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폭의 씨줄로 엄습했던 5 • 18 

2021-05-18     이맹영 목사
이맹영 목사

오늘은 5 • 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때가 되면 고교 때 부른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  이 노랫말이 절로 입에서 나옵니다. 이 노래는 자연발생적인 순수한 마음으로 역사적 현장에서 가슴으로 부른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제 인생의 큰 분수령이 되었기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당시 저는 광주일고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정진하고 있었던 고교생이었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5 • 18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부가 반대적인 행위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첫 목격한 것은 학교 교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대검을 총뿌리에 꽂고 저희들에게 위세를 가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참을 수 없는 의분으로 인하여 적극적 가담자가 되어 선두지휘차량 Speaker가 되어 시민을 독려하는 Speech을 열심히 하면서 수습 전 날까지 여러모로 이 운동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정황을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 불순한 세력들이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간첩들에 의한 폭거로 규정하는 천인공노할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가기념일로 정할 정도로 명백한 일들을 전복하려고 하는 이들의 국가관은 어떤 국가관인지 참으로 개탄치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혼란했던 그 당시에 간첩들이 그들의 임무수행을 위하여 광주에 집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에 의해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이 조정되었다는 주장은 빛고을 광주의 혼을 짓밟는 야만적인 행위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이 인지하는 사실을 거역하는 반역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시민군들은 간첩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체포하여 구금하면서, 국법을 저버린 군부에 항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 또한 의심스러운 두 사람을 체포하여 이를 담당하는 시민군에게 넘긴 일이 있습니다.

저는 5 • 18 신군부의 압력으로 인하여 광주일고 재학 중 강제퇴학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청운의 꿈을 접고 젊은 날을 분노한 황소처럼 지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주님을 만나 늦갂이로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는 성은을 입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분수령이었던 5 •  18은 육사생도를 꿈꾸던 저에게 선지생도가 되도록 그 방향을 바꾸게 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연하게도 제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 5 • 18의 장본인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 전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 너는 이제 이들을 용서해야 할 사람이 되었다.”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두 분께 성경책을 서울구치소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이 죄를 용서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반갑고 기쁜 일은 노태우 전대통령께서 큰 딸 노소영씨의 진심어린 기도의 열매로 몇 해 전에 신앙인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인이 되기 전에 구치소에서 성경을 열심히 읽는 은혜를 입었다고합니다.

5 • 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객관적인 사실이 왜곡되지 않기를, 그리고 이 땅에 용서와 평화가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회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