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오늘의 對 日 현안문제.

[종그니 칼럼] 공생을 저버린 인간

2024-01-04     김종근 목사

 우리의 조국이 남과 북으로 분단 된지  칠십여 성상이 지나도록 남과 북의 관계가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속된 말로 "너 죽고 나 살자"는 민족상잔의 쓰라린 전란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피차 호양(互讓)의 폭을 넗혀 선결(先決)되어야 할 해묶은 남북문제의 매듭을 풀려는 맘보다, 눈을 크게 뜨고 민족의 나아 갈 길을 찾기보다, 피차 현실의 고착화에만 매몰되어 대 단원의 통일 문제는 뒷전이고, 권모술수와 아전인수적 셈법이 훨씬 더 땡겼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일우의 기회가 주어졌었음에도, 차려준 밥상에 서로 자기 입에 떠 넣어 주기만 바라다가 천금같은 호기를 다 놓치고, 민족의 절박한 현안 문제를 놓고 진일보 하기는 커녕 이해득실의 저울질만 하다가,! 피차 속내만 드러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럼 현정권은 어떤가? 도찌니 개찌니다. 쓸떼없이 유리가 북한만  자극하여 주적으로 표명한 것처럼 피차가 주적으로 속내만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정치는 아무나 다 할수 있다.  손자병법에 知彼知己 百戰 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않다.)라 는 말이 있듯, 그동안 북한은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을까? 아니다.  오히려 중국을 의식하고 내심 반기고 있었다. 윤정권이 들어선  지금은 어떨까? 그리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과 함께 한반도에 일본군이 진입해 도 될까? 당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려는가?

일본 기미야 다다시 교수가 "윤석열 정부가 근자에 북한에 내린 9.19 효력정지'에 대해서,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의문부호를 붙였다. 그리고 그는 윤석열 정부의 현 '한일관계 개선책'에 대해 "선거에 따라 정책이 유동적이지 않겠느냐."며 "환영보다 되려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현 윤석열 정부가 북한군의 정찰 위성 발사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2018년 체결된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조항을 지난 해에 효력정지 한데 대해, 한국을 잘 아는 '지한파'로 알려진,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다소 과도한  대응'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치기)이었다." 고 평했다. 기미야 타다시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평가하기를 "북한에 대해서 한국만의 분명한 대북관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물론 문재인 정권처럼 너무 북한에 매달리는 저자세가 아닌 윤석열 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해 나름의 담대한 구상을 밝히고는 있지만, 그러나 북한의 핵에 대한 '억지력 (deterrence)만을 가지고 북한의 도발을 막아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북한을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체제가 유지되도록 안심시켜주는 정책에 대해 "북한이 공격적인 자세를 갖고 나오지 않을 만큼의 북한에게 안전하다는 안심을 심어주는 것"으로서 이는 미국만 아니라 한국도 얼마든지 부분적으로나마 이러한 제스추어를 할수 있다. 예컨대 문제인 정부가 트럼프 정부와 함께 했던 것처럼 윤 정권도 미국을 설득해서 북한을 안심시키는게 능력이다.

이어 기미야 교수는 "북한의 지난번 '인공위성 발사' 문제"에 관해 윤석열 정부는, 9.19 군사합의를 부분적으로 효력정지를 할 만큼 과잉 jesture를 한것은 우월감인가? 아님 그 반대인가?  "과연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  "북한이 핵 실험을 했다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지만, 인공위성이야 한국도 위성을 발사하지 않느냐?  "한국이 하는 건 괜찮고 북한이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면 '이중잣대' (double standard)로 보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더욱 강화한 것에 대해서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판단은 과연 얼마나 실리적일까? 중국보다 일본에 파격적으로 접근함으로 중국에 대해 거리를 둔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을까?중국보다 일본을 더 가까이 한 것이 되려 북한과는 더 요원해 졌다. "한국의 당면문제로 '북핵 문제'가 있고 서로 세계의 패자가 되겠다는 美 中 양국의 대립은 갈수록 각을 세우고 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는 어려운 시국에서, 북한에 대해서 억지보다는 관용을 우선시 하여야 하는데, 이와 달리 미중간의 대립각 속에서 윤정부는 중국에 대해서는 한발 거리를 두면서 초록은 동색인 북한과도 필요 이상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장고 후의 악수가 아닐까 싶다.  

전략적으로도 아마(ama) 처럼 용의주도하지 못했던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과 윤정부와 비교할 때, 실사구시 즉 프로(pro)적 주도면밀한 기질이 없기는 매 일반이다.   이에 대하여 기미야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선은 외교의 패착이라 할 색깔이 너무도 분명해서 북한에 대해서는 관용보다는 억지가, 미 중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진행형에서는 한국판 어정쩡 전략을 내 세울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아픈 곳을 찔렀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중차대한 국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중요하고 이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한 미 일 안보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그래서 한일관계를 개선시켜야 되겠다"고 결단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는 윤석열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이라기 보다는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그렇게 이끌어 갔다 할지라도, 한 나라를  이끌어 갈 지도자는 최소한 5년정도는 내다볼 줄 아는 형안이 있어야 했다. "국제관계가 그렇게 할수 밖에 없도록 되어 졌다"는 변명은 아마추어다.   이는 마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외교가 아니라 한술 더 떠 그냥 겉과 속을 상대에게 모두 다 드러내 보이는 전략이 없는 졸속이다. 

기미야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한일관계 개선 외교에 대해 한국 내에서 반대 여론이 높은 점을 두고, "이러한 한일관계가 한국과 일본사회를 위해 '아주 적절했다."는 확실한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한국 여론도 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이는 윤석열 정부가 중대한 국사를 오로지 우편 향 외골로 마치 번개불에 불고기 굽듯 그렇게 졸속으로 처리해버렸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본의 시각에서 본 바램일 뿐이다 기미야 교수는 이를 알고 "보다 심도있게 대처해 나가지 않는다면, 금년에 있는  총선과 다음 대선 때에도 '역시 윤석열 정부의 대일및 외교정책은 문제가 있었다'고 중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와 관련 "일본 사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면서 도 혹여 다음 총선결과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많고, 다음 대선 때에 혹 "진보정권으로 바뀌게 되면 한국의 대일 정책은 또 달라질 것은 불을보듯 자명하지 않겠느냐."하는 걱정도 많다. 그래서 "무조건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마냥 환영하기도 좀 애매하다" 는게 일본 현지의 여론이란다. 

'일본 군 '위안부 피해자 및 강제동원 피해자' 등은 한일 양국에 있어 민감한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침묵만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고, 이는 일본 정부나 기업 측에서 전쟁의 장본인으로서 결자해지의 용단이 있어야만 하는 의지적 사과가 있어야 하는 '결단의 과제'인 것이다.  이에 대해 기미야 교수는 "법적인 문제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라 든가 청구권 협정에 따라서 '이미 해결된 사안이다' 고 볼 수밖에 없겠지만, 도의적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고 보고 "이는 1965년 대일 청구권에 대한 해결을 단 일회성의 법적인 시각으로만 매듭지으려 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무우 자르듯 일본에 의해 인간의 자존감을 완전히 떨어뜨린 인간의 존엄권을  어떻게 법적인 문제로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는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 오늘만을 보지 말고 가해자와 피해자 국가와 국가간의 대등관계로의 회복을 위해 엄혹했던 지난 날에 자행된 인격말살과 같은 인간이하의 착취에 대한 최소한의 진정성 있는 예의표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 용서해달라고 매달려도 치가 떨리는 사안을 놓고 마치 엎드려 절받기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한심하기만 하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에서는 일본은 그동안 아무도 사과를 안했다고 하면, 일본은 여태까지 축적해온 '사과 메시지'는 뭐냐? '그럼 지난 날의 사과는 아무 소용도 없었냐'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한국에서는 사과를 안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거꾸로 너무 사과한 나머지 피곤하다는 것이다"고 말해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들을 비롯한 公人들이 2015년 위안부 합의 등 사과의 내용이 포함된 합의를 하고서도, 이후 여기에 역행하는 발언을 함으로 문제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기미야 교수는 "총리라든가 외상(외무장관)이라든가 아주 중요한 정부 직책을 맡은 각료는 이러한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여기에 본인이 꼭 첨부하고자 하는 말은, 개인 혹은 사업상의 문제나 나라 간의 문제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예의를 다하는 것이 도리일 것임에도 되려 고개를 뻣뻣이 하는 고 자세는 새로운 선린관계를 세우려는 즈음에, 피해국이 36년동안 이루 말할수 없는 수탈과 수욕의 세월들을 한갖 돈으로만 또는 외교적 인사치례로만 끝내려는 자세는 과거 식민지에 자행했던 온갖 만행을 진정성도 없는 사과조차 생색만 내고있는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는다? 참 경천동지할 일이 현실로 다가 왔음에도 주객이 전도되어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마냥 고자세다.   지금도 우리는 그들에게 식민지인으로 보이는가 보다.  그들의 이런 비뚤어진 고 자세가 바뀌지 않고는 우리는 또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강자의 궤변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정신이어야만 한다.

[종그니 칼럼] 공생을 저버린 인간

매 해 년마다 나는 요양원 뒤에 있는 텃밭에 다음 해 농사에 쓸 거름을 만든다. 요양원 식당에서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음식물을 마냥 쓰레기로 버릴 수 없어 묵은 퇴비와 섞는 작업을 한다. 매일 봄부터 가을까지 한 시간 정도 하고 있으면 해 질 무렵에 여기저기서 들고양이들이 찾아온다. 그러면 음식물 속에서 육류와 생선을 찾아내서 그릇에 담아 주곤 했다. 그러다가 겨울이 찾아와 퇴비 만드는 작업을 그만두면 고양이들이 며칠을 두고 서성이다가 끝내 자취를 감추곤 했다. 지금 그 들고양이들은 어디서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그래서 반려동물이라 했는지는 몰라도 야생 들고양이들은 사람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내가 어린 시절엔 들쥐를 비롯해 이름 모를 야생 먹이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런 먹이사슬들이 끊겨버린 지금, 주인 없는 반려동물들이 우리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방치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우연히 TV에서 `동물농장` 이란 프로에서 먹질 못해 바짝 마른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나왔다. 홀로 사는 아주머니 가정의 안뜰 평상에서 피를 흘리고 있자, 주인아주머니가 상처에 치료약을 발라주고 사료를 주었더니 이튿날에도 다시 나타났다. 이를 불쌍히 여긴 아줌마는 사료와 함께 살이 많은 닭가슴살을 주었더니, 사료만 먹고 닭가슴살은 입에 물고 어디론 가로 사라지다가 이튿날 그 시간에 다시 나타났다. 다시 사료를 주었지만 닭고기를 줄 때까지 꼼짝도 않고 있어서 올 때마다 닭고기를 던져주면 닭가슴살을 물고 또 어디론 가로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게 궁금해서 뒤를 밟아 보았더니 들고양이의 정체는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후미진 곳에 네 마리 새끼를 둔 엄마 고양이였다. 이 새끼들을 먹이려고 아줌마가 닭고기를 던져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아주머니는 이 암컷 고양이가 자기를 낳아준 부모도 죽이고 제 자식도 죽이는 인간 말종들보다 났다 싶어 그 길고양이 가족들을 다 데려다 기르기로 했단다.

또 다른 동물이야기는 서울 강북구의 재개발지역에서 생겼다. 판자촌 일대를 고층 아파트단지로 개발할 때, 그곳에 입주할 수 없는 세입 철거민들은 기르던 개를 어쩔 수 없이 철거현장에 버려둔 채 이사를 간다고 한다. 주인을 잃은 개들은 보신탕을 밝히는 인간들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산속에 들어가 들개로 살기도 한다. 이때 주인을 잃은 검둥이 한 마리가 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현지 아줌마가 주는 음식을 얻어먹으며 무려 7년 동안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다. 사람은 기르던 개를 짐 덩이로 여기고 버렸는데 개는 주인이 찾아오기를 7년을 하루 같이 기다렸다니 참 가슴이 뭉클하다.

분명 사람의 형상을 지녔으니 사람은 사람인데, 반려동물만도 못한 게 우리 인생들이 아닌가! 우리는 평생을 같이 사는 배우자를 `반려자`라 하듯이, 고양이나 개를 흔히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야생 동물 생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들은 생태계나 서식지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인간 위주의 활동영역 확장을 한다고 한다. 인간들의 이러한 막무가내 기식 횡포로 인해 선순환의 고리가 끊긴 대자연 속, 위협을 받으며 갈 곳을 잃어 가고 있는 야생동물들은 생존을 위한 이동범위가 70% 이상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대자연이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 주어진 것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인간중심으로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것은 제 살을 갉아먹고 있는 어리석음과 다름없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환경문제가 모두 다 배려의 빈곤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상생공존의 자연을 보존하려는 배려도 없이 인간중심의 `내 본위` `내 중심`만 있다고 하면, 자연의 모든 생태계를 비롯한 동시대를 사는 모든 공동체가 어찌 될까 싶어 소름이 돋는다. 인간들의 삶 속에 코로나가 우연히 들어 온 게 아니다. 야생동물들이 "우리에게 설 곳을 달라!" 는 외침이 귓전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