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자연을 알자!

【종그니칼럼】아침 운동

2023-07-08     김종근 목사
야생 동물 중에 가족공동체로 무리를 지어 사는 들짐승들이 있다. 사납기로 유명한 하이에나, 들개나 이리 늑대도 무리를 지어 공동체로 살아간다. 야생동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계 공동체다. 내 주위에는 길고양이들이 있는데 암고양이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을 본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부부가 자녀를 낳고 살다가 혹 남편이 가정생활에 염증이 나면 집을 나가버린단다. 가장으로서의 책임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찌 되는가? 아내가 자식들을 홀로 맡아 기른다. TV에 나오는 아프리카 빈민들을 보면 대부분 아빠는 없고 엄마가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남편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내가 마음을 다잡고 자녀들을 양육한다. 우리나라처럼 아버지로서 혹은 남편으로서의 법적 책임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들의 육아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는 것이 모계사회의 특징이다. 동남아시아도 대부분 모계사회다. 이로 보아 인류 최초의 가족 사회는 모계사회였지 싶다.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어미 젖을 물으려 기르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여서, 육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스럽게 엄마 혹은 암컷 몫이었다.
 
나는 며칠 전 금세기 최고의 걸작이라 일컫는 사진 한 컷을 보았다. 아프리카에 극심한 가뭄이 와서 모든 들 짐승들이 하나같이 물을 찾고 있을 때, 그중 어미 사자도 새끼 사자도 마실 물이 없어 몹시 지쳐 있는 그때 암 코끼리가 새끼 사자를 콧등에 얹고 물이 있는 곳으로 어미 사자와 함께 가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얼마나 감동적인 그림인가! 나는 언젠가 TV에서 물소가 새끼 사자를 보고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발로 밟아 죽이는 것을 보았다. 어찌 보면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정글의 법칙이다. 그런데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새끼 사자를 암 코끼리가 코로 꿰차고, 물 있는 곳을 찾아갈 때, 어미 암사자는 코끼리에게 새끼를 맡긴 채 따라가는 감동적인 사진을 보고, 처음엔 내 눈을 의심할 만큼 내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초식동물인 코끼리가 육식동물인 사자 새끼를 목이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사자 새끼가 자라서 초식동물인 코끼리를 사냥할 수도 있는 그런 육식동물을 살리려는 맘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약육강식의 잔인한 정글 속에서도 진정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유감없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현대문명이란 탈을 쓰고 이런 짐승만도 못한 세상에 살면서, 말이 필요 없는 진실로 감동적인 사진을 본 것이다.
 
요즘 예전보다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어 숨쉬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밭에 돋아서 나는 잡풀들은 한낮의 불볕더위로 바짝 마른 땅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요즘 나는 땡볕에서 이 잡풀들과 전쟁을 치를 때가 있다. 아무리 잡풀을 뽑고 또 뽑아도 돌아서면 금방 다시 돋아난다. 참 대단한 생명력이다. 농작물들은 거름을 주어도 제때 비가 오질 않으면 실하게 자라질 못하는데, 잡풀들은 몸뚱이 가 땅에 닿기만 하면 뿌리를 내려, 아무리 척박할 땅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무성하게 자란다. 어쩌면 이다지도 생명력이 왕성할 수 있을까? 잡풀은 아스콘 위에서도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뿌릴 내린다. 아무리 척박한 곳에서도 벌거숭인채로 꽃을 피운다. 이 끈질긴 생명력이 바로 '대자연'인 것이다. 편리와 잇속에만 눈이 밝은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온갖 환경오염의 악조건 속에서도 대자연의 이런 능소능대의 끈질긴 자생력이 없었다면, 자연은 진작 설 자리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 동물의 세계는 어떠한가? 인간처럼 포유동물인 곰은,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여 기르다가 젖을 뗄 나이인 두살쯤 되면, 새끼 곰이 제일 좋아하는 딸기밭으로 데리고 간단다. 새끼 곰이 신나게 딸기를 따 먹는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어미 곰은 새끼 몰래 딸기밭을 나와 뒤도 안 돌아보고 정신없이 도망을 친단다. 새끼 곰이 배를 잔뜩 채운 후에야 어미 생각이 나서 사방을 살펴보지만, 어미는 이미 가시권을 훌쩍 벗어난 후여서 새끼의 눈에 보일 리가 없다. 새끼 곰은 울며불며 헤매다가 지쳐서 딸기밭 이랑에서 잠을 자고, 주위를 맴돌며 어미를 찾아 며칠을 헤매고 기다려도 끝내 어미는 나타나지 않게 되면 어린 새끼 곰은 결국 홀로서기로 자립해서 살아가게 된단다. 껴안는 따뜻함도 엄마의 사랑이지만, 냉정하게 정을 떼는 마음도 엄마의 사랑이다. 새끼를 떼어놓고 떠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마는 그래도 때가 되면 자식과의 정도 버릴 줄 아는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의 삶의 질서가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엄마가 자식을 따뜻한 가슴으로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만 키우려 든다. 이젠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옛말이 되어 버렸고, 할아버지의 재력에 아버지의 능력과 어머니의 정보력 3박자가 갖춰져야, 비로소 자식을 제대로 키울 수 있다고 하니 내가 발붙이고 사는 요즘 세상이, 내게는 마치 딴 세상처럼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하긴 옛날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엔 사대부집안 외엔 출셋길이 영구히 막혀 있었다. 이젠 신분이 아닌 황금만능의 시대여서 어멈들의 사교육에 고액의 과외 경쟁을 일으키는 모습에서, 혹여 자식들이 부모들의 자기만족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현 윤석열 정부가 공교육을 살리려고 사교육에 법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맥을 잘 짚었다. 이처럼 지금의 현대 사회는 허세로 가득 찬 황금만능의 막가파 사회다. 듣자니 사교육인 학원들의 맹위에 공교육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단다. 또한 사회변화에 의한 핵가족으로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하면서 끊임없이 사회적 혼란과 수많은 사회 이슈들을 일으키고 있다.
 
옛날엔 인본주의가 사회와 가정을 주장했지만, 요즘은 오로지 돈과 지위가 가정을 비롯해 모든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자식에게 안 주면 맞아 죽고, 조금 주면 졸라대서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 세상이 되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들 하지만 돈 앞에서는 핏줄도 맥을 못 쓴다. 돈이 피보다 진한 시대다. 내 자식 잘났다고 자랑하다가 내 자식이 이럴 줄 몰랐다고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이젠 부모와 자식 간에도 되고 안 되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오늘의 노년 세대'는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안 놀고 모으며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그래서 모은 재산이 나를 지켜주는가? 아니다! 내 호주머니에 넣고 쓴 것이 내 것이다. 내 집이라는 애착을 몽땅 버리고 주택연금을 신중히 고민해 보시라.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가족에게 소외당하지 않으려면, 건강관리도 금전관리도 잘해야 한다. 금융재산을 내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어야 한다. 효도계약서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가족 간의 유대와 결속력이 약화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인간의 마음을 휩쓸고 있어 인간(人間)이란 호칭이 무색할 만큼 가정의 근본이 완전히 변질하여 버렸다. 예를 들어 나 홀로 세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래서 이를 가족공동체라 할 수 있는가?
 
가족 공동체 중심인 인륜의 질서가, 개인주의로 힘의 논리로 가진 자의 논리로 사회가 변질하면서 필경 가족제도까지 파괴되어 버렸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노부모를 가족이 아닌 국가 사회가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노년 세대는 부모에게 효도한 마지막 세대요,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다. 우리 자식들은 빈 둥지를 지키며 경로당을 전전하다가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하는 부모 세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의 흐름이 몸에 배어버린 자녀들이 야속하기만 할 것이다. 이제 노년의 세대는 옛날의 가족 개념을 완전히 버리고, 자녀의 삶과 부모의 삶이 엄연히 다름을 알고 이를 인정하여야 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효(孝)의 개념을 현시대에 접목하는 새로운 의식의 변화와 생명의 근원과 바른길을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찾는 바른 신앙이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이다. 그래서 '제임스 F. 클라크'는 "인간의 모든 가능성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의 먼 길을 갈 때 첫 걸음이 중요하듯 출발을 위한 준비가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으면 하루도 거르지 말고 운동을 하여야한다. 옛날의 효도는 연로한 부모님이 몸소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불효로 여겨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챙겨드리는 것을 효도로 알았으나 지금은 부모가 필요한 것은 스스로 네발로 기어서라도 몸을 움직여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효도다. 요양원에서도 입소한 노인분들에 대한 써빙목적을 독립생활에 두고 있다.

나는 아침 3시쯤이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먼저 어제 밤 편안히 잠 잘자게 해 주심에 그리고 새 아침을 열어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린 후, 어제 먹은 음식이 밤사이 소화가 다 되어 배설직전에 있는 대 소변을 처리하고 목욕을 한다. 또 나는 하루를 마친 저녁에 또 한번 목욕을 한다. 그리고 나홀로 터득한 아침 운동을 약 20분정도 한다. 운동을 마친 후, 물을 큰 잔으로 한잔 마신다. 그리고 새벽예배 준비를 한다. 새벽예배까지 마치고 나면 아침 여섯시 쯤 된다. 그리고 방 청소를 하고 나면 교회에서 아침기도를 마치고 들어 온 아내와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오전 8시쯤 된다.

이렇게 나는 '눈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눈을 감고 눈망울을 굴리며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두 눈을 문질러 준다. 다음으로 양손 엄지와 검지로 양쪽 귓볼을 오무렸다 펴주었다하며 문질러 준다. 그리고 양 팔을 앞으로 번갈아 내 지르기도하고 두 팔을 옆으로 쫙쫙펴며 팔 운동을 한 후 목 돌리기 운동을 한다. 목 운동은 좌로 한번 우로 한번 씩 번갈아가며 대략 50번정도 한다. 그리고 허리굽혀 펴기, 발끝이 이마에 닿을 정도로 발 끝 올리기, 무릅굽혀 서기 등 다양한 전신 운동을 한다. 운동을 모두 마친 후 내 몸 체온 정도의 물을 큰 잔으로 한잔 쭈욱 마신다. 무엇보다 목 운동을 자주 하시라.

나는 23년 전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전신이 마비되어 외과의사로부터 "교통사고로 인한 당신의 전신마비는 평생갈수도 있고, 10년 갈수도 있다."는 암울한 진단을 받았었는데, 기적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만 11일만에 퇴원하였다. 이처럼 회복이 빠른 이유는 먼저 하나님의 치유 하심이고, 다음으로 꾸준한 목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목 운동은 몸전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척추최상부의 목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척추를 바로 하면 신경이 살아나고 혈액을 맑게 해주므로 척추가 건강하면 몸은 저절로 건강해진다고 한다.

'목 운동'은 너무도 간단한 '도리도리'운동이다. 이 운동은 혈액순환장애로 인한 뇌출혈, 뇌경색, 치매, 중풍등의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하루에 100회 정도 해보시라! 매일 아침 한다는게 여간 귀찮고 힘은 들어도 3일이 지나고 4일째 되는 날이면 대부분 머리통증이 사라진다. 이 운동을 꾸준히 하면 잇몸질환도 치유된다.

"잇몸질환을" 방치하면 뇌출혈, 풍, 치매가 발생할 확률이 월등히 높다.

"도리도리"를 꾸준히 하게 되면,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기억력이 월등히 좋아진다. 나이가 들면 생기는 기억력의 깜박거림도 마냥 노화 현상이려니 치부하기 십상인데, 이것은 바로 혈액순환장애로 발생하는 것이다.

목 둘레의 혈관을 오랫동안 방치해 두면 자연히 굳어지게 된다. 굳어지기 쉬운 뇌 기능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목운동이다. 운동 방법은 1, 도리도리, 2, 좌 우로 회전, 3, 앞 뒤로 끄덕임, 횟수는 능력에 따라 많이 해도 된다. 나의 경우는 샤워를 막 끝내고 한 종류의 운동을 50번 가량 한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몸 따라서 건강해진다. 돈 부자보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소유한 자가 진정한 부자다. 건강한 삶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과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