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산화된 두 소방관

【종그니칼럼】인격(人格).

2024-02-05     김종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보다 더 초급(秒急)을 다투는 긴박한 일이 무엇이 또 있을까?   이 찰나(刹那)의 순간(瞬間)은 촌각을 다투는 그야말로 생사를 가름하는 천금 같은 순간이다.    이 긴박한 초급을 다투는 주어진 그 짧은 순간에 마음을 다잡고 몸을 던져 신속 침착한 속전 속결의 결행을 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건물에 불이 붙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넋나간 사람처럼 정신 줄을 놓아버리거나 허둥대다가 천금같은 시간을 어이없게 놓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 하다.  불길이 막 시작되었을 그 때 침착하게 그러나 주도면밀하게 서둘러 잡아야지 그 천금같은 기회를 허둥대다 놓치게 되면 한 순간에 화마에 휩 쌓이게 된다.   무엇보다 이 때는 건물안에 갇힌 생명을 구하는 일이 초급한 과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도 15-6년을 운영해 오면서 눈이 뒤집어져 버릴 만큼 아니  간담이 녹아버릴 만큼 초급을 다투는 일도 있었다.   6~7년 전 수요예배를 마치고 막 1층 와상환자 실에 들어서는 순간 벽에 설치된 전기 코드에 불이 붙어 전선을 타고 불이 천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얼결에 불이 붙은 전기 줄을 손으로 잡고 코드에서 뽑아 내 가까스로 불길을 막았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였다. '일촉즉발의 위기' 어쩜 수요예배를 마치고 평소의 습관대로 그 입원실에 들어서는 순간 불이 전기 코드에서 일어나 전기 줄을 타고 타 오르는 그 순간에 내가 병실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것은 그저 우연이었다."라 고 치부할수 있을까?    상상만해도 끔직한 대형참사를 부를 뻔한 그 아찔한 순간에, 어쩜 그렇게 적시타로 내가 그 병실에 들어섰던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돌보심 이었기에
그때의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부터 20여년전 청평에서 내가 무의탁 양로원을 하고 있을 때다. 약간 치매가 온 할아버지가 직원들의 눈을 피해 양로원 밖으로 나와 천막으로 설치한 창고로 들어가서 담배를 태우다가 창고에 불을 냈다.   타오르는 불을 본 나는 정신이 없었다.  소화기가 바로 옆에 있는 데도 물 물 하며 물을 찾고 물통을 찾았다.     그때 양로원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들린 젊은이가 잽싸게 소화기를 들고 달려가서 초급을 다투는 불을 진압했다.   다행히 창고 지붕에 불구멍은 크게 뚤렸으나 창고에 쌓인 물건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 그때 만약 허둥대다 창고에 불이 붙었다면 그 불덩이가 바로 산으로 옮겨 붙어 이루 말할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참변을 격었을 것이다.   그 때 소화기로 불길을 잡아 준 그 젊은이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하나님이 이를 아시고 때 맞추어 젊은이를 보내주셨던 것이라 여겨진다.        지금 해가 바뀌고 소한 대한도 지나 벌써 설 날을 며칠앞 둔 立春이란다.  하지만 날씨는 아직도  한 겨울이다.    춘천 서면 지역은 아직도 도시가스 설치가 되어 있지 않아 전기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삶의 질과 영역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면이 있는 반면에 아차하면 엄청난 재앙을 부르는 반대 급부가 있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요양원에서는 소방훈련을 항상 게을리 하지 않고 있지만 무엇보다 종사자들의 숙지 자세가 엄청 중요하다.   

왜냐하면 요양원에는 홀로서기가 힘든 노인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종사자들의 소방 숙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언제든지 자칫 흉기로 돌변할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완전하지 못하다.   그 예가 바로 '화재 경보기의 오작동' 이다.    화재 경보기가 갑자기 오작동 되어 1층에서~ 4층 전층에서 그야말로 '화재 경보기'란 말에 어울리게 간담이 서늘하게 쩌렁쩌렁 울릴 때면, 오금이 저릴만큼 몰골이 송연해진다.      그런데 이 경보기 오작동이 낮에 울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밤중에 울린다.    화재 경보기가 오작동 되어 갑자기 울릴 때면, 나는 언제나 정신 없이 허둥대다가 오작동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 내린다.   오작동이었으니 얼미나 다행인가? 허지만 화재 경보기 오작동이  마치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나를 훈련시키듯 일년이면 몇차례씩 오작동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허둥댄다.     이런 오작동에 길들여져서 무상심해질 법도 한데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면 나는 언제나 사시나무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 내외는 일년 내내 이 요양원 파숫꾼의 자리에서 비껴 설수가 없다.    요양원을 떠나 하룻밤이라도 맘 편히 지내려면 하룻밤이라도 좀 잊혀져야 하는데 아마 요양원의 염려 걱정거리를 보따리에 다 싸가지고 나왔는지 요양원을 떠나 있어도 불안하기는 매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지킴이'의 삶인가 싶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소박한 사명감과는 사뭇 다른 눈물의 현장을 뉴스를 통해서 보고 나는 지금 참담한 비통에 젖어 있다.   경북 문경 소방서 소속 소방관 김수광, 박수훈 두 소방관들은 지난 1월 31일 오후 7시 47분경에 화재 현장에 도착하여 그곳 인근에서 근무하는 이에게 "혹 건물안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못 피한 사람이 한 사람정도 있는 것같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주저없이 "그럼 구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두 사람은 3층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으나 식당 건물 기름통에 불이 붙듯 삽시간의 불길에 휩쌓여 두 소방관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젊은 소방관들의 순직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인정이 메말라 하루가 멀다하게 자기가 낳은 자식을 죽이는 사건 직계존속 살해 사건 묻지마 살해사건 등 흉폭하고 비정한 사회로 점점 치달아 가고 있는 지금 여기에 종지부를 찍고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훈훈한 사회를 꿈꾸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내 던져 불속으로 뛰어든 이런 영웅들의 희생적 죽음이야 말로,  온정과 이웃 사랑이 식어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사회가 이를 계기로 새롭게 태어나 마음에 새겨 추모하고 기려해야 할 살신성인의 진면목이다.

불길이 치솟은 공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두 명의 소방관들은 구조 장비를 착용한 채 현장을 살피더니 이내 하나같이 건물 안 불속으로 뛰어 들었다.   "지금 불길이 치솟아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건물 안에 분명 누군가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핀단되는 순간, 두 소방관은 스프링처럼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27살 김수광 소방교와 35살 박수훈 소방사, 두 젊은 소방관들은 끝내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 돌아오지 못했다.
옛 말에 "화마가 훑고 간 흔적은 남아 있어도 홍수가 훑고 간 흔적은 없다."
지만 아니다!   대 홍수가 나서 물이 잠겼다 빠지면 가재도구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대 화마가 핥고 가면 남아 날 것이 없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 오면서 위험천만한 생사의 기로에 서는 그야말로 아찔한 순간에 서야 할 때가 있다. 나도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루 형언할수 없는 생사의 기로 고립 무원의 처절한 상황에 놓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 천직이 소방관이었기에 화마에 휩쌓여 불구덩이에서 죽어가는 처연한 순간들을 그들은 너무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초급을 다투는 가슴을 옥죄는 현장들을 보아 온 그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생각해 보라!  타오르는  불길 속에 같혀 있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일촉즉발의 기로에 설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  

5년 전 임용된 김수광 소방교는 여러 재난 현장에서 동료들의 신임이 높았다고 한다.   지난 해에는 소방관들도 따기 어렵다는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해 스스로 인명 구조대에 자원했을 만큼 사명감이 투철했었단다.
황국현 경북 성주소방서 소방장은 울먹이며, "한 명이라도 더 인명을 구하려고 하는 사명감에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은 그런 친구였는데," 라며 말을 잊지못했다.  서른 나이에 소방관이 된 '박수훈 소방사' 그는 평소에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소방관으로서의 사명의식이 대단했단다.    생각해 보라! 이땅에 수많은 직업이 있다.   자기가 맡고 있는 직책을 하늘이 준 천직으로 알고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온갖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과연 얼마나 될까?  그래도 이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살 맛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 자신을 녹여 맛을 내는 이러한 살신성인의 진인(眞人)들이 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를 할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가족제도가 해체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응책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요양원제도 인데, 이 제도는 현재의 노인들만을 위한 일회성 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 미구에 닥칠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제도 이므로 나 남할 것없이 서로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 이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이와는 전혀 딴 판이다.   무슨 심사로 자격증만 취득해 놓고 요양보호사의 일이 바로 미구의 나를 향한 일 임에도 마치 오늘의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같아 씁쓸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들이 장롱속에서 잠자고 있는 지금, 요양원마다 노인들을 수발할 손들이 모자라서 아우성이다.      그결과 요양보호사 중에는 입소한 노인들보다 나이가 더 많은 일흔이 훌쩍 넘은 이들도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 문밖에는 노인들을 위한 '파크 골프장'이 있다. 이 파크 골프장이 십여년전부터 전국에서 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갈곳이 없던 은퇴자들에게 노후의 건강관리 놀이터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오늘도 강변 뚝방 길을 걷는데 파크 골프장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직장 은퇴자들이 소일할 곳이 없어서인가?  파크골프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눈엔 요양보호사들 이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늙었든 젊었든 한 생애를 마감하고 관 뚜껑을 덮을 때 두번다시 없는 일회자(一會者)의 인생 후회없는 생애들이 되시라!   오늘의 주인공 고 박수훈 소방사는 어느 날 SNS에 소방관이 된 걸 기뻐하고 활짝 웃는 모습이 남아 있어 이를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하게 하고 있다.     짧고 굵게 그리고  몸을 불살라 최선의 삶을 살다가신 두 분의 소방관을 추모하며,  "조금이라도 훈련을 더 하려고 하고 거기다가 예의까지 바르니까 가면 갈수록 고개 숙이는 친구라서..." 라며 말을 잊지못하는 동료들의 그리움에 울먹이는 모습들을 보며 이제 유명을 달리한 두 소방 영웅들에게  나라에서는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두 소방관의 유해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자신을 불살라 주어진 소방의무를 생명을 초개처럼 던져 소방史를 새로 쓰신 두 소방관님!  당신들을 오래토록 기억하리이다.
밝은 사회 살만한 사회를 열기위해  촛불처럼 소금처럼 자신을 녹이는 사람은 이 사회에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선각자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인격(人格).

사람에게는 격(格)이 있다. '인격' '품격' '성격'등 이다. 옛글에 '格物致知'란 말이 있듯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이 格을 지킬 줄 아는 것이, 곧 나이 값을 하는게 아닐까? 큰 땜이 무너지는 것도, 아주미미한 구멍에서 시작 되듯이, 나는 아주 사소한 일로 마누라와 종종 입씨름을 한다. 같은 말을해도 얼마든지 좋은 말로 할수 있는데도, 꼭 자존심에 상채기내는 염장지르는 말로 시작 할 때가 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속앓이를 풀데라곤 가장 만만한게 남편인 나다. 꼴짜가 나서 내뱉는 말 가지고, "또 어디서 기분이 상했나 보다." 하면 끝날 것을, 수십년을 한 몸되어 살아왔으면서 염장지른 한마디에 영락없이 난 금새 샐쭉해져서 입이 튀어나와 볼멘소리로 쏘아 붙인다. 난 그래서 오지랍이 넓지 못하다.마누라에게도 지고, 또 나와의 싸움에서도 항상 지고 만다. 그리고는 돌이킬수 없는 일 저질러 놓고, 결국 싹싹비는걸로 끝날거면서, 어쩌자고 시비를 걸었는지 나도 참 '자고새'처럼 구제불능이다.

항상 2%가 모자란 푼수떼기라서 늦게서야, "내가 잘못했으니 맘문을 열어달라"며,마음의 빗장을 열때까지 싹싹빈다. 아내 이긴 남편있다면 그건 팔푼이란걸 알면서도, "져 주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라고 수없이 되뇌이고서도~~,"그래 아내 앞에서 자존심세워서 어쩔낀디이? 누워 지 얼굴에 침 밷기지" 난 이렇게 언제나 마누라 앞에 서기만 하면, 난 한 없이 아둔해진다. 서슬 퍼렇고 똘똘하고 깔끔한 마누라 눈으로 보면, 나는 영락없이 나사풀린 띨띨이다.

춘천 어느 아파트 이름이 '이 편한 세상에'가 있던데, 제목이 내게 아주 딱이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 작업복 따로, 나들이 옷 따로 입고 다녔겠는가?

엇그저께 마누라가, 오늘 수요예배 설교를 부탁해서, 새벽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보 오늘 설교 내가 할께!" 나는 풍선바람빠진 소리로 "말씀준비 다 마쳤는 디" 하마터면 나올뻔한 대꾸를 꾹 참고, "응 알았어." 성경은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 먼저 네 마음을 지키라."하시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하셨다.

이처럼 성경은 수시로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글구 내겐 또 하나의 거울이 있다.

그것은 내 마누라가 나를 평하는 입이다. 지내놓고 보면, 마누라의 잔소리가 많을 때, 그게 나를 향한 관심이고, 나를 향한 애정이었다. 염장지르는 말, 자존심을 뭉개는 말이라도, 나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외치는 바램으로 들어 주는게 '가화만사성'이다. 진실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줄 알 때, 나를 한단계 낮추고 볼 때, 나의 후미진 내면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열리게 되지 않을까?

무슨 일에건 먼저 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야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 때, 객관(客觀)의 눈이 열린다. 나에 대해 자고하지 말자! 좀 더 낮아지고 겸손하자!

이런 일화가 있다.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고 돌아오자, 현종이 친히 마중을 나가 얼싸안고 환영을 하였다. 거란은 중원을 쳐서 천하를 도모하려는데, 배후에 있는 고려의 북방정책과 맞물려, 거란은 빈번히 고려의 북방정책에 각을 세우곤 했다. 또 다시 거란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오자,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맞아 궤멸시켰으니 이것이 그 유명한 귀주대첩이다. 이에 고려왕 현종은, 강감찬장군을 왕궁으로 초청해, 중신들과 더불어 주연상을 성대하게 베풀었다. 한창 주흥이 무르익어가고 있을 무렵, 강감찬 장군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소변을 보고 오겠다며 현종의 허락을 얻어 자리를 떴다. 장군은 나가면서 살며시 내시를 보고 눈짓을 했다. 그러자 시중을 들던 내시가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강 장군은 내시를 곁으로 불러,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내가 조금 전에 밥을 먹으려고 밥그릇을 열었더니 빈그릇 이었네. 어찌 된 일인가? 내가 짐작컨대 경황 중에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걸 어찌하면 좋겠는가?"

순간 내시의 얼굴이 새파랗게 일그러졌다.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빈이 강감찬 장군이고 보면, 그 죄를 도저히 면할 길이 없었다. 내시는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이때 강 장군은 그를 일으킨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미가 급한 상감께서 이 일을 아시면 모두들 무사하지 못할 테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가? 내가 소변보는 구실을 붙여 자리를 비우고 나왔으니, 내가 다시 자리에 앉거든 내 곁으로 와서, '밥이 식은 듯 하니 다른 것으로 바꿔 드리리다' 하면서 밥을 갖다 놓게나" 이 말에 내시는 너무도 황망하고 감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이 일이 있은 후, 강감찬 장군은 이 일에 대해 끝가지 함구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내시는 그 사실을 동료에게 실토했으며, 이 이야기가 다시 현종의 귀에까지 들어가 훗날 현종은, 강감찬 장군의 인간됨을 크게 치하한 후, 모든 사람의 귀감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인간됨의 참 진가는 지위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여상히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격보다, 보이는 재물과 권력에 마음이 먼저 가 있다. 그것은 내 삶의 가치관이 세속화 되어, 主와 客이 서로 바뀌어졌기 때문이리라!

젊은 날 내 친구는 경상도 봉화에서 월 생활비 1만원으로 합 12만원으로 1년을 살며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인생은 지천이 삶의 터밭이니, 인생의 밭을 일구어 소망의 씨앗을 뿌려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