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의 후손들, 기념사업회에 5천만원 기부
오방최흥종목사기념사업회는 광주YMCA 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오방 최흥종 목사는 광주YMCA 설립자이다.
오방최흥종기념사업회(이사장 최영관 장로)는 최근 오방 최흥종 목사의 직계 후손들이 5천만원을 사업회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오방 최흥종 목사의 장손자인 최협 전남대석좌교수(광주YMCA 이사장)의 어머니와 부인, 자녀들의 이름으로 기부하였다.
오방 최흥종 목사에게는 한국의 사도바울, 한국사회복지의 선구자, 한센인의 아버지, 빛고을의 아버지, 무등산의 거인 등의 수식어가 따른다.
광주출신 최초의 교인이자, 최초의 장로이자, 최초의 목사였던 최흥종 목사는 호를 오방(五放)이라고 하였다. 오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오방은 다섯 가지의 얽매임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으로, 첫째 가사로부터의 해방, 둘째 사회로부터 해방, 셋째 경제로부터 해방, 넷째 정치로부터 해방, 다섯째 종교로부터의 해방이 바로 그것이다. 즉 혈육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구속을 받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속박 받지 않고, 정치적으로 자기를 앞세우지 않으며, 종파를 초월하여 정한 곳이 없이 하나님 안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다섯 가지의 생활신조를 말함이다.
오방 최흥종 목사는 평양신학교 출신의 장로교 목사였고, 광주의 대표적 교회인 광주중앙교회 초대당회장이자 3대 당회장으로 담임하였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라노회 노회장도 역임한 분이다. 그러나 가정·사회·경제·정치에 매이지 않고, 더 나아가서 기성 교회의 제도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과 나 자신만의 관계에 충실함으로써 어지러웠던 시대에 등불이 되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오방 최흥종(崔興琮) 목사는 일찍이 1904년 12월 25일 오전 11시 미국남장로회 선교사 유진 벨(배유지) 목사의 사택(광주시 양림동)에서 드린 최초의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을 계기로, 배유지 목사가 세운 최초의 호남지역교회인 광주제일교회(광주북문안교회) 초대장로를 역임하였다.
오방 최흥종 목사는 나환자들의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1909년 광주 봉선동에서 시작한 광주나병원(지금의 여수애양원)은 최흥종 목사가 제공한 1천여 평의 땅에 45인 수용시설로 출발하였으나, 1924년에는 5백6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나중에 여수로 이전하여 지금의 애양원이 되었다. 그는 1932년에 서울 종로 YMCA 중앙회관에 나환자공제회 사무실을 개설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나환자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하여 70여 명의 목회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나환자근절협회를 조직하였다. 나환자근절협회 초대회장은 윤치호, 그리고 총무는 최흥종 목사가 맡았다.
오방 최흥종 목사는 1966년 5월 14일 오후 2시 10분에 하늘나라로 가셨으며, 광주시는 모든 학교가 휴교하고, 상가는 철시하였다. 5월 18일 전라남도사회장으로 광주공원에서 10만명이 운집하여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전라남도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사람은 아직까지 최흥종 목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광주시민들은 최흥종 목사를 보내는 슬픔을 나누기 위하여 모여들었으며, 학생들, 부랑자들, 나환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고, 하관식이 끝난 무등산 무덤에서는 해가 져물어도 도대체 그치지 않는 300여명 나환자들의 통곡소리가 하늘을 울리었다고 한다. 그는 죽어서도 거지와 나환자들로부터 “아부지! 아부지!”라 불리는 나환자, 걸인의 실질적인 아버지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오방 최흥종 목사는 이웃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 목자였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나라 사랑을 하나로 보고, 이것을 교회를 포함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던 것이다.
아래 통계자료는 한센협회에서 공개된 자료인데, 한국이 한센병 청정국가로서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행정관료들이 한국의 민관협력나병치료 시스템을 본받기 위해 수천명의 공무원들이 소록도를 방문하였다. 소록도는 오방 최흥종 목사가 모금하여 100명 미만의 병원을 3,500명 수용시설로 확장시켰다. 일제시대에 6천명까지 수용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한센병 활동성환자 122명, 세계에서 가장 적습니다. 일본은 활동성환자 천여명, 중국 인도 브라질 각각 천만명 이상 활동성 환자가 있으나, 그 국가들이 축소/은폐하여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