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아내란?
【종그니칼럼】모든일에 감사하며 살자
가정의 달 오월의 하순에 접어든 지금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요람이자 내 몸과 영혼의 고향인 옛날 어릴 때의 '가족 공동체'를 떠올려 본다. 내가 이땅에 태어나 엄마 젖을 빨며 자란 오늘의 나로 길러내신 부모와 함께자란 형제들 그리고 남남에서 만나 한 몸 한 가정을 이룬 우리 부부 중 어느 관계가 더 먼저라 할까? 흔히 부모와 자녀관계는 천륜이지만 그러나 부부사이는 혼인관계로 맺어진 인륜이라 말들한다. 그러나 부부는 인간 공동체의 시원(始源)인 가족( 家族)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깜짝 놀랄 너무도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고 아연실색 했었다. 나와 호형 호제하며 지내는 김ㅇㅇ목사님이 있는데 그의 누나가 학창시절에 '5월의 퀸'이라할 만큼 재색을 두루갖춘 재원이었단다. 그런데 이 규수가 서울 어느 큰 교회에서 홀 어머니의 큰 아들과 만나 결혼을하면서 그 꿈 많았던 젊은 날의 푸른 꿈이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단다. 홀어머니가 결혼한지 얼마 안 되어 남편과 사별하고 그 아들 유복자를 이 거친 세상 에서 어떻게 키웠을까? 보나마나 오로지 엄마만 바라보도록 마마보이로 키웠을 것이다.이것은 분명 엄마와 자식 이상의 엄마 생애의 전부를 쏟았을 것이다. 아마 자기가 낳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아들이 남편을 닮앙가는 모습속에서 먼저 가버린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아들 이상의 이성으로 비쳐지지는 않았었을까? 이처럼 인생의 곡절에는 논리나 이성(理性)으로는 설명 할수 없는 괴리(乖離)가 담겨 있다. 옛 말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도 못 되는 인간의 마음 속은 알기가 어렵다."고 했다. 정작 당사자도 자신의 맘을 다스릴수 없었음에도 자식을 홀 애비로 둘수 없어 장가를 보냈지만, 홀 엄마 맘은 변함없이 오로지 자식에게 모두 꽂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못할 거라면 왜 자식을 결혼 시켰을까? 홀 엄마로서는 자식을 향한 무한대로 쏟은 애정이 결혼 후에도 그대로 마마보이로 이어져 결국 며느리이자 아들의 아내는 아들 딸 둘을 낳고도 시어머니의 질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단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 가정의 때에 부부관계도 이때 평생의 태반을 한다는 밀월(蜜月)의 때에 홀 시 어머니의 끊임 없는 시샘으로 결국 이 가정은 쪼개지고 만 것이다. 마치 물 방울이 바위를 뚫듯 홀시어머니의 끊임없는 간섭과 시샘으로 결국 신혼가정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가족관계에는 반드시 촌수(寸數)가 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묻겠다. 어머니가 더 소중할까? 아니면 아내가 더 소중할까? 이 질문에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인가? 이를 아시라! 부모와 자녀관계, 형제자매 관계 등 모든 친척 관계에는 반드시 계례붙이 이므로 촌수가 있지만 남남에서 부부로 시작한 사이에는 촌수가 없다. 그래서 부부일신(夫婦一身)이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촌수가 없는 그야말로 한 몸이라할 관계가 갈라서는 순간 남 남으로 바뀌는 참으로 뭐라 설명할수 없는 아이러니( irony)가 바로 '부부일신의 쌍곡선(雙曲線 hyperbola)이다. 이를 두고 중국 알리바바 그룹 회장인 '마원'은 어머니와 아내 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그의 정의(定義)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고부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베개밑에서 송사난다."는 말도 있지만 "고추 당추 맵다해도 시 어머니 시집살이보다 더 맵겠느냐!"는 노래도 있다. 더우기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조선 사회의 모법(母法)이 되었기 때문에 충신은 불사이군(忠臣 不死二君)이요 열녀는 불사이부(열女 不死 二夫)라는 사회적 구속력이 있는 도덕률이 지금의 헌법 이상의 최상위 법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다.오늘 날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져 그 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구속력이 있는 살아 있는 법이 되었듯이 불문률 또한 조선사회를 이끈 벼리가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낳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 한테 잘해주는 건 부정 모혈의 내리 사랑이지만, 아내는 나와 전혀 남남이었던 처가댁 장모님이 낳아 결혼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아내가 나한테 잘해주는 건 의무나 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반쪽에 대한 자연스런 애정이다.
또한 부부가 아이를 낳을 때 그 진통은 부부가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이므로 남편은 자신의 씨앗을 품은 아내에게 잘 해야 할 의무가 있듯 내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또한 둘이서 만들어낸 것이므로 나는 당연히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 그리고 한가지 더 내가 어떻게 하든 어머니는 영원한 나의 어머니지만, 내가 혹 지금의 아내 말고 다른 여자를 사귀게 되면 바로 이것이 시금석이 되어 아차하는 순간 지금의 아내는 자칫 남의 아내가 될수 있다. 어머니는 나의 1/3의 인생을 책임지지만, 아내는 나의 2/3의 인생을 책임진다. 아내는 나의 인생 전부인 인생 후반생까지를 보살피니까 어머니는 마땅히 아내를 다독여 주셔야 하고, 어머니의 노후의 여생도 아내가 보살피니까 어머니도 나도 응당 아내에게 감사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 전국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수발하는 요양보호사들이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입소한 노인보다 요양보호사의 나이가 더 많은 경우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특히 요즘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수발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어나고 자란 부모와 골육지친을 떠나 남편을 따라 생면부지의 집안식구가 된 인연이란게 그런 것인가? 아내가 낯 설고 물 설은 생면부지의 시댁으로 오로지 남편하나를 믿고 시집을 와서 시집살이 하는 것은 비단 여자이기 때문인가? 아님 이것이 여자의 숙명이기 때문인가?
저 남방나라 예를들면 필리핀은 가족제도가 우리처럼 남성 위주가 아니라 여성위주의 모계사회이다. 그래서 남편은 관습으로도 법으로도 가족부양 의무가 없단다. 그래서 남편이란 작자는 같이 살다가 싫으면 언제고 가족을 버리고 떠나도 비난을 받지 않는 것은 자식들이 엄마의 성을 이어받은 모계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란다. 이에 대한 역작용은 나라가 가난하고 도덕이 해이해져 성(性)문화가 문란할수록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주는 남아연방 공화국 외에 대부분 모든 나라가 최빈국이다. 아프리카주의 서민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가난하지만 지하 천연 자원이 풍부해서 이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기때문에 국가수입이 막강함에도 이 수입은 일반서민들은 알지도 못하고 이러한 엄청난 공적자산이 국민이 아닌 힘있는 자의 수입원이 되고 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자원이란 개념조차 모른다고 한다. 이처럼 국가권력을 가진자들의 전유물로 오로지 저들의 사리사욕에 소모되고 있으니 일반 서민들의 삶이 어떠하겠는가? 여기도 역시 모계사회여서 정작 남자는 가정문제에 대하여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남편이자 애비란자가 자녀와 가족에대한 책임의식이 전혀없다. 생활이 어려워서 자녀들에대한 부양책임이 무겁다 싶으면 아무런 가책도 없이 가정을 버리고 만다. 그런데 부계사회에 가부장적 잔재가 농후한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남성중심의 가부장 즉 대가족제도가 나라의 근본이 되었고 더 나아가 향촌 마을의 형성도 씨족공동체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대가족제도가 해체되고 점차 부부중심의 핵가족으로 바뀌는가싶더니 결혼조차 마다하는 나홀로 독신서다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젠 가족이란 개념이 아예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로 시집살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는데 시어머니 대신에 등장한 것이 마마보이다. 시어머니가 마아보이를 통해 원격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서상인가? 자식을 결혼 시키려도 시집 올 처녀가 없다. 심지어 어느 처자는 애인에게 결혼 전에 둘이 같이 불임수술 부터하자고 하더란다. 이 정도면 막가파 세상이 된것 아닌가? 사회제도 구석구석에 남성본위의 구제도의 잔재가 남아있겠지만 여성시대가 도래 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아니 이미 도래해 있다. 그 예로 나는 이유없이 뚜렸한 까닭없이 마누라 앞에 서기만하면 한없이 작아진다. 왜? 그럴까? 평생을 같이 살아왔지만 알수 없는 것이 아내다.그럼 아내란 누구 길래? 아니 아내의 정체성 그게 아리송해서 이렇게 쫄아 사는거 아닙니까? 아내란 입만 열면 바가지를 긁으면서도 그 바가지로 가족을 위해 밥을 해주는 예전엔 그런 사람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예전에 아내란 아이들을 혼내고 돌아서서 아이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한술 더 떠 아내란 친정에서는 남편의 편이 되어 모든 물건을 친정부모의 사랑만을 믿고 갖은 알랑을 다하면서 친정 것을 가져다가 남편의 두몫을 하면서 남편의 가문을 위해 자식을 낳아 길러 내고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일평생 남편의 오른 팔이 되어준 사람. 그래서 아내란 가난한 가정을 살려내는 살림꾼이자 남편과 아이들 지킴이 역을 다하며 집안이 안정되고 자식들이 크는 것을 보고 울고 웃다가 결국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다. 또한 아내란 자기에게 가진 것을 다 내어 주고도 더이상 해줄 것이 없을 땐 그만 울어버리는 사람! 자기에게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도 마냥 좋아하는 사람 아니 그러고도 얼굴이 수줍어 지고 예뻐지는 사람. 아내란? 살이찌고 뚱뚱해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사람.
그래서 아내는 남편이 저 세상을 먼저 간 후에도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홀로 남아 자녀를 위해 못 다한 사랑을 쏟 듯 마치 연어가 수천리 바닷 길을 헤엄쳐 자신이 태어났던 그 민물강으로 와서 산란을 한 후 그 새끼들이 부화하기를 지켜주다가 부회되어나오면 어미는 자신의 몸의 몸 전부를 어린치어들의 먹잇감으로 내어주고 뼈만 앙상히 남게되면 그 어미 뼈가 새끼들의 보호 막이 되어 주는 자식들을 향한 눈물겨운 어미 연어의 사랑을 본다. 아내란 가족들이 먹다 남은 밥을 먹으면서도 마냥 행복해 하는 사람이다. 아내란 가정살림과 가족들 생계문제로 속이 터져도 TV 드라마를 보다가 거기에 심취되면 찌질이 남편도 아이들의 칭얼도 금세 잊어버리는 마치 치매 전단계의 기억 퇴행증 환자가 된다. 그래서 아내란 슈퍼마켓에서 장보기 하다가 계산대에서 1,000원땜에 안절부절 하다가도 가족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송두리째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다. 아내란 남편의 "여보 오늘 수고했네 사랑해"란 말 한마디로 더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내란 이 세상에서 가장 인정 많고 착하며 젊어서나 늙어서나 변함없는 애정으로 자신을 낮춰 남편을 대하는 것을 아땅히 그래야만 되는줄 아는 하늘이 정해준 내 여자요 내 반쪽이요 내 갈비뼈다. 때로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맞벌이 주부로 1인 4역을 끄떡없이 해내고 있는 내 아내는 무한한 에너지를 소유한 자다.
이 세상에서 이와같이 만능의 불사조처럼 가정을 지킬 이가 어디 있을까? 남편이 따뜻한 포옹으로 "고마워 사랑해"이 말 한마디에도 아내는 이 세상을 다 얻은 만큼의 충전을 받는다. 아주 작은 것에 상처를 받고 아주 작은 것에 큰 감동을 받는 아내를 평생토록 아끼며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이 나라 대통령의 자리는 가정을 살리는 가족 지킴이로서의 아내와 어미로서의 자리에 비해 나라의 살림살이를 하는 자리이니 이 보다 더 중한 자리가 어디있겠는가! 이를 아직도 자각하지 못한다면 분수를 알고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이제 그만 마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내려 오시라! 현재 백천간두의 위기앞에 있는 이 나라의 나아갈 길을 이끌어 갈만한 그릇도 역량도 전혀없는 시대의 부름도 감지못하는 필부가 일각이 여삼추같은 이 막중한 때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시간닝비일 뿐이다. 생각해 보시라 가족지킴이로서의 아내와 엄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아내가 있었기에 이 가정과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처럼 물론 가정을 파탄 낸 이들도 많지만 그러나 가정 살림을 열심히 일궈 바로 이끌려는 주부때문에 만고풍상을 격으면서도 이 나라가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도 바로 오늘 세계속의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통치자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이를 어찌하랴! 주부가 가정살림에 올인하듯 국사에 진력투구로 매달려도 모자랄판에 이를 바로 깨닫지 못한다면 기회는 일회자다. 나라빚의 이자만해도 년 3조란다. 진실로 이 엄중한때에 천려일실의 위기앞에 국리 민복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종그니칼럼】모든일에 감사하며 살자
서울에 사는 김 권사님은 예수를 믿은 자 70여 년 동안 새벽예배를 빠진 적이 없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밤사이 많은 눈이 내렸다. 시어머니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눈길을 걸어 새벽예배를 드리려 교회로 가시는 걸 함께 사는 맏며느리가 보고 "어머니, 날도 춥고 눈도 많이 와서 눈길에 위험하니 오늘은 집에서 예배보시고 내일 가시지요?" 시어머니 왈 "눈 핑계 대고 안가면 나중에 핑계거리만 늘어난다."
그리고는 눈이 소복이 쌓인 눈길을 헤치고 나가셨는데 여느 때보다 훨씬 늦게 집에 오신 시어머니가 눈길에 넘어져 왼팔 목뼈가 골절되어 병원응급실에서 골절 봉합 수술을 받고 늦게 오신 걸 보고 며느리 왈 "거 봐요. 제가 위험하다고 가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시어머니 왈 "얘야 그런 말 하지마라. 발을 다쳤으면 어쩔 뻔했냐. 발 아닌 팔을 다쳐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또 오른팔이 아니고 왼팔을 다쳐서 밥 떠먹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할 일이냐!?”
이처럼 감사는 '모든 것을 긍정으로 보느냐, 부정으로 보느냐'에 따라 감사 혹은 불평이 나온다.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이게 바로 신앙이다. 매사를 이처럼 긍정적으로 보시는 시어머니의 믿음에 큰 감동을 한 며느리가 그 후부터 교회를 다녀 지금은 섬기는 교회의 기둥 같은 권사님이 되셨다. 이처럼 살아 있는 신앙은 모든 사물을 부정이 아닌 긍정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워너 솔맨"(Warner Sallman, 1892–1968)은, 미국이 자랑하는 화가다. 그는 "Head of Christ"라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다.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그의 그림책은 1940년도에 500만 부 이상이 인쇄되었고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예수님의 모습이다. 이 그림으로 솔맨은 당대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냥 우연히 그린 것이 아니다. 1917년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그는 중병에 걸렸다. 의사가 “당신은 임파선 결핵이다”라고 진단하고 “당신은 길어야 석 달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솔맨의 마음은 가슴이 미어지는 절망이 엄습했다. 당시 유명한 가수였던 그의 아내는 그때 임신 중이었으므로 솔맨은 아내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는 날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아내가 그를 위로하기를 “여보! 3개월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삽시다. 지금 당신은 병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이 당신 생명을 위축시키고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천금 같은 소중한 시간을 가장 아름다운 삶으로 만들어 보십시다. 지금도 멀쩡한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졸지에 죽은 이들이 수없이 많아요. 그에 비해 3개월이라는 천금 같은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솔맨은 진심 어린 아내의 말이 너무 맘에 와 닿아 다시는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남은 3개월 동안 오직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애에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Head Of Christ"를 그릴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했다. 그러는 중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3개월이 지났는데도 몸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병원에 다시 가서 진단해 보았더니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임파선 결핵이 시한부 기간에 깨끗하게 나은 것이다! 주치의 존 헨리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이 기적에 놀라 '도대체 3개월 동안 무슨 약을 먹었기에 이렇게 깨끗이 나은 거냐?'고 물었다. 솔맨은 특별히 다른 약은 먹은 것이 없고 아내가 일러준 '모든 것에 감사하는 약'을 먹었다고 했다. 주치의는 박수를 치면서 "바로 그것이 제일 좋은 명약이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요,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다. 이같이 감사하며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하늘의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7년의 머슴살이가 수일처럼 여겨졌다."고 했듯이 진실로 여러분은 세상 부유보다 하나님을! 부모를! 형제를!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될 때, 삶의 우선순위가 그리고 부정이 긍정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뀐다. 이제 주어진 모든 삶에 조건이나 여건과 관계없이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자!
종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