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이슬람 신앙체계와 세계관(3)

2023-06-25     고광석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이슬람은 이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중동지역에 제한된 종교에서 이제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서남아시아 지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인 종교로 확장되고 있다. 이런 확장세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며, 단순 통계로 전 세계 인구의 25%(1/4)가 무슬림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 둥의 하나가 “기독교와 이슬람이 뿌리가 같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소위 기독교와 이슬람이 근본적으로 아브라함 계 종교(Abrahamic religion)라는 전제에서 나온 주장이다. 즉,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이슬람(무슬림)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차자 이삭의 후손들이 유대교와 기독교가 되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세력들은 주로 의도적으로 이슬람의 정체를 위장하는 세력과 이슬람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일반인들, 심지어 이슬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기독교인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꾸란에 그런 뉘앙스의 기록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하나님(알라)을 믿고 우리에게 내려진 계시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내려진 율법을 믿으며 모세와 예수와 예언자들에게 내려진 율법을 믿으며 예언자들을 구별하지 아니하며 하나님만을 믿는다 말하라.”(Q 3:84)고 되어 있다(참고, 꾸란 한국어 번역본에는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꾸란을 번역본대로 인용하고, 대신 괄호 안에 (알라)로 표기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몇 년 전 「알라(Allah):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라는 책으로 기독교의 여호와와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신(God)이라는 논지로 논란을 일으킨 크로아티아 출신의 미국 예일대학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교수는 헌정문에서 “무슬림과 우리가 동일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하도록 가르쳐 주시고, 무슬림을 존경한 오순절파 목사인 아버지께 이 책을 바친다.”고 했고, 들어가는 서문에 “기독교인이 알라를 우상으로 여긴다면, [두 종교 간에] 다리를 놓으려는 노력은 난관에 봉착한다.”고 자신의 저서의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그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인류의 절반 이상인 기독교와 이슬람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그들의 신(여호와와 알라)이 같은 신(God)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인류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해도 어떻게 흑과 백이 같다고 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여호와와 이슬람의 알라가 어떻게 같은 신이라는 말인가? 기독교와 이슬람은 본질이 다르다. 두 종교가 다른 결정적인 두 가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1. 혈통적 관점에서: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증거는 없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뿌리가 같은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논리는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혈통적 관점에 근거한다. 이들의 주장의 근거는 창세기 16장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애굽의 여종 하갈을 통해 86세에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고(창 16:15), 그 후 십 사년 후에 아브라함이 본처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았다(창 21:3).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 중에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적통(씨)임을 분명히 하셨고(창 21:12), 하나님은 이삭을 아브라함의 적자(언약백성의 씨)로 보호하시기 위해 하갈과 함께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쫓으셨다(창 21:10, 14).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언약의 씨로 선택하셨지만 이스마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스마엘이 가정을 이루어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함께하셨고(창 21:13),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삭과 함께 아들로서 아버지를 장사지냈으며(창 25:9), 이스마엘의 죽음에 대해 성경은 말하기를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창 25:17)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 상 아브라함의 죽음을 표현한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창 25:8)는 것과 동일한 뜻이다. 이스마엘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들이었고, 할례를 받음으로 언약가문의 일원이 되었으며, ‘죽어서 그의 조상에게도 돌아갔으니’ 비록 이스마엘이 언약 밖의 자손이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일반은총) 아래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삭과 이스마엘은 동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삭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지만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은 “하윌라(2:11; 10:7)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창 25:18) 거주하였는데, 아라비아 지역에 거주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점은 아라비아 지역에는 이스마엘의 후손들만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제외한 아라비아와 애굽의 지역에는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를 통해 난 여섯 명의 직계 자녀들과 그 후손들도 ‘동방 곧 동쪽’(요단강 동반부인 아라비아 반도)에서 함께 살았다(창 25:1-6). 즉, 가나안 땅 동남북(東南北) 주변의 아라비아 지역에는 이스마엘의 후손들뿐만 아니라 그두라의 여섯 자녀들(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의 후손들이 부족 단위로 섞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자기 부족끼리 살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섞여지고 나눠지는 일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태어날 당시 아라비아 지역에는 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카아바 신전에 자신들의 신을 모신 부족만 360여개에 이를 정도였다. 분명한 사실은 무함마드 출생 당시 아라비아 지역에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스마엘의 후손들만 살았던 것이 아니라 여러 후손들이 각각의 부족을 이루며 섞여 살았다. 그 후(무함마드 死後) 아라비아 지역 대부분이 이슬람화 되었기 때문에 모든 무슬림들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런 배경에서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정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이슬람에서 무함마드의 족보를 임의로 만들면서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막연한 생각으로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이슬람의 일방적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 이슬람이 기독교와 뿌리가 같은 종교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되고 만다.

2. 신학적 관점에서: 이슬람은 삼위일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본질은 삼위일체와 기독론이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삼신론(tritheism)으로 몰아 유일신론에 반대되는 다신론(polytheism)의 한 부류로 치부하면서 이슬람 유일신에 대한 신성모독으로까지 보고 있다(Q 2:116; 5:73). 심지어 그들 중에는 삼위일체를 성부•성자•성령이 아닌 성부•성자•마리아로 보고 있는 정파도 있다. 그래서 꾸란에서는 삼위일체 신론을 여러 군데에서 엄히 금하고 있다: “성서의 백성들이여(유대교 및 기독교) 너희 종교에 한계를 넘지 말며 하나님(알라)에 대한 진실 외에는 말하지 말라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하나님(알라)의 선지자로서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이었노라 하나님(알라)과 선지자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알라)은 단 한분이시니 그분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노라…”(Q 4:171); “그들은 하나님(알라)이 아들을 낳았으니 그분께 찬미를 드리라고 말하나 그렇지 않노라.”(Q 2:116); “하나님(알라)이 셋 중의 하나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라 하나님(알라) 한분 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한 것을 단념치 않는다면 그들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벌이 가해지리라.”(Q 5:73).

또한 이슬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철저하게 부인한다. 즉 삼위일체를 부인함으로 예수님의 성자되심, 즉 제2위의 하나님 되심을 부정한다(Q 5:73-75; 9:30). 그들에게 예수는 알라에 의해 창조된 마리아의 아들일 뿐이다(Q 3:59; 5:112-116). 또한 이슬람은 인류구원의 절대적 근거가 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부정한다. 십자가의 죽음을 헛된 신화쯤으로 여기며 그리스도의 중보를 부정한다(Q 6:164). 또한 이슬람은 예수님의 재림을 왜곡하고 있는데, 예수가 재림하여 십자가를 부수고(십자가의 대속을 부인하는 퍼포먼스로서), 돼지를 죽이고 이슬람을 재건할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와 이슬람은 ‘어느 정도’ 다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뿌리도 다르고, 줄기도 다르고, 열매도 다르다. 이슬람은 이 세상의 여러 이방 종교들 중 하나 일뿐이다. 무력(지하드)으로 세상을 이슬람화(이슬람국가 건설) 하겠고 하니 종교를 앞세운 정치집단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의 일관된 입장은 이슬람이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이단이다. 쯔빙글리(Huldrych Zwingli)는 이슬람을 기독교의 이단으로 간주했던 다마스커스의 존(John of Damascus)의 입장을 따르면서 이슬람을 기본적으로 이단으로 가르쳤다. 불링거(Heimrich Bullinger)는 나름대로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가졌지만 그 역시 배타적인 사상을 가졌다. 칼빈(John Calvin)도 데살로니가후서 2:3의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라는 부분을 주해하면서 이슬람을 이단으로 규정했는데, “모하멧(Mohammed)이 배도자가 되어 그의 추종자들인 터키족을 그리스도에게서 따돌리게 되자 이 배신은 더 넓게 확대되었다. 모든 이단자들은 자기들의 당파를 이용해서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해 오고 있으며 이 결과 그리스도로부터의 이탈이 많아지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도 이슬람이 예수님의 신성과 삼위일체에 관한 기독교적 관점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자명해졌다. ‘이슬람’(Islam)은 단호하게 거부하되 ‘무슬림’(Muslim)은 반드시 구원해야 한다. 이것은 다문화 현상에 힘입어 우리 곁에 다가온 무슬림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사명임과 동시에 무슬림 복음화의 기회이다.

※ 본 이슬람 신학논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됩니다.

1. 서론: 이슬람과 역사 개관

2. 이슬람의 교리와 샤리아법

3.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4. 야훼(여호와)와 알라

5. 성경과 꾸란

6. 예수와 무함마드

7. 이슬람의 구원관

8. 이슬람의 내세관

9.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10.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크리슬람과 내부자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