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이슬람 신앙체계와 세계관(7)
기독교와 이슬람의 구원관
기독교와 이슬람의 구원관은 많은 차이점이 있다. 두 종교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독교는 오직 삼위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은혜구원”을 믿고, 이슬람은 철저하게 꾸란과 하디스를 지킴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행위구원”을 믿는다. 이는 다른 말로 해석하면, 기독교의 구원관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타력구원”(他力救援)을 믿지만, 이슬람의 구원관은 스스로 종교적 의무를 완수함으로 알라의 심판을 피해가는 것 자체를 구원으로 여기는 “자력구원”(自力救援)을 믿는다.
그래서 이슬람 학자들 중에는 이슬람에는 구원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 무슬림으로 이집트 카이로대학교와 미국 템플대학교 교수였던 이스마일 알 파루키(Ismail al-Faruqi)는 “이슬람에서 인간은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은 완전한 형태이고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구원’은 이슬람의 용어가 아니다. 이슬람에서는 팔라(falah), 즉 시간과 공간에서 신의 뜻을 긍정적으로 성취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해방’과 ‘구속’에 해당하는 것이다.”고 주장한다. 참고적으로, 아랍어 ‘팔라’는 성공, 행복, 웰빙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슬람에서는 알라의 명령(육신오행을 비롯한 이슬람의 가르침)을 잘 지킴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이슬람에서 ‘구원’이라는 용어를 부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담이 지은 원죄(原罪)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였으나 알라가 용서해주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꾸란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원죄의 영향에서 벗어난 윤리적으로 순전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죄는 죄를 짓는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그가 얻은 것은 그에게로 돌아오거늘 누구든 타인의 짐을 그가 질수 없노라”(Q 6:164); “정도로 가는 자 그 자신을 위해 가는 것이며 방황하는 자 누구나 스스로 방황케 할 뿐이라 짐 진 자는 다른 사람의 짐을 질수 없으니…”(Q 17:15); “짐을 짊어진 자가 다시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질 수 없으매 무거운 짐 진 자가 다른 사람을 불러 그의 짐을 덜어 달라 구하나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도 조금도 덜어줄 수 없노라”(Q 35:18).
이런 이유로 이슬람에서는 아담의 죄는 그의 후손들에게 전이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아담의 죄는 아담의 문제일 뿐 그의 후손들인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원죄를 부정한다. 따라서 각 개인의 죄는 타인에게 전가되지 않으며, 부모라도 자식의 죄를 대신할 수 없다. 이런 논리에 의해 이슬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 대속(代贖)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구원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1. 기독교의 구원관
기독교에서의 구원(redemption)은 죄(죄책과 죄의 세력)로부터의 해방이다. 아담의 범죄로 시작된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롬 6:23). 죄(原罪)의 결과는 모든 인류에게 전이되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 그래서 성경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에 짓눌려 있기 때문에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you were dead in your sins)를 살리셨도다.”(엡 2:1);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you were dead in your sins)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13).
그러므로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나지 못한다. 누군가가 살려줘야 살아날 수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은 에베소서 2:1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우리를 살리셨고, 이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방종교들의 특징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구원에 이른다는 자력구원을 주장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성불(成佛), 즉 노력해서 열반(涅槃 nirvana)에 이른다. 열반은 현실 세계의 ‘나’(ego)가 완전히 사라진 세계로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무아적(無我的) 구원, 곧 비인격적인 구원이다. 힌두교에서의 구원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모든 자아의 욕망과 감정으로부터 초연해져 브라만(Brahman)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브라만은 비인격적인 중성의 존재로 우주만물이 브라만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화하기 때문에 그는 절대자이다. 따라서 우주와 절대자(브라만)가 하나이듯이 인간(아트만)이 절대자와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믿는다. 이슬람도 율법(꾸란과 하디스)을 지켜야 구원(알라의 심판을 면함)에 이른다고 가르치고, 심지어 유대교까지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의롭게 된다고 하는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을 포함한 이방종교의 특성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선행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행위구원이요, 자력구원이요, 정신주의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삼위하나님의 일하심의 열매이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각각 구원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계획(예정)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구원을 실천하셨고, 성령 하나님은 구원을 개인에게 적용하시고 보증하셨다고 설명할 수 있다(엡 1:3-14).
따라서 기독교의 구원관은 인간이 스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내재된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밖에 있고 우주 밖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구원관은 타력구원이다. 이에 대해 김세윤 교수는 “우리 밖에서(extra nos), 우리를 위해서(pro nobis) 은혜로운 구원의 힘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은 사람이 ‘율법’, ‘율법의 행위’, 혹은 ‘어떤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롬 1:16-17; 3:22, 24, 28; 4:2-8; 5:1; 갈 2:16; 3:22-24; 엡 2:5, 8; 딛 3:5).
인간은 자력구원의 여지가 없는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로서,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의 선물’(롬 5:17)이다. 이런 기초위에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존 칼빈(John Calvin)이 재발견한 ‘이신칭의’(以信稱義 갈 2:16)와 ‘은혜구원’(엡 2:5)의 교리는 기독교 구원관의 토대(basis)가 되고 있다.
2. 이슬람의 구원관
이슬람의 구원관은 한마디로 “종교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Falah). 그래서 마지막 날에 알라의 심판을 피하고 용서받아 천국에 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시리아의 기독교인 출신으로 열방대학교(All Nations Christian College)에서 이슬람학을 가르치고 있는 쇼캣 모우캐리(Chawkat Moucarry) 교수는 이슬람에서 구원은 네 가지의 구성요소(믿음, 복종, 회개, 무함마드의 중재)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믿음과 복종
꾸란에 의하면 구원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알라)과 선지자(무함마드) 그리고 선지자에게 계시된 성서와 너희 이전에 계시된 성서를 믿어라 했거늘 하나님(알라)과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과 내세를 부정하는 자 있다면 그는 크게 방황하리라 믿음을 가졌던 신앙인이 믿음을 부정한 후 또 믿음을 갖다가 또다시 배반하는 자가 있어 그의 불신은 더해 갔더라 하나님(알라)은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인도받지 못할 것이다.”(Q 4:136)고 함으로 알라, 선지자, 꾸란, 성경의 내용을 ‘믿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믿음(여섯 가지 믿음, 六信)에 대한 명령은 반드시 복종(다섯 가지 행위, 五柱)해야 구원에 이르기 때문에 믿음과 복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이슬람의 구원은 꾸란과 하디스에 기록된 것을 마음으로 믿고, 또한 종교적 의무와 도덕적 이상을 실천하는 것에 달려있다. “동서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 아니거늘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알라)과 내세와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을 믿고 하나님(알라)을 위해서 가까운 친지들에게 고아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비가 떨어진 여행자에게 구걸하는 자와 노예를 해방시켜준 자에게 예배를 드리고 이슬람세를 내며 약속을 했을 때는 약속을 이행하고 고통과 역경에서는 참고 인내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하게 사는 의로운 사람들이라.”(Q 2:177; 64:9 참조)
회개
꾸란에는 ‘선행이 악을 제거하여 주는 것’(Q 11:114)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슬람의 율법에 복종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알라에게 용서를 구해야한다. “믿는 사람들이여 하나님(알라)께 진실되게 회개하라 주님(알라)께서 너희의 과오를 거두어 주사 너희로 하여금 강물이 흐르는 천국으로 들게 하시리라…”(Q 66:8); “하나님(알라)은 죄를 사하여 주사 회개함을 받아 주시되 그렇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벌이 엄하니라.”(Q 40:3)
무함마드의 중재
무함마드의 중재에 관해서는 꾸란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하디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알라가 그의 죄를 이미 사해주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Q 48:1-3; 94:1-3). 마지막 날에 무함마드는 무슬림들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알라에게 구할 것이다. 특히 이슬람의 하디스에는 무함마드가 지옥에 간 사람이라도 무함마드가 중재하여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3. 소결론
이슬람의 구원은 종말론적이다. 마지막 날, 알라의 저울 위에 올라가 공정하게 심판을 받은 후 선행이 악행보다 더 무거우면(많으면) 천국으로 게 될 것이고, 악행이 선행보다 더 무거우면(많으면)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때 그의 선행이 많았던 자들은 번성할 것이며 그의 저울이 가벼운 자들은 그들의 영혼을 잃고 지옥에서 영원히 사노라.”(Q 23:102-103). 여기서 선행은 알라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슬람의 구원관은 살아서는 알 수 없고 오직 죽어야만 알 수 있으며, 또한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고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구원이 보장된다.
1. 서론: 이슬람과 역사 개관
2. 이슬람의 교리와 샤리아법
3.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4. 여호와(야훼)와 알라
5. 성경과 꾸란
6. 예수와 무함마드
7. 이슬람의 구원관
8. 이슬람의 내세관
9.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10.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크리슬람과 내부자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