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사회를 사회답게.

【종그니칼럼】살맛나는 세상을 살다가자!

2023-04-28     김종근 목사

 자동차 길에는 반드시 차선(車線)이 있다. 이 차선은 달리는 차가, 절대로 넘어서는 안되는 생명선이다. 하얀선, 노랑선, 주홍선, 모두 다 선(線)이 가지는 의미는 다소 다르긴하지만, 그러나 이 차선은 운전자 모두가 엄격히 지키라고 그어진, 서로 간의 '약속선'이다. 그런데 이 지킴이를 번번히 탈선하는 이들이, 대부분 음주운전 내지 졸음 운전자 들이다. 단 한번의 음주 운전도 절대로 용납할수 없기에, 이는 미필적 살인행위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음주운전 사고를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 저지른 자들은,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알콜중독에 의한 안전 사고 불감증 상습범들이라 할 것이다.지난 해 6월 대구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은, 살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릴 정도로, 가정이 풍지박산이 났음에도, 이 사건을 맡은 재판관은, "사람 죽인 상습 음주 운전 3범을, 고작 3년형을 선고 하는데 그쳤다.이렇게 선고한 재판관도 안전 불감증에 걸린 상습범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지난 해 대구에서 음주 운전 사고로 아내 잃은 남편은, "가해자는 형사 합의가 없었음에도, 공탁을해서 징역 3년에 그쳤으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대구 달서구 감삼동에서 승합차 운전자가, 갑자기 교통섬 안쪽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걷던 보행자를 들이 받은 사고가 났다.   횡단 보도는 보행자가 안심하고 건널수 있는 유일한 약속 선이다. 당시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56%의 만취 상태였다. "택시 기사인 아버지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어머니가 돌아가신 장소를 어쩔 수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게 된단다.   그 때마다 통곡을 하시니까,    제대로 운전할 수가 없었죠.결국 아버지는 40여년 해 오시던 개인택시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대구에서 반 평생 택시를 몰면서, 경미한 접촉사고만 있었을 뿐, 졸거나 인명사고를 낸 적 없었던 아버지가, 어머니 사건 충격으로, 사고를 낸 것이다.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을, 녹색 불인 줄 알고 그냥 들이받는 어이없는 실수로, 차량 앞쪽이 완전히 찌그러져 폐차하면서 생업을 접었다.

현재 이 피해자 가족들은,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자동차 얘기만 나오면 우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어이없는 잘못으로, 온 집안이 풍지박산이 나버린 것이다.  A씨는 "저희 어머니를 사망케 한 음주운전 3범 가해자는, 고작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은 반면, 피해자 가족은 생업도 접고, 하루 하루 고통 속에서 살아 가는게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문제의 사고는 지난해 6월, 대구 달서구 감삼동에서, 승합차를 운전하던 남성 B(69)씨는, 죽전 네거리 교차로에서, 교통섬 안쪽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걷던 A씨의 어머니를 들이 받았다. A씨가 경찰을 통해 전해 들은 당시 속도는, 시속 90㎞ 정도였다고 했다. B씨의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56%의 만취 상태였고, 이전에도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음주운전 상습범이었다. 그런데도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 2단독 김여경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특정범죄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특가법)상 '음주 운전치사' 의 처단형 범위(징역 3년~30년 이하)중 가장 낮게 선고한 것이다. 

A씨가 제공한 판결문을 보면, 양형에 반영된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피고인이 운행한 차량은,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고, 보험회사와 피해자 유족 사이에 민사상 손해배상에 관한 합의가 성립하였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추가로 3,000만원을 형사공탁하였다"는 점이 제시됐다.그러나 유족 측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가해자인 B씨는, 사과는 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몇 달 뒤에야 B씨의 매형이 나타나, 합의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며, "만났을 때 기대와 달리 사과한마디도 없어, 합의하지 않았다"고 했다.이처럼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치여 사망케 했으면,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함에도, 사과 한마디가 없었다. A씨는 보험금에 대해선 "저희는 '합의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도, 보험회사 측에서 계속 연락이 왔고, '보험금을 수령하더라도 재판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받았다" 며, "판사는 그것을 합의로 보니까 저희는 매우 당황했으며, 결국 "가해자와 보험회사 측에 이용만 당했다"고 말했다. "보험금도 합의로 간주한다는 걸 알았다면,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의 견해도 다르지 않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고, 형사합의 없이 공탁 3,000만 원을 참작해, 징역 3년을 선고한 것은 적절치 못한 형량으로 보인다"고 양형에 의문을 나타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합의가 안 될 경우, 가해자가 공탁금을 내는 건 일반적인 행위"라며, 두 차례 음주운전 이력을 가진 자가, 세 번째 음주운전을 해, 결국 사람을 죽게 한, 매우 중대한 범죄라는 사안과, "음주 운전을 살인 행위로 보는, 국민들의 눈 높이를 판사가 감안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은 B씨의 형량에, 전관예우가 영향을 준 것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유족 측은 "가해자가 선임한 변호사의 이력을 확인해 보니,판결이 이뤄진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장' 출신이었다"며,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사단이 이러함에도, 치외법권에 있는 법관들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후유증이 이토록 심각함에도, 판사는 엄정한 판결을 외면하고, 상습 음주운전자까지 솜방망이 형에 그치고 있는 것이, '이게 법이냐?'고 포효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음주운전자 면허 재 취득을 불허하고, 엄벌해야"할 것이다. 몇해전부터 어머니 사망이후 A씨는, "자꾸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본인도 어머니처럼 차량이 뒤에서 갑자기 돌진해 오는 사고를 당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특히 횡단보도 건널 때는, 두세 걸음 걸을 때마다 뒤돌아 본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병 걸려 못 살 것 같다"고,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것도 위험하고, 기억력 감퇴가 있는  늙은이가 운전을 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래서 이를 점검하는 것이라면, 기억력 감퇴를 어찌 음주운전자에 비하겠는가! 나 역시도 지난 해에, '치매 진단서'를 첨부해서, 3년짜리 운전 면허증을 재교부 받았다. 치매 운전자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교통 담당자의 의지라면, 음주 운전자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할것이다.  A씨의 바램도 이와 똑 같다.   음주 운전이든, 치매 운전이든, 교통사고의 위험을 줄이자는 데는 마찮가지다. 허지만 오래지 않아, 이 나라엔 태반이 늙은이들 뿐일텐데, 과연 누가 운전을 해야 하나? 하는 문제가 있다.  요즘 단 하나 뿐인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음주 운전자들의 인식의 결여로, 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음주운전 사망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음주 운전자에게는 운전면허 발급을 영구히 금지하거나, 처벌을 더욱 강화하여, 더 이상 무고한 희생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인천 미추홀구 등에서 시작된 전세사기범들은 신혼 가정마저 산산조각을 내고 있다고 한다. 무릇 민주주의 사회는, 민초들이 튼튼히 자생할수 있도록  풀뿌리가 튼튼해야 하는데,  우리사회를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모든 사회악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모든 공동체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는, 건강한 사회가 어서 빨리 회복되기를 고대한다. 양심의 법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사회로 거듭 날수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은 문밖을 나가지 못하고 나쁜 일은 천 리를 간다." 중국의 宋나라 시대의 학자 孫光憲 (손광헌~986)의 말이다. "좋은 일은 좀처럼 세상에 알려지기 어렵지만, 나쁜 일은 널리 널리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선행보다 남의 허물 흉보는 일이 더 솔깃하고 재밌는가 보다. 실제로 나쁜 일, 곧 당사자로서는 감추고 싶은 일일수록 사람들의 입방아를 통해서 날개 달린 듯 삽시간에 멀리멀리 퍼진다.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會南子(회남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附耳之言聞千醫(부이지언문천의).(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비밀은 듣기 바쁘게 퍼져 나간다) 는 뜻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속담에도 "베개 밑에서 송사 난다." 혹은,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그뿐 아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뜻으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사실 소문은 강물과 같아서 그 시작은 보잘 것 없이 작은 샘물(입)에서 시작되지만, 계곡을 따라 흘러가며 수많은 샛강과 합류하면서 강줄기는 엄청나게 폭이 넓어진다. 우리의 입은 먹는 입도 되고   말하는 입도 된다. 우리는 입 하나로 좋은 말도 하고 나쁜 말도 한다. 뼈도 없는 세 치 혀로 말을 쏟아내는데 소문이 퍼져나갈수록 부풀러 커지는 모습을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비유한 거다. 우리의 입은 분명 하나인데 말하는 입으로도 먹는 입으로도 쓰인다. 말도 살맛 나는 말이 있고 그 반대의 말이 있다.

이처럼 입을 통해 나온 모든 풍문은 언제나 문제를 동반한다. 좋은 풍문은 시샘을 동반하기 쉽고 나쁜 풍문은 수치를 가져오기에 십상이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은 항상 경계하여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젊을 때는 혈기가 왕성할 때이므로 정욕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에는 아직 혈기가 한창 끓을 때 이므로 부질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쇠잔한 듯하나 "늦바람이 용두쇠를 벗긴다."는 말처럼, 모든 욕심(식욕, 색욕, 물욕)을 경계하여야 한다.

수년을 외상환자로 요양원 병상에서 살아 있으나 죽은 자처럼 미움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노인의 기저귀를 갈아 끼우려고 사타구니 속으로 요양보호사(여)의 손길이 들어가면 이게 자극이 되어서 죽어 있던 거시기가 발딱 일어선다. 이같이 식욕과 성욕은, 죽는 날까지 같이 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무엇인가! 봄 내음 같은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활력소들이 죽은 것 같았던 뉴런의 감각들을 자극하면, 거시기가 선 것처럼 죽어가던 생명도 이렇게 살리는 기운만 들어가면 회생을 하는 게 살아있는 생명이다.

몇 년 전 일백일세가 되신 할머니가 몸이 아팠다. 그분이 날 붙들고 "나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 하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나는 할머니께 아플 때마다 "하나님! 나 살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하고 기도하시면 건강해 지실 거예요. "했더니 몇해가 지난 지금도 건강하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생명 없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후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생명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는 비결은, 바로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왜 자살을 할까? 살 맛(생기)을 잃었기 때문이다. 혹여 살 맛을 잃어 죽고 싶다 해도 다시 살 맛을 내는 생기를 넣어 주면 된다. 살 맛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다시 살 맛을 넣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이요 삶의 열정이다.요양원을 생기를 잃어버린 공동묘지처럼 운영될 수도 있고 생기가 넘치는 요람처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기쁨의 생기가 있느냐?없느냐?에 있다.

지금도 목축업을 생업으로 하는 외몽고에서 육십이 다 된 내외(남편: 남수랭, 아내:빠슨자느아트)가 수의사(獸醫師)로 초원의 광활한 대륙을 종횡으로 누비며 30여년을 길 위의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TV 채널을 통해서 본적이 있다. 예를 들어, 춘천시만한 지방도시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게 아니라, 몽골의 광활한 땅을 짐차로 3일 길을, 혹은 5일 길을 달려서 죽음 직전에 이른 가축들을 살려낸다. 혹은 난산을 하는 가축들을 도와 가까스로 출산시키는 산모 역할도 한다. 방역소독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목장을 일일이 돌며 방역소독을 하게 한다. 도로 또한 비포장이고 도로가 없는 곳도 많고, 진흙 길에 차가 빠지는 것도 다반사다. 부모의 이 헌신적인 활동에 깊은 감동을 한 아들과 딸도, 부모의 뒤를 이어받고자 수의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나의 삶이, 자녀에게, 이웃에게, 아니 동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이처럼 살맛 나는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선택받은 복된 삶일 것이다. 이처럼 나의 삶이, 자녀에게, 이웃에게, 아니 동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이와같이 살맛 나는 생기를 불어 넣을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선택받은 복된 삶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때 선친의 말씀을 겉으로는 따랐지만 마음으론 따르지 않을때도 많았다. 내가 하나님의 손 길을 떠날때는 좋았지만 그러나 인생살이가 나의 손안에 들어 온 순간 나의 인생은 공허와 혼돈 뿐이었음을 오랜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일회자의 인생이기에 다시 고쳐살수 없잖은가! 후회없는 삶,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들며 살다가자!

         종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