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2021년 호남지역 공청회 참관기

WEA 교류 찬성(이국진 박사), WEA 가입 반대(서철원 박사)

2021-06-12     고경태 논설위원

지난 2021년 6월 11일(금) 오후 2시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 시무)에서 WEA 공청회(호남 지역)가 개최되었다.

WEA 교류 찬성에 대한 발제로 이국진 박사, WEA 가입 반대에 서철원 박사가 발제했다. 

이국진 박사는 교단 목회자와 연구자들이 WEA에 대한 정보를 오해, 왜곡했다고 평가하며, WEA에 가입, 교류해서 선교적 유익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철원 박사는 WEA가 WCC보다 더 과격한 모습이 있는 연합체라고 평가하며, 가입에 대해서 거부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공청회를 2회 겪으면서 느낀 점은 상호 주장이 접점이 이뤄지지 못하고 서로 엇갈리고 있다고 느껴졌다. 일단 합의된 점은 "WEA의 신학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에는 모두 동의한다. 서울공청회 발제자였던 정승원 박사, 호남발제자인 이국진 박사도 그랬다. 그러나 WEA의 신학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WEA의 신학적 문제는 WCC와 교류 지향성, 안식교와 우호적 관계 유지, 유대교에 대한 혈통적 관계 인정 등이다. 현대신학이 갖는 포괄주의에서는 모든 것을 허용하고 지향한다. 그런데 필자가 WEA 선언문으로 볼 때, WEA의 신학정체성을 “신복음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평가했다. 어떤 연사는 WEA가 성경무오성을 견지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WEA 선언문에는 성경무오에 대한 어휘는 없다.

The Holy Scriptures as originally given by God, divinely inspired, infallible, entirely trustworthy; and the supreme authority in all matters of faith and conduct. - WEA 믿음 선언문 중 성경에 관련된 부분이다 -

WEA 성경관에 infallible가 있다. infallible(무류)은 inerrancy(무오)와 다른 신학 개념이다. 1976년 현대 복음주의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었다는 것이 inerrancy와 infallible이 논쟁이다. 이 논쟁이 신복음주의 논쟁이고, 신복음주의 논쟁이 다시 한국 교회에서 살아난 것은 1980년대 당시 충분한 이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inerrancy(무오)와 infallible(무류)” 차이점을 명료하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WEA 논쟁은 다람쥐 챗바퀴 돌듯할 것 같다. 이 박사는 신복음주의 신학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막연하게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강조하기 때문에 개혁신학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를 명확하게 견지해야 한다. 우리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보다 더 과격한 새관점학파의 광풍 위에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유일신 종교를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라고 했고, 새관점학파는 아브라함의 언약인데 그 안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있다. 미국에는 크리슬람(Chrislam)이 있다. 

그런데 이번 WEA 공청회에서 갖는 허공을 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신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학 문제점을 인식한다면 가입 혹은 교류가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한국 교회 연합 활동을 빗대어 가능하다고 강변했다. 이것은 한 문장으로 만들면 “신학은 달라도 세부 항목에서 연합과 협력은 가능하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이 WCC 모토와 유사하다. “(교리가 아닌) 믿음과 직제에서 일치를”

그런데 한국교회연합 활동과 WEA 연합을 대조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대입이다.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우리는 장감 연합으로 통합찬송가, 같은 성경본문을 사용하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연합운동은 국내 사회 현안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 회집한 것이 연합 운동의 시초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단체인 WEA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외국 단체와 교류할 때에 신학이 다르다면 교단이 가입할 이유가 없다. 국교가 아닌 지역에서 우리교단처럼 큰 교단은 많지 않다. 그러나 교단 역사가 10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매뉴얼이 점점 정착되는 상황이다. 또한 우리 교단의 구속력은 상당히 혹은 많이 느슨하다.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는 놀라운 유연성을 갖고 있다. 목회 현장에서도 큰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할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갖고 있다. 우리 교단은 목회자 이중직 문제를 빠른 시일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중직에 대한 신학적 정립과 이중직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세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국내 봉사 활동에는 WEA와 연합이 아닌 국내 연합기구를 통해서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WEA가 국내 봉사나 전도 활동에 어떤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해외 선교 활동에 유익을 위해서 WEA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침소봉대이다. 벼룩을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교단과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는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박사가 제언한 “동반자적 관계, 선교전략적 관계, 일반적 관계”에 대해서 총회 결의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GMS에서 선교 사역을 위한 관계성 설정 전략적 방안을 총회 정책 논의의 기조로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선교 사역에는 선교사의 선교 사역(교회 설립)과 신변 안전을 위해서 파격적인 유연성을 제공해야 한다. 선교 지원을 위해서 교단의 푯대를 움직일 수 없다. 교단의 푯대를 움직이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총회 정책은 신학적 이해에 근거해서 수행해야 한다. 이번 WEA 토론도 신학 이해에 근거한 토론이다. 그런데 상호 신학이 같기 때문에 서로 격론이 발생할 수 없다. 신학 이해에서는 모두가 동일하다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 이해가 동일하면 행동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등장해야 한다. 반드시 그렇다. 신학은 주께 영광을 그리고 교회 세움에 전력하기 때문이다. “어떤 안건의 효율성”에 대해서 총회가 토론하는 것은 소모적인 것이다. 동일한 신학 이해에서 다른 행동 방식이 나올 때 지향성이 “거룩과 교회 효율성” 중에서 택할 때에는, 총회는 반드시 “거룩”을 택해야 한다. 효율성은 회원들이 각자 유연성을 갖고 활용할 수 있지만, 거룩은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번의 WEA 공청회에서 일치된 신학을 확인했다. 공청회가 끝난다면 신학부와 WEA위원회를 중심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학 선언문 초안을 확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거부하는 신학사상(종교다원주의-포괄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과 우리가 지향하는 신학(장로교 신학-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소요리 문답)을 수행하여 얻을 가치(복음전도를 통한 교회세움) 그리고 적극적인 사회 참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토론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근거한 정체성 확립에 의해서 수행한다는 제언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세속화의 파고를 막은 교단이나 신학교가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세속화라고 비판하지만 그 변질을 피한 곳이 없다. 포괄주의를 수용하는 세속화를 위한 판단일 것인가? 세속화를 거부하고 거룩한 교회를 서기 위한 판단일 것인가? 그 판단에서 돌이켜 복귀한 교단이 한 곳도 없다. 우리는 결정된 사안을 돌이킬 수 있을까? 세계 역사, 우리 역사에 전혀 없었다. 신사참배의 불신앙과 고초를 겪었지만, 우리 교단이 세속화의 물결을 극복하고, 거룩한 교회로 복음을 전도하며 사회를 주도하는 역동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합력해야 한다.   

호남지역 WEA공청회는 약속된 시간에 마치려는 조급함이 있었다. 보다 심도있는 이해 과정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질의 응답이 진행되어야 한다. 공청회(公聽會, public hearing)는 기관이 결정할 사안을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발제자 중심이 아닌 참여자들이 자유롭고 좀 더 세밀하게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발제자가 사전 발제한 내용을 글이나 영상으로 보내고, 발제 시간을 대폭 줄이고, 참여자들에게 좀 더 시간을 할애한다면 공청회의 본래 목적이 잘 반영될 수 있겠다.

호남지역 WEA공청회에서는 마지막 발언은 윤희원 목사가 재치있는 질문을 하였다. “이 좋지 않는 물을 얼마나 마셔야합니까?(기억에 의존함) 이에 대해서 이국진 박사와 서철원 박사의 답도 매우 재치가 있었습니다. 이 박사는 ”마실 수는 없고 세수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 박사는 ”물에 발을 담궈도 쓸려 갈 것입니다“ 유머이지만 세 분의 견해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으며, 세 분의 발언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번 공청회는 신학적인 견해는 동일하지만, 그 외에 행동 특히 선교에 대한 유익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고 느꼈다. WEA가 어떤 대단한 선교 지향적인 단체인지는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freedom of religion)도 개종전도 지향적인 성향은 아니다. '선교'를 강조하기 때문에 '개종전도'를 강조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정확한 접근은 아니다. 개종전도를 지양하면서도 선교를 강조할 수 있다.

이국진 박사의 유투브 동영상 강의나 발제 내용은 반대 측에 대한 부당한 태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태도를 보인 이유가 본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구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한 태도는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오류, 왜곡, 무지 등을 공개적으로 실명을 제시하면서 진행한 것이다. 우리의 공청회는 심포지움(symposium)의 성격이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세밀하게 주장해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1차 대회에서 정승원 박사도 동일한 패턴이었다. 정작 상대방의 오류 때문에 이번 공청회가 열린 것일까요? 두 분의 발제는 기각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번 WEA 공청회가 어떤 주제인지 정확한 개념이 파악되지 않은 것 같다. 이 박사도 마찬가지다. ”교류 금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단 교류 금지“라고 생각하며, 교단은 가입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교단 회원 가입 금지“다. 1차 발제자인 문병호 박사는 우리 44회 총회 결의를 밝혔다. 104회 총회에서 44회 총회 결의에 대해서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44회 총회 교류 금지, 104회 총회 교류를 금하지 않는다는 두 결정을 놓고 더 확대할 것인지, 44회 총회 결정을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박사는 104회 총회 결정보다 더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는 44회 총회 결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박사는 자기 주장을 위해서 상대방이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정작 당사자도 편향된 자료를 제시함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돕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WEA의 포용주의, WCC와 관계, 유대교와 관계, 이슬람과의 관계, 일반종교와의 관계 등등을 한 어휘로 축약하면 포용주의(=포괄주의)입니다. 일반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자세로 배타주의 (exclusivism), 포용주의(inclusivism), 평행주의(parallelism), 다원주의(pluralism), 규범주의(normativism)가 있다고 합니다.

"최영철은 라인홀드 니버(H.R. Niebuhr: Christ and Culture)의 범주들을 참고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1) 타종교를 반대하는 그리스도(배타주의: exclusivism),

2) 타종교 안에 있는 그리스도(포괄주의: inclusivism),

3) 타종교 위에 있는 그리스도(규범주의: nor-mativism),

4) 타종교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다원주의: pluralism),

5) 그리스도 없는 종교(종교 해방 모델: liberation of religion)입니다"(인터넷 자료 인용).

이런 원리의 시초는 슐라이어마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유일신 종교를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로 설정하고, 가장 우수한 종교를 기독교라고 했다. 그런데 300년이 지난 지금에는 세 종교가 동일한 위치에 서 있다. 그것은 1960년대 일반화된 종교다원주의(포용주의) 때문이다. 톰 라이트는 ”신의 단일 계획(God's sinlge plan, 단일규범)“을 제시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갖고 있다. 계시 이해는 개방신론(Open theism)에 의해서, 타종교에도 계시가 가능하다고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개방신론에 대해서 존 프레임 박사가 구체적으로 변증했다.

포용주의에서는 타종교까지 허용하기 때문에 이단이란 규범이 의미가 없다. 칼 바르트는 교회에서 과거 결정을 재검토해서 다시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신정통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44회 총회 결정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 칼 바르트는 정통신학(삼위일체, 그리스도 양성 교리, 창조 이해)를 재검토해서 자기 체계로 구성시켰다. 현대는 칼 바르트 위에서 신학하고 있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고백(마 16:16) 위에서 신학하고 있다.

이 박사가 안식교와 WEA 관계에 대해서 서철원 박사의 글을 비판했고, 서 박사는 공청회 자리에서 이 박사가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이 박사는 어떤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비난“이라는 어휘는 부정적 의미 밖에 없기 때문에 적당하지 않다.

이 박사는 WEA가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Joint Statement of the World Evangelical Alliance and the Seventh-day Adventist Church 를 제시했습니다.

(Link. http://www.worldevangelicals.org/news/WEAAdventistDialogue20070809d.pdf)

박사가 문서 내용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6가지인데, 4가지는 WEA 선언문(statement)으로 WEA와 안식교 조인(Joint) 문서 내용과 관련이 없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1.1. These conversations took place in an atmosphere of amicable Christian fellowship and study, building on the history of increasing fellowship, trust, and cooperation in various countries. WEA와 안식교는 "증진하는 친교 역사에서 세워가는 관계"로 설정했다. 1.2에서 두 기관이 형식적 조인은 하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 그런데 Areas of cooperation(협력의 영역)에서는 종교의 자유의 원리(the principles of religions liberty)에서는 관용, 선한 의지, 존중이 우세하다고 밝힌다. 즉 WEA가 말하는 "종교의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종교의 자유는 포용주의를 표방하는 신학 어휘이다. 관용, 존중을 말하기 때문에 신사적이고 온유한 것이 아니다. '관용'은 칼빈(진리 안에서 관용), 볼테르(무한한 관용), 메이천 박사 당시 자유주의자들이 외친 구호이다. 지금은 볼테르, 자유주의자가 주창한 관용이 시대정신이 된 상태로 보아야 한다. 

WEA-안식교 조인서(Joint statement)에 WEA의 statement(선언서)가 있다. 비록 성경의 최상의 권위(the supreme authority)를 인정한다고 해도, 성경 무오와 축자영감을 밝히지 않는다면 두 개념을 상호 충돌할 것이다. WEA의 성경 제시에 Inerrancy(무오)는 없으며, infallible(무류)가 있다. 결국 성경관의 충돌, 계시관의 충돌이 있다. 이러한 WEA의 신학을 복음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그런데 서철원 박사는 WEA의 광폭 행보는 WCC보다 더 심각하다고 비평했다. WEA의 종교의  신학 개념은 신사적인 선교 활동이 아닌 포용주의다.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