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진칼럼】表裏不同한 現今 言論의 作態

하영진 목사, 시카고 거주, 총신대학교 및 총신신대원(79회)

2024-06-22     리폼드 투데이

학교 다닐 때 언론은 사회의 公器라는 말을 배운바 있다. 사회를 유익하게 한다는 언론이 가지고 있는 중대한 사명 하나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태도로 사실적인 뉴스를 보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뉴스를 보도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판단력을 안겨주는 글자 그대로 사회에 유익한 公器가 된다. 같은 알파벳 F로 시작되고 글자의 수도 같은 단어이지만 fact와 fake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니 극과 극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는 fact가 아닌 fake news로 인해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現今의 언론은 이러한 언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명감을 내팽겨쳐버린 것같다. 

불편부당이란 말은 뒷마당 구석 행랑채에 버려두고 따뜻한 볕이 드는 사랑채에 앉아 앉은뱅이 책상 밑으로 주고받는 거래에 따라 손님의 입맛에 맞는 글만을 써주고 있는 행세이다. 사랑채를 찾아오는 손님이 많으면 책상 서랍에 넣어두는 봉투도 두둑한 법이라 그 점쟁이가 받는 복채같은 돈맛에 언론의 사명은 잊어버린지 이미 오래된 모양새 또한 보여주고있다.

언론을 第4府라고도 한다. 三權分立에 따른 行政府, 立法府, 司法府에 이어 네번째 부서라는 의미로 제4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잘못되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현금의 언론은 마치 자신들이 三權에 버금가는 네번째 권력기구인양 행세를 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의와 사실을 위하여 휘둘러야 하는 筆鋒을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논조로 필봉을 휘두르니 論調가 미친년 널뛰듯 하고, 망나니 칼춤 추듯하다. 자기들이 최고의 權府인줄 착각하고 나라의 앞날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고 대통령도 자기들이 선출하려고 날뛰고 있다.

언론의 이러한 타락한 태도를 빗대어 언론은 창녀와도 같다는 비판도 있다. 입에 담기도 쑥스럽지만 창녀가 남자를 대할 때 결단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남자를 맞이하는 창녀의 목적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함이다. 

창녀가 어디 공공의 유익과 사회정의를 위하여 일을 하던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몸을 내어주는 것이다. 돈을 좇아 오늘은 이 남자 내일은 저 남자 품을 파고들어 아부하는 창녀의 이러한 태도를 최고의 지성인듯 고상한 척하는 언론의 행태와 빗대고 있으니 참람하기만 하다.

실로 그렇다. 언론이 제 사명을 잃어버린 現今에 언론은 더이상 사회를 유익하게 하는 公器도 아니고,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제 4부도 아니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사회를 밝히는 등불은 더구나 아니다. 자기 이익을 좇아 돈이 되는 곳을 따라다니고, 권력에 맛을 들어 권력의 수하에서 수족노릇을 하고 있다. 힘 있고 돈 있는 자에게 온갖 아부를 떠는 창녀와도 같은 추하고 구역질 나는 行態를 백주 대낮에도 벌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언론도 한국 언론과 같은 모양새를 따라가고 있다. 그 하는 짓거리들이 앞장선 대장격의 한 마리가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면 모두들 일제히 따라서 뛰어내리는 레밍이라는 설치류 동물과도 방불하다. 

자기 고유의 소리도 없이 모두들 함께 같은 곡조로 제창을 하며 떠들어대고 있다. 합창에는 4성부에 따라 소프라노, 앨토, 테너, 베이스가 각기 다른 성부의 소리를 내며 和音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한 음, 같은 성부로 소리를 질러대면 그것은 和音이 아닌 騷音이 되고 公害가 된다. 

그러나 언론의 현재와 같은 그 모양새와 論調는 언젠가는 결국 이해관계에 따라 바뀔것이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말이다. 마치 창녀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 변화하는 論調를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울것 같다.

아래에 지난 18세기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두고 변화하는 언론의 카멜레온적인 행태, 또는 창녀의 행태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니 참고들 하기를 바란다.

나폴레옹 당시의 프랑스의 유력지 '모니퇴르 Le Moniteur Universel'는 지금도 권력 앞에 굴절된 언론의 고전적인 본보기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원래 '모니퇴르'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시민들을 옹호함으로써 최대 일간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권력자로 떠오르자 이번엔 적극적인 나폴레옹 지지로 돌아섰다. 나폴레옹이 민중의 기대를 배신한 채 황제에 오른 뒤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찬양하였다. 그러다 나폴레옹이 1814년 3월 연합군에 의해 파리를 점령당하고 패한 뒤 엘바 섬으로 유배된 후에는 다시 복고된 부르봉 왕조의 주구가 되어 나폴레옹에 대한 무서운 독설을 퍼부었다.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하여 20일간의 여정끝에 파리에 입성했는데, 그 20일간 사태 전개 과정에서 보인 프랑스 최대 일간지 모니퇴르의 편집과 제목 그리고 기사는 두고 두고 가히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조소(嘲笑)의 표본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접근할수록 변화하는 모니퇴르의 1면 헤드라인의 변화는 참으로 가관이다.

3월 9일 '식인귀(anthropophage)', 소굴에서 탈출
3월 10일 "코르시카 출신 오거(Corsican Ogre : 오거는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괴물)", 주앙(Juan) 만(灣)에 상륙
3월 11일 호랑이(tiger), 카르프에 나타나다
3월 12일 괴물(monster), 그레노블에 야영
3월 13일 폭군(tyrant), 벌써 리옹에 진입
3월 18일 찬탈자(usurper), 수도 100km 지점에 출현
3월 19일 보나파르트(Bonaparte) , 북으로 진격 중! 그러나 파리 입성은 절대 불가
3월 20일 나폴레옹(Napoleon), 내일 파리 도착 예정
3월 21일 나폴레옹 황제(Emperor Napoleon), 퐁텐블로 궁에 도착하시다
3월 22일 어제 황제 폐하(his majesty)께옵서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대동하시고 튈르리 궁전에 납시었다.

이후 모니퇴르는 프랑스 정부의 공식적인 기관지가 되었다. 카멜레온처럼 변색하고, 창녀처럼 웃음을 팔고, 권력에 아부하고 , 레밍처럼 세류에 휩쓸린 결과로 정부의 공식 기관지가 된 것이다. 

이 모니퇴르라는 프랑스 신문의 행태가 이 시대에도 재현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정권의 시녀, 아니 혹독하게 평가하자면 창녀의 신분으로 스스로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에서도 이런한 變態가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기 입맛에만 맞는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 작금의 미국 언론의 행태가 이제는 언론의 보도를 믿지 못하는 시대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모니퇴르'가 다시 나타날 징조도 농후하다. 그 누가 이 시대의 '모니퇴르'가 될지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것이다.

바로 이 시간에도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는 미국에서는 異口同聲으로 하나의 표적만을 향하여 영점사격하고 있는 뉴스미디어가 스스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作態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독자들과 시청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귀를 쫑긋하게 열고 fact와 fake를 가려내야 할 일이다. 이것이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우리 자신들이 해야 할 사명이다.

"너희는 그저 '예' 할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하라. 그 이상의 말은 악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7절 말씀>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욥기 12장 14~15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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