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세모에 생각나는 편린들.

【종그니칼럼】삶의 목적

2023-12-27     김종근 목사

내가 해방 이듬 해에 태어나 민족상잔의 참담한 육이오 전쟁을 격었지만, 그땐 아주 어렸을 때라 부모님을 따라 인적이 없는 깊은 산골짜기 등으로 피난을 다닌 기억은 있어도 전쟁의 냉혹하고 사선을 넘나들 정도의 전란은 격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 나는건 낮엔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오고 밤엔 빨치산들이 산에서 내려 와서 집안을 샅샅이 뒤져 식량이나 된장 간장 등을 몽땅 가져갔다. 민초들은 들 풀처럼 바람을 따라 누울뿐이다. 조국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 국민의 삶은 끝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후 휴전선이 그어졌다지만 이것은 남과 북의 정권이 들어선 국경선이 되고 만것이다. 이런 비현실이 어느 때까지 갈 것인가?  언제 발화할지 모르는 휴화산처럼 휴전은 길어져 일흔 해가 넘도록 전쟁이 없었다는 것은 실로 극히 이례적이라 할것이다.  분명 종전과 휴전은 다름에도 이 나이 되도록 긴장의 끈을 놓진 않았지만 긴장속에서 칠십여년을 전쟁없이 살아왔다는게 참 신기할 뿐이다.  일제 36년의 질곡같은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은 모든 것을 수탈 당하고 초근목피로 그 모진 세월을 견뎌오다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빼앗긴 조국을 되찾게 되었건만 우리에게 조국해방은 과분한 것이었던가? 기쁨도 잠시 다시 쌩뚱맞은 이념에 의하여 한 민족이 남북으로 쪼개지고, 결국 이것이 동족상잔의 살륙 전쟁으로 비화되어 자칫 우리 대한민국이 공산화 되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있게된 것은, 이 전쟁이 단순한 남북전쟁이 아니라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과의 충돌로 세계대전의 성격을 띤 이념전쟁이었다. 수년에 걸친 각축전 끝에  종전이 아닌 휴전선을 그어 놓고 지금까지 일년 365일이 아니 순간 순간이 일촉 즉발의 위기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이 무려 칠십여년이 되었다.  민족의 단절로 잃어버린 통한의 70년 세월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칼과 괭이를 양손에 쥐고서 전쟁의 폐허를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일구어 낸 축복들을 어찌 우연이랄수 있겠는가?  

1950년 6월 25일 새벽 미명에 북한 공산군들이 마치 밀물처럼 쳐들어와, 무방비 상태에 있던 서울이 삽시간에 함락되고, 우리 군은 압록강까지 밀려나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천병만마와 같은 유엔 평화군들이 속속히 들어와 전세가 역전되었다. 한때 압록강까지 전 국토를 회복했던 기쁨도 잠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다시 원위치로 38선이 휴전선으로 그어졌다. '한반도 전쟁'때에 유엔 평화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그래서 지금은 훌쩍 90세가 넘은 미국인 할아버지가 있어 나는 오늘 그분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이 할아버지는 육이오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자 미국으로 돌아간 후, 여러 일신 상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홀로 손녀 딸을 양육하면서, 손녀 딸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생을 살았다. 그동안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고 아들과 손녀 세식구가 단란하게 살다가 아들이 먼저 하늘 나라로 가면서 어린 손녀를 할아버지 혼자 양육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은 결손가정에서 외기러기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손녀는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유독 남 달랐다.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속에 자란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버팀목이셨다. 그래서 늘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최근 들어 옆구리를 잡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그 러시냐고 물어 보았더니, 할아버지가 20대 때 한국 6.25 전쟁에 파병 되어 중공군과 싸우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았는데, 당시 전쟁중의 야전병원의 의술로는 몸 옆구리에 박힌 탄환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아 그냥 몸에 지닌 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미 종군 의사의 진단으로 지금까지 그냥 살아오셨다 는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 몸이 늙어가니 면역력이 점점 떨어져 그로 인한 후유증들이 생기면서 몸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손녀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국의 의료비는 턱없이 비싸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어 마음만 조리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수술을 받을수 있는 길을 다방면으로 알아 보던 중,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국은 의술도 좋을 뿐아니라 수술비나 병원비도 미국에 비해 엄청 저렴하다는 정보를 듣고, 손녀는 할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 치료를 해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무조건 할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 저곳 여러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손녀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병원에 드디어 할아버지가 입원케 되었다.  그 기쁨 그 희열은 말할수 없이 컸다. 필요한 모든 검사를 마친 후 담당 주치의사의 첫 마디가, "몸에 총알을 담고 어찌 지금까지 견디셨느냐" 며 그 이유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로 중공군과 싸울 때 얻은 부상을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한 훈장으로 알고 살아왔다."고 설명을 하자, 깊은 감명을 받은 담당의사가 할아버지의 손을 손을 잡으며 "저희 할아버지도 6.25 참전 용사셨는데 총을 맞고 후송되었지만 결국 열악한 의료 시설과 낙후된 의술로 돌아가셨다"면서, "선친의 유지를 따라 의사가 되었다."며, 할아버님께서 조금만 수술이 늦었어도 염증이 생겨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해질 뻔 했다" 면서 "아주 잘 오셨다."며 "꼭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구국의 참전 용사를 수술할 수 있게 되어 한없는 기쁨" 이라며 눈시울 을 붉혔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나자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회복 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할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완치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퇴원 수속을 하면서도, 손녀는 입원 및 수술비가 얼마나 나왔올까 에 온 마음이 가 있었기 때문에 떨리는 맘을 달래며 계산을 하러 창구로 갔더니 수납 창구에서 계산서가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 주었다. 수술비가 얼마나 나왔을까? 긴장하며 진로비 봉투를 열어 보니 아니? 계산서에 "진료비 0원" 이라고 적혀 있잖은가? 깜짝놀라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떨리는 음성으로 원무과 담당에게 물으니, "담당 주치의사가 치료비를 모두 대납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편지 한 장이 있었는데 "저의 할아버지와 함께 공산군과 맛서 싸우다 남긴 상흔은 바로 우리 대한 국민들에게 자유를 누리며 살수 있게 해 주신 상징으로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지켜 주신 은혜에 보답코자 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깜작 놀란 손녀는 곧장 주치 의사를 만나고자 찾았지만 끝내 담당 의사는 만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퇴원하여 미국으로 귀국하시면서 "전쟁 당시에도 한국 군인들은 듬직한 병사들이었다."며, "대한민국이 놀랍도록 발전했다는 소문은 듣긴 했지만, 의료분야를 비롯하여 모든 분야에서 이 정도로 발전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면서 "그 당시 산(山)들은 모두 민둥산으로 붉은 흙과 돌들 뿐이었던 전쟁의 잿더미에서, 칠십여년의 세월동안에 확 달라진 울창한 산림과 빌딩 숲들을 보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 했다."면서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가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보람이 있다."며, "한국의 의사로부터 수술을 잘 받고 여생을 건강하게 지낼수 있게 되었다"면서 큰 감동을 받고 미국으로 가셨단다. 옛 선현(先賢)들이 말하기를, "하나를 보면 열을 알수 있다."고 했듯이 "한국 의사들은 학교 교육 버금가게 가정 교육을 잘 받으며 성장한 것 같아 대견스럽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면서, "자신을 정성껏 수술해 준 그 젊은 의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70여년전 우리 신생 대한민국을 지켜주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까지 달려와서,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주기 위해 15만여 명이 죽거나 실종 혹은 부상을 당하면서 지켜준 고귀한 자유 대한민국이다. 이때 강원도 전지역은 전사한 시신들로 산을 이룰만큼 치열했었고, 그중 춘천에서도 전투가 가장 치열하여 춘천 온 땅들이 시신들과 그 피로 얼룩져 사람이 다니는 길들이 모두 핏길이었단다.  우리민족은 옛부터 이민족들로부터 끊임없이 국난을 격었지만, 유독 이 육이오 전쟁은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피로 물들어진 대한민국은 '육이오'라는 세계대전의 엄청난 전란을 격으면서 어렵게 쟁취한 유일무이한 내 조국이기에 너무도 소중하고 고귀한 내 나라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 강토에서 동 시대를 살면서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이념과 육신의 소욕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본래의 나를 털어 버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한국을 바로 찾아야 할것이다. 우리는 지난 한 세기를 지내오면서 가난을 대물림 하며 살다가 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내가 소지해 온 땅이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자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도 많았다. 지금도 땅 때문에 권력을 이용하려는 파렴치한 탐욕들을 볼때 우리를 슬프게하고 있다.  이는 마치 신생 대한민국의 헌법을 선진국 헌법을 본따 만든 제헌헌법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어른의 옷을 입힌 것처럼 현실과 맞지 않은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헌법과 민형사법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없는 축복이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과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제도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한없이 열악한 신생 대한민국의 터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냈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지난 12월 20일 겨울 한파가 몰아치던 날 부산지법 동부지원 박주영 판사는 같은 노숙자를 폭행한 혐으로 기소된 ㅇ ㅇㅇ노숙자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인생'이라는 책 1권과 돈 10만원을 그 노숙자 손에 쥐어 주며, 이제 그만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나라에서 주는 생활급여를 받아 자립하도록 하시라.'고 했단다. 또 어제 성탄절 새벽에 서울 도봉구 방학동 21층 아파트와 3층에서 불이나 3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이중 4층에 사는  삼십대 아빠가 두살배기  아이를 소방관들이 펼쳐 놓은 이불 위로 떨어뜨리고 아내도 그렇게하고, 본인은 생후 7개월된 아이를 안고 뛰어 내려 다행히 아이는 살렸지만 정작 본인은 머리를 크게 다쳐 숨졌다고 한다.  아! 하늘이시여!  어찌하여 이 세밑 엄동설한에 이 큰 슬픔을 주시나요!  금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세밑 끝에 다가온 살인적 한파와 함께 크고 작은 가슴 아픈 사건들이 우리 맘을 슬프게 하고 있다.   지금 이 혹독한 겨울을 온 몸으로 받으며 현실의 벽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의 손 길을 내밀어 주면, 그 사랑이 이 추운 겨울을 견디는 사랑의 이불이 되어 주리라!

【종그니칼럼】삶의 목적

시편 57장에서 다윗은, "내 영혼이 깰지어다! 내 몸의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잠에서 깨어나야 삶의 비파소리, 수금 소리가 튕겨 나올 것이다. 여명(黎明)이 밝아 오는 하루의 첫 시작인 새벽은, 아직 미명에 눈 뜬 자만이 볼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대자연의 은총이다. 똑같은 시대에 대자연의 삼라만상 이 살아 숨 쉬는 이 땅에 초대받은 우리는, 과연 대자연이 펼치는 파노라마의 서곡을 여는, 엄청난 새벽 여명을 누리며 사시는가!

나는 대개 오후 9시가 되면 하루 일을 마무리 하고, 밤 10시쯤이면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정을 지나 새벽 3시쯤이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여는 여명에 일어난다. 첫 새벽에 창문을 활짝 열면, 요양원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뒷산과 의암호에서 불어오는 아직 아무도 들이키지 못한, 싱싱한 산소를 한입 가득 머금으면, 온몸이 시리도록 싱그럽다. 내가 몸담은 요양원은 정말 축복받은 곳이다. 앞엔 드넓은 의암호수가, 마치 저 남해안의 한려수도처럼 펼쳐져 있고, 뒤엔 수림이 울창한 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천혜의 자리다.

바로 앞 의암호수 중심부에 자리한 섬 중도와 이곳 서면 일대는, 우리 민족의 옛 조상 선사시대인들이 남긴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의 얼과 숨결이 스며 있는 소중한 유물들이, 수없이 묻힌 채로 문명한 여명의 시대를 맞이했음에도, 물욕에 장님이 된 현대인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개발이란 이름으로, 포크레인등 각종 토목공사 장비로 무참히 파헤쳐지고, 마치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하찮게 여기는, 이 욕에 눈먼 무지렁이들에 의해, 수만 수천 년 동안 땅속에 묻힌 채로 여명을 기다리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레고랜드`라는 괴물이, 수수만년 민족의 얼과 숨결이 담긴 찬란한 유적을,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이제는 그 땅마저 빼앗긴 채, 굴착기에 뭉개지고 바스러져, 저 역사의 뒤안길인 망각의 세계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태고시대 조상들의 얼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밤이 새기기 전에 새벽이 오리라는 것은, 알아도 눈을 뜨지 않으면, 여전히 깊은 밤중일 뿐이다. 가고 오는 것의 이치를 알아도, 작은 것에 연연해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여전히 미망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어제 없는 오늘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민족의 족적, 민족의 역사를 잊어버리면, 바로 민족의 얼을 잃어버린 것이다. 개발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절벽의 시대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눈앞의 사리사욕과 권력의 맛에 도취하여,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어둠을 몰아내는 여명을 모른 채, 우리는 오늘도 안일의 잠 속에 빠져 있다.

옛날 유럽의 중세시대 때, 귀족들에 의한 장원(莊園)제도가 있었다. 이 장원 안에는 농노나 소작 농민들이 있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지은 농산물을, 대지주인 귀족들 집에까지 운반비가 많으므로, 소작농들에게 돈으로 환산해서 받다 보니, 농산물가가 뛸수록 돈의 가치가 떨어지자, 지주들은 당시 모직물 산업이 활기를 띠자, 모직물 공업에 눈독을 들인 지주들은, 양을 기를 계산으로 소작인들을 몰아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이상향)`에서

"양이 사람을 몰아내고 있다."라고 질타했다. 이처럼 물욕에 눈이 멀어 순리를 거스르면, 여명 즉 역사를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순리를 망각하게 된다.

토머스 모어는 잇속에 눈이 먼 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질타한다.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씨 뿌릴 때 지주는 누구였나?"

여러분! 이 세상 어디에도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일 뿐, 내 것이란 없다. 내 것이라 여기고 있는 내 몸뚱이도 실상 내 것이 아니기에,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까맣게 모른 채, 생로병사를 따라 사는데, 내 것이라 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것이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특히 젊은이들은, 대우주의 끝없는 사랑과 창조라는 조물주의 섭리로, 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났으므로, 타고 난 자기 몸을 아낌없이 활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하여야 한다.

그 탄생을 위해 대 자연은,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생명체에 필요한 수많은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대자연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동참할 것이다, 우리 또한 이 생성 명멸에 합류하여, 서로 사랑하다 사명이 끝나는 날, 왔던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살면서, 자기에게 생명과 사명을 주신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삶의 목적과 대상을 발견한 삶은 아름답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있는 근본적인 외로움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다. 이처럼 인생 최선의 목적을 찾아내야만, 비로소 인생의 진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직 여명이 있기 전에는 고요만 있을 뿐, 밝음이 오기 전에는 생명은 작동하지 아니한다. 여명이 있기 전에는, 일세를 풍미한 영웅호걸이라도,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의 앞길에는 언제나 반드시 가야 할 길과 가서는 안 될 길, 두 길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판단했을 때, 바른길로 갈 것인가, 가서는 안 될 길로 갈 것인가,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가 결정되고, 그때야 비로소 새 여명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하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바로 삶의 목적을 어디에다 둘 것이냐를 정하는 것이다. 비전(Vision)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자만이, 여명을 밝힐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