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복받는 비결
[종그니 목사] 조용히 물러난 독일 총리 메르켈!
구약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이 일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성년이 되자 아브라함의 옛 고향 하란에서 그의 아우 나홀의 손녀 리브가를 며느리 곧 이삭의 배필로 얻기까지 아브라함의 충직한 종 엘리에셀이 이 결혼을 성사시키려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결혼 예물을 낙타 열 필에 실고 수만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출발하여 하란 땅 하나님이 이끄신 어느 마을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나 마침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아브라함의 외 아들 이삭과 결혼을 성사시키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사의 모든 일 들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그분의 역사'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준다. 그럼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만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일까? 아니다! 이 세상 동서고금 모든 역사가 그분의 섭리아래서 이루어지는 역사 즉 그분의 History인 것이다. 이야기를 바꾸어 조선(朝鮮) 성종(成宗 1454- 1494)이 승하하자 성종의 폐비(廢妃)윤씨의 소생 융(隆 1476- 1506)이 조선 제 10대 왕(燕山君)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장차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대한 치국은 차치하고 자신의 생모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과거사에 대한 앙심을 품고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이어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켜 수많은 관료와 유생들을 마치 칼로 무우 자르듯 가차없이 살생을 자행하였다. 심지어 연산은 자신의 친 할머니인 인수대비까지 시해하려 하였으니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가 아니라 군주의 자리에서 복수의 칼을 들고 나라의 기둥같은 신하와 유생들을 무수히 죽이고도 모자라 부관참시까지 한 가히 금수보다 못한 폭군이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이런 망나니 같은 정치가들이 늘 있어 왔다. 한낱 군주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의 만조 백관들과 자신에게 직언(直言)을 하는 수 많은 선비들(요즘의 언론인)에게 대명천지 문명한 지금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고 통큰 정치를 하여야함에도 뻔뻔스럽게 민주주의의 근본을 잃어버리고, '권력의 화신'이 되어 마치 망나니 칼춤추듯하고 있다. 바라건대 아직 그 자리에 있을 때 지난 후에 후회하지 말고 정도를 걷기 바란다. 국회의원자리가 그리도 좋은가? 인간사 모든 것이 사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나아가고 물러남부터 배웠으면 좋겠다. 혁신(革新)이 자신의 몸 가죽을 벗기는 아픔이라면 이는 바로 자신부터 철저한 담금질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야 할 것이다.
연산군의 망나니와 같은 폭군치하에서 민초들의 삶은 더욱 이루말할수 없을 만큼 피폐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 다니는 행려자들이 하도 많아 해가 기울면 행려자들이 우리 집 사랑 채로 들어왔었다. 이처럼 시대마다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온 민초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각설이나 장타령을 해주고 동냥을 해서 겨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떠돌이 들이 많았었다. 연산군이 분노조절이 안되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을 때에, 어느 젊은 풍각(風角)쟁이가 평안북도 정주(定州)땅의 외딴 산골짝 동네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처자에게 물 한 바가지를 부탁하자, 그 처녀가 물바가지에 나뭇 잎을 띄워 건네주었다. 풍각쟁이는 물위에 떠있는 풀잎새를 연신 불어가며 물을 달게 마셨다. 이를 물끄러미 보고있던 그 처녀가 상냥하게 “물로 목을 축이셨지만 까치 고개를 넘어오느라 몹시 시장하셨을 테니 저희 집으로 가서 밥 한 숫갈 드시고 가시지요” 집도 없이 객처로 떠돌아다니는 각설이들이 수없이 많았을 당시에 이 처자가 유독 그 젊은 풍각쟁이에게 왜 이처럼 호의를 베풀었을까? 사람에게는 두가지 안목이 있다. 바로 세상을 보는 안목과 사람을 보는 안목이다. 움막집이나 별반 다를 것없는 처자의 집에 가서 소반 상에다 풋고추에 된장을 올려 나온 보리밥을 보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 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보리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니 처녀의 부모가 삽짝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처녀의 부모는 유장 (柳匠)이었다. 유장(柳匠)이란 봄이면 버들가지를 꺽어 여러 날 냇물에 담가 두었다가 갯물에 진액이 다 빠진 뒤에 버들껍질을 벗겨낸 그 속 알갱이로 고리짝과 바구니를 만들어 파는 천민들을 그당시 고리백정이라 불렀다. 원래 백정(白丁)이란 조선때 천민계급을 병정(兵丁)에 편입시켜 전시 때에 이들은 군사가 되었었는데 통칭 이를 白丁이라 불렀다. 처녀의 부모가 개울가에 움막을 지어 놓고 거기서 일하다가 저녁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풍각쟁이는 처자의 부모에게 인사하고 떠나려는데 처자가 사립문 밖에까지 따라 나와서 하는 말이 “마땅히 밤이슬 피할 곳이 없으면 언제든지 내 부모가 일하는 움막에서 기숙하셔도 됩니다.” 이 말에 풍각쟁이는 귀가 번쩍 띄었다. 비록 여러 날 주린 배는 해결을 했지만 막상 또 잠잘 곳을 걱정을 하던 풍각쟁이는 이제 살판이 났다 싶었다. 움막에서 하룻 밤을 잔 풍각쟁이는 이른 아침, 떠나기 전에 처자에게 인사나 하고 가야겠다고 우물가로 가서 기다리자, 마침 처자가 물을 길러 나왔다. 풍각쟁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처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처자가 하는 말이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부모님 일을 도우시며 누추하지만 저희 집에서 유하셔도 되요.” 풍각쟁이는 너무나도 반가워 처자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하는 말이 “처자 고맙소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소이다.” 그 날부터 풍각쟁이는 처녀 부모의 유기장 일을 거들게 되었다. 이렇게 달포쯤 지냈을까?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어느 날 밤, 밤은 점차 깊어 산심 야심 객수심(山深 夜深 客愁心) 이라. 여기까지 숨가쁘게 살아 온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귀촉도 울음소리에 풍각쟁이는 험악한 세월을 견뎌온 지난 세월에 가슴이 메어져 잠 못 이루고 있는 바로 그때에 처자가 불쑥 움막 속으로 들어왔다.
풀잎으로 만든 도롱이를 벗고 들고 온 보자기를 풀자, 삶은 닭과 옥수수로 빚은 막걸리 한 호리병이 나왔다. 이날 밤 움막에서 풍각쟁이는 처녀의 옷고름을 풀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으로 포식을 하고 술 한 병을 비우고 아리땁고 청순한 처녀를 품었으니 당연히 기뻐야 할 터인데, 웬일인지 풍각쟁이의 두 눈엔 눈물만 쏟아졌다. 격렬한 운우가 지나고 풍각쟁이의 품에 안긴 처녀가 물었다. “서방님! 서방님은 무엇 하시던 분이시나요?” “나는 그저 풍각쟁이 일 뿐이요.” 처녀는 진실을 숨기려는 풍각쟁이의 태도에 뾰로통해서 이른 아침 돌아갔지만 며칠마다 깊은 밤이면 움막을 찾아왔다. 날이 지날수록 처녀도 음양의 이치를 깨우쳐, 등줄기엔 땀이 나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바르르 떨기도 했다. 처녀가 입덧을 하게 되자 풍각쟁이는 꼼짝없이 이 집 사위가 되었다. 장인 장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하며 외동 딸을 나무랐다. "아이구 이것아 네가 눈으로 보면 알 것 아니냐! 네 어미 아비는 손이 부르트도록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저 솜씨 없는 풍각쟁이를 짝으로 만들어 임신까지 해 놓았으니 앞으로 무슨 수로 살아갈테냐? 차라리 같이 풍각쟁이로 나가거라.” 처녀의 어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면서 딸을 나무랐다. 이렇게 풍각쟁이는 도움도 못주고 밥만 축냈다. 버들가지를 베어 오라면 손을 베어 피범벅이 되어 들어오지를 않나, 바구니를 짜라면 애매한 버들가지만 구겨놓지를 않나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조금도 달라진게 없었다. 장인 장모의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가도 신부는 변함없이 신랑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느닷없이 초래(招徠)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정주(定州)사또가 육방관속을 데리고 유장집 삽짝 문을 열고 들어섰다. 육방관속을 보자 풍각쟁이는 엉겁결에 부엌 나뭇잎 더미 속에 몸을 숨겼다. 그러더니 이게 웬 일? 사또와 육방관속이 마당에 납작 엎드려 말하길 “참판(參判: 조선시대 육조의 종2품 관직)나리, 조정에서 모셔오라는 부름을 받고 찾아왔나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이 일어나 마침내 연산군이 폐위되자 온 세상이 일순간에 확 바뀌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대로 생모 폐비 윤씨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긴 연산군이 이성을 잃고 나랏 일을 완전히 회생불능의 마비상태 로 만들어 갑자사화(甲子士禍;1504)에 이어 을사사화(乙巳士禍, 1505)를 연달아 일으켰는데 이 때에 그 누구도 입도 뻥긋 못하는 때에 젊은 기백으로 직언한 것이 죄가 되어 귀양을 가던 젊은 참판 '박중권'은 야반을 틈타 산중에서 죽기 살기로 도망을 쳐 죄인 아닌 죄인의 몸이 되자 할수없이 신분이 가장 낮은 풍각쟁이로 변장을하고 숨어 지내던 터라 세상이 바뀐 것도 까맣게 몰랐다. 부억 나무더미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온 풍각쟁이(?)에게 고을 사또가 가져온 사모관대를 입히고 고을 수령의 큰 절을 받으려다 말고 뒤돌아 손짓했다. “부인도 어서 와 여기 내 옆에 앉으시오.” 이처럼 처녀의 사람볼 줄 아는 안목으로 혈혈단신이 되어 부평초처럼 참담했던 세월에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한 참판을 살려내고 마침내 사대부 가문의 정실 부인이 되었으니 유기장이 부모는 물론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큰 잔치를 배설했으니 가히 칭송을 받을만 하다.
여러분도 세상을 살면서 터득했겠지만 이 세상에 남에게 거저베푼 일들이 무위로 돌아가는 일이란 없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게 되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게 된다. 이 땅위에 만인들이 섞여 살지만 거저 생기는 공짜란 없다. 베풀면 베푼 대로 반드시 돌아 온다. 전도서 3장에 보면 "범사에 시기(時期) 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순리를 따라 사는 삶 바로 이것이 축복받는 비결이다. 중국 어느 농부가 먹을 식량이 떨어졌는데 논에 심겨진 벼는 아직도 이삭이 나오지도 않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기다리다 지친 농부는 논에 들어가 벼이삭을 일일히 뽑아 올렸단다. 그후 어찌 되었을까? 좀더 빨리 익었을까? 우리는 종종 조급 증이 앞서 이런 어리석음을 저지를 때가 있다. 때가 되면 벼 이삭은 저절로 나올 것이다. 이것은 비단 중국 사람의 얘기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얘기다. 내가 여러해 전에 터키를 갔더니 그곳 터키인들은 우리 한국인을 보면 '빨리빨'로 불렀다. 이 말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한국인은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했거나 일을 마쳤으면 묵묵히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한데 너무 조급하다. "춘래 불사 춘(春來 不似 春) "봄은 분명 오고 있으나 그러나 아직 봄은 아니다." 아직 동토의 땅 그대로다. 때가 되면 음지의 땅도 녹으리니 잠잠히 기다리며 봄을 준비 하시라! 잠잠히 기다릴 줄 아는 것 이것이 순리요 아닌 것이 역린이다. 태공망의 낙시 처럼 때를 기다려 시의(時宜)를 낙는 어부가 되시라!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 일을 마쳤으면 넉넉한 맘으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삶의 여유다.
사람들은 행운의 숫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라마다 행운을 가져다 주는 숫자가 다 다르다.
미국은 1, 2. 한국과 일본은 3. 글로벌 야구 타자는 4. 샤넬 향수는 No 5. 중국은 6.8.9. 대부분 사람들은 Luky 7. 그리고 10점 만점의 10 을 좋아한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여러나라의 행운의 숫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보니 모두 다 행운의 숫자가 아닌 게 없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행운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 곳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생거 진천(生居 鎭川)이란 말이 있지만 살기 좋은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 살기 좋은 곳은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행운'은 위의 숫자처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매일 찾아 온다. 그러나 그 행운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거의 다 놓치고 만다. 그러니 풍각쟁이 신부처럼 기회를 인내로 참고 견뎌야만 행운을 움켜 쥘수 있다. 나라의 정변(政變)을 피하여 풍각쟁이로 조선 팔도를 떠돌아 다니던 그 풍각쟁이의 마음을 붙잡은 고리백정 딸의 어진 심성(心性)을 보라!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어 기근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이요 기갈이다."(아모스 8장11절).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바로하는 비결은 남을 돌아 볼 줄 아는 헤아림에 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 34절) 세상 욕심의 쓰레기로 가득찬 내 심령의 밭이 말씀으로 개간된다면 이 거친 세상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종그니 목사] 조용히 물러난 독일 총리 메르켈!
옛말에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절간에 빈대가 없어진다." 고 했다. 지금 미얀마에서는 권력과 금력에 눈이 먼 군벌들이, 쿠데타로 민정을 해체하고 총뿌리로 권력을 거머쥐려고, 온몸으로 저항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연일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동독 출신 메르켈 총리가, 총리의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미얀마 군부나, 러시아 푸틴이나, 중국 시진핑이나, 그 외 아프리카와 남미 등에서 권력의 야수가 된, 덜떨어진 인간들의 천박한 작태를 보라!
독일 국민은, 약 6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수상 메르켈과 은퇴의 작별 인사를 했다고 한다. 18년 전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메르켈이 독일을 치려고 하는 동안, 어떠한 비리도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국정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애써 능력 있는 지도자인 양 하지도 않았고, 자신과 노선이 다른 이들과 정쟁도 없었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시민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바로 "세계의 여인" 이라는 별명을 가진 "Angelika Merkel"이며, 6백만의 남성에 비견되는 여인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메르켈은 이제 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모든 국사를 넘겼다. 이는 독일의 정권교체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메르켈 수상 퇴임을 앞두고 독일인 전체가, 집 발코니 앞으로 나아 갔고, 그들은 6분 동안 메르켈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독일 국민 전체가 자발적으로 일어난 고별의 환송이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찬사, 공연, 북소리도 없었고, 아무도 "글로리 메르켈 (Glory Merkel)!"을 외치는 자도 없었다. 독일은, 그녀가 전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고, 패션이나 부동산, 자동차, 요트와 개인 제트기도 없는, 처음 화학 물리학자로 돌아가는, 이 여성 지도자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녀는 독일의 지도부를 후임자에게 넘긴 후, 퇴근하듯 자리를 떠났고,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가 독일의 통치자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18년 동안 그녀가 입은 옷은 바뀌지 않았고, 하나님도 이 조용한 지도자와 늘 함께하셨다.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는 Merkel에게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혹여 다른 옷이 없어서인가요?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 회견에서도,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가 있는가요?
그녀의 대답은 “아니요, 나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아요.
집에서 남편과 나는 매일 이 일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다.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 아니면 남편?"
그녀의 대답은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린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 전기가 있는 밤에 한다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파트와 이웃 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지만, 이렇게 함으로 이웃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게 되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 일의 성과와 실패에 대해 질문하여 주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Ms. Merkel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총리 때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퇴임 후에도 옛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메르켈에겐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다. 이 여인이 바로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다! 지금 여러분은 독일 총리 메르켈을, 자신을 뽐내기에 바쁜 사치스런 러시아의 거부 푸틴 대통령과 비교해 보라! 지금 여러분은 진정 어떤 삶이 보람 있는 삶인가? 진실로 존경스럽잖은가! 대통령이든 총리든, 한 나라의 수반이 그 직인에서 물러나, 원래 살던 자리로 돌아가면 될 것을, 5년 직임이 청기와집을 물러날 때마다, 이전에 살던 집이 아닌 새 아방궁 지어 들어가는 모습, 이젠 그만 보았으면 싶다. 메르켈 총리처럼 자기 분수를 알아, 예전에 살던 집, 그리고 예전 일상의 위치로 돌아가는, 자기 분수를 아는 자의 모습이, 가슴 저미도록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