예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자유롭고 불변의 자신의 뜻에 따라 작정되고 예정되었으며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여섯째로 그리스도가 오시고 죽으신 것은 이런 택자들을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11장 4항).

2. 창조와 섭리에 대해서

첫째로 창조의 주체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둘째로 창조의 목적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지혜와 선의 영광의 계시에 있다.

셋째로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이다.

넷째로 창조의 마지막에 인간의 창조가 이루어 졌고 인간의 영혼은 합리적이고 영원불멸하다.

다섯째로 그에 따라서 인간이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을 내용으로 갖는다.

여섯째로 최초로부터 인간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가졌고 그 법을 이룰 능력을 가졌으며 이 마음에 기록된 율법 이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런 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였으며 거기에 인간의 행복이 있었다.

3. 언약의 통일성

율법시대와 복음시대에 서로 다르게 경영되었으나, ‘그 실체에 있어서 다른 두 은혜언약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륜들 아래서 하나요 동일하다’는 고백을 웨스트민스터 고백서가 아주 확고히 했다(7장 5-6항). 언약의 실체는 그리스도로서 그는 어제나 오늘 아니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시다. 그가 성육신하기 전에도 그의 사역의 공로과 효과와 혜택이 유사 이래 모든 시대에 살던 택한 백성들에게 전달되어 내려왔다고 고백하고 있다(8장 6항). 따라서 구약의 성도들의 구원의 방식들에 있어서도 신약시대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입장(11장 6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케우스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여 율법시대에도 그 예식들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충분하고 유효하여’ ‘약속된 메시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충분한 사죄(full remission of sins)와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을 받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7장 5항).

교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문답을 하는 대요리문답들에서도 인간의 죄와 곤비의 상태에서 모든 인간이 멸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는 논리로부터 그렇게 타락하게 계기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가 부분에 행위언약이 소개되고 하나님의 단지 사랑과 자비로부터 그로부터 그의 택자를 해방하시고 그들을 구원의 상태로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두 번째 언약으로서 은혜언약이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제 31문에 그 은혜언약은 두 번째 아담으로서 그리스도와 맺은 것이요 그 안에 그의 씨로서 택자들 모두와 함께 맺은 것으로 그 언약을 작정과 예정에 종속시키는 신학적 체계를 소개하며 문답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답의 체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답들의 순서에 관한 것인데, 같은 은혜언약이 구약과 신학 사이에 다르게 경영이 되었어도 은혜언약의 근본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면에서 제 32문이 앞서서 문답되었다는 점이다. 그 문답 내용이 바로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택자들이 어떻게 동일하게 구원을 받는가가 고백되어 있다는 것인데, 어떤 신구약 시대의 성도들 사이의 죄 용서의 차이가 없다는 논리가 아니라, 구원의 성취와 적용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차이가 같다는 대략들이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는 것이 주목이 되고 있다.

즉 “두 번째 언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그가 자유롭게 죄인들에게 중보자만이 아니라, 그에 의한 생명과 구원을 제공하시고 수여하시며, 그 안에 그들을 가입시키는 조건으로서 믿음을 요구하실 때, 그들 안에서 다른 모든 은혜들과 함께 그 믿음을 이루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의 진리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증거로서 그가 그들로 구원에 이르도록 정하신 길로서 모든 거룩한 순종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모든 택자들에게 그의 성령을 약속하고 주시는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문답에서 신구약의 실체의 통일성이 단순히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외면적 기독론적 통일성에 대한 고백이 아닌, 칼빈의 실재적인 신구약의 실체적 통일성인 교리의 통일성에 가까운 이해를 분명히 반영하고 있는 문답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모든 논의에서 분명한 것은 유아와 유아세례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유아에게까지 선택사상이 적용함으로 도르트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자세를 분명히 한 것이고 더구나 예정론의 경우 소수에 불과하는 타락 전 선택설을 받아 드림으로 F. Gomarus의 입장을 고양하고 Calvin의 바른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