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이슬람의 신앙체계와 세계관 (9)

2023-09-24     고종석 목사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대부분의 종교들처럼 이슬람에도 여러 종파가 있는데 수니파, 시아파, 수피파가 주요 3대 종파이다. 이들 종파의 기원에 대해 대부분의 이슬람 연구가들은 이슬람 공동체는 제4대 칼리파 알리의 사망 이후 통치권의 주도권 문제로 수니파(‘순니파’라고도 함)와 시아파로 나뉘게 되었고, 그 후 7세기 초 칼리파와 무슬림들이 타락하자 일부 무슬림들은 참회를 상징하는 털옷을 입고 다녔는데 이들을 가리켜 금욕 수행자라는 의미의 ‘수피야’(수피파)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일주는 “이슬람 세계는 알라에 대한 서로 다른 신학적 접근과 교리에 대한 주요 사항이 달라서 두 개의 주요 정파인 순니(Sunni)와 시아(Shia)가 생겨났다”고 주장한다(『아랍의 종교-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 세창출판사, 173 참조). 이슬람 내부의 두 종파 간 분열은 무려 1,400년을 이어 내려오고 있으며, 이들 두 종파 간의 갈등은 수차례의 전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최근의 예로, 무슬림들의 육신오행(六信五行) 중 이슬람 제일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카아바 신전을 성지 순례하는 것이 있는데,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에서 이것을 중단하고 시아파 시조인 알리(무함마드의 사위로 제4대 칼리파)의 묘지를 순례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을 정도로 반목이 심하다,

1. 수니(Sunni)와 시아(Shia)의 분리

무함마드 사후 아들이라는 적통이 없어(무함마드는 2남 4녀를 두었으나 모두 자신보다 일찍 죽고 오직 막내 딸 ‘파티마’만 남았음) 명확한 후계자(칼리파 Khalifah)가 없는 상황에서 이슬람 공동체 안에는 ‘무함마드의 후계자’라는 정통성이 이슬람 역사 천 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미 이슬람의 역사를 본바와 같이 무함마드의 후계구도는 피로 얼룩졌고 그에 따른 파벌(수니파와 시아파) 갈등은 더욱 깊어져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슬람 공동체 안의 주도권 쟁탈을 놓고 크게 두 그룹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시작되었다. 한 부류는 무함마드의 애처 아이샤를 비롯하여 아브 바크르(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 초대 칼리파)와 우스만을 중심으로 한 메디나 출신의 무함마드의 측근 그룹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유일한 생존자인 파티마의 남편)를 비롯한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적통 그룹이었다.

그런데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이 제1대 아브 바크르(Abu Bakr), 제2대 우마르Umar), 제3대 우스만(Uthman)에 이르기까지 비 혈통그룹 출신들이었다. 그러다가 제4대만에 이르러 무함마드의 혈통이라 할 수 있는 사위 알리(Ali)가 칼리파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알리가 칼리파로 등극하자 전임 칼리파 우스만이 알리 측 사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음모가 널리 퍼졌다. 그래서 아이샤를 비롯한 우스만 측 사람들이 알리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던 차에 알리가 우스만이 임명한 다마스쿠스 총독 무아위야(Muawiyah)를 해임하자 이를 계기로 두 번에 걸친 내전이 일어났고, 결국 알리가 이 내전의 여파로 이라크 남부의 쿠파 사원에서 카와리지파에 의해 암살을 당했다.

알리가 암살을 당하자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에 의해 알리의 장남 하산(Hasan)이 칼리파 직을 계승하였지만 집권 5개월 만에 무아위야에게 칼리파 직을 내주었고(암묵적으로 인정함), 차남 후세인 알리(Husayn ibn Ali)는 무아위야 사후 쿠파의 지지자들과 함께 칼리파로 즉위하려다 쿠파 총독 우베이둘라(Ubaidullah)에게 암살당했다. 이를 계기로 알리를 추종하던 일부 무슬림들이 결속하여 정식으로 “시아파”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후세인의 죽음을 순교로 보고 그 날을 아슈라(애도의 날)로 정해 수니파(우마이야 왕조)에 맞섰다. 따라서 이슬람 공동체의 주류세력은 시리아의 우마이야 왕조에 의해 수니파로 계속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의식의 실행과 종교관, 이슬람 율법의 해석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수니파의 경우 꾸란에 입각한 삶과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문자 그대로 철저히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율법주의를 고수하고 있지만 시아파는 꾸란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 보다 그 내면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 해석하고 이행하는 가치 순응적인 모습을 보인다. ‘수니’(sunni)라는 말은 순나(sunna)에서 나온 말인데 “꾸란과 함께 무함마드의 순나(말과 행동을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무슬림의 약 85%가 속한 주류 이슬람 세력이다. 반면 ‘시아’(shia)는 “알리와 후손들을 따르는 사람들(Shiah-Ali)”이란 뜻으로 수니파(정통파)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며, 이란을 중심으로 전 세계 무슬림의 약 10% 정도가 속해 있고 최고 지도자(칼리파)는 반드시 무함마드의 정통 후손이어야 한다는 원리주의적(혈통주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어 오직 알리(Ali)만을 정통 칼리파로 인정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종파이고,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중시하는 종파이다. 그러므로 시아파가 수니파에 비해 보수적이며 강경파이다. 이런 관점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중요한 차이점을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이슬람의 교리인 여섯 믿음과 다섯 개의 실천 강령 중 수니파는 “하루 다섯 번 번 일정한 시간에 예배드리는 것”을 모두 이행하지만 시아파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세 번으로 압축해서 실천한다. 또한 시아파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고 암송하는 신앙고백 부분에 “알리는 알라의 대리인이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계승자이며, 최초의 칼리파다.”라는 구절을 추가한다. 기도하는 자세도 시아파는 서있는 자세에서 두 손을 배 위에 올리지 않고, 절을 할 때에도 바닥에 곧장 이마를 대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카르발라(karbala)에서 나온 작은 돌을 놓고 그 위에 이마를 댄다.

두 번째는 ‘아슈라의 날’(The day of Ashura)을 지키는 모습이다. 이 날은 칼리파 알리의 차남 후세인 알리가 살해당한 이슬람력 1월 10일을 의미한다. 시아파는 후세인 알리가 쿠파의 총독에게 살해당한 것을 순교라고 보고 단식하며 후세인의 고통을 기린다. 시아파 무슬림들은 이 날 자신의 가슴을 칼로 긋고 채찍으로 치는 행위(타으지아)를 통해 후세인 알리의 순교를 몸으로 기억하고 참회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통해 후세인이 중재자로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세 번째는 이맘(imam 성직자)에 대한 숭배 유무이다. 수니파는 전통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무슬림이 알라에 대한 믿음과 신행으로 직접 신과 소통할 수 있다는 이슬람의 전통적인 관점에 따라 이맘을 단순한 예배의 인도자쯤으로 여기는 반면 시아파에서 이맘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믿고 있다. 이맘은 알리(무함마드의 사위로 시아파에서 인정하는 정통 칼리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스승으로 알리와 그의 후계 이맘들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무함마드와 비슷한 반열에 놓는다. 그래서 시아파 무슬림들은 이맘들의 무덤을 신성시하여 정기적으로 순례함으로 종교생활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시아파에서 이맘은 공동체의 수장이자 무함마드의 내면적 가르침의 상속자이며, 무함마드의 빛을 이어 받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시아파 내에는 이맘의 위치와 정통성을 두고 네 이맘파, 다섯 이맘파(Zaydiyah 자이드파), 일곱 이맘파(Ismailism 이스마일파), 열두 이맘파로 분열이 생겼다. 시아파의 분파 원인은 기본적으로 알리→하산(알리의 장남)→후세인(알리의 차남) 순으로 이어지는 것을 인정하지만, 후세인 다음 이맘의 지위를 계승한 자손이 누가 되느냐를 놓고 파벌이 생겨났다. 각각 나름의 명분과 신조에 따라 파벌들이 생겨났지만, 가장 강력한 규모를 자랑하는 파벌은 현재 시아파 이슬람의 8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열두 이맘파이다. 열두 이맘파는 이 세상에 이맘이 열두 명 밖에 없다고 믿으며 그들은 모두 무함마드의 혈통적 직계를 잇는 정통 칼리파들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시아파의 종주국 역할을 하고 있는 이란의 경우 전체 무슬림의 10% 정도에 달하는 시아파 무슬림 중 최대 신자 수를 포용하고 있고, 이맘에게 부여하는 국가 최고의 절대적인 종교•정치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 실례로 2016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머리에 루사리(히잡의 일종)를 두르고 이란을 국빈 방문했다. 이란을 방문해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여러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실제로 더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 최고 지도자와의 면담이었다. 종교지도자(imam)가 정치 지도자를 겸하는 시아파 신정(神政)국가인 이란에서 최고 지도자는 국정 운영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시아파는 수니파에 비해 인물숭배 경향도 두드러진다. 시아파 무슬림들은 무함마드 가문 출신의 성인(聖人)들에 대해 숭배의식을 행함과 동시에, 이란 등지에 퍼져 있는 시아파 이맘들의 묘소를 주기적으로 참배하며 순례한다. 또한 이란의 가정이나 관공서에는 알리, 후세인 알리, 그리고 카르발라 전투(Battle of Karbala)에 관한 사진과 그림들이 장식되어있는데 이는 수니파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다섯 번째는 시아파는 수니파와는 달리 따끼야(taqiyya 위장)를 인정한다. 시아파는 수니파의 정치적‧종교적 박해로부터 시아파 무슬림 자신의 존재와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 따끼야를 통해 거짓으로 위장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따끼야 교리는 자아파르 알사디끄가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결국 따끼야는 소수종파인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꾸란 텍스트를 광의적으로 해석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종파의 분열은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슬람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분쟁은 두 종파간의 분쟁이라고 보면 된다. 후세인정권 때의 이라크 내전,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내전, 현재의 시리아와 예멘의 내전, 나아가 수니파의 본산지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본산지 이란의 갈등도 결국 뿌리 깊은 종파간의 갈등이 원인인 셈이다.

2. 수피파(Sufi)의 등장

“수피파”는 수피즘(Sufism)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분파이다. 수피즘은 전통적인 교리 학습이나 율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신과 합일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수피즘의 유일한 목적은 알라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수피 댄스(Sufi whirling)와 노래로 구성된 독자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수피(Sufi)는 아랍어의 양모(羊毛)를 뜻하는 어근 ‘수프’(suf)에서 파생된 말이다. 수피즘의 초기 수도자들은 금욕과 청빈을 상징하는 하얀 양모로 짠 옷을 입었기 때문에 수피라 불렸다. 7세기 초 칼리파와 무슬림들이 타락하자 일부 무슬림들은 참회를 상징하는 하얀 털옷을 입고 다녔다. 양털로 만든 털옷은 세상의 쾌락을 버리고 오직 수행에만 힘쓴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그 후 1세기 뒤에 이라크에서 ‘수피야’라고 불리는 금욕 수행자(ascetics)들이 나타났고 900년경에는 바그다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수피들이 번성했다.

이슬람의 주요 종파인 수피파의 교단 이름은 타리카(tariqa)이다. 타리카는 원래 길(道)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수피파에서는 알라에 대한 직접적인 앎(marifa)에 이르는 영적인 길을 의미한다. 압바스 왕조 시기인 12세기에 창설된 카디리 교단이 실질적인 최초의 수피즘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카디리 교단은 개조(開祖) 아브드 알카디르 알질라니(Abd al-Qadir al-Jilani)가 창립하여 그 자손이 교단의 지도자를 세습하였으며 15세기 경 이슬람 전역에 걸친 교단으로 성장했다.

수피즘은 이슬람의 전통적인 율법은 존중하되 일체의 형식은 배격한다. 무슬림 각자의 내적 각성과 꾸란의 신비주의적 해석을 강조하며, 금욕‧청빈‧명상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성보다 체험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수피즘은 알라와의 합일(合一)을 위해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한다.

수피들은 예수를 특히 존중했는데 수피즘은 예수를 사랑의 복음을 설교한 이상적인 수피로 보았기 때문이다. 수피즘은 이슬람법의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알라를 찬양하고 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졌는데, 초기 수피즘은 금욕주의로 영혼을 정화한다고 믿었다. 비록 수니파와 시아파가 수피파를 일탈한 무슬림들이라고 무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피파가 이슬람을 세계로 확장시키는데 공헌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수피들은 인도네시아•인도•중앙아시아•중앙아프리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도 무슬림에게도 도전을 주었고, 1974년 파키스탄을 만들 수 있도록 공헌한 것도 수피 무슬림이다.

※ 본 이슬람 신학논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됩니다.

1. 서론: 이슬람과 역사 개관

2. 이슬람의 교리와 샤리아법

3.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4. 여호와(야훼)와 알라

5. 성경과 꾸란

6. 예수와 무함마드

7. 이슬람의 구원관

8. 이슬람의 내세관

9.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10.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크리슬람과 내부자운동 

 

고광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