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진의 “WEA와 교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박

박주석 목사(익산 새언약교회)

2021-06-13     고경태 논설위원
박주석 목사(익산 새언약교회)

아래 초록색 굵은고딕 글씨는 이국진 박사의 논문 목차이며, ’군청색 Th.(Theses)’은 논자의 주장을, ‘붉은 색 Arg(Argument)’은 논박자의 비판/주장이다.

1. 방법론

Th1. 오직 연구는 오로지 사실에만 근거해야 한다. 색깔론이 아닌 비교적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전체 그림을 통해서 평가한다.

Arg. 이 박사의 WEA의 평가는 편향되어 있고, 지협적이다. 전체 그림이 아니라 WEA와 소속한 신학자 글의 일부분만 인용하여 되레 지엽적이다. 더욱이 곳곳에 사용한 성경 인용도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

2.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증거: 실행을 위한 제안평가

Th1. WEA가 공격을 받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2011년에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증거: 실행을 위한 제안(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 Recommendations for Conduct)>에 공동으로 서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동성명서는 단지 전도를 위한 문서라고 한다.

Arg. 공동합의서에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나눔’, ‘충실하게 그리스도를 증언’, ‘궁극적인 회심은 하나님이 하는 일등을 말한다. 지금 언급한 개념들은 문장 자체로는 복음적이나, RCC(로마가톨릭)WCC는 개혁주의와 전혀 다른 개념으로 사용한다. 만일 WEA1864믿음의 진술을 가치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당연히 개혁주의적 선교 혹은 전도에 대한 본질적인 진술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빠진 것은 문병호 교수의 지적대로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양시론(兩是論)이다.

Th2. 김영한 교수 “WEAWCC와 상당한 공통분모를 가지면서도 차별성이 있는 것은 WCC가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데 반하여 WEA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제시하면서 명료하게 결별하는 태도를 취하는 점이다.”라는 주장을 인용한다.

Arg. 김영한 교수의 글을 인용해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려고 하나, <공동합의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해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는다. 김영한 교수는 개혁신학과 복음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다.

3. WEA는 종교 혼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Th1. 광주전남협의회<WEA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 “WEAWCCRCC가 동일하게 종교 혼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라고 발표했다. 사실과 다르다는 논리를 토마스 쉬르마허의 해명과 WCC 부산 총회의 인사말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세계 종교통합또는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한다는 표현은 한 마디도 없다고 한다.

Arg. 첫째, 이 박사의 제시는 너무 안일한 인식이든지 연구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쉬르마허는 WEA세계적 기독교 포럼”(Global Christian Forum, 이하 약칭, GCF)으로 전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하나가 되게 하는 방편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 GCFWCC, RCC, WEA, 오순절 교회의 연합이다. 2020년 플러 신학교 제2차 모임에는 아프리카 교단, 메노나이트, 감리교, 모라비안, 구 가톨릭, 정교회, 오순절, 개혁파, 로마 가톨릭, 구세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모였다.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다양한 교파와 교단들의 모임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 교리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소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WEA 내의 비판에 대해 WEA 저널에 토마스 쉬르마허, 토마스 존스, 롤프 힐레의 글 세 편이 연재되었다. 롤프 힐레는 에큐메니컬 대화(ecumenical dialogue)”를 함에 있어서, 2차 바티칸회의 이후 미래를 향하여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성경 공부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서로 더 깊은 일치(deeper unity)를 발전시켜 가야 한다라고 결론짓는다. 토마스 쉬르마허나 토마스 존슨도 같은 논조이다. “이제 많은 로마 가톨릭주의자들이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를 확정하고 있다는 것 등이 로마 가톨릭과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할 명분으로제시된다. 그러나 RCC가 자신들의 교리를 포기한 일이 결코 없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회의의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공헌자는 Karl Rahner이다. 그에 의해 정초 된 로마교회 교리들이 반성경적이라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신학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모를리 없을 것이다.

셋째, 1992WEA 마닐라 총회에서 풀 슈로덴부어(Paul G. Schrotenboer)는 성경과 전통에 대해 성경은 기독교 전통의 일부이며 동시에 성경은 전통의 전체 역사에 있어서 고유한 역할을 감당하며 존재한다. 성경은 전통이 된 구원의 역사를 말하는데, 이에 상응하여 그 전통은 정경의 글들 가운데서 규범적인 양식을 취하였다. 전통은 성경에 앞섰으며 또한 성경을 뒤따른다라고 했다.

넷째, 이러한 명백한 진술들 앞에서 토마스 쉬르마허의 일부 발언만 발췌해서 논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것은 매우 빈약한 논증일 뿐이다.

다섯째, WEA 지도자들의 이런 주장 때문에, 문병호 교수는 GCF교회의 일치를 넘어서 인류의 일치를 지향하는 WCC와 제2차 바티칸회의 이후의 RCC의 에큐메니컬 신학과 궤를 같이한다고 진단한고 하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인가? 그렇지 않다. 근거 있는 평가이다.

4. WEAWCC, RCC와 상호 협력하고 있는가?

Th1. 논자는 광주전남협의회WCC와 교제를 추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공동합의서에서 이런 문구가 전혀 없고, 토마스 쉬르마르와 토마스 존슨은 복음주의 신학을 포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한다. 또한 광주전남협의회가 자신의 신학을 견지하지만 결국 WCC가 갔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Arg. 논자는 내일 일을 내일 염려하면 된다(6:34)는 성경을 인용한다. 그러나 합당한 인용인가? 만일 논자의 인용 식이라면 눅 14:28절 말씀으로 반박할 수 있다. 성경의 문맥과 인용의 적실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논지에 가져다 인용하므로, 독자/청자들을 현혹하는 일은 말씀 선포자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닌가?

문병호 교수는 로잔회의 이후 신복음주의자들과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의 신학적 소통이 이루어졌다. 이는 복음주의로마가톨릭 선교 대화(Evangelical-Roman Catholic Dialogue on Mission, ERCDOM)”로 칭해졌고 그 결과물이 복음주의-로마가톨릭 선교 대화, 1977-1984: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는데, 12개의 조항은 모두 로마가톨릭의 핵심 교리들을 자세하게 열거하면서, 비성경적이며, 비정통적이라고 한다.

칼빈대의 연구보고서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WEA와 교류, 어떻게 할 것인가?”의 내용 중,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말타의 세 나라 WEA 지부들이 연합하여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WEA 참여를 중지한 사실이 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로마 가톨릭 국가들인데, 그 나라들에 소속한 개신교의 WEA 지도자들이 WEA 본부의 신학과 행보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것은 2017121일 날짜로 된 쪽 분량의 공개서한인데, 그 내용은 WEA의 본부 지도부가 원래의 신학 입장에서 벗어나 에큐메니컬 쪽으로 흐르고 있고, 로마 가톨릭과 WCC가 함께 연합하여 작성한 문건에 서명하려고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이 세 나라는 RCC가 너무 큰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인식한 RCC의 교리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사뭇 다를 것이다. 이 때문에 WEA에 공개서한을 보내고, 참여를 중지했을 것이다.

WCC 사무총장 새뮤얼 코비아(Samuel Kobia)GCF“WCC, 로마 가톨릭, 오순절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을 연대와 대화를 위하여 소집하기 위한 광대한 에큐메니컬 플랫폼이라고 칭하였다. WEA 사무총장을 역임한 제프 터니클리프(Geoff Tunnicliffe)“WCCWEAGCF를 정교회,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 복음주의, 오순절, 아프리카 교단 교회 기구가 서로 간의 만남과 대화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플랫폼으로서 지속적으로 도울 것이라고확언하였다.

쉬르마허가 “ 전체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같은 것을 보고 있다” 라는 그의 언급은 “WCC처럼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다. 그 점은 신학적 차이가 들어 있는 것” 이라고 논자는 변호한다. 하지만 칼빈대학의 보고서는 이와 전혀 다른 입장을 피력한다. “WEAWCC와 입장을 같이 한다” 라고 발표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행한 신학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은 결코 비신학적일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WEA의 입장이 WCC의 세계종교 통합과 종교다원주의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하는 논리들에 합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5) WEA는 비성경적인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가?

Th1. “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믿는다는 가지 대전제에 동의한다면 기독교회로 인정하기로 WCC와 로마교황청과 합의했다” 라는 주장은 아마도 김상복 목사가 WEA의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크리스천투데이>와 했던 인터뷰에 근거한 주장일 것이다. 더 나아가 김상복 목사가 설명한 것은 WEA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GCF에 대한 설명이다. WEAWCC나 가톨릭과 함께 GCF 에 참여할 뿐이다. GCF의 참여 목적은 교회가 핍박을 당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2가지 대전제만 보겠다는 것은, 세례의 방식을 침례로 해야 하는지 물을 뿌리는 것으로 해야 하는지, 예정론인지 예지론인지, 무천년설인지 전천년설인지, 장로교 시스템으로 교회를 다스려야 하는지 감독시스템으로 다스려야 하는지, 예배 중에 악기를 사용해도 되는지 악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지, 등등과 같은 신학적 차이를 묻지 말자는 의미일 뿐이다

Arg . 이 논리는 종교개혁 교리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것이다.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근본 조항은 삼위일체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이 면에서 두 가지 전제는 옳다. 그러나 종교개혁교회는 이신칭의교리를 포함한다. 이신칭의가 부정되면 이미 종교개혁을 부인한 셈이 된다. RCC가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은 이신칭의교리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논자가 단지 세례와 침례, 예정과 예지, 천년과 무천년설, 예배 중 악기 사용 정도의 차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을 변호하기 위한 열심 때문에, 최대한 예의를 지켜 말하자면, 종교개혁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근본 교리를 잠시 망각한 듯하다.

또한 논자는 두 가지 전제를 김상복 목사 개인의 말로 치부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RCCWCC가 주도한 GCF2000년 플러신학교에서 개최되었을 때, 비공식이지만 WEA에 위원회의 대표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2002년 플러신학교 2차 모임에서 모임의 목적을 천명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신성과 인성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으로서 믿는 광범위한 기독교 교회들과 교회 기구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상호 존중심을 기르고 함께 개척하여 공동 도전하며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열린 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모인다].” 그리고 마침내 2011WCC, PCPCU(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기독교 하나 됨 증진을 위한 교황위원회), WEA, PWF(Pentecostal World Fellowship, 오순절 세계 협의회)가 네 축을 이루었다.

WEA는 처음부터 함께 했고 결국 가입한 것은 두 가지 전제를 수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김효시 교수가 주장한 기독교의 참된 진리를 축소 내지는 변질시켜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디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정당한가? 종교개혁자들이 RCC의 공로주의에 대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이신칭의교리를 목숨을 지켰고, 이후 500년 동안 온갖 이설에도 지켜 왔던 것을 제거 혹은 의도적 지나침이 참된 진리의 축소 내지는 변질시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6) WEA는 안식교를 받아들이려고 하는가?

Th1. 논자는 “2007WEA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공동성명서철원 교수가 마치 WEA가 이단 안식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호도(糊塗)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WEA가 안식교의 교리를 인정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안식교 측에서 WEA의 신앙고백에 동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WEA의 신앙고백문은 역사적 개혁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Arg. 평가는 항상 현재여야 한다. RCC도 한 때 사도적 전승의 신앙고백 아래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 그리고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음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한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WEA의 신앙 고백문 - 신앙의 진술/선언을 언급한 것으로 여겨진다 –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는 현시점에서 살펴야 한다. 상기에서 살핀 대로, 현재 WEA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신학 사상이나 WEA 행보에서 역사적인 개혁 신앙에서 한참이나 멀리 나갔다고 단언할 수 있다.

Th2. 그리고 공동성명서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 1884년 재림이 있기 전에 있을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 성경의 권위가 Ellen G. White의 권위보다 위에 있으며, 성경에 의해 받아야 한다고 안식교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만, 그녀의 역할이 더 크다. 이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WEA와 안식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4항에서 밝혔다. 예를 들어 기도, 성경공부, 성서공회 사역, 세계 전 지역에서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 사회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Arg. 논자는 안식교 측에서 WEA의 신앙고백에 동의했다(fully accept)는 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오히려 바른 신앙으로 돌이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탐구가 불편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금 안식일 교회가 주일, 성경의 권위, 성경적 재림에 대해서 완전히 받아들이는가? 이 공동성명서가 발표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조금도 없다. 안식일은 마치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성취된 것이므로 신약 백성들에게 더는 규범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그래서 신약의 교회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부활로 안식일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세상을 재창조하시고, 그 부활의 빛 아래서 새 시대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안식일 준수, 기타의 율법 준수는 단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Ellen G. White의 계시 우월성 재림에 대한 주장들은 개혁신학에서는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교리들이다. 그런데도 이런 것들을 제쳐둔 채로 성경 공부와 기도 사역 등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인가?

Th3. 마치 2019년에 천안시 기독교 총연합회가 신천지와 공개토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Arg. 신천지와 공개토론은 대화를 시도한 것이 아니다. 신천지 교리의 주장과 교리의 거짓됨을 밝히기 위한 공개토론이라고 보도한다. 그러나 신천지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WEA와 대화의 정당성을 위해 이런 예시는 되레 주장을 위한 호도(糊塗)가 아닌가?

7) WEA는 유대교와 연합을 추진하는가?

Th1. 1989““기독교 복음과 유대 백성에 대한 윌로우뱅크 선언”(The Willowbank on the Christian Gospel and the Jewish People)” 9항에서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유대인으로서의 유산을 포기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다. 이 항은 고전 7:17-20절을 풀어 쓴 것이라고 한다.

Arg. 이 말씀은 논자가 지적한 대로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유대인이, 유대인이 이방인이 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유산/전통을 버릴 필요가 없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대인의 전통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곧 갈라디아서에서 등장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h2. 서철원 박사는 WEA는 윌로우뱅크 선언 문서에서 유대인들이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토() 로 회복된다고 하였다고 소개하면서, 비판한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읽어보아도 이러한 표현은 없다. 다만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세계 어디에서든지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Arg. 서철원 교수는 WEA가 발행한 윌로우뱅크 선언” 15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유대인들이 확실한 국경선을 가진 평화의 땅 곧 자기 나라를 갖는 것은 우리는 지지한다.” 논자가 주장한 대로 세계 어디서든지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국경선을 가진 평화의 땅 곧 자기 나라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에서 장소를 명시하지 않았을 뿐, 이 문장의 결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해독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 참여와 배제의 성경적 원리 그리고 아군인가 적군인가?

Th1. 논자는 도표를 그려가면서 WEA가 결코 배제나 단절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과 도표 등을 통해 해명한다. 그리고 WEA와 교단 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WEA/협력할 수 있는 분야

교단/협력할 수 없는 분야

가입한다면, 대사회 봉사활동에 공동 참여 가능, 선교적 정책에 합력 가능, 사회적 이슈(전쟁, 기근, 종교의 자유, 질병 퇴치, 구제, 에이즈, 동성애, 차별금지 등)에 대해 협력 가능

교단이 가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것에 간섭할 수 없음, 가입하더라도 교단의 교리, 재정 사용 등 자율권에 간섭할 수 없음

 

Arg. 그러나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WEA 교류를 찬성하는 총신대학교 교수들조차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박용규 교수(역사신학)・・・섭게 발흥하는 로마 가톨릭의 확장에 맞서기 위해서도 절실하게 세계복음주의 형제교회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RCC와 함께 하는 WEA가 어떻게 RCC의 확장을 맞설 수 있다는 것은 눈가림의 주장이 아닌가?

(정승원 교수의 주장과 배치) 정승원 교수(조직신학) 어떤 지적과 비평도 상호 존경의 정신 가운데 주어져야 하고 다른 종교들에 대한 거짓 증거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는 보고서의 원리는 바울이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라고 외친 성경적 가르침과 역행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또한 WCC나 로마 가톨릭과 같은 기구와의 대화와 협의가 아무리 시대적 요청이고 또 중요한 사안이라고 해도 성경 외에 인간의 자율성이나 교황이나 교회의 가르침을 최종적 권위로 삼는다면 아무리 선교와 구제 차원이라고 해도 개혁신학의 순수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경고한다.”

김요섭 교수(역사신학) “ WEA는 처음부터 성경에 기초한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견지하면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EA 스스로도 인정하는 한계들이 분명히 있다. 즉 다양한 교회들의 입장을 포용하는 가운데 정교하고 뚜렷한 신학적 입장을 주장할 수 없는 교회 협의체로서의 한계라고 하면서, “WEA와의 교류와 연합사업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는 실제 사역의 내용과 방식 이들이 표방하는 신앙고백과 모습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신중하게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정원래 교수(역사신학) “동시에 전적인 협력관계를 설정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WEA의 신앙고백과 그 활동이 현재와 동일하다면 WEA와의 관계는 전면적인 수용보다는 우려되는 부분에 대한 주의를 요청하는 정도의 관계 설정이 설득력이 있다고 여긴다.”

라영환 교수(조직신학) “WEA가 향후 WCC 그리고 가톨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Th2. 논자는 설혹 우리 교단이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교리에 간섭하는 것은 월권이고, WEA가 그런 목적 자체가 없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변질될 우려를 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라고 주장 한다.

Arg. 대담한 발상이다. 이런 논자의 자신감은 WEA 반대자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일뿐이라는 자기 인식에서 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과연 WEA와 교류를 찬동하는 총신대 교수들도 동일한 생각인가? “2011년 공동 합의서에서 신학의 정체성에서 본질과 실천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무례함 없는 접근방식이 필요하지만, 내용적 타협은 거부해야 한다고 한다. 매우 위험스러운 원리들에서 원리들” 10타 종교 신앙을 배우고 그들의 진리를 인정할 것을 요청하는 것. 권고3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종교들의 신자들의 신앙과 종교적 행위를 잘못 대변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타 종교에 도전하지 말고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고려해줘야 한다고 권고한다라는 것은 “1961년 뉴델리에서 개최된 WCC 3차 대회에서 타 종교라는 말을 다른 신앙(other faith)으로 이해하고, 무신앙(no faith)도 하나의 신앙으로 간주했던 모습이나 International Missionary Conference(국제선교회의) 2차 대회에서 수용되었던 바 타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진리의 정도의 차이일 뿐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가 아니라는 종교다원주의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원리 혹은 권고인 것이다라고 한다.

2011 공동합의서에 대한 터니클리프(WEA 대표)의 평가에서 다양한 기독교 기구들이 함께 활동하고 함께 말할 수 있는” “기독교 선교의 본질에 대한 합의라고 공식적으로 평가한다라고 한 것은 단지 실천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인 합의서가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WEA와 교류 혹은 협력을 지지하는 교수들조차도 신학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논자는 WEA 반대자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며 기구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가기

초대교회 아리우스파들의 득세 앞에서 아타나시우스는 4번씩이나 유배를 당하면서 외롭게 진리를 지켜 냄으로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성자는 성부와 동일본질이라는 진리를 지켜 냈고, 아폴로나리우스나 네스토리우스, 유티커스의 거짓 된 가르침과 타협하지 않는 정통교리의 지도자인 시렐 등을 통해서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이시다라는 성경의 교리를 칼케톤 회의에서 지켜 냈다. 기독교의 역사는 진리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교리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로마교회에서 성경이 도출한 바른 진리를 높이 세우고 지키려는 수많은 개혁자들이 고난의 생을 살았으며 무참하게 순교 당했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성경에 근거한 교리의 가치의 무게는 측량하기 힘들 것이다. 이후에 개혁자들은 아르미누스에 대항해서 도르트회의에서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로 일컫는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 주었다.

반종교개혁자들 외에는 누구도 이런 치열한 싸움을 분리‘ ’색깔론‘ ’진영 논리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정통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을 지키려는 자는 이런 선조들의 고결한 투쟁에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개혁주의 신학을 정체성으로 표방하는 우리 교단이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