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정죄한 “다른 복음”은 무엇일까?
필자는 갈라디아서가 사도 바울의 초기 문서라고 분류한다(메이천 박사도 그러함).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의 긴박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서신이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서신이 시작함과 동시에 “다른 복음(another gospel)”을 앞세웠다.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과 함께할 수 없는 내용이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사도)가 전한 복음”이다.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무리에 대해서는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anathema)를 두 번(8절, 9절) 선언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10절). 사도 바울은 다시 “내가 전한 복음”(11절)이라고 반복한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계시로 받은 것이다(12절).
사도 바울은 그리고 자기가 받은 계시가 예루살렘 교회의 내용과 일치됨을 밝혔다(갈 1:16-2:10).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 앞에서 외식을 보인 게바를 책망한 내용을 밝혔다(갈 2:11). 사도 베드로는 바울이 쓴 내용을 알았지만 기쁘게 수용하였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함께 이루었다. 게바는 유대인으로 사도였지만, 이방인에게 유대인처럼 살게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도록 해야 할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께 받음 계시로 복음을 전한 사역을 허는 것이다(갈 2:18, 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을 바라보도록 권면했다(갈 3:1). 십자가와 성령을 병렬로 놓았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는 것인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는 것이다(갈 3:14).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시작되었고(갈 3:3), 마침도 성령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성령으로 시작해서 율법으로 마치려는 것에 대해서 비판했다(갈 3:3). 사변적으로는 성령으로 시작하면 율법이나 육체로 마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 언약 후 430년에 율법을 받았다(갈 3:17). 그 율법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폐기하지 못했다(갈 3:17). 율법은 하나님과 반대되지는 않지만, 살게 하는 목적이 아니다(갈 3:21). 의를 획득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갈 3:22). 그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이 역사했는데, 바울은 몽학선생(초등교사, 노예교사)라고 대조했다(갈 3:24절).
(갈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몽학선생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될 때”(갈 3:24)까지 어떤 역할을 했다. 그리고 믿음이 온 후에 그리스도인은 몽학선생 아래에 있지 않아야 한다(갈 3:25).
(갈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갈 3:2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갈 3:2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이다(갈 3:28).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소유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이다(갈 3:29).
유대인들은 몽학선생 아래에 있었다(갈 4:3). 그런데 때가 차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여자에게, 율법아래 나셨다(갈 4:4).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여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갈 4:5). 그래서 믿음으로 아들의 영(성령)을 받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갈 4:6). 즉 그리스도의 종은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하나님의 아들이다(갈 4:7).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다시 몽학선생으로 돌아가려고 했고, 아들이 아닌 종노릇으로 돌이키려 하는데, 그것을 너무나 쉽게 용납했다(갈 4:9). 사도 바울에게 눈을 빼어 줄 정도로 사랑하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몽학선생 아래 종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언성을 높여서 위험을 지적했다(갈 4:20).
바울의 독특한 구약해석, “사라와 하갈에 대한 해석”(갈 4:21-31)이 등장한다. 여종 하갈에게 낳은 아들은 종이고, 자유자인 사라에게 낳은 아들은 자유자이다. 종, 육체, 시내산, 예루살렘을 따라서 난 이스마엘, 종된 자녀와 자유 있는 여자, 위에 있는 예루살렘, 어머니의 아들이 이삭이다. 창세기 21장에서 육체에서 난 종의 아들이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처럼 지금도 그러하다(갈 4:29). 그러나 여종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갈 4:30).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른 복음은 “성령이 아닌 육체로서”, “성령이 없는 율법으로”, 혹은 “보이는 징표로서 의를 가지려는”, “유대인처럼 되려는” 것이다. 복음의 역설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선언하면서 자유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에게는 하나님이나 사람 사이에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내가 공중권세잡자를 따르며 불순종의 아들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신 것이다. 그 생명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육체로 행한 할례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십자가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된다(엡 2:22).
(엡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복음은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식의 영광(엡 3:19)이 영원무궁한 것(엡 3:2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