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이슬람의 신앙체계와 세계관 (8)

2023-09-01     리폼드 투데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내세관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 이 세상 이후의 내세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둘 다 죽음, 부활, 심판, 천국과 지옥에 대해 믿고 있다. 물론 기독교 내에서도 교파마다 종말론의 세세한 부분에 차이가 있고, 이슬람 내에도 학파들마다 세세한 부분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꾸란의 내용 중 20% 이상이 종말과 내세에 관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디스를 참조할 수밖에 없고, 하디스 일부는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종말과 내세에 관해 여러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죽음, 부활, 심판,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양 종교가 주장하는 내세관을 비교함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내세관은 현존하는 사람 중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성경과 꾸란•하디스에 근거하여 양종교의 내세관을 고찰한다.

1. 기독교의 내세관

기독교의 내세관은 원죄문제의 해결로부터 시작이 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시작을 한다. 이슬람의 구원은 선과 악의 행위기준에 의해 천국과 지옥의 삶이 결정되지만, 기독교의 구원은 죄의 사함 받음이 가장 우선적인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그것을 구원이라 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구원된 천국백성이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의 내세관은 이미 구원받은 백성에게는 확정적이다.

인간의 죽음

기독교에서 인간의 죽음은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죄(원죄)의 결과이다. 본래 인간은 불멸의 존재로 지음 받았으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죽음의 저주를 받았다(창 2:16-17). 그래서 아담의 원죄를 전이 받은 인간은 “죄의 값은 죽음”(롬 6:23)이라는 하나님의 원칙 앞에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히 9:27)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Karl Barth, Reinhold Niebuhr, 종교개혁시대의 Socinuans)은 인간의 죽음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치부하지만, 성경은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롬 5:12). 죄의 결과는 잠깐의 고통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그래서 성경에는 두 번의 죽음을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 죽음은 원죄로 인한 모든 인간이 죽는 육체적 죽음이요, 두 번째 죽음(둘째 사망)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을 받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영원히 죽는 죽음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첫 번째 죽음에 대해서 ‘잔다’(fall asleep/NIV)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살전 4:13-15). 잔다는 말은 일어날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즉, 인간은 원죄로 인해 육신의 첫 번째 죽음을 당하지만 마지막 날 심판을 받기 위해 다시 일어날(부활)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을 위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하실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은 오직 성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다(마 24:36; 살전 5:1-2 참조). 예수님은 인격체로 오실 것이며(행 1:11),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오실 것이며(계 1:7), 영광 중에 오실 것이다(골 3:4).

인간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중간상태(낙원과 음부)에 있던 사람들이나 살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대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기 위해 다 부활할 것이다(살전 4:13-17).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자나 불신자나 죽은 자(잠자는 자)들이 모두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위해 부활한다(단 12:2; 요 5:27-29).

최후 심판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 중 하나는 최종적으로 심판을 하시는 것이다. 이 심판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는 심판이다(요 5:22; 행 17:3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의 조언도 받지 않고 홀로 공의롭게 심판하신다(딤후 4:8). 또한 주님의 심판은 모든 사람을 각각 개별적으로 행하실 것이다(고후 5:10; 롬 14:10).

성경은 두 가지 심판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 번째는 구원의 심판으로 천국과 지옥에 갈 사람을 구분하신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여 알곡은 곳간(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지옥)에 넣는 것처럼 구분하신다(눅 3:17). 물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보장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 심판이 천국백성으로 확증되는 축복의 시간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상급에 관한 심판이다. 구원(redemption)은 믿음으로 보장되지만, 상급(reward)은 천국백성들 간에도 차이가 있다. 마치 달란트 비유에서 그들의 헌신을 헤아려보신 것처럼 성도들의 신앙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다(고전 3:7-8).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사람이었음에도 마지막 때 주어질 상급을 받기 위해 충성했던 것이다(딤후 4:7-8).

예수님의 최종 심판이 마무리 되면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위임하신 인류구원과 사탄을 무저갱에 가둔 후 새롭게 된 나라(새 하늘과 새 땅)를 하나님께 바칠 것이라는 말이다.

천국과 지옥

예수님의 심판에 따라 구원받은 자는 천국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는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서 “천국”(οὐρανός heaven)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처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ὁ 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υ kingdom of God)라는 용어와 함께 쓰이고 있는데(마 5:3; 요 3:5), 천국을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게(영적으로) 이미 이 땅에 임하였고(already come),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으로 눈에 보이게 임한다(but not yet). 그때 우리의 몸이 부활하여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이런 의미에 이것을 천국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지옥”(γέεννα hell) 영원한 형벌 장소를 의미하는데 그곳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이다(욥 18:21). 지옥은 마지막 심판 후 불신자들이 갈 곳으로서 영원한 형벌의 장소(마 25:46), 풀무불처럼 뜨거운 곳(마 13:41-42), 구더기와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막 9:43), 영원한 멸망의 장소(살후 1:8-9), 캄캄한 어둠이 예비 되어 있는 곳(벧후 2:17; 유 13),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1:8), 불 못(계 20:10, 14, 15), 마귀와 그의 천사들(타락한 천사)을 위해 준비된 불속(마 25:41) 등으로 묘사된 둘째 사망(영원한 죽음)(계 20:14)의 장소로서 영원히 죽음의 저주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지옥에 대해서 이해하기란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지옥과 비교할만한 것이 지구상에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2. 이슬람의 내세관

이슬람 세계관에서 인간의 삶은 수태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인간이 모태에 수태되어 영원한 내세의 삶을 살기까지 네 단계의 길을 걷는다고 한다. 첫 단계는 모태에서의 삶, 두 번째 단계는 현세에서의 삶, 세 번째 단계는 무덤에서의 삶(Barzakh), 네 번째 단계는 내세(천국 혹은 지옥)에서의 삶이다. 이슬람 내세관에서 일반 종교와 다른 점은 “무덤에서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무덤에서의 삶은 현세의 삶을 마치고 죽은 자들이 최후의 심판 날까지 무덤에서 임시적으로 산다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

이슬람에서 인간은 알라가 정한 운명이 다하면 현세의 삶을 마치고 무덤에서 대기하다가 마지막에 알라의 심판을 받아야하는데 이것을 ‘죽음’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꾸란은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생명이 없었던 너희에게 생명을 부여하사 다시 생명을 앗아가고 또 부활하게 하여 그분 곁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알라)을 어떻게 거역한단 말이뇨”(Q 2:28)라고 함으로 인간이 태어나고, 죽고, 다시 부활하는 것이 전적으로 알라의 뜻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에게 죽음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알라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Q 62:8).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영원한 내세에서 살기 때문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다. 알라는 인간을 만들었고 때가 되면 생명을 가져가고 또 때가 되면 부활하게 하여 심판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내세관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운명적이지 않은 특별한 죽음이 있는데, 그것은 지하드에서의 죽음이다. 그들은 알라가 정한 운명의 기한대로 살지 못하고 알라와 이슬람을 위해 목숨을 잃게 됨으로 그들의 죽음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지하드에서 죽은 전사들은 알라의 심판을 거칠 필요가 없이 곧바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꾸란을 믿고 있다(Q 3:158-159; 4:74; 9:89).

이슬람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세 가지가 무덤까지 따라간다고 한다. 가족과 부와 업적이다. 그중 두 가지(가족과 부)는 돌아오고 한 가지만 남는데 업적이다. 그의 업적은 무덤에 남아 알라의 심판을 기다린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알라 앞에서 오직 자신의 업적(믿음의 척도)에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사람이 죽기 직전에 그의 영혼이 목구멍에 모아진다고 한다. 이때 죽음을 관장하는 천사 이즈라일(Izrail)이 육신에서 무덤으로 영혼을 옮기는 작업을 한다(Q 75:26-30).

인간의 부활

이슬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마지막 심판 때까지 무덤에서 살게 되는데 이것을 ‘바르자크’(Barzakh)라고 한다. 일종의 이승을 떠난 첫 내세라고 할 수 있다. 꾸란은 이 무덤의 세계에 대해 “죽음이 그들에게 이를 때 주여 저를 다시 돌려보내 주소서 제가 남겨둔 여생 동안 선을 행할 수 있나이다 라고 말하나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나니 그것은 그가 지껄이는 말에 불과하며 그들 앞에는 부활하는 그날까지 장벽이 있을 뿐이라.”(Q 23:99-100) 여기서 “부활하는 그날까지 장벽이 있다”는 것이 곧 무덤을 의미하며, 이 무덤에 들어가면 최후의 심판 날(부활의 날)까지 이생과는 교류가 단절된다.

알라가 정한, 알라만이 알고 있는 마지막 심판의 날(Q 7:187; 34:3)이 되면 바르자크(무덤의 삶)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알라 앞에서 심판(계산)을 받기 위해 부활한다(Q 23:16). 이 날에 이스라필(Israfil) 천사가 뿔로 만들어진 육중한 나팔을 불어 마지막 종말을 알리는데 그 광음으로 인해 우주만물이 전율할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마지막 날이 되기 전에 여러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관능적 쾌락에 빠져 이슬람이 금지하는 음주•도박•간음•살인이 성행하고, 지진과 해일이 빈번하며, 건축물(웅장하고 높은)에 대한 경쟁과 시간이 짧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더 큰 징조는 예수님이 지구로 돌아온다. 이슬람 전통에 의하면 예수는 재림하여 마시흐 알 다잘(적그리스도)을 죽이고, 십자가를 부수고(무슬림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로 예수가 십자가를 부술 것으로 믿고 있음), 돼지들을 모조리 죽이고(돼지는 이슬람에서 가장 부정한 짐승임), 마침내 해가 서쪽에서 뜰 것이다.

이런 징조들이 나타난 후, 알라가 정한 마지막 날이 임한다. 그날에는 우주만물이 모두 파괴되고 소멸된다. 현세의 모든 것이 끝나는 종말이다. 마치 두루마리를 접는 것처럼 이 우주를 접어버릴 것이다(Q 21:104). 그날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다 죽는다. 천사들과 진(악령)도 죽고 인간도 죽는다. 그리고 알라는 새로운 창조를 한다.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때, 가장 먼저 천사가 생을 돌려받고, 이스라필이 나팔을 불면 무함마드와 선지자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과 진들이 일어나(부활) 거대한 대평원 위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알몸이 되어 알라 앞에 평등하게 서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꾸란은 “나팔소리가 들리니 보라 그들의 무덤으로부터 서둘러 주님(알라)께로 나가니라 그들은 말하리라 오 슬프도다 우리의 침상(무덤)에서 우리를 일으키는 자 누구뇨 이때 한 음성이 들려오니 그것이 자비로운 분(알라)이 약속하시고 선지자들이 그 진리를 말한 것이라 강한 질풍이 몰아치자 보라 그때 그들 모두는 하나님(알라) 앞으로 불리워 오더라.”(Q 36:51-53)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에서는 마지막 날에 무덤 속에 있던 자들이 알라의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할 때 죽기 전의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부활사상은 변형된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것(고전 15:35-44)으로 이슬람의 부활사상과 차이가 있다.

최후 심판

모든 인간이 무덤 속에서 부활하여 알라 앞에 서는 그날, 사람들은 현세에서의 삶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현세에서 그들이 믿었던 신(神)이나 교주(敎主)들 뒤에 서게 된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 뒤에 서고, 기독교인들은 예수 뒤에 서게 되며, 유대인들은 모세 뒤에 서게 되고, 불교인들은 부처 뒤에 서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서야 할 곳으로 정확하게 인도할 것이니 속일수도 없고 새로 선택할 수도 없다.

그날, 알라는 거대한 장막 뒤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심판을 주관할 것이다. 알라는 천사들이 기록한 책에 의해 공정한 심판이 이루어진다. 선한 사람의 경우 기록의 책이 오른손에 주어지고, 악한 사람의 경우 왼손에 쥐어질 것이다(Q 69:18-37).

천사들에 의해 각자의 기록에 대한 검토가 끝난 후, 사람들은 각각 현세에서의 선행과 악행이 공정한 저울 위에서 무게가 달려질 것이다. “하나님(알라)은 심판의 날 공정한 저울을 준비하나니 어느 누구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함이라 비록 겨자씨만한 무게일지라도 그분(알라)은 그것을 드러내 계산하리니 계산은 하나님(알라)만으로 충분하니라.”(Q 21:47). 현세의 행실을 저울에 달아서 선행이 악행보다 무거우면(많으면) 천국으로 갈 것이고, 악행이 선행보다 무거우면(많으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심판의 날을 ‘분리의 날’이라고도 한다(Q 77:38; 78:17).

천국과 지옥

심판이 끝나는 즉시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단계인 영원의 세계로 이동한다. 알라의 저울대 심판에 의해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단 모든 사람들(善者나 惡者)이 심판의 대평원에서 지옥의 가장자리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지옥의 상황은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할 정도로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왜 모든 사람들을 일단 지옥으로 이동시키는가에 대한 하디스의 답변은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지옥의 처참한 상황을 직접 체험하라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지옥의 가장자리에서 천국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날들을 가진 길인데, 이 다리를 알 시라트(al-Sirat)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 아슬아슬한 길을 건너가다가 악인은 마침내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지게 되고, 의인은 천국으로 인도된다. 특히 선지자들이나 순교자들(지하디스트)은 이 길 위로 들려 올려져 건너편 천국으로 바로 인도될 것이다. 또한 일반 무슬림으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지만 상처 없이 무사히 천국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가지만 악행도 많이 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면서 신체가 잘리고 온몸에 상처를 받은 다음에야 겨우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천국에 도착한 직후 모든 상처들은 치유될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는 안했지만 그렇다고 천국에 갈만한 선행도 하지 않은 어중간한 사람의 경우, 또한 저울에 달아봤더니 선행과 악행의 무게가 똑같아 중간에 있는 사람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이에 대해 이슬람 하디스에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아주 높은 곳(중천의 대기소, 가톨릭의 연옥과 비슷한 개념)에서 잠시 살면서 지옥을 보면서 두려움 속에 살고 또한 천국을 보면서 그곳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살다가 마침내 천국으로 옮겨가게 된다고 한다.

(1) 천국(낙원)

꾸란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자주 그리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꾸란 1장, 즉 개경장(al-Fatiha)은 무슬림들이 하루 다섯 차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암송하는 것인데, 이 장의 마지막 절에는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라고 끝맺음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올바른 길’이 바로 천국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에게 천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고, 이곳에 가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비록 장애인이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완전한 신체를 갖게 된다. 그들의 신체구조는 20∼30대의 건강하고 양호한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다. 젊음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며, 현세에서 고통 받은 질병이나 상처, 아픔이나 괴로움 등은 없는 곳이다. 어렸을 때 죽은 아이들은 그대로 남는다.

이슬람에서 천국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이슬람 학자들에 따라 2개, 4개, 7개 또는 8개를 말한다. 천국(Firdaws, 에워싸는 정원(paradise)이라는 뜻의 아랍어)이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이와 같은 의미의 이름 중 ‘평화로운 집’(Q 6:127), ‘보상과 휴식처’(Q 25:15), ‘안식처’(Q 32:19), ‘에덴의 천국’(Q 9:72; 13:23), ‘최후의 거주지’(Q 13:22) 등이 있다.

이슬람의 천국은 최상의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꾸란에는 천국의 모습을 지구의 어느 곳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매우 경이로운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말하는 천국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현세의 무덥고 척박한 아라비아 땅에서 경험하지 못한 시원한 그늘 정원(꾸란에 무려 35개절에 언급됨), 마르지 않은 네 개의 강(생수의 강, 우유의 강, 술의 강, 꿀의 강), 취하거나 두통 없는 술, 침상에서도 딸 수 있는 풍성한 과일(주로 포도・석류・대추야자), 현세의 부자들이 누리는 기구들, 그리고 72명의 배우자(처녀) 등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해결해주는 영원한 곳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천국은 현세에서 이슬람이 금지하고 있는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현세 지향적인 아이러니한 곳이다.

또한 이슬람의 천국은 남성중심의 낙원이다. 동일한 신앙으로 천국에 들어간 여성들에 대한 보상은 거의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이런 여성관은 현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하디스에 의하면 “기도 중에 개나 나귀나 여자가 지나가면 그 기도는 무효”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의 인권은 무시되고 있다. 유산도 남자의 절반이고, 법정의 증인도 남자의 절반의 가치가 있다(여자 두 명이 남자 한 명과 증언효력이 같음). 특히 일부다처제를 비롯하여 명예살인, 심지어 모스크에서 알라에게 예배드리는 일도 남녀가 함께 하지 못하고 여자는 모스크 안의 커튼 뒤나 또는 구별된 장소에서 기도할 따름이다.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들을 배우자로 두고 결혼생활 한다는 이슬람의 천국관과 천국에서는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는 기독교의 천국관은 그 차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눅 20:34-36).

(2) 지옥

꾸란에 천국(312번 언급)만큼이나 지옥에 관한 직설적 언급이 많이 있는데 무려 367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지옥은 천국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Q 22:21-22). 지옥에 갈 사람들은 비 무슬림(7:40),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사람(4:93), 삶과 신앙에서 위선적인 무슬림(4:145) 등이며, 지하드를 거부하거나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특히 무함마드는 지옥에 대한 고통들을 그가 상상해 낼 수 있었던 가장 처참한 고통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무함마드가 자기를 믿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비 무슬림들)을 경고하기 위해 지옥을 언급했다고 꾸란 74:27-35에 밝히고 있다.

지옥도 천국처럼 일곱층으로 되어있어(Q 12:44)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나쁜 곳이다. 19명의 천사들이 지옥의 가장자리를 순찰하며 나오려고 하는 자들을 밀어 넣는다(Q 74:30-31). 지옥의 천사들은 잔인하고 힘이 세며 자비란 조금도 없는 모습이다. 지옥의 불은 이 땅의 불보다 70배가 더 뜨겁다. 특히 지옥에는 무슬림들이 가는 자한남(jahannam), 기독교인들이 가는 후타마(ḥuṭamah, Q 104:4)과 유대인들이 가는 라자(razah, 70:15), 위선자들이 가는 하위야(hawiyah, Q 101:9), 우상숭배자들이 가는 자힘(jaḥim, Q 2:119) 등이 있다고 한다.

지옥은 말 그대로 고통의 장소이다. 지옥을 상징하는 말은 불인데, 그곳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갇혀있게 된다. 지옥의 사람들은 불기둥에 묶여 뱀과 전갈의 괴로움을 당한다. 송진으로 된 옷을 입고 최고조의 긴장 속에 산다. 그들은 한순간도 자거나 쉴 수 없으며 피부가 불에 타 없어지면 다시 새로운 피부가 생겨 고통은 계속된다(Q 4:56). 그들의 머리에는 계속해서 끓는 물이 부어진다(Q 22:19). 마실 것은 오직 피고름과 내장을 녹일 만큼 뜨거운 물 뿐이다(Q 78:24-26). 지옥의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악마처럼 생긴 가시 돋친 자꿈(zaqum)나무 열매를 먹을 것인데 이것은 그 자극성 때문에 내장에 큰 상처를 준다(Q 37:63-68). 지옥의 불을 태우는 연료는 석탄이나 가스가 아니라 우상숭배자의 몸통이다(Q 21:98). 지옥에서는 사람들의 고통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지만 그럴 때마다 철로 된 회초리로 내리치는 징벌이 가중된다(Q 22:21-22).

본 이슬람 신학논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됩니다.

1. 서론: 이슬람과 역사 개관

2. 이슬람의 교리와 샤리아법

3.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4. 여호와(야훼)와 알라

5. 성경과 꾸란

6. 예수와 무함마드

7. 이슬람의 구원관

8. 이슬람의 내세관

9.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10.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크리슬람과 내부자운동

 

고광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