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 칼럼】 하나로 가는 길
【종그니 칼럼】 발은 땅에 머리는 하늘에
우리나라에서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보훈의 달을 6월로 정한 것은, 1926년 6월 10일 육십만세운동이 일어났었고, 또 육이오 (6월 25일)동란이 같은 6월에 함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과 북이 38선을 그어놓고 서로 총뿌리를 겨눈채 이렇게 70여 성상을 서로 적의를 품고 살아 오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휴전이라는 이유로 전쟁 불감증에 걸려있다. 임전태세는 사라지고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과 국회의원 할것 없이 모두 하나같이 채상병 사건에서 보는대로 모두 다 책임마저도 회피하는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다. 국사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무한책임이 결여되면 나라의 기강이 한 순간에 다 무너진다.
참혹한 전쟁 폐허의 잿더미 위에서 쉬어 빠진 밀개 떡을 씹지도 않고 꿀꺽해 보셨나요? 죽지 못해 초근목피로 살았던 일제시대와 해방기쁨도 잠시 그 때의 참혹했던 6 25전란을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멈출것 같았던 그 모진 세월을 여러분은 그 당시 민초들은 초근목피로 살았던 전쟁페허의 질곡된 모진 세월을 격어보셨나요? 우리는 어이없게도 6 25전란을 격어야 했다. 미소중의 강대국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 육이오 민족전쟁이라고만 단정지을 것인가? 당시의 위정자들은 여기에대해서 할말이 없는가? 그래서 6월은 '호국의 달'이다. 그리고 6월 6일은 '현충일'이다. 이 현충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갈라진 조국 강토를 하나로 만들고 잃어버린 민족 혼을 회복하는 데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과연 민족의 광복이 이루어졌는가? 지금까지 중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이 한반도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리하리라고 보고 있는데 지금 껏 남과 북은 아직도 주적이니 적성이니 하면서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자중지란을 일으켜 강대국의 이이제이(以夷 制夷)전법에 이용만 당하고 있다. 여러분! 이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독립은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아니고, 남북한이 경쟁해서 어느 한쪽이 잘 사는데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찢겨진 민족이 하나 되는 역사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민족 혼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세계 역사상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시달려 온 대표적인 민족이 바로 우리민족과 이스라엘이지 싶다. 옛적부터 이스라엘은 북으로는 앗시리아 다음으로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와 헬라제국과 로마 그리고 남으로는 애굽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중국대륙에서 명멸한 여러민족의 나라들과 우리 바로 옆구리에 있는 일본(왜구)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호와 신앙으로 다져진 이스라엘의 민족 혼과 살아있는 신앙이 나라를 잃어버린 2000년동안 저들의 심장속에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사상과 이념이 그리고 권력이 민족혼보다 동족애보다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되어 있고 먹고 사는 문제가 부모형제보다 더 소중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아시라! 판자촌 쪽방이라도 있으면 추위와 눈과 비를 피할수 있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집없는 노숙자가 되거나 나라없는 국제미아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나라 없는 설움을 벌써 잊었는가? 그때 우리는 나라없는 설움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격어 보았는가! 노동력 착취만이 아니고 성(性)의 노예가 되기도 하였었고 필경은 성(姓)과 이름까지 나라의 말까지 한글까지 그래서 필경은 민족의 얼까지 송두리째 다 빼앗겨 민족 혼마저 잃어버린 나라 잃은 설움을 격었었잖은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후 70년경에 로마에 의해 나라를 잃은 후 세계 각국으로 뿔뿔히 흩어져 남의 나라에서 장장 2000년의 세월을 견뎌오면서도 그들은 이스라엘 고유의 민족혼과 여호와 신앙을 잃지않았다. 바로 이것이 기적이 아닌가!
제 2차 세계대전때는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무려 600여만명이 무참히 학살을 당해야 했다. 이 일 후 이스라엘민족의 슬로건이 "다시는 당하지 말자."였다. 오늘 우리에게는 저 이스라엘 민족처럼 "두번 다시 당하지 말자"는 피에 맺힌 외침이 있는가?. 당시 로마가 예루살렘 성벽을 파괴하고 겨우 남은 잔해에서 아침이면 이슬이 맺혀 성벽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이스라엘은 이를 "이스라엘 민족의 통곡의 눈물"이라 하고 그 성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민족은 무려 2000년만에 빼앗긴 조국의 땅을 가까스로 되찾았기에 조국을 지키는 것이 바로 '민족의 혼'을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는 이러한 '최우선 순위의 민족혼'이 없다. 그래서 어느 것이 주적이고 어느 것이 아군인지의 분별력마저 잃어버렸다. 수천년동안 우리 민족을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가 바로 중국이고 일본이 아니었던가!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이름아래 고조선 부여 발해는 물론이고 고구려까지 지금의 중국의 영토내외에서 일어난 민족의 역사를 자기네의 역사로 환치하고 중국의 영토개념을 최대한으로 확산하고 있다. 말하자면 나라의 지계석 (地界石)은 물론이고 민족 혼까지 훔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부지중에 나라와 역사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릴 위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우방이 어디에 있는가? 미국인가? 미국은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에게 미군체류비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을 위기에 있다.
뿐만아니라 미국은 일본에게 미국 채권 얼마를 시주면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일본 섬으로 해주겠다고 흥정하고 있고 또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여러분! 이달이 보훈의 달이고 6월 6일이 바로 현충일이다. 이것을 아시라! 6.25 전쟁은 남한과 북한진영과의 제한된 전쟁이 아니고 세계열강들의 각축으로 일어난 세계대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열방들의 이러한 고래 싸움에 한반도가 지금까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새우등만 터지고 있는 격이다. 어리석은 아낙은 두레박줄 짧은 것은 알지 못하고 우물 깊은 것만 탄식한다. 이제 정치하는 이들의 두레박 줄이 길어져야 한다. 민족혼과 동족애의 두레박줄이 길어져야 하고, 남북 상생의 두레박줄이 길어져야하고, 나라의 근본인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두레박줄이 길어져야 한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 오던 날을 시편 기자는 시편126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으로 가득찼었도다! 그때에 뭇나라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우리민족에게 안겨준 보훈의 달이 바로 이런 기쁨으로 가득채워져야 하겠다. 일제 강점기동안 우리가 싸운 독립운동은 지극히 미미하것 같았지만 그러나 이를 보신 하나님은 이 조국 광복을 위해 일해 주셨다. 그런데 조국을 향한 우리의 마음 자세는 어떠한가? 조국을 되찾은지 8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구태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뉘라서 이 민족의 새벽을 깨우겠는가!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6절 말씀을 보면 이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당신의 나라로 가시는 주님께 제자들이 묻기를 "주여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어느 때 니이까?" 이에 주님이 대답하시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여러분!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다시 주님이 말씀하시길,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너희는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또 너희는 말씀의 자리에서 떠나지 말라!" 여러분! 지금 우리 민족은 역사의 해방은 있었지만 진정 우리에게 있어야 할 아니 반드시 찾아야 할 육신의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해주실 하나님은 잃어 버렸다. 타락한 세상이 주는 물질의 향락에 이골이 나서 본래의 나를 잃어 버린 것이다. 등잔 밑의 진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때 즉 '진 초 연 제 한 위 조'
(秦 楚 燕 齊 韓 魏 趙)의 소위 칠웅 (七雄)이 할거하던 시대에 위(魏)나라가 제(齊)나라를 쳤다. 그러자 齊나라 백성들이 남부여대하고 피난을 간다. 한 젊은 아낙도 갖난 아이를 업고 조금 큰 아이는 걸리고 도망치다가 상황이 위급해지자 갓난 아이를 길옆 풀섭에 내려 놓고 조금 큰 아이만 등에 업고 도망치는 것을 위나라 대장이 보고 이를 이상히 여겨 그 여인을 붙잡아 물었다. "왜 갓난 아이는 버려두고 큰 아이를 업고 도망쳤는가?" 그러자 여인이 울며 "업고 가던 아이는 제가 낳은 아이 이고, 큰 아이는 병들어 누어있는 손윗 동서의 아이인데 큰 형님에게 이 아이를 끝까지 데리고 피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상황이 다급해져서 두 이아이를 데리고 가다가는 다 죽일 것같아 제 아이는 버려 두고 형님아이를 데리고 도망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위나라 장군이 말하길 "우리가 齊나라를 치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 젊은 여인이 이렇게 의로울 때에야 이 나라에 '의로운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이처럼 어진 백성들을 죽이고 얻은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돌아가자!" 여러분!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았나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조국 광복은 우리 민족이 서로 마음을 열고 빛과 소금 되신 예수그리스도 에게로 돌아 올 때에 찾아 올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없이도 평화의 축복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헛된 것이며 그 어떻한 축복도 가져오지 못한다 진정 민족공동체의 혼(魂)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길을 잃어버린 우리 민족 모두의 마음 속에 맛을 내는 사랑의 소금 통일의 소금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발은 땅에 머리는 하늘에
무려 585년 동안 난세의 영웅들이 천하를 어지럽히던 春秋時代,(B.C770~B.C403 년,367년간)에 이어 戰國時代(B.C403~B.C221 년, 218년간), 총 585년 동안의 亂世를 잠재우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 (B.C259~ 210)은, 무려 600년에 걸친 내전을 종식한 것만으로도,가히 중국 제일의 영웅이라 할 것이다. 당시 난다 긴다 하는 아니 당대 일세를 풍미하는 군웅들과 백가쟁명들이 종횡무진으로 중국 천하 를 할거하던 난세에, 그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수완으로 '중국통일'이라는 대 위업을 완성하였다. 중국 천하를 한손에 거머쥔 그는, 이제 이 막강한 권력으로,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 불사약을 구하려 했지만, 천하를 호령하는 그 위용으로도, '늙어 죽는 것'만은 정복할 수 없었다. 마치 역발산 기개세를 떨치던 항우가, 고작 유방이라는 댕댕이 넝쿨에 걸려 거꾸러졌듯이, 시황제도 천명의 세월을 되돌리지 못하고, 49세의 불혹에 요절하고 말았다.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은 1513년에, 북아메리카 대륙 한쪽에 쭉 뻗어 있는 미지의 해안을 발견하고는, 자기가 처음 발견한 이곳이 '온통 꽃으로 덮여있다.' 하여, 그곳 이름을, 스페인어로 '플로리다'라고 명명하였다. '꽃이 만발한 초원'이나, '경관이 빼어난 곳'을 찾는 일은 누구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가 찾아 나선 탐험치, "늙은 사람도 다시 회춘할 수 있는 샘", 즉 '신선들이 노니는 이상향' 을 찾는 것은, 마치 시황제가 이 세상에 없는 불로불사초를 찾던 것처럼, '처음부터 아예 없는 것'을 찾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는 여러 달 동안을 전설상의 '젊음의 샘'을 믿고, 플로리다 땅을 샅샅이 뒤졌지만, '젊음의 샘'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문명한 오늘날도 '폰세 데 레온'처럼, 있을 까닭도 없는 "젊음의 샘"을 찾겠다는 어리석음 들을 본다. 작가 '베티 프리던'이 말한 대로, 현재의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모두 늙어갈 뿐, 영원히 늙지 않는 판도라 상자는 없다.
내가 20~40대 때의 사진 속의 내 모습과 지금 70대 후반 실존의 내 모습을 비교해 보면, 내가 봐도 쭈그렁 망태다. 하지만 지금 나의 내면의 세계는 지극히 평화롭다. 오늘 지구의 종말이 와서 내 생명이 오늘로 끝난다 해도, 유년의 때와 젊은 날 그리고 노년의 지금까지, 주어진 삶을 한껏 누려온 것에 대하여,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는 권력지향 주의자도 아니고, 현세지향 주의자도 아니다. 이 세상은 끝없는 생성과 소멸 즉 명멸의 연속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 몸을 형성하고 있는 세포 수가 약 5억 이상이라 고 한다. 이 세포가 하루에 수천만 개씩이 생성되고, 또 수천만 세포가 소멸하면서, 우리 몸이 그 틀을 유지해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 몸은, 새로 생성된 세포가 죽어가는 세포보다 많은 30대까지가 정점이고, 그다음 부터는 죽는 세포가 새로 태어나는 세포보다 많은 것, 이것을 톳칭 노화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 몸 안의 생성과 소멸의 변화와 몸 밖의 세대 간의 교체가 함께 어우러져, 한 세대가 가면 그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세대마다 그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세대교체, 이것은 생명의 단절이 아니라, 새 생명을 통한 무한대로의 생명의 연속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인간의 수완이 완숙 점에 이른 것을 우리는 '노회'라고 일컫는다. '노회한 정객'이란 말은 결코 호감 가는 용어는 아니다. 최소한의 것에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이 없어져 버린, 지금의 사회가 얼마나 살벌하고 비정한가? 비움과 채움의 상생의 호흡이 없는, 노회한 노욕으로 가득 찬 작금의 사회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처럼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이런 권모술수로 노회한 사회가 영속되길 바란다면, 그건 생성과 명멸의 자연질서를 거부하는, 노회한 인간 욕심의 한 단면이리라! 나는 그제와 어제 봄 상추를 심었다. 상추는 유독 잎사귀만 먹는 채소다. 맨 아랫잎을 뜯어내면, 영락없이 또 새잎이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