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룡】자유신학과 대립하는 보수신학의 틀

김영규 박사

2024-10-21     리폼드 투데이

지난 10월 21일 장충교회당에서 박형룡 박사 보수신학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소강석 목사가 "한국교회 보수신학의 아버지 박형룡 박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사실 박형룡 박사가 메이첸의 신학을 그대로 전파했다는 점에서 보면 한국보수신학의 아버지는 메이첸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박형룡 박사의 신학, 특히 현대교회론 비판과 관계된 논의를 종합하여 보면, 박형룡 박사는 메이천이 <기독교와 자유주의>(1923) 등에서 사용했던 동일한 방식의 학문적 접근 방식을 자신의 논문에서 사용했다고 이날 세미나에서도 김길성 교수가 발표했다. 

근본주의 신학자인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틀에 대해서 당대 세계 최고의  칼빈주의 신학자인 김영규 박사의 글을 그의 저서 <17세기 개혁신학>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소강석 목사는 제105회기 총회장을 역임하면서 우리 총회 역사 갈라콘서트 "불의 연대기"를 제작 발표하였을 때 박형룡 박사의 삶과 신학을 가사로 쓰고 노래로 만든 적이 있다.

휘몰아치는 역사의 파도
흔들리는 진리의 불빛
밤마다 찾아오는 고뇌 
심장이 저리는 간절한 기도
주여 보수신학 지켜 주소서
외롭고 험한 길일지라도
진리의 등잔 위 불꽃만큼은 지키게 하소서
나의 눈물을 쏟아 보수신학 물길을 내고
나의 피를 바쳐 등잔 불꽃 타오르게 하리
나의 생애는 오직 예수
나의 신학은 오직 성경
나의 신앙은 오직 은혜
나의 사명은 오직 충성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살다가지는 않으리 

박형룡 박사의 자유주의 신학 비판의 틀

첫째로 박형룡 박사의 유학시절 쯤에 두드러지게 보수주의 기수의 역할을 하였던 메이천의 정통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대조시킨 그런 틀이 그의 틀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박형룡바사는 한마디로 메이천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했다고 본다.

박형룡 박사가 1928년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곧 1929년에 메이천 박사의 『신앙이란 무엇인가?(What is Faith?)』가 Floyd Hamilton에 의해서 번역되었고, 그가 친히 자유주의 신학과 전통신학을 대립하여 다양한 신학적 조류들을 비판할 때 메이천의 1921년 작품인 『바울종교의 기원(The Origin of Paul's Religion)』과 1923년 작품인『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를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의 대조는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대조와 같은 대조일 가능성은 있었다. 이 문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와 대립하여 싸우되 역시 근본주의와 싸우는 Louis Berkhof의 틀과 박형룡 박사의 틀과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L. Berkhof가 근본주의자들과 똑같이 모세오경 저작설 문제와 성경무오설의 변호를 위해 Janssen과 싸웠지만, 언제든지 전 천년설을 부정하고 현실에 대해 적극적인 무 천년설의 입장에 서 있었다. 박형룡 박사의 후기 신학발전과 조직신학 체계에 있어서 L. Berkhof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한다면, 박형룡 박사의 양 대립 현상은 이런 정통개혁주의 입장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의 비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학난제』을 출판할 당시 근본주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고 1910년 이래 5년 동안에 출판된 『근본교리들(The Fundamentals)』의 입장들을 자신의 입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박형룡 박사가 싸워 오고 있었던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들은 근본주의자들이 싸워왔던 동일한 주제들이었다. 즉 진화론, 비교종교학, 고등비평, 사회적 복음신학 등에 대한 주제들이다.

셋째로 그의 대조는 개혁주의 전통의 입장에서의 정통신학과 자유주의신학 사이의 대립이었다는 가정이다. 이미 언급한 메이천의 대립관계도 이와 같이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는 조직신학 기본 자료와 관련하여 Charles Hodge와 침례교 칼빈주의자인 A. H. Strong의 조직신학 저서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James Orr의 저서들을 중요한 기초자료들로 사용하였을 때, 그가 단순히 근본주의자이였기 때문에 사용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그가 스코틀란드 장로교의 보수주의자이였기 때문에, 그가 쓴 모든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James Orr와 같은 스코틀란드 장로교 보수주의자인 James Denney의 『예수와 복음(Jesus and the Gospel)』도 사용하고 있음이 주목이 되는 것이다.

특별히『신학난제』란 책을 쓰고 난후 1937년 초 그가 Loraine Boettner의 『예정에 대한 개혁주의 교리(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를 번역출판 하였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중요한 증거가 되고 있다. 그가 정통의 어원적 정의를 절대적이고 불변의 인식학적인 권위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여 그 권위가 성경에 있는 모든 옳은 의견을 정통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일반적인 정통신학이 가장 명확하게 개혁주의 신학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정통신학은 비정통신학 곧 자유주의 신학이 무엇이냐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그 결정의 내용들에서 근본주의자들의 입장들과 만나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이 자유주의신학에 양보하지 않는 내용과 그 선이 박형룡 박사의 정통신학의 내용과 선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의 독특성이나 개혁주의 신학 내에서의 다양성에 대해서 관심하지 않았다.

비록 후에 그가 Louis Berkhop의 『조직신학』에서 정통신학의 진수를 발견하였을지라도, 개혁주의 신학의 올바른 노선이나 그 다양성에 대해서 관심하지 않았다. 후에도 계속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 신 중립주의를 논할 때, 그런 건전한 근본주의적인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까지 한국보수주의는 박형룡 박사의 근본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