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 칼럼】나도 청어로 살고 싶다
[종그니 칼럼] 인생의 동반자
오늘이 정월 대 보름이란다. 오늘 밤에 떠오르는 달이 가장 큰 달이라 하여 '정월대보름'이라고 한단다. 각종 산나물 반찬에 오곡 밥이 오늘 점심에 나오리라! 춘천 장학리에 가면 등푸른 생선 청어와 고등어 그리고 갈치를 모듬으로 맛갈나게 구워 내는 식당이 있다. 그리고 춘천에는 이름있는 보리굴비 식당도 있다. 그런데 청어 식당은 2인 분이 3만원인데 보리굴비는 2인분이 자그마치 6만원이다. 청어구이 식당에서 만든 생선구이는 둘이 실컷 먹고도 남아 번번히 집으로 싸가지고 오게 된다. 나보다 내 마누라가 청어 구이를 더 좋아해서 어쩌다 외식할 때면 나는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청어! 그 이름 얼마나 싱싱하게 다가오는 이름인가! 왜 그럴까? 그 몸에서 항상 새파란 바다에서 받은 '늘 푸른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젊음을 청춘(靑春)이라고 부른다. "봄 날처럼 푸르른 싱싱한 젊음"이란 뜻으로 새 봄에 돋아 나는 새싹처럼 그런 싱그런 젊음을 유감없이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늘 푸른 봄 청춘! 이 얼마나 가슴 뛰게하는 이름인가! 나는 가끔 동해바다를 가곤 한다. 양양한 동해바다를 바라 보고 있노라면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는 깊은 물결이 일렁이는 드 넓은 바다에서 등 푸른 청어떼들이 나에게로 몰려 오는 듯 싶다. 깊은 바다속에서 사는 청어와 대기 속에서 사는 내가 하나가 되어 상상속에서 유영하며 떠 오른다. 청어가 대양의 바다를 노닐 듯 나 또한 우주의 청어가 되어 저 뭇 별들이 유희하는 무한대로 펼쳐진 대우주에서 맘껏 뛰놀고 싶어진다!
내가 무의탁 양로원을 십여년 해 오면서 신불자가 되어 춘천 요양원을 어렵게 건축을 마쳤으나 내 명의로는 어려워서 내 여동생 내외 이름을 빌려 소유권등기 를 했던 것을 몇년전에야 신불자의 모든 제재가 풀려 내 명으로 명의변경을 해야겠다 했더니 다짜고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그것은 노욕이야!" 그럼 지 명의로 두어야 노욕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팔십평생을 살아 오면서 이해괴한 말을 처음 들었다. 그것도 내 여동생의 입을 통해서 내 심장을 도려내는 그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후비고 들어 왔다. 이일 후에 나는 내 동생에대해 가졌던 애틋한 맘이 일순에 몽땅 사라져 버렸다. 내가 늙었다는 이유로 나의 늙은 것을 지 유익을 얻기위해 내게 송곳처럼 그렇게 앙칼진 말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 황당하기 이를데 없었다. 아마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그랬을까?
내 동생이 그렇게 억장무너지는 소릴 했다해서 늙은 몸이 더 이상 늙어질 일도 없어 내 마음은 여상히 청춘이다. 비록 내 육신의 나이가 80이 다 되었지만 마치 청어가 양양한 대양의 바다를 맘껏 누비듯 나도 저 무한대의 대 우주를 맘껏 유영하고 싶다. 내 작은 가슴속에 대 우주를 품은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기에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다 광활한 저 우주 창공을 맘껏 유영하고 싶어질 것이다. 신비의 대 우주를 내 작은 지력으로 풀어낼수만 있다면! 만년청년으로 내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내 맘속의 영원한 어르신이 있다. 바로 월남 (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1850~1927) 이시다. 선각자이셨던 그는 비록 고인이 되신지 100년이 다 되어 가시지만 내 가슴속 깊이 '만년청년'으로 살아 있다. 그는 우리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일제 강점기 때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했고 삼일운동 이후 살아 계시는 날 동안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만년청년으로 끝까지 국내에 몸을 두고 일제와 재치 넘치는 유머로 저들을 압도하며 이 나라 민생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이처럼 월남은 나라잃은 절망의 시절을 사시면서 우리민족에게 희망을 심어주고자 살아계시는 날동안 수많은 유머와 일화를 남겼다. 그러기에 나는 한번도 '月南'선생을 뵌 적이 없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그분의 가슴속 깊이 뿌리박힌 민족의 얼을 알기에 민족의 어른으로써 그분을 향한 존경심이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 오면서 나를 나 되게한 내 인생의 멘토이시다. 그는 칠흙같은 암흑기의 절망의 식민시대를 사는 우리민족에게 어둠을 비추는 촛불처럼 굴곡의 세월을 오로지 재기 넘치는 유머로 민족 혼을 일깨우며 매의 눈을 가진 일경들의 눈을 피해 죽는 날까지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펴셨다.
평생동안 숨막히는 일제치하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살면서도 '만년 청년'으로 꺼져가는 심지에 기름을 치듯 끊임없이 민족 혼을 불어 넣었던 월남 이상재선생처럼 나는 양양한 대양의 바다를 누비는 ‘청어의 DNA’와 월남 선생의 DNA를 내 심장에 심고 내 심령의 바다에 팔팔한 청어 떼가 뛰놀게 하고 싶다! 靑魚(청어)는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아래턱이 돌출하여 있다. 몸 빛의 등쪽은 담흑색에 다소 푸른 빛을 띠고 있고 배 쪽은 은백색이다. 비늘은 벗겨지기 쉬운 둥근 비늘이다. 생김새가 정어리와 아주 닮았으나 청어는 주색 개골에 방사상 융기선이 없고 옆구리에 반점이 없는 것 등이 정어리와 다르다. 몸 길이는 최장 35㎝에 달하여 월척이며 정어리보다 훨씬 크다. 요즘 건강 백세 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행복이가득한집' 요양원에는 아흔 한분의 어르신들이 계신다. 이분들 중엔 100세가 넘은 분도 여러분이 있다. 요양원에서는 나이 순으로 건강을 얘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치매나 당뇨는 나이 순으로 오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뇨는 초등 학생에게도 올 수도 있고, 치매는 40대 때에도 온다. 귀찮아도 자기 몸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나는 날마다 휴대 폰에 있는 '노우트'란을 열고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 나는 좀 어리버리한 데가 있어서 휴대폰 안에 '노우트'란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수년 전 초등교 박찬원 은사님이 가르쳐 주셔서 알게 되었다. 사실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데 나는 지금도 그분에게서 배우는 그분의 만년 제자다. 선생님은 지금 90세이신데도 나보다 더 잘 걸으시고 인지능력 또한 나보다 훯씬 더 뛰어 나시다. 나는 혹여 치매가 올까 싶어 글을 쓰는데 그분은 모든 면에서 만년 청년으로 사회활동이 왕성하시다.
여러분이 잘 아는 전 연세대 철학교수 였던 김형석님은 올해 104세의 노익장으로 청장년 못지않게 열심히 강의하고 신문 칼럼까지 쓰신다고 한다. 나보다 24년이 많으신데 나는 서울 나들이도 겨우 일년에 한번이 고작인데 그분은 요즘도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까지 강의가 있어 KTX를 타고 다니신다고 한다. 100세가 넘으신 분이 서울에서 저녁 강의를 하고 곧 바로 열차로 포항에 가서 잠깐 주무시고 그리고 조찬 강의를 하신다니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내가 있는 요양원에는 백세가 넘은 분도 있지만 대개 인지능력 을 상실하신 분들이다. 오십대에 요양원에 입소한 이도 있다. 이처럼 중년에 요양원에 오신 분들은 대개 치매이거나 혈류 (중풍)환자들이다. 왜 이런 질병들이 이처럼 일찍 찾아 오는 걸까? 물론 가족력도 무시할수 없지만 근본 원인은 자기관리 부족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김형석교수는 평소 모든 일에 과유불급 (過猶不及) 으로 자기관리를 아주 철저히 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석 교수 말고 청어처럼 사시는 또 다른 한 분은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이다. 지난해 말에 ‘길을 묻다’라는 자전적 책을 냈는데 시중의 큰 화제가 됐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은 꿈을 품은 자의 것이다. 시골 소녀가 큰 뜻을 품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가고 미국 유학 후 귀국해서 길 병원을 열었다. 시류에 눈을 닫고 사는 나 역시도 길 병원은 귀에 익지만 가천대는 귀에 설다. 허지만 그가 이렇게 의술을 펼친 이야기부터 다시 '가천대'를 세워 명문대로 키우기 까지 그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그의 자전에 담담하게 담겨 있다. 이 총장의 인생 철학은 한 마디로 ‘박애(博愛)’다. 어려운 사람을 길러 종내는 그 제자들과 함께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 더 건강하고 더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밝은 사회를 만들기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하고 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이를 구별없이 사랑하는 박애의 마음이다. 그러기에 꾸준히 만인을 위한 사랑를 실천하려면 먼저 그 스스로 모든 것을 포용할수 있는 섬김의 삶을 키워야 한다. 그런면에서 이 총장은 남들보다 수십 배 더 노력하면서 역량과 사랑의 열매를 맺기위해 온 몸으로 평생을 걸어 왔다. 도전과 응전을 여린 여자의 몸으로 부대껴 온 불굴의 화신이라할 만큼 이길녀 총장은 그 연륜동안 온몸으로 살아왔기에 그의 영혼은 만년청년으로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너무 좋아한단다. 그녀는 젊은이들과 꾸준한 대화를 통하여 젊은이에게는 희망이 되어 주고 자신에게는 청년의 에너지로 재 충전한다. 젊은이들과 대화 내용도 70% 이상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참 미래상과 이를 이루어 나갈 젊은 인재들의 나아갈 방향에 관한 것이란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시대에 새로운 인재 교육의 방향, 그리고 새롭게 펼쳐지는 바이오산업과 우주산업 등, 대학의 미래상 등에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젊은 세대들에게 끝없이 질문하면서 젊은이들 가슴속에 상생의 사회를 열어 나가도록 인간사랑의 열정을 불어 넣어준다고 한다. 이는 진정한 교육자의 면모다. 그에게 단하나의 바램은 오로지 제 2, 제 3의 이길여를 만들고 싶어서리라 그녀의 나이 올해 92세다. 이처럼 이 땅에는 비록 몸은 늙었어도 가슴은 만년청년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젊어도 청운을 잃어버린 늙은이로 사는 이들도 있다. 나를 젊게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 그것은 젊은 날의 꿈을 잃지 않고 그 꿈을 품고 젊게 사는 것이다. 내일 일을 모르는게 인생이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나는 넓고 푸른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등 푸른 청어(靑魚)가 되어 양양한 대양의 바다를 다시 맘껏 헤엄 치고자 힘을 모은다. 젊게 살자! 나는 신장(腎臟)이 나빠서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떨치고 일어나 넓은 우주에 몸을 던져 헤엄치듯 살고파 마음은 한없이 청어처럼 젊은 청년이 된다. 나는 이렇게 몸은 늙었어도 젊은 가슴을 그리며 오늘도 나는 청어가 되어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에 입소한 이들의 가슴속에 싱싱한 청어의 힘을 불어 넣어 주고파 나는 청어가 된다 나와 지금 호흡을 함께하며 동시대를 살고있는 사람 중에 어떤 분이 청어일까 헤아려 본다. 한국의 ‘탑건’이라는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인 신영균 장로, 국민 건강을 위해 세로토닌 문화를 이끄시는 이시형 의사, 지금도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최불암 만년 탈랜트, 봉사 활동을 활발히 하며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김상희 가수, 올해도 현역 최고령으로 연예인 골프대회에 참가한 국민배우 이순재 등이 모두 청어로 청춘의 바다에서 젊음을 잃지않고 사는 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의 삶속에 싱싱한 청어의 DNA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자세히 살펴봤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첫째, 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둘째, 공익적이고 이타심이 크다. 셋째, 긍정적이고 잘 웃는다. 이것이 그들이 지닌 DNA다.
나이 들었다고 과거 전성기 추억을 더듬으며 늙은 오늘을 비감에 젖어 사는 것은 청어같은 싱싱한 삶이 아니다. 자기 혼자 잘 났다고 더불어사는 이들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삶은 열심히 살아도 역시 청어같은 삶이 될 수 없다. 어려운 일에 부딛혔을 때 이를 대처하는 긍정적 열정이 식어 바른 길을 버리고 쉽고 빠른 길 부정한 길을 찾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청어가 아니다. 젊게 사는 것은 나이를 잊은 오염되지 않은 청순한 젊은 사고(思考)에 있는 것이지 갑자기 청바지를 입는다고 청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청어가 되려면 젊은 시절부터 마음에 청어 DNA를 심고 꾸준히 양양한 인생의 바다에 나를 던져 놓아야 비로소 내가 젊어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만년 청년으로 ‘청어처럼 사는 비법’이다. 매력적인 시니어가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한 몸과 맘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향하여 활기차게 활동하는 이가 많으면 그것으로 오늘을 젊게 살려는 이들에게 는 희망을 심어주는 활력의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나도 청어처럼 살고 싶다. 끝없이 다가 오는 미래라는 양양한 대양의 바다를 향해 오늘도 나는 힘차게 헤엄치고 싶다. 지금 내 마음의 드 넓은 대양의 바다에는 청어 떼가 뛰놀고 있다.
[종그니 칼럼] 인생의 동반자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 아담을 창조하실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았더라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왔을까!
하나님이 먹지말라 한 금단의 열매에 손이가, 따먹음으로 인류에게, 스릴과 쾌락과 긴장의 연속인 악의세계가 활짝 열리게 되었단다. 카인의 후예들에게 이만한 죄악의 즐거움이 어디 있었겠는가! 우리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면, 이대로 죽어도 좋다며, 내일은 없고 오직 현재만 있는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지 않는가? 쾌락일변도로 죄에 흠뻑 취한 우리에게 '코로나'가 온 세상을 휘젓고 있음에도 눈이 있어도 선악을 분별 못하는 영적 장애자들과, 썩은 냄새들만 뿜어내며 죄의 속성에 젖어, 스릴을 만끽하는 인생들로 가득하다.
Kbs프로중에 '동행'이란 프로가 있다. '풍요속의 빈곤'이란 말처럼, 국민소득은 세계 최상위라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풍요의 대열에서 낙오된 이들과의 동행은, 그것이 최상의 당위요 행복 임에도, 오로지 육신의 안목으로만 사는, 후예들로만 가득하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요즘 젊은이 중엔, "자신이 태어난 것이 부모 육체사랑의 부산물일 뿐인데, 왜 효도해야 하느냐"고 항의 한단다. 참 막장으로 가는 자화상을 보는 것같아 씁쓸하다.
찬송가 가사에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이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네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수만 있다면, 이게 바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지고지선의 삶이 아니겠는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진실로 우리가 '인생의 참된 진수의 맛'을 깨닫게 된다면, 뉘라서 잠시뿐인 세상 것에 빠지는 우를 범하겠는가! 육신의 소욕에 매여사는 우리를 이 매임으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인류의 역사속으로 찾아 오신, 주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줄 안다면, 주님과의 동행이 바로 이웃과 마음을 같이하며 동행하는 것이리라!
마음의 눈만 좀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도와도 주고, 도움도 받는 사랑의 이웃들이 지천에 있는데, 왜 우리는 항상 물질이 전부인 양, 主와 客이 전도된 삶을 살고 있을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그 도움이 종자돈이 되어,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그 기쁨의 진수를 맛보시라!" 요즘에는 사람이하는 일을 로봇이 다 할수있단다. 그래서 코로나로 엄청 힘든 시기에, 이 말을 들으니, 유럽 중세기에 성행한 장원제도가 붕괴 되고, 근세 모직물 공업으로 옮겨가는 과도기 때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양이 사람을 몰아 낸다"는, '토머스 모어' 의 말이 문득 생각 난다.
이는 인생의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는것과 같은 헛수고가 아닌가! 그래서야 어찌 세파의 고달픔을 면할수 있겠는가! 그대 심령 깊은 곳에 있는, 선악과 아닌 생명과를 꺼내 맛보시라. 그러면 마른나무에서 꽃이 피는 봄을 맞으리!
천둥치는 어느 날, 소년 베토벤이 마당에서 혼자 비를 흠뻑맞고 있었다. 소년은 나뭇잎에 스치는 비와 바람의 교향곡에, 흠뻑 빠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어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되려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함께 비를 맞으며, “그래, 아름다운 이 자연의 빗 소리를 함께 듣자구나” 고 했다. 아들은 신이 났다. 베토벤에겐 이렇게 언제나 아들편에서 함께해 준 어머니가 있었다. 사람의 인생길은 물질로만 가는 길이 아니다. 한 마음으로 가야하는 긴 인생의 여정길에 동반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생의 먼 길을 함께 할 ‘좋은 동반자’란 어떤 사람일까? 상대방의 입장에서서 배려로 공감’하며 마음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좋은 동반자를 원한다. 인생길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내 스스로가 먼저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최근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수 부부’로 기록된 영국인 퍼시애로스미스(105)와 플로렌스(100) 부부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교회학교 교사였던 플로렌스는, 1925년 6월1일 마을의 작은 교회에서 다섯 살 연상의 청년을 인생의 동반자로 맞이했다. 그리고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해로할 수 있었을까? 이 부부는 평생동안 서로를 배려했다. 그리고 화를 품은 채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전날 아무리 다퉜더라도, 아침이면 사랑으로 용서하고,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날을 맞았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배려와 사랑' 이 것만이 평생을 함께 동행하는 참 생명의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