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기독교를 창안한 사람인가? Did Paul Ivent Christianity?
바울이 기독교를 창안한 사람인가?를 긍정하려면 바울의 기독교(Pauline Christianity)와 예수의 기독교(Jesus Christianity)가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메이천 박사(J. Gresham Machen)가 <바울 종교의 기원>(The Origin of Paul's Religion, 1921년)에서 그렇지 않다고 충분하게 변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 자유주의에서는 그러한 담론이 상당하게 논의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메이천을 따르지 않은 진영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거나 꾸준하게 토론할 것입니다. 물론 메이천 박사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바울의 기독교와 예수의 기독교”의 차이를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이천 박사는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로 대조하여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 1923년)를 출판하였습니다. 자유주의는 합리적 철학 사상(이신론적 사고 체계)에 근거해서 기독교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자유주의가 정립한 기독교는 사랑입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는 <기독교의 본질>(The Essence of Christianity, 1841년), 하르낙(Adolf von Harnack)도 <기독교의 본질, 1900년> 등을 집필하였는데, 공통적으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재구성하였습니다(Christianity is a religion of love). 칼 바르트는 기독교를 한 종교(a religion)로 평가하면서, 그리스도인을 종교가 아닌 사랑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메이천 박사는 기독교를 구속 종교(the religion of redemption from sin through Christ's Blood)라고 규정합니다. 톰 라이트는 1세기 유대교 세계관(worldview) 안에서 예수의 가치관(mind-set)을 규정합니다. 그래서 예수가 가졌던 가치관(믿음, 지향, 목적 등)은 당대 유대교 세계관에 뿌리를 두었다고 전제합니다. 그런 맥락(유대교의 한 지류로서 기독교)에서 톰 라이트는 예수와 바울을 연속적으로 평가하기는 합니다.
“현재 기독교”는 “바울의 기독교”일까요? “예수의 기독교”일까요? 역사적 예수 탐구로 진짜 예수(real Jesus)를 탐구한지 30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여러 초상(肖像)만 등장할 뿐 확정된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못한다면 기독교를 진술할 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르트의 신학은 ‘교회’에서 시작합니다. 정확한 규범(norma normans)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리는 예수의 초상은 자유주의와 현대주의 진영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 교회에서부터 믿어왔던 예수를 추구하며 고백하며 증언합니다. 고대 교회에서 믿어왔던 예수는 “구속주 하나님과 창조주 하나님(프로토코스)”이십니다. 바울은 예수를 그리스도(구속주), 주(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사도 베드로, 사도 요한도 동일합니다. 그 고백을 고대 교회는 계시 문서에 근거하면서도 역사적 증거로 유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바울이 평가한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새관점학파에서는 1세기 유대적 상황과 유대적 사상의 연속으로 바울서신, 바울신학을 재구성시켰습니다. 예수도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한 한 선지자, 한 그리스도에 위치하게 됩니다.
결국 기독교는 교리인데, 교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증거를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은 교리를 무엇이라고 합니까(What is the Dogma?)? 어떤 신학자는 WHAT IS A DOGMA?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the Dogma를 지시합니다. the Dogma는 “교회를 세운 도케인(Dokein)”입니다. 교회를 세운 교리는 “주의 이름”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믿고 전함이 교회 세움이며 이룸입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을 믿음에 대한 법적인 도전이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입니다. 아리우스는 예수를 믿도록 전했지만, 그 믿음을 “참 하나님 믿음”과 구분하면서 논쟁이 발생하였습니다. 교회는 한 하나님, 한 믿음 체계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주의 이름을 믿음”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나 공적 봉사가 아니라 “주의 이름”을 믿음이 기독교입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는지가 관건일 될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가 “예수의 자기 이해”(Jesus' Self–Understanding, the self-understanding of Jesus)입니다. 4 복음서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파악할 것인지, 예수를 믿도록 훈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복음서 저작의 목적이 가르침을 복원시키는 것이 아닌, 예수를 믿도록 하는 것에 목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0:28-31)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의 가르침, 사도의 가르침은 예수를 믿도록 가르쳤습니다. 새관점학파에 와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도 아브라함 언약 백성 안에 거함으로 재해석한 것을 제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을 믿도롤 목적하였고, 사도들의 서신서도 그러하기 때문에 동일하며, 바울은 “기독교의 창시자(author)가 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는 예수와 사도를 다르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바울을 기독교의 창시자로 볼 수 있습니다”. 새관점학파는 신의 단일 계획에 순종한 예수와 바울로 동일한 성향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