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부패한 인격
[종그니칼럼] 자연에 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제가 터졌을 때는 긴장감을 갖고 예의주시하며 지대한 관심을 갖다가도 기다림의 한계점에 이르게 되면 그 뜨겁던 관심과 열정이 일시에 식어지면서 일의 결과를 불문하고 모두 망각의 세계로 묻어 버린다. 정치인들이나 사업가들은 이를 마치 '전가의 보도' 처럼 아주 용의주도하게 활용한다. 그때마다 언제나 고스란히 피박을 쓰는 것은 그 사건의 언저리에 살고 있는 일반 민초들이다. 지난 날 우리가 아주 가난했던 시절 그래서 아파트란 이름은 듣지도 못했던 시절 그때 우리가 살던 집들은 대부분 시멘블럭이나 흙으로 만든 아주 초라한 움막집들 이었다. 1960년대 내가 처음 서울로 올라오던 무렵에 그 당시 서울에서 제일 크고 높은 건물은 서울역 맞은 편에 있던 대우빌딩이었다.
오늘을 그 시절에 비하면 상전벽해 (桑田碧海)라 할 만큼, 서울을 비롯한 온 나라가 이루 말로 표현할수 없는 세계 인류사에도 그 유례가 없는 대격동 대전환의 세대였다. 그래서 근대화 이전 찌질이 가난했던 그 시대에 청계천 판자집이 비바람에 무너지는 일들은 다반사 였다. 그러던 우리 대한민국이 지난 날의 가난의 어둔 역사를 말끔히 씻어내고 명실공히 세계 최첨단 사회의 중심에 우뚝 서 있어 지금은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첨단 건물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살아 숨쉬는 건물! 참 꿈같은 얘기다. 그런데 이런 대 변혁의 초현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에 걸맞는 새인류로 거듭나야 하는데 문화는 바뀌었지만 인성도 '안전 불감증' 여상히 50~60 년대의 의식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 분야의 산업들은 최첨단의 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 '내면의 인간성' 내지 '인격구조'는 국격에 맞는 '새 인류'로 향상되기는 커녕 본연의 인간성 마저 잃어가고, 점점 더 인간이 아닌 경제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문화는 진보하는데 인간성은 날이갈수록 퇴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사회적 정의는 마냥 요원 해지고 나라의 권위도 스승도 어른도 없는 오로지 힘센자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탈 인간사회 즉 육신의 본능을 따라사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부실공사로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고 건설 현장에서 또는 다른 산업 현장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인재 사고가 터지면 며칠 동안은 온 나라가 야단법석을 떨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우리는 사건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린다. 이런 안전불감증이 낳은 부실한 사회안전망때문에 사회 전체가 각분야에서 엄청난 진통을 격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기술부족도 재원의 부족도 아니다.
황금만능과 나사풀린 안일한 이기주의때문에 우리의 심령은 썩어 문드러 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과 사 모두가 안전 불감증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최 첨단을 걷고 있는 지금도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건물 시공 감리사도, 관할 당국도 부정을 밝혀내야 할 공공안전망의 눈들이 안전 불감증에 감염되어 모든 사회기강이 문드러져 있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현대화 되어 최첨단의 길을 걷고는 있지만 그러나 인간 내면의 타락한 심령은 아무리 씻고 닦아도 그 검은 심보 DNA는 현대문명으로도 최첨단 과학으로도 고칠수 없다. 마지막 방법은 딱 하나 법이나 윤리와는 전혀 생경한 지능 있는 로봇에게 이를 맡기든가 아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혼으로 만나는 것이다. 얼마 전 전남 광주에서 신축 중이던 고층 아파트 붕괴 사고가 있고 난 후 전국이 용광로처럼 여론을 달구더니 수개월이 지나자 다시 나사 빠진 구태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나라의 지축을 흔들 정도의 대형사고가 나도 불안한 국민의 여론은 반짝 그때 뿐이다.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신축중에 붕괴된 39층 아파트들을 일년이 훌쩍 지난 이제야 해체작업 에 들어간다 는 소식이다. 이같은 전대미문의 광주에서의 아파트 대형 참사를 격고도 또 다른 아파트 시공사가 또 설계 상의 철근을 빼 먹고 아파트 타설공사를 끝내고는, 불안에 떨고 있는 입주 예정자 들에게,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전혀 문제 될게 없다."는 아주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모습에서 오늘의 아파트 건축현장에서의 기강이 완전히 무너져 손에 익은 부실과 눈가림에 친숙해져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사건 발생은 지난 4월 철근을 설계대로 넣지 않아 무너져내린 인천 지하 주차장 사건처럼, 경기도 이천의 한 신축 아파트 역시 첫 설계와는 달리 설계도면대로 철근을 다 넣지 않고 타설이 끝나자 이 부실 아파트의 입주 예정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보도다.
지난 6월 모일에 방송된 S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경기도 이천의 880세대 규모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의 작업자 A씨는 시공사가 부실 시공을 했다며 이를 당국에 신고 했다. 기존 설계와 달리 철근을 무더기로 빠뜨리고 콘크리트 타설을 마쳤다는 내용이였다. A씨는"철근이 세로, 가로, 그 다음에 경사로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된 상태에서 90% 정도는 이미 타설이 끝나 버렸다"며, 깊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시공사 관계자는, "인천 지하 주차장 철근 누락 사고처럼 문제가 될 만한 큰 수준은 아니고, 쉽게 말하면 보강 철근 정도의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인허가 기관인 이천시청도, "설계와 다르게 시공된 부분이 발견됐지만,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며 "철근 누락이라는 부분에 띠 철근(Tie bar)을 넣는 대신 수평 철근과 수직 철근을 직접 엮은 것이다"고 밝혔다. 그래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입주 예정자 들은 처음 설계도면과 아주 달라진 설계에 따라 공사를 진행한 것에대하여 불안감 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설계 도면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안될 것을 왜 궂이 의혹살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을 위해 있는 시청이 왜 주민들편이 아닌 설계 도면을 따르지 않은 시공사의 대변인 역할을 하느냐는 것이다.
한편 지난 4월 무너진 인천 검단 신도시의 신축아파트 지하 주차장도, 감리 과정에서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초음파를 이용해 콘크리트 내부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철근 일부가 누락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이유로 첨단 장비 활용을 의무화 하는등 안전 검증 매뉴얼을 개선해야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사람이 사는 집을 지으면서 목전의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어 부실한 아파트를 지을 궁리를 하는가? 실로 자기 살을 파먹는 어리석음이다. 지금도 각종 토목공사에서 건축 수주를 따놓고 다시 하청 재하청 까지 주는 나쁜 관행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는 것은 사회 모두가 공동정범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심령이 썩어 문들어져 있는 이유는 총체적 비리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런 사회악에 대한 안전 불감증때문이다. 더구나 무엇이 사리사욕인지 옳고 그름의 개념조차 모르기 때문에,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나쁜 악마의 DNA가 있어 욕심앞에선 치욕스런 일도 서슴치 않는 모든 사회악들의 불감증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속에 태어나 자연속에 살면서, 자연을 까맣게 모른채 살고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춘천 서면의 박사마을은, 자랑거리들이 아주 많다. 그중 의암 호수가에는, 우리나라 고금 문인들의 유시(遺詩)들이 즐비하게 비(碑)에 새겨져 있는 '문화공원'이 있는데 고산 윤선도의 '물.바람,구름'을 의인화 해서 쓴 詩도 있다. "바람 결이 조타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구름 비치 조타 하나 머물적이 하노매라, 변치도 그치지도 않는 것은 물 뿐인가 하노라." 그는 이조 숙종때 의암 송시열과 쌍벽을 이루었던 정치가 였지만 말년을 보길도에 칩거하면서 옥구슬 같은 수많은 자연시를 남겼다.
우암 송시열은 대쪽같은 선비로 변덕이 심했던 숙종의 눈 밖에 나서, 멀리 제주도로 귀양가다 보길도 옆 노화도 야산자락의 바윗돌에 당시 자신의 심경을 쓴 '글쓴 바위'가 있다.
八十一歲翁
一言爲大罪
蒼波萬里來.
내가 20대 중반에 우연히 보길도와 노화도에 들렀다가,이 글을 읽어내려 가면서, 너무도 비분강개 해서, '글 쓴 바위'를 붙들고 통곡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 장문의 글을 탁본을 떠서 소장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분실되고 없다. 우리나라를 단 한줄로 표현한 노래가 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지금 온 산야는 그야말로 만수산 드렁칡이 얽켜지듯 우람찬 삼림들이 우거져 있다. 이제 더 이상 삼림을 훼손하지 말고 누리자! 봄엔 연초록으로 여름엔 짙은 푸르름으로 가을엔 빨간 단풍으로 겨울엔 나목으로.
인간은 언제부터 옷을 입게 되었을까?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한후 무화과 잎으로 몸의 수치를 감추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요즘같이 더운 날엔 홀랑 벗고 살았으면 좋겠다."싶다. '무소유의 삶'도 그 중 하나 이리라! 법정스님이 그렇게 살았다 던가? 사실 가진 것이 많으면 자꾸 일이생겨 번거롭게 느껴질때가 많다.인간생활의 3대요소(三大要素)인 의식주(衣食住)만 있으면 그 이상 뭘 더 바랄까? 집이 크면 뭐하나? 앉고 누울자리 사방 2m면 족하고 먹고 쓸께 많으면 뭐하나? 하루에 쌀 한되박이면 족한 것을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자연이 주는 것에 자족하며 살 수 만있다면, 더 할나위 없으리라!
메마른 언덕배기 혹은 길가에 '터가 나쁘다' '메마르다'한마디 불평없이 사람의 발에 짓밟혀 온몸이 찟겨져도 흙, 물, 공기와 햇빛으로 꽃을 피우는 이름 모를 들 풀들을 보라! 그리고 겨울이 오면 삶의 에너지를 뿌리에 모았다가 다시 봄이 오면 작년 그 자리에서 움을 틔우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라! 우리의 삶이 이 들풀처럼 온전히 자연의 섭리에 맡겨 살면 오죽 좋을까! 하지만 육신을 지니고 있는 인간은 육신의 소욕을 좇기에 언제나 더더 하는 습성이 있다. 혹자는 지금 내게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하지만 아니다. 들풀처럼 햇볕과 물과 공기와 함께 대자연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지 이니한가! 시골을 가 보라! 놀고 있는 땅들이 지천에 있다. 괭이와 삽 낫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햇볕과 물과 공기는 모양이나 질량은 다르지만 그 속성은 비슷하다. 햇볕과 공기와 물은 틈새만 있으면, 어디든지 다 들어 간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햇볕은 따뜻함과 사랑의 대명사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 나 골고루 비춘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 나무나 풀, 동물은 햇볕을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
물은 겸손하다.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그리고 마침내 大海에 이른다. 중국 춘추시대의 노자는 “최고의 善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라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남겼다. 물은 자기가 없다.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랗게 되고 네모진 그릇에 담기면 네모진 모습이 된다. 그러나 고유의 성질이나 본 바탕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다. 물은 평소에는 잔잔하고 수평을 유지하지만 한 번 일어서서 움직이면 당해 낼 장사가 없다. 흐르는 물은 先後를 다투지 않는다. 그래서 생긴 말이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다. 겸허함과 대도(大道)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공기(空氣)는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지금 이 순간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코다. 눈은 잠시 감고 있어도 되고 귀도 잠시 닫고 있어도 되고, 입도 잠시 말을 하지 않거나 하루쯤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지만 코로 5분만 숨을 쉬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햇볕은 지하 깊은 곳에는 못 들어 가고 물도 높은 곳에는 못 올라가지만 공기는 어디든지 다 간다. 못 가는 곳이 없다. 아무리 촘촘하게 짜 놓은 그물이라도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명상(冥想)에서의 최고의 경지가 '자유함'인데,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하고 분별심이 없고 이기적이고 다분히 폭력적이며 진영논리가 판치고 있다. 인내심, 배려, 이해, 남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언행을 보면, 저들이 과연 사회의 중심에 있는 자들인가 싶다. 마음이 오염되니 말이 오염되고 말 같지 않은 말이 횡행하니 사회가 더욱 엇나가고 있다. 햇볕과 물과 공기처럼 자연을 닮아가자. 그리하여 우리의 태고의 마음(하나님 형상)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나를 찾자!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