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당신의 예술과 만나는 이 좋은 날에.
김용배님 출간 기념 축시
제가 춘천으로 이사 온지 어언 20년 가까운 세월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춘천은 제게 아주 낯선 땅 이었지요. 그때 저는 강원 Cbs 기독교 방송을 통해 김용배 장로님을 알게 된 이후, 나홀로 짝사랑을 해오다가 서로 맘이 통해서 평생지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얼굴만 보아도 음성만 들어도 서로의 맘을 헤아릴수 있는 죽마고우가 되었답니다. 여러분! 이런 말 있잖습니까? "그 사람 참 진국이야!" 바로 김용배 장로님을 두고 한 말입니다.팔십여 성상이 된 장로님을 보고 있노라면 강원도 깊은 계곡을 흐르는 명경지수처럼, 고산 준령의 노송처럼, 백발의 풍모에서 느껴지는 그의 청아한 신앙 인격은 마치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당신을 만나는 이로 하여금 언제나 포근하고 깊은 정감을 줍니다.
이러틋 김용배장로님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셔서, 조국강토에 불어닥친 모진 격랑을 거치면서, 교육 공무원으로 교육계에 몸담고 이나라 청소년들의 미래를 여는 일에 진력하시다가, 은퇴 후엔 cbs강원 방송국 창설을 위해 온 몸을 던져 오늘의 cbs강원방송국을 낳는 산파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김장로님은 마치 꽃을 만지면 향이 나듯, 누가 그 몸을 툭 치면 예수의 향이 쏟아지는 청초한 신앙 인격을 지닌 당신은 그런 분이시지요. 김장로님은 언제나 바쁜 와중에도 짜투리 시간을 쪼개서 시와 음악을 비롯하여 늘상 자연과 함께하면서, 신앙의 눈으로 여러 예술분야에 전문가의 안목을 쌓는 모습이, 문외한인 내게 언제나 깊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대자연을 보는 나의 눈은 너무 피상적이지만, 그러나 김장로님이 자연을 보는 안목은 놀라울만큼 예리하고 또 섬세합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물에서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대하면서 담아내는 그의 독특한 시(詩)의 세계와, 특히 카메라의 눈으로 자연의 숨결을 품은 그의 사진 예술은 문외한인 내게는 경이로움마저 느낄 정도로, 사물을 그려내는 안목이 특출합니다. 그는 아침에 의암호의 물안개를 보면서, 또는 한 겨울 온 누리에 하얗게 내린 눈 꽃속에서도, 우리의 육안으로 볼수 없는 대자연 이면의 세계를 그려내는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걸출한 안목이, 평범한 나와는 그 결이 전혀 다름을 보게됩니다.
카메라 렌즈로, 하늘의 구름과 바람의 흐름까지도 잡아 내는 것을 보노라면, 장로님의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들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봄비가 내려 대지를 적실때 파릇 파릇 연초록색깔로 돋아 나는 대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속에서 나는 범접할수 없는 조물주 하나님의 솜씨를 보는듯 합니다. 우리의 육안은 창조주의 눈에 비할수 없을 만큼 아주 나약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하늘 아버지의 무한한 지혜를 엿볼수 있는 진면목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는 김장로님의 팔십인생을 담은 시(詩)와 카메라로 담아 낸 인생 노트의 출시를 기념하는 자리에, 나를 벗으로 불러 주어 여러 벗님들 앞에서 그를 얘기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 것을 큰 기쁨으로 알기에, 이 송축사를 바칩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은 인간의 육안이나 과학의 눈으로도 도무지 볼수 없는 창조 세계의 진면목을, 나는 카메라로 담아 내는 김장로님의 예술의 형안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의 세계를 봅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의 세계는, 아마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예술의 맛깔스러움을 오늘 우리앞에 살포시 속살을 드러낸 진국이 이 책속에 소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나는 김장로님을 볼때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년륜의 깊이를 보곤 합니다. 만년 청년인 그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우리네 인생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 가는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그의 연륜이 말해 주듯 장로님이 그려낸 시와 작품들의 세계를 통하여 그동안 육신의 눈으로만 보아왔던 하나님의 놀라운 대 자연의 경이로움을 그가 축소해서 그려낸 작품들의 세계를 보노라면 문외한인 나도 덩달아 시인이 되기도 하고 작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 시대마다 그 시대를 그려낸 작품의 세계는 바로 그 시대의 시대상을 알리는 침묵의 외침이기도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엔 만고 풍상을 다 격은 그래서 노후 인생의 스토리가 담겨 있는 손때 묻은 자신의 집에서 여생을 마감해야 하는데, 자기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등떠밀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을 봅니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로지 세상 것들을 쫒아 살다가, 그 세상 것들 때문에 등 떠밀려 오신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평생동안 세상이 주는 것들을 모으기만 하다가 요양원에 쫒겨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젠 몸이 상전이 되었거나, 치매가 와서 자신을 잃어버린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러나 본래의 자신은 잃어버렸습니다. 팔십이 넘어서도 팔팔하게 작가활동을 할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김용배 장로님은 세상의 명예나 재물과는 전혀 인연이 없이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세계를, 카메라에 혹은 시(詩)에 함축하여 담아내고 있는 아름다운 노후의 진면목을 봅니다. 바라기는 김용배 작가님이 건강하게 이땅에 오래오래 우리들과 함께 머물면서, 하나님이 빚어낸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를 때론 시상으로 때론 카메라로 담아내 우리의 눈을 호강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3년 8월 26일.
벗 종그니가 올림.
【종그니칼럼】늙어간다는 것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 뒷편엔 어르신들이 쓰고 버린 페품집하장에는 하루에도 엄청난양의 페품들이 수북히 쌓인다. 쓰고버린 페품들은 활용가치가 다해서 폐기된 것들이다. 재활용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소각되거나 땅에 묻히게될 것들이다. 인생도 이땅에서 쓸모를 다하게 되면 용도페기된 페품처럼 인생의 무대에서 대자연의 순환을 따라 생로병사의 길을 가게된다.
요양원은 일반사회에서 용도폐기 되어 잠시 폐기물 집하장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봄,여름, 가을,겨울바람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젊었거나 늙었거나 겉 모습만 다를 뿐 내가 원초의 나 그대로일 뿐이지 늙었다고 병들었다고 그래서 요양원에 와 있다고 내가 아닌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다. 나는 아무리 굴곡진 세월을 걸어 왔을지라도 늙은 이 나이까지 용케도 잘 살아 온 것이다.
나는 6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봄, 여름, 갈, 세 계절을 요양원 터밭에서 내가 심어 자라고 있는 작물들이 자라 과실을 맺는 것을 보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앉아 있다가 일어서기가 좀 힘들 뿐이지 가꾸고 있는 농작물들을 수발드는 일이야 20여년 노인들과 함께 살아 온 노하우가 있어서 그다지 힘들 것도 없다.
노인과 농작물, 굳이 다른 것을 찾자면 어르신들을 가까이하면 찌린내가 나지만 농작물들은 풋풋하고 싱그런 향이 난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사람들의 입엔 풋풋하고 싱싱한 것들만 입안으로 들어 가는데 몸밖으로 나오는 것은 냄새도 격한 똥 오줌이지만 사람이나 가축들이 배설한 퇴비를 먹고 자란 식물들은 하나같이 싱그럽고 풋풋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자연의 순환과 정화가 얼마나 신기하고 경이로운가!
지나고 보면 모두 다 먹고, 입고, 기거동작하는 것 등 주어진 유한한 젊은 날들을 세상이 주는 無常한 것들에 홀려, 세월이 화살 같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숨가쁘게 살다가 어느 날 세파에 지쳐 이제 늙어 상전이 된 내 몸둥이를 수발을 들고 있는 나를 본다. 서산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기우는 석양처럼 이제 조금 남은 천금같은 세월이 시위 떠난 살처럼 날아간다. 그 누구가 개똥밭에 딩굴어 도 이승이 좋다 했는가! 몸 늙고 병든 몸 추스리기도 버거운데 내게 말년의 벗이 될만한게 뭐가 있을까? 정신이 아직 맑으면 스치고 지나가는 단상들을 글로 쓰는 재미에 빠져볼까?
아직 두 다리를 움직일만 하거든 방안에서 워커를 끌고라도 땀 날때까지 걷자. 걷는게 약보다 억수로 좋다. 건강이 나의 유일한 지킴이요, 열 자식 보다 훨 낫다. 효도의 개념조차 잃어버린 지금 늙어 자식 많은게 복이랄 수 있을까?
예전 내가 무의탁양로원 할 때, 열 아들을 둔 할머니가 큰 아들 손에 이끌려 와서, 마지막 노년을 내곁에서 살다 가셨으니 어찌 보면 남인 내가 열 아들보다 훨 나았지 싶다. 차라리 치매로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노인들처럼 세월이 가는 줄도, 자식이 오고 간 줄도 모르고 아련한 보고픔도, 애정도, 그리움도, 망각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그저 하루 세끼 주는 밥과, 소꿉놀이가 유일한 낙이라. 자녀가 있은 들 무엇하랴! 얼마전에도 할아범 한분이 별세 직전에 놓여, 지방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했더니, 코로나 땜에 못가니 요양원에서 알아서 화장해 달란다. 이처럼 몸이 병들어 짐덩이가 되면 병든 몸 머물 곳이 없어 여기까지 와서 구차한 몸이 자식 아닌 남의 사람 손에 산천에 뿌려지는 것을!
인생의 종착지인 이곳에 오기까지 참 먼 길을 돌고 돌아, 똥 오줌도 못가리는 늙은 아이가 되어 왔다! 늙은이들은 많이 있는데 맘을 나눌만한 늙은 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귀가 먹어서 치매가 있어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 그들 속에 아직 정신줄이 살아 있는 나는 아직은 천만다행이다! 치매로 모든 것을 잃고 사는 이가 차라리 부럽다. 세상사 모든 염려를 다 잊고 사니 얼마나 편하랴!
허지만 비록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아직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리라! 머잖아 먼길을 떠나가는 마당에 야속함도,미련도, 그리움도, 이생의 추억도 삶속에서 모두 내려놓으니 차라리 홀가분하다. 모진 비바람 지난후의 의암호수처럼 마음 또한 잔잔하다. 어쩌면 황혼녘에 들어선 늙은이들에게 부득 불 닥쳐올 현실 아닌가?
어느덧 팔순이 가까이 온 나는 때론 한주간이 하루 같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세월마저 인정머리 없이 달음박질한다. 코로나 때문인가, 기억이 쇠미해져서인가,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의 문안도 뜸하다. 이럴 땐 영락없는 고독한 늙은이가 된다. 너 늙어봤냐? 늙어 봐야 늙은이 맘을 알수 있으리라!
영원한 생명의 빛은, 인생의 밤이 아주 깊어진 바로 그 순간에, 찬란한 빛을 토한다. 이 땅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를 친구 삼아 참된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