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새 국회(國會)에 바란다
[종그니 칼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에게
오늘이 어버이 날이다. 며칠전부터 어버이날 행사때문에 날씨에 민감해 있었더니 오늘 아침 8시까지만 비가 내리고 지금은 비가 완전히 그치고 오늘 온 종일 흐리단다. 이래저래 우리 내외는 이렇게 좋을수가 없다. 왜냐하면 날씨가 흐리니 따가운 햇볓을 가리는 채앙을 치지 않아도 되기때문이다. 나랏일도 이렇게 순적하게 풀리게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힘 있고 가진게 있는 사람은 그 힘을 감추고 권세의 칼을 빌리지 말이야 함에도 그러나 많은 권세자들은 이를 겸손으로 감추기보다 필경은 자만에 빠져 민낯을 다 드러내고 만다. 그러나 강자(强者)는 반드시 강자의 칼 날을 감추고 덕을 세우는 포용력이 있어야 진정한 승자(勝者)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하셨다. 그럼에도 현 야권은 이번 총선 승리에 도취되어 강자의 논리로 그 위세를 한껏 뽐내고 있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민 낯을 그대로 드러 내는 치기(稚氣)다. 현 우리나라의 '소선거구제'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한 마디로 오늘의 민주정치제도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강자의 논리에 불과한 다수결주의다. 단 한표만 이겨도 승자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사표(死票)가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단 한표 차이로도 전부를 얻는 아주 불합리한 승자 독식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와 야의 표 차이는 근소한데 야당 당선인이 압도적인 것은 진작 손을 봐야 할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소선거구제'의 덕을 톡톡히 본 민주당은 이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제 다시 국회 운영의 힘내지 국정의 힘이 민주당으로 돌아간 22대 국회에 바란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곧 바로 쟁점 입법들을 본격화할 기세를 보이게 되면 국회는 물론이고 정국은 대치정국이 되어 긴장감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다. 이를 조율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영수회담이 있었지만 서로의 의중을 확인하는데에 그치고 말았다. 이번 총선 패배에도 요지부동이던 윤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지율이 마침내 20%대로 급락하자 이러다간 '식물 대통령'이 될까 싶어서 였을까? '강자의 논리대로 거대 야당의 수장에게 손을 내 밀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5년중 절반을 훌쩍 넘기는 동안 '국가통치능력 지수는 겨우 20%대'로 추락한 민낯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정도(正道)에서 길을 찾지 않고 권력의 두호(豆護)에서 그동안 국민들은 윤정권의 집권 5년 임기중 천금같은 1/2을 보내는 동안, 그가 지금 얻은 지지율은 고작 20%에 불과하다. 이쯤되면 무슨 깨달음 즉 변곡점이 있어야하는데 우이독경이다. 그가 이를 알던 모르던 지금은 그의 성패를 가르는 아주 중차대한 변곡점에 와 있다. 윤대통령은 결코 짧지 않은 임기 절반을 권력의 단 맛에 도취되어 헌법상의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함몰되어 그에게 부여된 공복의 자세보다 무소불위의 자리가 검사출신 특유의 독선과 오만으로 훅 불면 흔적도 없을 권세에 흠뻑 도취되어 있었다. 구약성경의 거인 골리앗(Golyath)처럼 요지부동이더니 바로 민의(民意)인 엘라 골짜기의 물멧돌 한방에 마음이 쫄아져서 협치를 통해 얼어버린 국정의 돌파구를 열어보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은 당사자나 나라를 위해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는 '강자의 논리'라 하지만 이젠 코를 싸쥐고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 사는 사회에는 나홀로의 독무대가 아니고 언제나 사회 공동체로서의 공동선이 있다. 때문에 애초부터 무소불위의 독불장군은 없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豈勢)라 할만큼 천하를 한손에 거머 쥘뻔했던 항우도 댕댕이 넝쿨처럼 나약한 유방에게 걸려 무너졌듯이 인생사가 권력의 힘대로 되는게 아니다. 영웅호걸을 세상이 만들어 낼까? 아님 영웅호걸이 세상을 만들까? 결론을 말하자면 누구나 다 유방이 될수도 있고 항우가 될수도 있다. 시류에 역린하는 골리앗을 잡으려면 소년 다윗같은 대의가 반듯한 담력이 있어야 하듯 골리앗과 같은 만용하나 가지고 마치 비스마르크를 흉내 낸 답시고 정도를 버리고 권모술수에 맛을 들여 얄팍한 수작들일랑 이제 그만두시고 당당하게 임하시라! 모처럼 여야영수 회담의 물꼬를 열었으니 오로지 국민을 위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국정전반에 폭넓게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대화의 물꼬를 활짝 여시라!
그래서 이제 새로 구성될 국회에 대한 몇 가지 희망사항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국회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국회법 제20조의 2항 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먼저 새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 다수결이 아니라 의회주의자 답게 정반합(正反合) 의 조정을 통해 국론을 하나로 만들어 낼수 있는 역량이 있는 인물이면 참 좋겠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서 마침내 여야가 수긍할수 있는 안을 가지고 중지를 모을수 있는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참 민주주의의 면모를 보일수 있는 아량이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인만큼 새 국회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선결과제다. 이에 반해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들이 "기계적 중립은 없다" 며 벌써부터 선명성 경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거대 야당이 되면서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에 반비례해서 수(數)에 의해 국사를 쥐락 펴락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면의 힘의 논리일 것이다. 국회의장의 중립성이라는 법의 원칙에서 보자면 이 또한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오만이다. 소수 정당을 배려하는 초당적 국회 운영의 의지와 정치적 균형감각을 잃지 말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않는 상생의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당적을 가지지 못하게 한 규정의 입법취지를 당리당략에 좇아 해석하려는 저의 또한 가당치 않다. 나랏 법을 올 곧게 세우는 법 지킴이로서 사명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법 해석에 있어서도 법 수호자로서 법을 당리당략에 함몰시키는 우를 범치 않기를 바란다.
이번총선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대한민국 국회로서의 위상 즉 국가 의전 서열 2위의 높은 위상에 걸맞는 대외 업무 등에 합당한 지성과 품격을 갖춘 국회의장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또한 여야 의원들이 국회의 대표자로서 존중 받는 호민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블레즈 파스칼은 그의 야심작 '팡세'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국리민복을 가지고 있어서인가?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다수의 힘'을 세도(勢道) 즉 사리사욕의 사당화(私黨化)에 혈안이 되면 어찌 되겠는가? 금번 당선인들은 이를 잘 숙지하고 좋은 정치 유능한 국회를 만드는 데 진력해주길 기대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총 득표율은 민주당 50.5%, 국민의힘 45.1%이다. 5.4%포인트 차이로 민주당은 71석을 더 얻은 것이다. 한 표라도 많으면 승리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에 의한 결과다. 이처럼 패배한 쪽을 선택한 표는 사표(死票)가 되어버리는 소선거구제의 맹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아전인수와 같은 어리석은 대통령처럼 승자독식의 자세를 버리고 소수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받는 협치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수결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닌, 하나의 의사결정 방법에 불과한 것은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보다 언제나 더 현명한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나라가 국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다수가 아니라 그때마다 몸을 던져 국난을 극복해낸 것은 언제나 소수였다. 바라건대 많이 대화하고 충분한 토론과 민주주의의 꽃인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성숙한 타협의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내리는 국회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 "오늘 날 대의정치 (代意政治)에 있어서 "대통령은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선출된 고위 관료다. 그는 왕도 신도 아닌 국민의 공복(公僕)이다" 호세 무히카 (José Alberto Mujica Cordano.) 우루과이 제 40대 대통령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도 마땅히 몸을 낮춰 특권 내려놓기를 몸소실천하길 바란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의원특권 폐지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만큼 많이 거론된 공약도 없었다. 의원정수 축소, 불체포 특권 폐지, 무노동 무임금 원칙 실시, 돈 정치 청산, 세비 삭감 등 크고 작은 방안들이 선거 때마다 반복해서 듣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는 선거만 끝나면 모두 흐지부지되곤 했었다. 마치 '늑대 소년'처럼 말이다. 호세 무히카는 '페페(할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은 우루과이의 제40대 대통령이다. 봉급 90%를 기부하고, 대통령궁을 노숙자 쉼터로 개방하고, 자신은 전부터 살던 집에서 계속 살면서, 작고 오래된 구형 폭스바겐 비틀을 직접 몰고 다녔다. 그는 집권 기간(2010년~2015년) 우루과이의 경제성장률과 교육 수준을 높이고 부패, 문맹, 극빈층을 줄이는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이번 제 22대 국회의 초선의원은 132명으로 44%에 이른다. 이 분들이 나서서 작은 것부터 특권을 없애나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회의원들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처럼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 다만 선거 내내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듯이 공직자로서의 마음 가짐과 의무감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어떤 정당이든지 현실적으로 자기 지지층을 결집해서 어떻게든지 한 표라도 이기려고 하는 정치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바로 이것이 필경 극한 대립을 만들게 된다. 임기가 시작되는 즉시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시작'하길 주문한다. 선거가 끝나면 늘 소선거구제 의 한계가 지적된다. 선거구 확정은 어김없이 시한을 넘겨 선거 직전에야 마무리 된다. 2020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때부터 문제가 되었던 제도의 악용은 이번 선거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양당 독점 구조는 더 공고해지고, 결국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만을 낳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제도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국회가 이 숙제를 매듭지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만약 공이 새 국회로 넘어간다면 바라건대 지체하지 말고 관련 논의를 거쳐 구제도의 폐단을 매듭짓기를 기대한다. "기후 위기는 단지 북극곰이나 먼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관한 우리삶과 직결된 초급의 문제다." 캐서린 헤이호 박사(Dr. Katharine Hayhoe, 기후 과학자)의 말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는 이미 일상에 널리 침투해 있다. 폭염, 물 부족, 대기 오염등,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기후 위기를 핵심적인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22대 국회가 민생 국회를 표방한다면, 당연히 기후 위기에 관한 토론과 대책 마련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정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은 다음 달래고 조정해서 타협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정치의 역할이 갈등의 조정과 문제의 해결에있다. 라고 한다면, 지금 한국에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관후 건대 교수가 지적했다. 소위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채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양평 고속도로 의혹·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주가조작 의혹)' 등의 대정부 쟁점들이야 누가 하라 말라 할 것도 없이 민주당의 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다만 국회 스스로 개혁하고 민생을 챙기고 대한민국 안팎의 위기에 대처하는 일들을 마냥 뒷전으로 밀어둔 채 싸움에만 몰두하지 말아달라 부탁하고 싶다. 이제부터는 민주당의 시간이다. 주도권을 가진 만큼 책임도 무겁다. 나라를 생각하고 시민의 삶을 보살피는 현명한 결정들을 내려 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한 희망의 아침이 마침내 칠흙처럼 어두운 절망의 밤을 녹인다.
[종그니 칼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에게
이 글은 지난날 고시 동문이었던 이의 부탁으로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이에게 하나님을 영접할 수있는 전도의 글을 부탁받고 쓴 글입니다.
윤ㅇㅇ 선생님!
아마 선생님은 저를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손ㅇㅇ을 통해서 말씀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춘천에서 행복이 가득한 집 요양원에서 노인분과 여생을 같이 하는 김 종근목사 입니다. 손ㅇㅇ 님을 통해서 전해 듣기로는 지금 몸이 많이 불편하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라기는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셔서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뵙는 날이 어서 오기를 빕니다.
몸이 늙어 가면 서글퍼지는 것이 몇 가지 있지요. 그중에 세월따라 몸이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젊어 건강할 때엔 내 하고 싶은 대로 따라주던 몸뚱이가 어느 때부턴가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아예 나의 상전이 되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유한한 이 땅에 살면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밤이 가면 아침이 오고 낮의 태양이 지고 나면 다시 밤이 오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 사계절이 오고 가듯이 인생에도 유년 청년 장년 노년의 인생 사계절이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통하여인생의 유한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살아온 이 무대를 슬기롭게 다음 세대에게내어주기를 주저하는 것은 아마도 인생의 배움과 채움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별세의 길이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아니한 미지의 길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윤ㅇㅇ 님! 오늘이라는 날은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끝날임과 동시에, 또한 우리의 남은 날들의 첫날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똑같은 날인데 마음에 따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듯이 이 땅에 머무름도, 헤어짐도, 이와 같습니다.
어찌 보면 병마와 싸우며 시한부 삶을 보내고 있는 분이나 현재 비교적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는이들도 모두 끝 날이 예고된 유한한 인생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은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바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생이 주어진세월 동안 이 땅의 무대에서 희로애락의 인생드라마를 연출하다가, 뒤따라 오는 차세대에 오라 하시면 비워주는 것이 지혜 자의 인생이지요. 그러니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애당초 없습니다.
지금 저는 이미 노쇠해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아흔한 분의 노인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종점에 와 있는 저분들의 진정한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분들은 하나같이 어서 하루빨리 이 노환의 병마에서 벗어나지는 것일 것입니다. 인간의 생로병사에서 참 자유로워지는 비결은 나를 이땅에 보내신 이에게 나의 삶 전부를 맡기는 것입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주신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그분에게 나의 삶 전부를 맡기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일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찾을 때 참 자유로움과 진정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윤ㅇㅇ께서 불자이시라면 혹여 옛날 일본강점기 때의 효봉스님을 아시는지요? 그분이 불가에 출가하기 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서 법관이 되셨지요.
이분이 어느 살인사건을 맡았는데, 엉뚱한 사람이 살인누명을 쓰고 살인범이 되어 결국 사형선고를 받아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얼마후에 이 살인사건의 진범이 나타나자 이로 인한 충격이 너무커서 법관의 옷을 벗고, 엿장수가 되어 여러 해 동안 전국 팔도강산을 떠돌았습니다. 풍잔 노숙의고행으로 죄업을 씻어내려 했으나, 마음으로 속죄가 되지 않아 그는 결국 금강산 암자에 들어가 불자가 되었는데 이가 바로 효봉스님입니다. 세월이 흘러 효봉스님이 임종을 맞아 마지막 하신 말씀이 '무(無)'였습니다. 이 無자 앞에 虛 자를 붙이면 虛無가 되고, 이 無자 뒤에 常자를 붙이면 無常이되지요.
바로 이것이 효봉스님이 남기신 삶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부라면, 인생이 얼마나虛無하고 無常합니까?
윤ㅇㅇ 선생님! 몇 해 전 저는 화장실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변기통에 머리를 찌었습니다. 한동안 의식을완전히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턱뼈가 깨져 변기에 피가 낭자했습니다. 의식을 찾자 제가 한 첫마디가, "하나님! 왜 저를 데려가시지 않고 다시 살려주신 겁니까?"였습니다. 왜냐하면 병마의 고통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요. 죽음은 젊다 해서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늙었다 하여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누구에게나 그림자처럼 항상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윤ㅇㅇ 선생님! 지금 저의 노년의 삶은 구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일흔이 넘었으니 언제든 생로병사가없는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합니다.
윤ㅇㅇ 선생님! 죽음이란 인생이 왔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이라는 옷을 벗고 나를 이 땅에 보내신이에게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별세요 마침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別世요 전연 미답의 새로운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가장 가까운 지인도 효자 효녀도 부모와의 동행은 무덤까지가 전부이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열어주시기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를 무덤 너머 주님의 나라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부디 사시는 날 동안 주님을 영접하시는 축복이 임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