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게리만더링(gerrymandering).
【종그니칼럼】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
입만 열면 거짓말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내가 무의탁 양로원을 어렵게 운영하고 있을 때 하도 말이 진국같아서 알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 사람이 입만 열면 거짓 말을 사실처럼 얘기했다. 거짓 말로 시작해서 거짓 말로 끝내는 그래서 툭치면 거짓 말만 나오는 사람이었다 태생적일까? 그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천의 얼굴로 말을 바꾸는 후안무치한 자였다. 이런 거짓쟁이 들이 바로 우리나라 정계에 몸 담고 있는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 정치는 그 나라 그 사회의 부패상을 알리는 바로미터 (barometer)라 할 것이다. 때문에 정치가 부패하면 모든 것이 덩달아서 부패해진다. 오랫동안 정치 판에 몸담아 온 사람이든 정치 신인이든 정치라는 이미 썩어버린 호수 물을 마시고 사는 물고기들이 병들게 마련이다. 이처럼 썩을 대로 썩은 정치 판에 혼을 빼기게 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정화시키는 일이 선결의 과제일 것임에도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구호에 그치고 만다. 그럴지라도 초아적으로 썩은 정치를 퇴출시키고 정상모리배들이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도록 신념있는 청년 정치가들의 출현을 소망해 본다. 정치판이 이처럼 온통 썩어 무드러져도 이를 바로 잡고자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正道를 따라 가려는 초출(初出)들을 시정(市井) 잡배(雜輩)가 되어버린 者들이 그대로 둘리가 없다. 예를 들어 야당대표 이재명씨는 미승유의 분양아파트 등 사건으로 지금 재판 중에 있다. 이 사건은 비단 이재명 단독 사건이 아니고 십수년동안 여야 정권이 교체되면서 같이 야합된 부정 부패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여야 모두 도찌니 개찌니다. 그는 일개 성남시장으로 몸을 일으켜 중앙 정치 무대에 섰고 마침내 야당 대통령후보 까지 된 가히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에서 풍기듯 그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얼굴은 오늘 이나라 사회상을 그대로 담은 가히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마치 윤석열 부부의 정신적 지주라고 하는 혹세무민의 무슨 도사와 비슷하다. 바로 이 나라가 與 野할 것없이 이런 이단아(異端兒)들에 의해 휘둘리고 농단되고 있으니 나라가 무슨 수로 바로 가겠는가? 나는 민주당 대표를 보면 항상 제기 되는 물음표가 있다. 그가 무슨 만석지기 가문도 아닌 흙수저 출신으로 개천에서 용된 인물인데 법조인으로 몸을 일으켜 중앙 정치무대에서 野를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자로 고배를 마시고도 버젓하게 거대 야당을 어떻게 이끌어 오고 있을까? 참 대단한 능력자다. 도대체 이것이 가능한 일 일까?
서일필(鼠一疋)에 불과한 나의 안목으로는 실로 이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 누구로 부터도 그가 인생(人生)을 성실(誠實)하게 살아 왔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을 나는 도통 들어 보지도 못했지만 그가 거대 야당인 민주당 대통령후보에 그리고 지금은 민주당대표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0,75%차로 패해서 폐기 처분 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소각되지 않고 재활용 되고 있다. 민주당은 왜 일회용품과 같은 그를 온몸으로 감싸며 따르고 있는 것일까?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 그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래서 윤석렬에게 패배함으로 그는 마땅히 용도처분 되어야함에도 그는 여상히 건재하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 후진 정치의 현주소다. 실로 수수께끼같은 히스토리다. 이처럼 푸대가 삭고 낡아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데도 민주당은 그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 선거가 코 앞에 다가 오자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민주당 소견을 발표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의 원래의 취지인 소수의견을 반영하는 제도는 간곳 없고 다수당의 위성 정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與도 野도 덩달아 도찌니 개찌니로 맞장구치는 행태를 보면서도 내가 과문인지는 몰라도 이에 토다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 이런 그가 대통령 후보로 재도전하겠다는 데도 그 잘나고 입담 좋은 이들이 하나같이 그 앞에서는 마냥 고분 고분한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이것이 능력인가? 그 뿐아니다. 도통 알아들을수도 없는 개딸들이 그의 호위무사가 되고 있다. 지난 총선 때 첨 시작했던 연동제는 말 그대로 위성정당으로 그 취지가 무색케 되었음에도 이 재미를 톡톡히 보았는지 이번에도 與랑 野랑 한 통속이 되어 이렇게 적과 내통을 하며 연동제가 아닌 거대 與野의 위성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판에 임하는 자세와 국민을 향한 자세가 기막히게 표리부동하다.
지금 이 나라는 권모술수가 능수 능란하여 당리 당략이나 사리 사욕에 물든 자들이 판을쳐 나라가 돌이킬수 없는 나락속으로 줄달음 치고 있음에도 나 남할 것없이 먼 산 보듯하고 있다. 가히 현대 판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다. 혹여 학 모가지처럼 때 묻지 않은 청렴한 지도자를 찾으려고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먹을 것이 없어서 기근이요 마실 물이 없어서 기갈이 아니라 정의와 정직이 없어서 오는 목 마름이요 배 고픔이다. 엇그제 한 밤중에 위르겐 클린슨만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컵대회 4강 전을 놓고 한국 축구팀이 요르단과 2대 0으로 완패했단다. 글린슨만 감독은 오래전부터 지도자로서의 능력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축구는 겨우 14명이 뛰는 경기임에도 지도자의 역할이 이토록 엄중한데, 하물며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역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국을 다스리는 대통령이 어떤 국가 전략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가히 그 나라와 국민들의 운명까지도 완전히 바꾸어 놓을수 있기때문이다. 이 막중한 시기에 우리는 무능했던 문재인 정권으로도 모자라서 이 꼴을 다시 보아야 하는가? 그는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댓가로 막중한 나라 중추의 노른자리에 얼마나 많은 낙하산 등용이 있었던가! 이렇게 또 겹치기의 무능 정권 때문에 나라 경제가 한없이 나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어 창자가 끊어질듯 억장이 무너진다. 세종대왕이 조선 초기에 한글 창제와 과학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것은 신분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널리 구하여 이들을 유감없이 활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정희 전두환 정권때에도 인재를 널리 등용 했었다. 지금 윤정권은 어떤가? 할 말이 없다.
2024년 우리나라의 경제 전망은 희망적이지 못하다. R&D예산 삭감이 후 현장에서는 장탄식의 소리가 들린다. 일방적으로 연구비를 삭감하거나 연구 취소를 유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 NASA에서 有人 달 탐타선 '아르테미스 2호'에 우리의 큐브위성을 탑재해주겠다는 제안이 왔으나 겨우 100억 여원의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가 두번 다시 없을 그 좋은 제안을 보이콧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대통령해외 순방비로 578억원을 물쓰듯 쓰는 나라에서 100억원이 없어 우주탐사계획에 참여할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그로부터 며칠 뒤 미국 워싱턴의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과학기술 주재관을 폐지했다고 한다. 이 자리는 미국정부와 과학 관련 이슈를 소통하고 협력하는 창구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을 보면서 문외한인 늙은 내가 들어도 억장이 무너진다. 과연 윤정권은 국가전략으로서의 과학기술 정책이 있기나 한 것일까? 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그래서 인재를 길러 이를 자원으로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나라에서의 대통령의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의 자리는 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자리이기 때문에 축구게임 감독과는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 축구 감독이야 좀 무능해서 바뀐들 어쩌랴! 그러나 대통령자리는 이와 비길 바가 아니다. 아무리 5년 임기의 대통령이라지만 그가 서있는 위치가 얼마나 막중한 자리인 줄을 알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자리는 또한 폼잡는 자리는 더 더욱 아니다. 오천만 국민의 안위와 생존이 그에게 달려 있다. 북한에 대고 입으로 엄포한다고 국방이 잘되는게 아니다. 입만 살아서가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능력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종합 컨트롤 타워다. 권위에 젖어서 모든 것을 독단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고 인적 물적 자산을 아주 유효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유능한 대통령이다.
당신은 오늘 이라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구우일모(九牛一毛) 라는 말처럼 내가 살아 온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한 날인가요? 아님 '오늘'이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을 결산하는 마지막 날이요. 동시에 나의 남은 날 들 중에 첫 날로 아시나요? 나의 남은 날들을 천금처럼 살리는 사람이 있고 마치 돈을 낭비하듯 주어진 세월을 죽이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은 어느 부류에 속하시는가? 중국 춘추시대를 풍미한 孔子(공자)는 대철학자로 유가(儒 家)의 비조(鼻祖)이자 육경(六經)을 산술(刪述)하고 仁을 가장 이상적인 '道德' 즉 '사랑'으로 보았다. 이를 이은 宋나라 때 정치가 이자 학자 사마광(司馬光)에게 제자 유안세(劉安世)가 이렇게 질문을 한다. "수만 개의 한자 중 좌우명이 될 수 있는 글자 한 자만 고른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사마광은 이렇게 답한다. “한 글자를 고르라면 "성(誠)"을 고르겠다." 성(誠) 이란 말씀 언(言) 변에 이룰 성(成)이 합하여진 글자다. 자신에게든 상대에게든 말한 대로 이루는 것이 성(誠)이니 '언행일치'가 바로 성(誠)이다. 인생은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 誠으로 인생을 채워가는 것이다. 성실함으로 인생을 채울 때 우리 인생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왜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에 있어서 성실은 우리가 걸어야 할 최선의 길(路)이자 우리를 방어해 줄 최고의 무기이며, 인생의 정도(正道)이기 때문이다.
1865년 앤드루 카네기가 설립한 철강회사에 찰스 슈왑(Charles Schwab)이라는 사람이 사내 정원 청소부로 취직을 했다. 슈왑은 정원만 청소하면 되었지만 공장 내부까지 말끔히 청소를 했다. 이것은 타고난 그의 성실함이었다. 이러기를 계속하자 관리자들의 눈에 띄어 직공(織工)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직공이 되어서도 여전히 성실했고 사무원으로 발탁되어서도 마찬가지였기에, 마침내 그는 카네기를 보좌하는 비서로 승진되었다. 카네기의 비서가 된 슈왑은 종이와 펜을 들고 그림자처럼 늘 카네기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슈왑을 지켜봐왔던 카네기는 머리 좋은 회사의 중역들을 제쳐두고 겨우 초등학교 졸업밖에 못했지만 변함없이 성실하게 일해온 슈왑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카네기는 슈왑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성실과 근면의 정신적 바탕 위에서 이 회사는 성장하리라 믿네. 자네가 지식과 조언이 필요하면 박사, 석사 학위를 가진 자들을 채용하면 되니 그 점은 염려 말게." 이는 성실은 학력이나 지식보다 값져서, 성실보다 나은 지혜는 없다. 머리는 빌릴수 있지만 성실은 빌릴수 없기때문이다. 세상은 영리한 사람들이나 영웅들에 의해 변화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슈왑처럼 한결같이 성실한 이들에 의해서 변화된다. 성실(誠實)이라는 단어는 '정성을 들여야 열매를 맺는다'라는 뜻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해야 할 일 그리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을 꾸준히 묵묵히 행할 때 반드시 열매를 맺음을 기억해야겠다.
【종그니칼럼】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
사람들은 사람에대하여 '생긴대로 말한다' 혹은 '얼굴 값을(못)한다.' 라고 평한다. 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듯이, 사람의 언행 또한 천태만상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일생을 사는동안 그 얼굴이 삶의 적응에따라 열번도 더 변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함은 "사람은 자기 나이 40이 되면, 그 얼굴에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얼굴'할 때 '얼'은 그사람 됨의 인격 즉 얼이 깃들어 있는 곳(굴)이 '얼 굴'이다.) 이 얼굴이 그 사람의 인격에서부터 됨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즉 얼굴이 그 사람됨의 마크다. 대개의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휘어잡는 능력에 따라서, 년륜의 나이테가 그려지듯 내면의 품성이 얼굴에 묻어 난다.이것이 바로 인격이다. 어떤이는 자기를 낮추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이는 입만열었다 하면 자기말만 앞세우거나, 자기의 존재감만을 과시하거나, 자기를 포장하기 바쁜 사람도 있다.
인사권자가 고위 공직 후보자를 선정할때에, 그 후보 당사자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점검부터 엄격하게 진퇴의 결단을 할 강단이 있어야 한다. 국회 청문회에서 청문회를 할 때에, 그 후보자의 떳떳하지 못한 재산형성이나 살아 온 행적들이 적나라하 게 드러날때에,이를 지켜 보는 국민들의 눈에는, 그 재산 형성 과정이나, 그가 살아 온 삶의 흔적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선명하게 읽혀지는데도, 정작 당사자 본인은, 설득력있는 해명도 못하면서, 어줍짢게 장황한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옛말에 '인사가 만사'라 했는데, 이나라 오천만 인구중에, "그 자리에서 일 할만한 사람을 찾기가 그렇게도 힘들단 말인가?
눈깜 땡깜으로 해도, 이 보다는 낫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국익에 맞춰, 적재적소의 인물을 발탁하면 되는 것이지, 左 右를 가리거나, 입에 맞는 사람을 앉히는 것은,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정치의 근본이 아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정도를 벗어나, 어그러진 길로 가는 것을 볼 때, 정치하는 이들의 안목이 너무 짧아 하나같이 그 나물에 그 밥인양 싶어 안타깝다. 4년마다 혹은 5년마다 선거가 있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권력의 근원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선거에서,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온갖 술수와 금권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하면서, 부정으로 당선된자가 민의의 대변자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진정 있어야할 민주정치'가 아닌 것이다. 입법부 본연의 권리가 훼손되어, 통법부로 전락되고 만다면, 그리고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여, 우선 이기고 보자는, 그래서 국민의 투표권행사의 바른 참여를 흐리게 만든다면, 이는 衆愚정치로써,대의 민주주의 의 꽃이라할 수없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정치의 근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온갖 부정으로 당선증을 거머쥐고, 그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오리발을 내미는 철면피들이,이 땅에 더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진실로 국민들이 대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나라 정치판에서는, 권모술수에 능소능대한 시정잡배와 같은 무리들이, 오랫동안 정치판을 좌지우지해 왔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구태정치의 현주소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정직이 밥먹여 주냐'며, 정치인이든, 법조인이든, 경제인이든, 곡예사들처럼 줄타기에 능소능대한 자들이 쟁명하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 건국의 시작부터, 정치풍토의 물갈이가 제대로 안되어, 지금도 인맥을 통한 정실인사들이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는 비단 중앙에만 국한 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춘천에도 학연 지연등 텃세가 만만치 않다. 이러한 토양위에서 공명정대란, 마치 연목구어 (緣木求魚)처럼 正道를 찾기가 힘들다.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격언이 과연 이땅에 빛을 발한적이 있었던가! 동물들의 본능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움직이는 '이커노믹 애니멀'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고 움직이듯, 이러한 사회에서 '진솔'이니,정직이니 하는 말발이 씨가 먹힐 공간이 없다.그러나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이, 국가 또한 백년대계를 내다 본다면, 진솔과 공명정대가 최상의 정책임을 알아, 이제라도 잘못된 토양을 갈아 엎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설사 자신의 거짓이 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긴 안목으로 보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경희대 경영대학원의 이동규 교수는, 최근 펴낸 ‘한국인의 경영코드’라는 책에서,'정직은 감동을 낳고 감동은 기적을 낳는 법' 이라며, '정직'에 있어 핵심적인 3가지를 얘기하고 있다.
첫째, "변명으로 시작하지 말라." 잘잘못을 떠나 드러난 사실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면, 첫 단추부터 실패한 것이란다. 둘째,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의적절한 때가 중요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미적거리다간 오히려 의혹만 증폭되는 것이다. 셋째, "절대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임을 보이라는 것이다 ." 이러한 3가지 핵심은,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카톨릭에서는 오래전부터 ‘내 탓이오’ 운동이 있었다. 가정이나 교회 그리고 직장이나 모든 사회에서의 돌아가는 부정적인 현상에 대해, 남의 탓 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고, ‘내 탓이오’라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도록해서, 종내는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는 신앙운동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네 탓이오’ 소리만 들리고 있다. 솔직하면 나만 손해 본다고 여겨, "하나님이 내 아내로 준 저 여자가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한 아담처럼, 우리는 이렇게 ‘오리발’ 만 내미는 원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음 대선을 비롯한 모든 선거에서는, ‘네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잘못이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가슴을 치며, ‘그것은 내 탓이오’ 라고 잔신에대하여 솔직한 정치인, 자기 앞의 이익만 보지 말고, 역사를 길게 보며,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정치인, 그런 정치인들을 지금 나는, 눈물겹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